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내딸서영이 +21

 

시장이 반찬인 시간대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대는 뭘 해도 재밌을 거라고. 오작교 형제들, 넝쿨째 굴러 온 당신, 내 딸 서영이를 볼 때까지만 해도. 그냥 틀어주니 보는 건갑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교만이었음을 최근 KBS의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을 보면서 느낀다. 나는 내 딸 서영이와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을 그렇게 건방진 자세로 시청해선 안 됐었다. 매회 매분 감격해 하며 한 컷 한 컷을 더듬어야 마땅했던 것이다. 적어도 이 드라마들은 그만큼의 대우를 받아야 할 자격이 있었다.

 

 

 

놀랍다. 최고다 이순신이 벌써 20회를 넘겼다는 사실에. 20회를 봐도 1회를 보는 듯한 이 기시감은 줄어드는 드라마의 회차가 아쉬워서가 아니다. 20회가 넘도록 도무지 진행될 생각을 안 하는 드라마의 느림보 전개 때문이다.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하는 흐릿한 존재감을 원망하던 이순신. 전단지맨에게 화풀이를 할 정도의 피해의식에 시달리던 그녀의 가치를 처음 알아봐 준 신준호라는 이름. 절망의 순간에 손을 내민 유일한 구원이 2천만 원의 빚을 안기고 떠난 사기꾼일지라도 그녀는 절박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한 진짜 신준호. 어느 커플의 치기 어린 사랑싸움에 휘말려 내기의 증거물이 되어버린 이순신.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기까지가 최고다 이순신이 낼 수 있는 유일의 스피드였다. 그리고 20회가 되기까지 이 드라마는 초반의 전개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 더이상의 진행은 포기해버린지 오래다.

 

 

 

20회다. 최고다 이순신이 50부작의 드라마인 것을 고려해볼 때 벌써 이 드라마는 절반을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전개는 여전히 초반까지다. 여전히 이순신은 데뷔를 못했고 아직도 신준호는 이순신의 믿음을 받지 못하고 있다. 순신의 엄마는 여전히 의심하고 경멸하면서도 히스테리만 부릴 뿐 아무런 행동개시를 하지 않는다. 이 시간대에 방영된 다른 드라마의 20회는 어땠는지 살펴볼까? 서영이는 아버지를 버렸고 결혼을 했으며 3년간 숨어서 딸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사위의 목숨을 구원하고 그와 낯을 익혔다. 점차 서영이의 목을 죄어오는 아버지의 존재감과 더불어 그녀의 동생 상우는 누나의 시누이인 연인의 존재를 놓고 갈등하며 누나를 지킬 것인가 사랑을 가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상태였다.

 

몇 번의 클라이막스를 넘기고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갈등의 축을 담당하며 최고조의 긴장을 유도하고 있던 그 무렵에 최고다 이순신은 여전히 짜증을 내며 할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다. 희한하게 필자가 채널을 돌리며 목격한 드라마 속의 아이유는 언제나 나 연기 안 할래요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명색이 성장드라마, 성공 신화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20회를 넘길 때까지 주인공의 데뷔는커녕 목표를 결정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정체 상태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도대체 이 드라마에서 조정석의 존재가 필요한 것인가의 의문을 가질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아무런 진전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순신은 여전히 신준호를 믿지 못하여 시종일관 떽떽거리고 굴지의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신준호의 쩔쩔매는 모습이 두 사람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목하 열애 중은 커녕 연애 감정을 시도해보지도 못한 아이유-조정석 커플의 굼벵이 진행을 보고 있노라면 이 드라마의 결말은 두 사람의 연애를 발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물론 전개가 느린 것이 이 드라마의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최고다 이순신이 곤욕스러운 것은 되풀이되는 에피소드와 굼벵이 전개 이상으로 정떨어지는 캐릭터 때문이다. 사실 최고다 이순신은 막장 드라마라 불리는 자극적인 설정과 선정적인 수위가 범람하는 드라마는 분명히 아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그런 드라마들 이상으로 시청자를 불쾌하게 한다. 시종일관 짜증을 내고 있는 캐릭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화가 나 있다.

 

 

 

그렇게 복장이 터지면서 또 연민이 가거든 유전자 검사를 하든지 송미령을 붙들고 시원하게 따지기라도 하든지 언제나 이순신을 붙잡고 달달 볶기만 하는 김정애(고두심 분)를 비롯하여 정말 어른답지 못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할머니의 구박과 히스테리. 이 드라마에 화내려고 들어온 듯한 순신이의 둘째 언니 이유신. 그밖에 드라마 시작 이후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못 본 것 같은 캐릭터들도 가득. 모두가 화가 나선 미간을 찌푸리고 화면을 향해 분노를 터뜨린다. 덕분에 시청자의 분노 게이지도 덩달아 올라간다. 한주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청하는 주말드라마에서 오히려 분노를 얻어가는 기분이라 영 언짢다.

 

 

 

주인공 이순신의 캐릭터부터가 문제가 많다. 차라리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굴하지 않고 방긋방긋 웃어 보이는 전형적인 캔디 아가씨였다면 이 드라마를 보는 일이 그리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늘 풀이 죽어있고 대체로 화가 나 있으며 남 탓이 잦고 그렇다고 자괴감이 없지도 않은 자존감 제로의 이순신을 사랑하는 것은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연기자의 꿈이 있었다던가 하는 거창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찌어찌하여 우연히 연예인의 꿈을 키우게 된 그녀가 책임감이나 목표의식도 없이 그저 이끌리는 데로 꿈을 키웠다 접었다 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이 그렇게 쉽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물론 꿈만 꾸기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녀를 화나게 하는 주변 상황들도 이해한다. 하지만 가진 것에 비해 유달리 잦은 기회와 우연이 많은 것 또한 사실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녀의 구원인 신준호의 트레이닝을 못 미더워하며 툴툴대는 순신의 모습은 그냥 같잖다. 도무지 정이 안 간다. 불 꺼진 연습실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노력의 노력을 거듭하는 이순신을 흐뭇한 얼굴로 훔쳐보는 신준호 얼굴 따위의 흔한 클리세라도 들어가던가.. 아니면 신 사장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 콧물을 펑펑 쏟으며 "연기가 하고 싶어요. 신 선생님!" 따위쯤은 외쳐주어야 나 이거 안 할래요! 외치는 순신의 억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아닌가.

 

 

20회가 지나고서야 겨우 김정애가 송미령을 향해 소리 질렀다. 부디 그 비명이 낚시가 아니라 느림보 전개를 진행시킬 신호탄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만약 이 상태의 히스테리 같은 에피소드를 30회나 더 반복해서 봐야 한다면 이건 절망이다. 이제 더이상 KBS 주말드라마는 뭘 해도 기본은 간다는 망발을 지껄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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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5

  • 2013.05.13 09:11

    비밀댓글입니다

  • 뭘 해도 된다는 KBS 내부의 안일함이 결국은 진부함으로 나타나지 않나 싶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 와니비 2013.05.14 16:57 신고

    와~ 정말 잘 꼬집으셨네요.
    보면서도 정말 짜증났는데 정확하게 지적하셨어요.

  • 납뜩이 은시경 2013.05.15 02:42 신고

    조정석이 후속작을 잘못 골랐어요ㅠ_ㅠ
    더욱 더 상승세 탈 수 있었는데...
    2012년 최고의 발견 중 하나인 조정석이 어쩌다가 저런 작품을 만나서 ㅠ

  • 아속시원해 2013.05.25 11:09 신고

    정말 속이 시원한 글입니다. 왠지 이순신을 보고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싫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대 볼 것이 없고, 솔까 조정석이 너무 좋아서 하는 수 없이 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조정석 뿐 아니라 아이유도 작품을 잘못 고른 것 같습니다. 아이유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 속 캐릭터가 정이 안가는 만큼 아이유도 싫어지는 기분...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신 대표만 만나면 막나가는 고딩처럼 굴며 툭툭 내뱉는 말투.. 현실갘 백퍼 떨어지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네요. 갈등의 핵심에 서있는 캐릭터 중에 신 대표 빼고는 정 가는 캐릭터가 없네요. 다들 좋아하는 배우인데도 50분 내내 짜증만 내고 있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요...

  • 미키 2013.05.25 23:52 신고

    이 드라마 보면서 정말 짜증났는데 너무 속 시원하게 지적해준 글을 보고 반가워 댓글 달고 갑니다. 너무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왜 저 정도의 질 떨어지는 드라마를 찍어야 하는지 열연하는 배우들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어요.

  • 2013.05.26 18:30

    비밀댓글입니다

  • 아이고 2013.05.27 01:06 신고

    세상에 이렇게 공감가는 리뷰는 처음이에요ㅋㅋ
    왠만한 드라마는 다 재미있으시다는 저희 엄마도 천하에 재미없는 드라마라며 결국 중도포기하셨다는ㅋㅋㅋ 전 뭐 원래 가끔 오다가다 한번씩만 봤는데 늘 그 내용이 그 내용이라 전혀 앞뒤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더군요.

  • 언제까지 2013.05.27 11:01 신고

    회수만 늘릴 생각인지? 첨앤 20부작이었다가 제자리 걸음 진행으로 20화까지 가도록 내용전개가 나갈 생각을 안해서 30부작으로 늘리더니 이번앤 50부작으로 늘려버렸네여 아무리 시청률이 좋고 시청자들이 더 해달라고 해서 괜히 회수를 늘렸다가 외면 받는 드라마들이 몇 있는데 이건 나갈 생각은 안하고 회수만 늘릴 생각을 하니 ㅉㅉ

  • 속이시원 2013.05.27 21:40 신고

    정말 속시원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빠른 전개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바네요

  • . 2013.05.30 08:32 신고

    말이필요없다.완전공감

  • ?? 2013.06.03 01:54 신고

    저는 꽤 재밌게 보고 있는데..ㅎ
    이사람들 볼건 다 보고선 딴 소리하네... 하는거야 자기 맘이지만..

  • 이름이뭐예요 2013.06.08 17:20 신고

    이 드라마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으셨네요..순신이 연기안한다고 계속 버티고 출생의 비밀로 계속 질질끌고 조정석이랑 러브라인은 언제 되는건지 순신이는 아직 조정석을 남자로 안보던데..아이유 연기력만 아깝다..뒷내용이 궁금하면 챙겨보기라도 할텐데 이제뭐 궁금하지도 않고..

  • 바람의 칼심 2013.06.10 01:42 신고

    보는 사람에 따라 보는 눈에 따라 달리 보이듯...
    드라마에는 전~혀 문제가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네요.
    글을 적으신 분의 마음에는 안 드셨나봅니다.

  • ... 2013.06.23 20:48 신고

    공감 진짜ㅡㅡ 갑자기 존나 막장 아침 드라마 전개에다

 

정말 단아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얼굴이라면 아무리 까다로운 면접관이라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 감탄했다. 한편으로는 이토록 정갈한 얼굴의 그녀가 생각외로 꽤 빡빡한 일상을 보낸다고 생각했다. 잠깐의 쉴 틈 없이 찍어대는 많은 작품들을 보며 그야말로 강철 체력의 이보영, 단정한 얼굴의 에너자이저라고 감탄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단아함에 감탄하고 그녀의 든든한 체력에 놀라워하면서도 막상 그것을 연기자 이보영, 배우 이보영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로 환산하진 않았었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이보영은 꽤 많은 작품을 찍으면서도 그리 인상적인 캐릭터를 남긴 기억이 없는 밋밋한 배우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감탄했던 그 모든 것들은 단아함은 밍밍함으로 그리고 그 많은 작품을 찍으면서도 시청자에게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선입견과도 같았다. 나는 이보영의 연기를 불평한 적도 없지만 감탄한 기억도 없었다. 적어도 적도의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는 내게 있어 꽤 심심한 맛의 배우였다.

 

나의 선입견이 벗겨진 것인지 아니면 이보영 스스로 진가를 드러낼 작품을 만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적도의 남자는 이런 내게 있어 처음으로 이보영의 매력을 새삼 발견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책 읽어주는 여자, 이보영의 사각거리는 침착한 목소리와 결코 과장되지 않은 담담한 연기력이 이제는 밍밍함이 아니라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겐- 엄포스의 상대역으로서 받는 매리트라고 생각했다. 내가 감탄하는 부분들이 온전히 이보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만났다. 내 딸 서영이. 이름부터가 온전히 그녀의 것임을 알리는 배우 이보영의 진짜 데뷔작. 내 딸 서영이-

 

 

 

하지만 주인공 이보영에게 있어 내 딸 서영이는 제목만큼이나 주인공에게 친절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를만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해둘 때 작가는 시청자가 최대한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캐릭터의 당위성을 살려주려 노력하지만 내 딸 서영이만큼은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 되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영이는 아버지를 버린 패륜아에 심지어 성격마저 오만하리만큼 꼿꼿하고 정이 없는 겉모습으로 그려졌다. 서영이가 그런 캐릭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 시간은 이 드라마에서 초반 10회 분량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참회한 이삼재의 개과천선을 담아냈다. 호흡이 짧은 미니시리즈도 아니고 50부작의 장편 드라마에서 시청자가 받아들인 상황은 날이 갈수록 독해 보이는 이서영과 그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다른 주말극이었다면 중간유입층을 위해 수시로 서영이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되풀이했겠지만 소현경 작가는 이런 부분마저 손 놓아 버렸다. 드라마 애정만만세에서 시작된 부녀의 악연은 단순히 배우의 캐스팅이 같다는 사실만으로 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니 2012년에 끝난 애정만만세를 비롯하여 적도의 남자와 내딸서영이까지 일 년 정도의 기간에 세 작품을 찍어내는 이보영의 체력은 정말. 심지어 두 편은 장편이다)

 

 

 

서영이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3년이 걸려서야 살가운 며느리가 된 서영이와의 교감을 이제 와서 버려야하는 차지선의 심장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래도 그녀는 서영이를 내몰아야 했다. 우리 아들이 다시 널 찾더라도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고. 아들에게도 경고했다. 더 험한 꼴 당하게 하기 싫으면 네가 그만 서영이를 내버리라고. 꼬장꼬장한 성격에 그나마 내세울 자신감이었던 깨끗한 사생활이 치부로 얼룩진 과거가 되어버렸음을 며느리에게 들키고서도 강기범씨의 엄격한 얼굴은 당당하게도 서영이를 꾸짖었다. 그렇게 밀어내고 또 밀어냈어도 기어이 다가와 서영이의 남자가 되었던 강우재의 사랑도 아내의 비밀 앞에서는 초연할 수 없었다. 그는 말했다. 너를 이해해보려고 해도 너에게 버려졌으면서도 네 주변을 서성대는 네 아버지의 부성애를 확인할 때마다 너를 받아들일 수 없었노라고.

 

가난한 아버지를 감추고 있었던 서영이와 달리 부자 부모를 감추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자신의 거짓말은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 미경은 본인의 경솔함은 잊어버린 듯 분노한 얼굴로 상우에게 따져 묻는다. 네 누나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사건의 원흉이 되어버린 오지라퍼 정선우 또한 연신 미안하다 사과하면서도 결국 문제의 화근은 이서영이 괘씸한 탓이라고 힐난했다. 사돈의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친구의 가십거리에 함께 동조했던 호정의 엄마에게도 역시 제3자의 이야기니까 서영이는 그저 재벌집에 시집을 가기 위해 아버지를 버린 성격파탄자이자 패륜아일 뿐이었다.

 

"어머머머머머 세상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야. 네 며느리 아주 참하게 생겨갖고 은근히 무섭다. 야."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미경을 피하기 위해 나를 선택한 상우를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였던 호정이마저도 시누이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터져 나온 말은 "어떡해. 우리 아버님. 딸은 버리고 결혼했는데 우리 아버님은 알면서도 이렇게 몰래몰래.. 아버님"이었다. 아버지 버리고 결혼한 우재 오빠 와이프가 오빠 누나야?

 

 

 

당연하다. 사람들은 서영이의 아버지 이삼재가 개과천선한 이삼재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니까. 겉모습으로는 그저 착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불쌍한 아버지일 이삼재를 두고 반사적으로 몹쓸 딸이 되어버린 서영이의 패륜을 캐묻는 주인아줌마에게 이삼재는 머뭇거리며 나는 자식의 등골을 빼먹는 아비라고 고백했지만 그녀는 헛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묵살해버린다. "부러 등골 빼먹었을 애비는 아니구먼 뭐어. 척 보면 척이지." 끔찍하게 서영이를 생각하는 아버지가 되어버린 이삼재 뒤의 서영이는 어머니를 떠나 필리핀에서 돈이 필요할 때만 손을 내미는 주인 아들의 패륜과 동격의 수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라도 마찬가지다. 어느 집 딸이 재벌가 며느리가 되려고 아빠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더라- 라는 이야기에서 딸의 사정을 참작할 여유를 갖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심지어 그토록 쌍둥이 누나 서영이의 보살핌을 극진하게 받았던 상우마저도 누나를 이해하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렇듯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은 서영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삼재를 동정했다. 심지어 그녀에게 속임 당하고 버림받은 전남편은 여전히 식지 않은 아내 사랑을 과시하며 쓴 커피와 단 커피를 동시에 내밀고 그녀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받아들이겠노라 고백한다. 이것은 사실 이서영을 연기하는 이보영에게 있어 매우 불공평하며 위험한 상황이다. 자칫했다간 주인공이 시청자의 동정과 감정이입을 갖게 하는 대상이 아니라 미워하고 싶은 악역으로 둔갑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배우 이보영에게도 위험한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그런 방향으로 시청자의 감정선이 치닫게 된다면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의 흥행은 보장하기 어렵다.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드라마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심지어 그 제목마저 내 딸 '서영이'인데.

 

하지만 필자의 어머니는 끝내 우재를 버리고 돌아선 서영이를 보며 울었다.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나왔다고. 부모의 입장에서야 아버지를 버리고 남의 가정을 망친 패륜아일 이서영을 '불쌍하다'며 눈물을 훔치셨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방치한 듯 하면서도 결국 서영이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던 소현경 작가의 섬세한 필력과 작품의 서사를 정확히 이해한 이보영의 완벽한 이서영 빙의 덕뿐이다. 작가와 배우의 완벽한 혼연일체. 그것이 바로 내 딸 서영이의 일등 공신 이서영의 존재감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 드라마 속 이서영이라는 캐릭터는 기존의 여주인공 캐릭터를 완벽히 부인하는 인물이다. 주말극에 어울리는 인물은 더더욱 아니다. 왕자님과의 결혼이 이서영 이야기의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서영이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 순간은 왕자님과의 이혼 이후다. 이서영은 그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대도 아무렇지 않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잡초 아가씨가 아니다. 그녀는 상냥하지도 않고 함부로 무릎을 꿇지도 않는다. 얼핏 신데렐라 스토리를 표방한 듯한 이 드라마에서 이서영은 결코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슬프고 예민하며 너무하리만큼 자존심이 강하고 섬세함의 극치인 이 까다로운 캐릭터튼 주말극에 어울리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서영은 완벽하게 시청자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그것은 이토록 까다롭고 모두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는 캐릭터를 완벽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그야말로 살아있는 인물처럼 묘사하는 이보영의 리얼리티 때문이다.

 

 

등장 초반부터 그랬다. 여배우라면 누구나 불평할 만한 짤막하게 묶은 포니테일 머리에 바지 정장을 입고 신발은 낡은 운동화나 플랫 슈즈. 그리고 돌아가며 입는 듯한 와이셔츠. 그 소박하지만 청결함이 느껴지는 의상에서마저 서영이의 타협하지 않는 꼿꼿함이 느껴졌었다. 언제나 고개를 치켜세우는 서영이지만 상처로 딱딱해진 속살은 부드럽기 짝이 없는 고독한 인물이다. 이기적인 이서영이라 하지만 드라마 내에서 그 어떤 인물보다 많은 양보와 희생을 했던 사람이다. 알몸으로 갑옷을 두르고 있는 서영이. 화장실에서 울고 나온 눈을 끝내 우재에게 들키지 않으려 평소보다 더 단단해진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던 서영이. 그 슬픈 자존심을 꼿꼿한 목소리와 들어 올린 턱에 어울리지 않는 서글픈 눈빛으로 이서영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정의했던 이보영의 연기력엔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연장 분량이 없다는 서영이의 마지막을 앞두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기존의 전개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끼한 장면이 방영되었다. 서영이의 첫사랑으로 등장한 떡볶이 디제이 같은 무스탕 총각. 라붐의 재림도 아니고 댄스 음악에 춤을 추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내 친구의 첫 생일이자 첫 클럽 입단식이라 소개하는 무스탕 총각의 모습은 느끼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런 어울리지 않는 유희와 상투적인 클리세를 경험해보지 못했을 만큼 로맨스가 부족했던 이서영의 청춘을 떠올린다면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보영은 작가가 요구하는 그 무엇을 알고 있었다. 유치한 상황에서 그녀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은 서영이 그대로였다. 삼각관계와 클럽의 열기. 이 모든 유희를 처음 경험하는 그래서 조금은 쑥스럽고 감동적이지만 애써 아닌척하는 꼿꼿한 얼굴의 이서영. 그녀의 리얼리티가 존재하는 이상 이 장면은 시시한 클리세로 소멸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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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3

  • 어제의 마지막은 참....과연 이번 주에 어떻게 될련지요 ㅎㅎ

  • 2013.02.04 10:03

    비밀댓글입니다

    • 너돌양님이 서영이를 좋아해주셔서 저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ㅎㅎ 내 딸 서영이는 정말 주말 드라마의 정석을 따라가는 것 같으면서도 완전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드라마죠.^^ 저도 이 드라마의 결말이 너무너무 궁금해요.

 

"그 얘기하러 오셨어요? 빌라구요? 용서해달라고 빌라요? 아버지는 제가 사람으로 안 보여요? 저 아버지 속이고 결혼했던 딸이에요. 아버지한테 유학 간다고 거짓말하고 아버지 버리고 결혼한 딸이라요. 그런 저한테 아버지가 이러시면 전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딸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아버지. 그러고도 그녀의 곁을 아무 원망 없이 3년을 맴돌았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 서영이는 남몰래 울었다. 결국 그녀의 자존심이 남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진 못했지만 "나 잠깐 화장실 좀..." 하고 자리를 비운 서영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입을 막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3년 전 그날 딸의 결혼식을 목격하고 화장실에서 울음을 터뜨렸던 아버지 이삼재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서영이였다. 아버지가 나빴다고 말하고 남편의 마음을 돌리라는 친구의 조언에 고개를 흔들며 그렇게까지 아버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순 없다며 내 손으로 죽인 아버지 또 한 번 죽일 수는 없다고 말했던 서영이였다.

 

"너는 나를 버렸어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알려주고 싶어서 오셨어요? 저보고 어쩌라고 이렇게까지 하세요?"

 

 

 

3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서영이는 그의 보은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전 장면을 보았을 때 마치 아버지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못난 딸을 사죄해달라고 울기라도 할 것 같았던 서영이는 여전히 꼿꼿한 분노를 터뜨렸다. 심지어 그녀는 말한다. "제가 그렇게 걱정되셨으면 들키더라도 아버지 때문에 들키게는 안 해주셨어야죠." 아버지의 헌신을 알고도 여전히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서영이 그리고 그녀를 평가하는 주변인물들. 서영이의 모진 말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심지어 내가 나갈 테니 이 집을 서영이에게 내어주라는 아버지에서 비추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아버지의 빛나는 부성애와 모진 딸의 패륜이리라.

 

"그 말을 안 하기 위해서 그 사람하고 헤어졌었어. 아버지 얘길 하고 싶지 않아서 포기했었다구. 지금 다시 그 말까지 해야 한다면 나는 다시 그 사람 포기해야 돼. 그러고 싶지 않아. 아버지 때문에 불행했던 내 인생에서 단 한 번 행복할 기회마저 아버지 때문에 뺏기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마치 모든 등장인물이 서영이를 향해 이제 그만 용서하라고 어쩜 그리 독할 수 있느냐고 꾸짖는 것만 같은 용서의 강요 속에서 아주 건전하게 눈물의 참회를 터뜨리며 아버지에게 매달리지 않는 서영이의 자존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절규한다. "평생 저한테도 그러시더니 아직도 그러시는군요. 잘해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적어도 서영이에게만큼은 달라지지 않은 3년 전 이삼재 그대로인 아빠였다.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잘해보고 싶어서 딸의 등록금으로 모아둔 돈을 도박으로 탕진하고 심장병을 일으킨 아내를 떠나보내고.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학교로 짜장면을 배달하는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일을 해야 했던 큰딸의 비극을 만든 것도 그렇게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숨이 턱턱 막히게 모은 등록금을 고스란히 사채빚으로 바치게 했던 것도 모두 잘해보고 싶어서였을 뿐 그 진심은 악의 아닌 선의였다.

 

"나는 아버지 때문에 너무 많은 걸 포기했어. 대학도 수학여행도 꿈도 포기했고 갖고 싶은 마음도 웃음도 행복도 여유도 모든 걸 포기하는 게 내 일이었어. 아버지 때문에. 그런데 이번에도 포기해야 돼? 내 인생 처음으로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의 '잘해보고 싶었는데' 때문에 서영이는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친구를 잃었고 어머니를 잃었고 수학여행도 포기했고 대학을 버렸고 미래도 미뤄뒀으며 사랑 따윈 그녀에게 사치였다. 그 오랜 기간을 그녀는 웃지 못했다. 행복할 수 없었다. 이런 그녀에게 처음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이 생겼다. 그녀가 처음으로 쌍둥이 남동생에게 간청할 만큼의 버리고 싶지 않았던 사람. 그 간청이 통하지 않자 동생까지 버리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 그가 바로 강우재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 사람마저도 아버지의 '잘해보고 싶었는데' 때문에 떠나가려 한다. 서영이는 모든 것을 잃었다.

 

 

"아버지면 무조건 사랑해야 돼? 내가 선택한 아버지가 아닌데 천륜이면 무조건 사랑해야 돼?! 사랑하게 만들어줬어야지!"

 

문득 강우재와의 결혼을 앞두고 남동생을 향해 절규하듯 외친 그녀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떠오른다. "천륜이면 무조건 사랑해야 돼? 사랑하게 만들어줬어야지." 같은 사정을 겪었달 지라도 상우는 받아들인 아버지를 서영이만큼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서영이만큼 잃어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포기해본 것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또한 누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3년이 걸렸고 결국 누나의 행복을 위해 처음으로 자신이 선택한 것을 포기했다. 남들에겐 개과천선한 이삼재 씨일지언정 서영이에겐 여전히 그녀의 행복을 포기하게 시키는 한심한 아버지다. 오히려 지금의 서영이에겐 달라진 아버지, 착해진 아버지가 민폐일 수도 있다는 거다.

 

 

나는 평생을 두고도 용서하지 못할 사람인데 3년의 기간 동안 그는 변했고 개과천선했다고 한다. 이제는 나의 용서만 남았다.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점잖은 서영이라 표현은 하지 않겠지만 아마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일 거다. 내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 홀로 착해져서 나만 미친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 그래서 서영이는 말한다. "아버지는 제가 사람으로 안 보여요? 저 아버지 속이고 결혼했던 딸이에요. 아버지한테 유학 간다고 거짓말하고 아버지 버리고 결혼한 딸이라구요. 그런 저한테 아버지가 이러시면 전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서영이에게 도대체 무슨 염치로 용서를 권하나. 남들은 달라졌다지만 서영이에겐 달라진 것이 없는 아버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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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4

  • 2013.01.27 07:55

    비밀댓글입니다

  • 라임사탕 2013.01.27 12:18 신고

    저도 전에 그런 일이 잇어서 서영이 맘이 이해되요...난 절대 용서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잇는데 당사자는 착해졋다고 예전에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행동할 때....

  • 서영이 리뷰 잘 봤어요.
    저도 모두가 초반의 서영이를 본 분들은 삼재의 캐릭터 때문에
    짜증났을 테지만 지금은 변한모습만 본 분들이 많겠지요.
    그만큼 달라졌지만 사람의 상처란게 참 쉽게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삼재가 서영이에게 힐링해줬던 것도 없고요.

  • 재밌게 보고 간답니다 ~ ^^
    좋은 주말을 보내세요~

  • 잘 보구 갈께요 ㅎㅎ
    기분좋은 오늘이 되셔요!!

  • 라임주스 2013.01.27 16:47 신고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해야 되는거 아냐?
    지 때문에 동생 사랑도 깨져야 했고,
    지 때문에 모르고 들어간 회사 그만 둬야 했던
    애비 심정은 이해 못하나
    싸가지 없는

    • 서영이 2013.01.27 17:15 신고

      서영이가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애초에 시작은 서영이 아버지 삼재였습니다. 모르고 들어간 회사라... 삼재는 들어간 회사가 사위인 우재 회사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서영이 아버지가 지금처럼 착실하게 살기 시작한 게 서영이가 떠나고 부터나 다름없습니다.
      서영이가 원한 건 돈 잘 벌어오는 아버지가 아니라 가정에 충실한 아버지.. 한 달에 50만원 벌어주는 아버지였습니다.
      그걸 안 해 주었으니 서영이가 아버지를 쉽게 용서할 수가 없는 겁니다.

    • 마음속의빛 2013.01.27 17:51 신고

      극중 이삼재의 역할은 군대로치면 고문관입니다. 아버지라는 설정만 없다면,
      본인은 항상 열심히 한다고 이게 최선이라고 말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초토화시키는 고문관..

      도박(경마장), 노름(카드 또는 화토), 다단계사업, 사채 등등 안 해본 것 없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다 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가정을 살리기 위해, 기죽은 아버지를 벗어나 인생 역전을 하기 위해..
      그리고 그 결과는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빚을 갚기 위해 서영이는 학교를 자퇴하고 돈을 벌어,
      수시로 집에 찾아오는 깡패들의 폭력과 빚쟁이들의 폭언 속에 사채 빚을 갚아야했습니다.

      상우는? 그냥 공부만 했죠. 집안 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어머니와 누나의 헌신으로 인해
      직접 체감하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딸 서영이에게 사채 빚을 독촉하며 협박하는 깡패들의 폭언과 위협적인 행동은 아버지가 만든..
      아버지가 이끌어내는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더이상은 버틸 수 없다며 살려달라고 비는 서영이 앞에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한번만 성공하면(다단계) 인생역전이 될 거라는 이삼재의 욕심은
      서영이를 더욱 절망에 빠뜨렸고, 몸과 마음이 누더기가 된 모녀 중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습니다.

      서영이 눈에 아버지는 살인자이며 폭력배이고 배신자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 잔혹한 사람이 개과천선해서 변했다고 한다면.. 피해자였던 서영이는 과연 용서를 해야만 할까...
      전후 사실을 잘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착해진 이삼재를 보며 아버지를 용서해주지 않는 딸을 비난하겠지만
      사위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며 일은 벌여놓고 수습은 전혀 못하는
      이 영원한 고문관을 놓고.. 서영이를 뭐라 할 수가 없네요.

      서영이는 동생의 사랑이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도 모르므로 잘못했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회사에 들어간 애비의 심정이라면 그것의 결과가 서영이 가정파탄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고문관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절대 모를테고, 이제야 아버지 품을 벗어났다 생각하던
      서영이는 또다시 찾아온 고문관 아버지 때문에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삼재씨가 개과천선한 것은 시청자들 모두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서영이 이혼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준 회사 취직 사건이
      서영이를 위한 거였나 생각해보면,언제나 후회하며 괴로워하면서도 항상 사건을 만드는 고문관의 자기합리화
      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네요.

      딸이 보고 싶어서...

      고문관은 고문관답게 자기 생각을 했고, 그 생각에 따른 행동이 결국 서영이를 오갈데 없는 처지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라임주스님이 생각하지 못하는 서영이 입장이니 참고해보세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망치고 있는 고문관에게 서영이는 용서해주고 이해해주고 빌어야하는가...


    • ㅁㅁ 2013.01.28 01:34 신고

      참 1차원적인 생각을...서영이 한번도 행복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아보지못한 어린시절을 왜 이해못할까. ㅉㅉ

    • ㅁㅁ 2013.01.28 01:40 신고

      참 1차원적인 생각을...서영이 한번도 행복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아보지못한 어린시절을 왜 이해못할까. ㅉㅉ

  • 공감가네요 2013.01.27 19:08 신고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입장이라서 이해가 가네요.
    저도 지금은 부모님 이혼하시고 엄마와 함께 사는데 아버지한테 연락도 안하죠.
    가끔 문자도 오고, 전화도 오지만 아버지라는 글자만 핸드폰에 떠도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지금이야 나이가 들면서 연약해져가고 의지할 곳이 자식밖에 없으니
    전과 다르겠지요...
    하지만 솔직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어요. 아직은요 -
    아버지 때문에 힘들 때 그런 이야기를 했죠. 아버지가.
    "나는 나고, 너는 너니까. 내가 어떻게 살든 너만 잘 하고 살면 된다."
    아버지로 인해 빚에 시달리고, 빚쟁이는 집에 찾아오고 엄마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야간에 일하며 다니고 차비도 없어서 학교까지 걸어다니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바람난 여자는 아버지가 나가지 않은 밤에 찾아와 아버지를 데리고 가는데 저보고 니 일만 잘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이런 생각이 바탕에 있으니 가족들이 받을 상처는 생각지 못한 것일테지요.

    • 미첼 2013.04.21 00:20 신고

      저와 비슷한 상황이라 소름끼쳤습니다.
      아버지가 한 말도 너무 똑같아요.
      너는 너고. 나는 나다.

  • 우공이산 2013.01.27 19:23 신고

    글에 공감이 가고 서영이의 행동에 공감이 갑니다.
    몇몇분들이 쓰신대로 저도 서영이와 같은 상황을 겪고 아버지와 의절한 상황이라
    불쌍한 서영입니다...ㅠㅠ

  • ....... 2013.01.27 20:09 신고

    내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 홀로 착해져서 나만 미친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
    ...이거 진짜ㅠㅠㅠㅠㅠ 이렇게 되면 진짜 사람 미치죠.... 드라마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서영이 기분 알 거 같아요.....

  • 징징이 2013.01.27 21:22 신고

    저도 서영이 말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정말 여전히 서영이에겐 고문관인데 남들은 착한 아버지에게 왜 그러냐고
    패륜이라고만 하니...
    그 입장을 겪지 않았어도 다단계에 사채까지 간접경험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닥터콜님 리뷰가 저에겐 가장 현실적인 공감이 갑니다.

  • 밀양 2013.01.27 21:45 신고

    항상 드라마 보면서 서영이한테 심적으로 공감했지만 대체 왜 일까?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이유를 명확히 설명 못 했는데 이 리뷰를 보니 확실하게 정리가 되네요. 미워해야할 대상이 홀로 선한 자가 되어 용서하라 강요하는 상황이라니... 서영이도 어쩔 수 없는 딸이니 아버지를 버리고 죄책감은 느꼈을지언정 그게 용서로 치환될 수는 없는거죠

  • 그냥 서영이 2013.01.28 00:59 신고

    내 딸 서영이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더니 역시나 범상치 않게 흘러가네요. 내 딸 서영이가 역시 내 딸일지 내 딸 서영인 내 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서영이였단걸 알게 될지..궁금해집니다.

  • 다만 2013.01.28 11:43 신고

    내딸 서영이 초반부터 들었던 생각인데, 현실엔 저런 아버지가 실제로 있지만 배우 천호진님은 현실의 삼재같은 아버지보단 훨씬 철들어보여서 시청자들이 삼재를 좀 좋게 보고 서영이를 패륜아로 보게 하는 원인인 거 같아요. 배우라서 아저씨치곤 어쩔 수 없이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기에 현실에서 저런 삶을 산 분들의 인상과 맞지 않아 '그렇게 나쁠리 없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듯...

  • 모든 게 가족을 위해 한 일이고 2013.01.28 14:10 신고

    잘 해볼려고 했던 일이라고 하면서
    아내와 자식들이 겪는 고통을 모른체하고 합리화하면서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조차 패륜 취급하는 유교적 윤리관에 대해
    인간적으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하네요.
    아버지의 몇 번에 걸친 사업실패로 힘들고 우울했던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게 다 가족을 위한 거라고 누누히 말하지만,
    가족들 반대를 뿌리치고 고집부리며 빚내며 시작한 사업인데 말이죠.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가족을 희생시킨 것뿐이 안된다고 생각했지요.
    어린 시절에 해보지 못했던 것들,병원에도 가지 못했던 것 등등
    이런 걸 생각하면 천륜이라며 용서를 강요하는듯하는
    이 사회의 윤리관에 가끔 매우 속이 상할 정돕니다.

  • 2013.01.28 15:21

    비밀댓글입니다

  • 공감 2013.01.29 08:25 신고

    공감가는 리뷰네요. 착해졌다, 성실해졌다, 이런 것과는 별개로 사람은 참 안 변하는 것 같아요. 삼재가 상우에게 자기가 나갈테니 서영이 들아와서 살라고 하는 대목에서 든 생각이었어요. 아무리 호정이가 천사표 며느리라지만 신혼부부더러 시누링 같이 살라니요. 하나를 위한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주변에게 피해를 입는줄 모르는 그런 인물인 듯.

    • 눈팅녀 2013.01.29 13:48 신고

      진짜 동감입니다.^^;;
      구구절절 옳으심 ㅠㅠ

    • 그런가요 2013.02.10 14:07 신고

      저도 그 장면 보면서 과연 저 동생신혼집에 이혼하고 나와서 얹혀 살면 서영이 마음이 편할수있을까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아버지를 뭐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 행동 삼재말고도 다른 부모님도 많이 하시지 않나 싶어요.

  • .... 2013.02.10 14:16 신고

    자꾸 아버지때문에 불행했던 내 인생이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오네요. 아버지 때문에 잃은것이 많았겠지만 아버지때문에 얻게 된 것이 과연 상처뿐이었을까..그런 생각도 들거든요..그리고 이 포스트를 보니까 서영이가 다시 나타난 아버지앞에서 한 말들이 이해가 되네요. 근데..아버지도 불쌍해요. 서영이에게 용서를 강요할수는 없지만요..더군다나 삼재는 사랑을 베풀었어야 했을 책임이 있는 부모님 입장이었고 서영이는 사랑을 받고 자랐어야 할 자식 입장이니 더더욱 용서하기 힘들거에요.

 

이서영의 치부를 알게 된 우재의 고민은 일반적인 상식으로서는 꽤나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거짓말했던 이서영의 태도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이런 이서영이 타인의 입으로 추궁을 들었을때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단칼에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릴 수 있는 여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희한한 고민을 했다. 가족에게 버려진 아버지와 남동생이 그녀의 치부를 감싸주기 위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다는 사실을 괴로워하면서도 이서영에게 너의 치부를 알고 있노라고 털어놓지는 못했다. 그는 마치 악몽 같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사실을 실토한 순간 차가워진 얼굴의 이서영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공포 같은 미래를.

 

서영이의 남동생 이상우 또한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랑하니까. 못살아. 못 살 사람이야. 아니 살아내지 못할 사람이야." "내가 알고 있는 거 알면. 자존심이 못 견딜 사람이야." 네 누나에게 모든 사실을 실토하라고 설득하는 그의 옛 연인 미경의 눈물 어린 호소에도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전에 내가 못해"라고.

 

 

 

중간에 서서 거의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던 이상우조차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비밀. 바로 그의 아버지 이삼재가 서영이의 거짓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는 비극. 어떻게 3년 동안이나 그럴 수 있었냐는 상우의 원망 섞인 절규를 들으며 삼재는 말한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네 누나는 그 순간부터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라고.

 

세 남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희한한 사람들이네. 왜 그렇게 지켜준대? 모진 딸이고 누난데." 강우재는 친구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딸에게 그리고 누나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그녀의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이름마저 속이며 서영이를 지켜주려는 이삼재의 부정과 바로 눈앞에서 자신과 마주치고도 모른척하며 돌아서 버렸던 상우의 상기된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그 두 사람의 헌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이나 서영이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이해하기 어려운 크기의 헌신을 받으면서도 너는, 어쩌면 그렇게 모질 수 있었던 거냐고. 아버지의 거룩한 부성애 앞에 눈물을 터뜨리며 상우는 어떻게 3년 동안 그럴 수 있었느냐고 절규했지만 이런 이상우마저도 연인의 눈물 젖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사랑을 포기해버린 누나 바보였다.

 

 

 

세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하지만 다른듯해도 그것은 결국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서영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는. "그러니까 새언니 자존심 때문에. 자존심 지키며 살게 하려고 나하고는 헤어지는 거야?" 그렇다. 이서영의 자존심 하나 때문에 한 남자는 곪아 터진 가슴을 감당하지 못해 스타일 버리며 포악을 떠는 쪼잔남이 되어버렸고 한 남자는 사랑마저 버렸다. 그들은 몇 번씩이나 스스로에게 되뇌었을 것이다. "내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면 이서영의 자존심은 이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우재의 진실을 알고 나서의 이서영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눈물로 호소하며 용서를 구걸하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변명도 타인을 위한 변명도 꺼내 들지 않았다. 강요받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먼저 짐을 꾸리고 이별을 통보하며 위너스를 그리고 강우재를 떠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이쯤 되면 "그놈의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이서영 씨. 그깟 자존심이 뭐길래."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이서영의 자존심으로 시작된 나비효과였지 않은가. 차지선은 그녀의 며느리를 앞에 두고 "왜 그랬니. 왜!"라고 절규했지만 3년 전 같은 자리에서 부모의 생사를 물었던 그녀의 성난 얼굴에 이서영이 문득 던지듯 꺼내놓은 거짓말이 그 계기였음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이서영은 언젠가 남동생 상우에게 자신은 강우재와의 결혼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어차피 하지 않을 결혼을 아버지의 딸이라는 이유로 수치심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나는 아버지가 없어요-라고. 훗날 차지선은 대답했다. 그래. 어차피 속 썩일 부모가 있는 것보단 차라리 고아인 편이 낫지. 그리고 서영이는 영영 진실을 말할 기회를 잃었다.

 

 

 

그래서 시작되었다. 이 모든 비극의 나비효과가. 이서영의 거짓말이 세 남자의 심장을 조이게 하고. 한 여자가 연인을 잃고. 누나의 거짓말을 지켜주기 위해 만든 도피 결혼은 결국 또 하나의 가정을 눈속임하는 결과물을 낳게 되었다. 드라마 속에서 제대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조금씩 뜸을 들이는 호정의 친정은 현재 3년 전 상우의 가족과 비슷한 수준의 눈속임을 당했던 것이다. 엄연히 한국에 존재하는 누나를 미국으로 떠나버려 남남이나 다름없는 상태라는 거짓말을. 심지어 차지선은 호정모의 절친이며 몇 번이나 이서영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함께 씹어댔던 관계다. 물론 상우가 거기까지 알고 호정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이 사실이 밝혀진다면 호정의 친정 역시 터뜨려지기 전의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다.

 

 

 

이서영의 아이덴티티가 자존심이라면 강우재의 정체성은 끈기와 집념이다. 한번 문 것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사나이 강우재가 떠나버린 서영을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쪽이 우재고 그 잘못을 추궁하는 사람이 이서영으로 느껴질 정도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었다. 강우재는 절규했다. 한 번쯤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줄 수 없느냐고- 그럼에도 이서영은 도도한 얼굴로 얼음 가면을 쓴 채 그를 바라봤다. 사과와 변명을 호소하는 강우재의 구걸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는 외친다. 나는 너에게 무엇이었냐고. "진짜 네 마음을 얘기해. 한번쯤은 네 자존심 다 내려놓고 나에게 설명을 하란 말이야. 네 마음을.." "왜 그렇게 널 내려놓지 못해?! 그 자존심이 뭐길래!" 이서영은 대답했다. "우재씨. 제발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마.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

 

 

 

"멋진 자존심이래요. 멋진 자존심은 어떤 거예요? 자존심은 나도 있는데." 언젠가 친구들은 마치 추궁하듯 그를 붙잡고 물었다. 보잘없는 가난한 고시생에게 반한 위너스의 아들 강우재의 레퍼토리는 언제나 재밌는 이야깃거리였으니까. 강우재는 수시로 3년 전 그녀에게 반했던 이유를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나 다. "멋진 자존심"이라고. 그는 마치 근사한 전리품을 바라보듯 뿌듯한 얼굴로 이서영의 머리칼을 만지작대며 대답했다. "그게 뭐냐면요. 이 친구는 여자이기 전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거든요. 어떤 순간에도 고품격인 여자랄까?"

 

3년 전 강우재가 이서영에게 반했던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그녀의 청결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서영의 자존심은 주변 인물들에게 자주 회자되는 그녀의 정체성이었다. 이서영을 시기하는 여자들은 몇 번이나 그녀의 자존심을 입에 올리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잘났어요?" "그 대단하신 이서영 씨가"를 읊조리고 강우재는 지난 3년간 마치 오염되지 않은 천연기념물을 가진 것처럼 청결한 자존심의 이서영을 사랑해왔었다. 그래서 그는 이서영 또한 인간의 추한 본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이서영은 이런 사람이 아닌데- 라는 생각은 몇 번이나 그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강우재를 강우재가 아닌 것처럼 만들었다.

 

 

 

이제 그는 그토록 동경해왔던 이서영의 자존심을 그만 내려놓으라고 호소한다. 어쩌면 그의 절규는 시청자 또한 함께 외치고픈 호소였을지도 모른다. 이서영 씨.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요? 물론 이서영은 무릎을 꿇고 강우재 앞에서 호소해야만 했다. 위너스의 아들을 버릴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것이 지난 3년간 우롱 당한 배우자를 향한 최소한의 그리고 반드시 해야만 했던 예의이자 치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그의 얼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화장실에서 울고 들어온 채, 여전히 차가운 얼굴의 이서영으로 돌아와 이별을 통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울었다. 강우재 앞에서 울지 못하는 이서영. 그만큼의 사랑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우재는 이서영의 자존심을 사랑한 남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의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지 않았다. 강우재가 사랑하는 이서영의 모습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그녀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자존심이란 이제 강우재 그 자신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상우는 누나를 추억하며 말했다. 아버지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누나가 그럼에도 그 지옥 같은 상황을 버티어낼 수 있었던 삶의 동기는 어머니와 자존심 때문이었노라고. 어머니를 잃고 나서 유일하게 그녀를 지탱하게 해주었던 삶의 이유를 포기해버린 순간 눈앞에 나타난 강우재의 존재는 이서영의 생명줄이었다고.

 

 

 

 

 

결국 이서영의 자존심은 한때는 어머니였고 또한 강우재였고 그리고 이서영의 삶의 동기다. 누군가에겐 '그깟 자존심' '버려도 되는 자존심'이겠지만 이서영에게 자존심은 그녀의 전부이며 그녀의 생명줄이고 어머니였고 강우재였다.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자존심이 있었기에 이서영은 이때까지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것은 그녀의 아버지 이삼재와의 갈등을 치유하는 순간에서야 해소될 수 있는 상처다. 아버지를 벗어난 것 같으면서도 그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아버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서영의 자존심 그 반대편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서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의 모든 갈등의 고리를 해소하는 순간, 비로소 이서영은 지독한 자존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서영은 아버지의 헌신을 듣고 잠시 화장실 좀...이라며 강우재의 곁을 떠났다. 화장실에서 실컷 울고 돌아 나온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 자국이 지워진 꼿꼿한 이서영의 자존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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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9

  • 2013.01.21 07:45

    비밀댓글입니다

    • 서영이에게 자존심이란 그녀의 모든 것이죠. 자존심이 있었기에 지금의 서영이가 죽지 않고 이만큼 버텨올 수 있었던 거니까요. 아버지의 존재를 거부하고 싶은 만크 그녀의 자존심 또한 갑옷처럼 두터워졌겠죠. 너무나 안쓰러운 서영이입니다.

  •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강우재를 만나기 전까지 늘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방식말고는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요...전 그렇게 생각해요...ㅎ;

    • 아마 서영이는 자신의 거짓말로 생긴 모든 문제를 다른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 변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모든 문제를 자신의 잘못으로 만들고 떠나려는..ㅠㅠ 그게 참 서툴고 오히려 우재에게 상처만 입히는 방식이지만 지금의 서영이에겐 최선인 방법이죠.

  • 이제 극이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는데... 서영이의 마음 속에도 어서 빨리 봄이 찾아 왔으면 좋겠네요...잘보고 갑니다.

  • 재밌게 보고 간답니다 ~ ^^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 흥미롭게 잘 보고 갑니다^^
    아무쪼록 좋은 한주 되시기 바랍니다!

  • 잘 보구 갈께요 ㅎㅎ
    멋진 오늘이 되셔요!!

  • 2013.01.21 12:14

    비밀댓글입니다

20년 전 대문 앞에 아기 바구니를 놓고 간 것이 마지막일 줄로만 알았을 친모의 접촉이 실은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에 차지선은 경악했다. 가족 다음의 아니 어쩌면 가족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던 남편의 비서 윤 실장의 정체가 실은 막내아들의 친모였다니! 차지선이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면 유독 자신의 막내아들에게 엄격하면서도 집착적이었던 윤 실장의 어색한 태도를 되새겨봤을 것이다. 남편의 충실한 심복 노릇을 위해 강우재를 단속하는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감시가 알고 보니 자기 아들을 위한 투자였다니.

 

돌이켜보면 괘씸하기 짝이 없다. 유부남 상사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는 윤 실장의 고백부터가 기함할 지경인데 그 흑심을 실천으로 옮긴 윤 이사의 태도는 더 어처구니가 없다. 내 사전에 결코 외박은 없다는 강기범(최정우 분)을 가족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자신의 방으로 옮기고 기념회에서 잔뜩 취한 그의 취기를 이용하여 하룻밤을 보냈다는 윤 이사의 고백은 아무리 그녀에게 유리한 해석으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봐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계획적 범죄나 다름없다.

 

 

 

심지어 그간 차 여사에게 윤 실장이 보여준 태도는 또 어떠했었던가 말이다. 차갑고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멸시하고 무시했으며 자신의 아랫사람 대하듯 명령했던 그녀였다. 오죽하면 순진하기 짝이 없어 일언반구도 없이 윤 실장의 무례를 그대로 받아들이던 차 여사를 대신하여 서영이가 울컥 화를 냈을까. 외간 여자와 남편의 불륜으로 만들어진 아이라는 것도 모른 채 자신의 배로 낳은 친자식들보다 살갑게 성재를 안아줬던 그녀였다. 억만금으로 갚아도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대신할 수 없는 타인의 모정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태도에 어디 그런 고마움이 비춰지기나 했었나. 돌이켜보면 참 못됐고 고까운 그녀다.

 

애초에 사업가의 기질은 없었던 성재를 연기자의 꿈을 좌절시키려 하면서까지 그에게 집착했던 윤 실장의 행동도 지금 이 시기에 다시 분석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아들에게 위너스의 경영권을 넘겨주고 싶어서 그토록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독촉했었단 말인가. 사실 나쁘게 보자면 끝 간데없이 나쁘게 볼 수밖에 없는 윤 실장이다. 야심과 야욕으로 똘똘 뭉친 오만했던 그녀.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모정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부정직하고 이기적이어도 모정은 모정이다.

 

 

 

"내가 왜 아줌마하고 얘기를 해?!"

"내가... 내가 네 엄마야."

 

딸이 아버지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 정도로 그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면서도 전봇대 뒤에 숨어 딸의 모습을 바라보던 삼재의 부정과 다를 바가 없는 부모의 마음이다. 돌이켜보면 그가 아무리 조심했다고 할지언정 서영이의 주위를 맴돌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아니 결국 그렇게 됐지 않은가. 그도 그런 위험성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딸의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았다. 딸의 위기를 만든 것이 자신임에도 그 위기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믿었다. 거의 3년을. 언젠가 터질지모를 시한폭탄 같은 자신의 처지를 알면서도 아들 성재의 주변을 떠나지 못했던 윤소미(조은숙 분)의 모정과 다를 게 무언가.

 

 

물론 그녀의 모정은 나쁘다.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계산적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이렇게나 훌륭하게 키워낸 차지선의 애틋한 모정에 대해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예의를 표하지 않았다. 충격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는 차지선을 찾아 지금부터 성재는 내가 키울 것이라고 말하는 윤 이사의 태도에 자비란 없었다. 남의 상처야 어찌 됐건 그 상처가 제 아들을 찌를까만 걱정되는 그녀였다.

 

 

 

부모의 마음은 거룩하지만 언제나 선은 아니다. 때론 어머니는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괴물을 선택했던 윤소미. 괴물이 되어가는 차지선. 결국 그 마음의 시작은 모성애고 천륜이다. 내 딸 서영이의 모든 에피소드가 흩어진듯하면서도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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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서영이의 에피소드가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드시 그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반대편 거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차지선(김혜옥 분)의 막내아들 강성재(이정신 분)의 친모가 그들의 주위를 맴돌던 윤실장(조은숙 분)이라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밝혀지고 나는 이 사건을 환기시키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기억해냈다.

 

한동안 호정의 모 김강순(송옥순 분)은 남편이 사별하기 전 전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았던 의붓아들 최경호(심경탁 분)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구박하며 치떨려했었다. 남편과 전 아내의 아이라는 설명이 없었다면 그가 불륜을 하여 낳은 자식인가라는 착각을 했을 수도 있을 만큼 그녀의 구박은 도를 넘는 수준이었다. 결국 아내의 등쌀에 못 이긴 아버지가 초라하게 경호의 출가를 설득하자 아들은 미련없이 짐을 싸고 집을 떠나버린다.

 

드라마 초반 모든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던 이삼재(천호진 분)의 가슴 저린 부성애도 스쳐 지나갔다. 딸에게 버림받은 아버지가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새벽녘이면 딸의 새집을 찾아 배회하던 그 쓸쓸하고 거룩한 부성애를. 사위와 어울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딸 서영이의 미소를 전봇대 뒤에 숨어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이삼재의 모습 말이다.

 

 

 

언젠가 차지선의 유일한 절친이라는 강순이 물었다. 네 새끼도 아닌데 어쩜 그리 살가울 수 있느냐고. 차지선은 대답했다. 우리는 첫눈에 필이 꽂힌 관계라고. 덧없는 상상이지만 문득 강기범의 혼외 자식이 강성재(이정신 분)가 아닌 강우재(이상윤 분)였더라면 그녀의 충격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만큼 막내아들 성재의 존재는 차지선에게 각별한 것이었다. 그는 아들이었고 또한 딸이었으며 친구이자 애인 같은 관계였다.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시한폭탄 상태의 차지선을 여전히 살뜰한 나의 엄마라고 생각했던 성재는 자신의 가장 뿌듯한 순간을 그 누구보다 먼저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어 뛰어왔다. 상황을 알 리 없는 성재가 그로기 상태의 엄마에게 손을 대자 그녀는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뿌리치듯 질색을 한다. 이때 성재는 특이한 말을 했다. "엄마. 왜 그래. 나야 나! 아빤 줄 알았어?"

 

"그러고 보니까 네 눈매가 네 엄마 닮았다? 참 많이 닮았어..."

 

 

 

차지선이 자신의 남편에게 얼만큼의 증오를 가졌는지가 단편적으로나마 증명되는 장면이었다. 비록 주인공이 아니라 많은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소현경 작가가 꼼꼼히 배치해둔 차지선과 주변 가족들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새삼 그 세심한 필력을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큰아들이 처음으로, 그것도 아내에게 옆구리를 콕콕 찔려가며 간신히 만들어준 스파게티 한 그릇을 차마 먹지 못하고 울듯 말 듯한 미소로 바라보던 얼굴을 떠올리면 그녀가 얼마나 절박한 외로움에서 살아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그녀의 외로움은 태생적이었음을 증명하는 34회의 새로운 배경, 차지선의 친가는 숨이 막힐 정도로 팍팍하고 사무적이었다. 사위에게 전화를 받고 그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딸의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주지 못하는 사무적인 아버지. "네 오라비. 다음 총선 땐 출마할 모양이다. 하루 자고 내일 가. 늘어지게 팔자 좋은 인간 세상에 없다." 너의 사사로운 분노로 가문에 먹칠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감성의 차 여사를 지탱하게도 무너지게도 했던 것이 그녀의 모성애라면 이성의 윤 실장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 또한 그녀의 모정 때문이었다. 성재가 생겼던 그날의 해프닝이 원치 않았던 사고가 아니라 평소 강기범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던 그녀의 의사가 포함된 것이라는 사연부터가 어처구니없는 사실인데 그렇게 생긴 아이를 차지선에게 맡기고 남편의 혼외 자식을 21년간 키우게 했던 모진 여자 윤소미.(조은숙 분) 그러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위너스로 돌아와 강기범의 비서가 되고 아들 주위를 맴돌았다는 사실 또한 뻔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그녀의 태도가 좀 오만불손했는가.

 

"윤 이사님. 저희 어머니한테 말씀이 너무 과하시네요." "아버님 지시대로 움직이시는 건 윤 이사님 일이지만 저희 어머니하고 도련님. 질책하실 권리는 없으시죠." 시종일관 쌩했던 윤소미의 태도가 얼마나 못 돼 보였으면 서영이까지 나서서 충고를 했을까 싶다. 자신의 아이를 누구의 새끼인지도 모른 채 온 마음으로 품어주고 친자식보다 더 애틋한 애정을 퍼부었던 차 여사의 모성애에 대해 그녀는 일말의 죄책감도 엿보이지 않을 만큼 오만방자했다. 심지어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 차지선을 찾아가 이제와서 내 아이를 돌려달라고 말하는 윤소미의 태도는 뺨을 맞아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제가 못 가지고 태어난 부모 복. 성재한테는 주고 싶었어요."

 

 

 

결국 모성애가 윤소미를 괴물로 만들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괴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얍삽하고 비겁하며 이기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장 완벽한 환경에서 아들을 키우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알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던 뻐꾸기가 남의 둥지를 침범해 다른 새의 알을 빼돌리고 자신의 알을 품게 하는 얌체새를 택한 것처럼 윤소미 또한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모성애가 그녀의 양심마저 가려버렸다.

 

 

"저, 성재 엄마로 돌아가고 싶어요..."

 

 

 

내 딸 서영이 34회분에서 흥미로운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도 끝끝내 생모가 아닌 차지선을 찾은 성재가 마치 어미의 죄를 자신의 죄인 양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전봇대 뒤에 숨어서 훔쳐보던 그 애처로운 얼굴. 역시 벽을 사이에 둔 듯 반쯤 가린 트렁크 뒤에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차지선의 허망한 표정. 그리워서 그리워서 참지 못하고 전봇대 뒤에 숨어서 바라보던 딸의 모습에도 만족했던 이삼재의 얼굴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윤소미가 악녀가 되어가면서까지 결국 아들을 놓지 못하고 그의 주변을 맴돌며 배회하던 모성애와 맞닿아있다. 한때는 삶의 구원이었지만 이제는 절망으로 변해버린 아들의 존재. 두 여자의 인생을 바꿔버린 모성과 아버지와 딸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천륜.

 

 

생의 구원이 되기도 때론 인생의 저주가 되기도 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 아직 다 풀리지도 않은 메인 스토리를 정리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사고가 또 터져버린 것은 미묘하고도 서글픈 천륜이라는 형벌을 두 여자의 모성애를 통해 다시 되짚어보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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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7

  • 2013.01.07 07:44

    비밀댓글입니다

    • 아버님이 제대로 보셨네요. 김혜옥씨 연기 정말 끝내주십니다.ㅠㅠ 그리고 내 딸 서영이는 확실히 자극적인 설정이 많죠.^^;; 다행히도 소현경 작가의 걸출한 필력으로 새로운 해석을 곁들일 수 있다는 점이 새롭더군요. 의외로 철학적인 요소가 많은 드라마랍니다.

  • 이 에피소드는 결국, 서영이와 그 가족에 교차점을 찾아주려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어요.
    여기서부터 이해가 시작되겠죠.

  • 요즘 잘 챙겨보고 있는 드라마인데. 좋은 리뷰 잘 읽고 추천 꾸 ~ 욱 누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 ~ ~

  • Im정원 2013.01.07 11:41 신고

    성재를 아들 그 이상으로 사랑했던 차지선여사는 그만큼 성재에게 가혹하고 잔인하더군요.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성재(젋은 남자의 옷 청바지)의 옷을 던지며 어쩔수 없이 성재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소름끼쳐하고 경멸하는 차지선 여사가 안타까웠어요.

  • 나이를 헛먹는 드라마 허허허 2013.01.07 16:17 신고

    이 드라마에서 각자의 삶에서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평소에 테레비도 안보고 사는 사람들같애. 잉 허허허 전부다, 이 드라마에서 이 사람들이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는 보고사는 사람들인가여? 허허허 엄마가 사랑과 전쟁을 한번도 안보고 사는 사람인가? 아바도 마찬가지, 우재도 마찬가지, 그리고 새신부도 인생을 뭘로 생각하고 사는지, 허허허 새신부 요리 못하는게 당연하다고 나오는 설정도 웃기고, 잉 허허허허,, 새신부가 된장찌개 하나 못하는 설정이 정말로 웃기는 드라마, 잉, 허허허허 돈이 업서서 해물탕 한번도 못해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부자집 달이 해물요리 살 형편이 업서서 해물탕 한번도 못하고 사는 인생, 잉 허허허허 여자들은 요리를 잘하는것보다 최소한 할줄 안다는 설정이 정답아닐가, 잉 허허허 30년전 드라마나 지금이나 변한것은 업다, 30년전 국수요리가 파스타로 변했는데 드라마는 아직두 국수시절같애. 잉 허허허허 하긴 현대인들이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집이 어디있냐마는 잉 허허허허 내딸 초딩6학년, 중1 들어가지만 최소한 스파게티는 사다가 자기가 해먹고 빵도 만들고 하는데. 쿠키도 만들고, 빼배로 데이에 집에서 빼빼로 재료 사다가 직접 초콜릿 입혀서 장식도 하는데. 잉 허허허허 드라마는 언제까지 30년전 시대를 그리나 몰라, 잉 허허허허, 나나 테레비 사랑과 전쟁을 보다보니 장면만 보고도 10분후에 무슨 대사가 나올지 다 안다, ㅎㅎ 그걸 보고 마누라는 어떡게 아냐고 하길래 한국 드라마 30년만 보면은 작가랑 내공이 똑같다고 해주었다, ㅎㅎㅎㅎ 남편이 바람핀것도 아니고 ㅜㄹ먹은사람 강제오 여자가 강간? 해서 나온 성재인데 허허허허,, 남편탓 하지말고 여자인 자신도 좀 현명해지기를 바란다, ㅎㅎ 그게 불가능한 엄마라는 사실도 인정하고, 카드로 쇼핑하는거보고 웃음이 나오더라, ㅎㅎㅎ 무식한 부류에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허당쇼, ㅎㅎㅎ 현자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화두로 자신을 뒤돌아보는데 쇼핑이나 하는 무식한 여편네 설정, ㅎㅎㅎㅎㅎ 나같으면 차라리 동해안 일주일 여행가겠다, 허허허허 그런 설정이 더 낳지안을까? 쇼핑? 1000만원짜리 밍크코트라도 해입으면 뭐가 달라지나? 하하하하 나이 50살이 넘어가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더라, 잉 허허허 어느날 마누라가 바람을 피더라도 모른척 하는 재빠른 결단을 해야하는데 허허허허 훈련이 업는 한국사람덜,,,사랑? 성재를 사랑? ㅎㅎㅎ 착각하기는, 자기만족에 대상물이었지, 사랑을 가장한 대리만족에 타켔, ㅎㅎㅎㅎ 그 뻔한 속마음이 더 가증스럽군, ㅎㅎㅎㅎㅎㅎ

 

자기 새끼를 기를 능력이 없는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두고 와 자신의 새끼를 대신 키우게 하는 습성을 갖고 있는데 이것을 '탁란'이라 부른다. 영악한 뻐꾸기는 몸집이 비슷한 어미 새의 둥지를 선점하는데 주로 이용되는 것이 개똥지빠귀, 개개비 같은 작은 새들이다. 심지어 더욱 자연스럽게 어미를 속이기 위해 이미 낳아둔 알을 바꿔치기하는 치밀한 계략을 보인다. 이쯤 하면 머리 나쁜 사람을 조두라고 부르는 말도 삼가야 하겠다. 이런 뻐꾸기는 '얌체 새'라는 말로 불리지만 어미의 얌체 습성을 그대로 갖고 태어난 아기 새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어서 알을 깨고 성장하면 둥지 안의 다른 알들을 등으로 실어 밖으로 떨어뜨린 후 성조가 될 때까지 개똥지빠귀의 먹이를 받아먹고 훌쩍 둥지를 떠나버린다고 한다.

 

 

 

"강기범 당신 아들...!! 내 아들인 줄 알고 키운 거야.... 나는...!"

 

김혜옥 씨의 열연이 돋보이는 회차였다. 내 딸 서영이에서 연기력에 아쉬움을 느끼는 배우는 거의 없지만, 그중에서도 이 역할만큼은 이분이 아니면 안 되었겠다고 생각했던 캐릭터가 바로 차지선이었다. 차지선은 어린아이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 여자다.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줄 몰라 가끔 송곳같이 쿡쿡 쑤시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해맑은 얼굴의 그녀. "그래. 속 썩이는 부모는 있는 것보단 차라리 없는 게 나아." 따지고 보면 비극적인 서영이의 거짓말이 시작된 동기도 차여사의 질책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계산이 없는 순수하고 유치한 여자다, 차지선은.

 

김혜옥이 그동안 얼마나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는가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 처음으로 터져버린 분노의 차지선을 시청자가 일말의 어색함도 느끼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차지선의 아이처럼 순수하고 유치한 이미지를 그려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문득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외로움과 히스테리를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이런 그녀의 섬세한 연기력이 있었기에 한참 만에야 터져버린 차여사의 외로움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아마 그녀가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채 마냥 차지선을 생각 없는 어른애로 그려냈다면 이날 차지선의 분노는 그저 막장드라마의 해프닝에 불과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해서는 안 됐던 애가 강성재야!!"

 

넓은 성 같았던 위너스 그룹의 안방마님 차지선은 언제나 바다 가운데 놓여진 외로운 섬이었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감정에 치중하는 차지선과 달리 그녀의 남편은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한배에서 낳은 아이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자식인 우재와 미경의 차디참은 자신을 닮은 구석이 없었다. 살가운 구석이 전혀 없는 독립적인 가족들 사이에서 의존적인 성격의 그녀는 외롭고 우울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야말로 강기범만의 자식인, 심지어 그 어미는 강기범과 똑같이 이성적이고 똑 부러지는 부모 아래서 태어난 막내아들 강성재는 희한하리만큼 차지선과 닮아있었다. 차라리 우재와 성재의 친부모가 바뀐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대문 앞에 버려진 아기 바구니 안의 성재의 미소를 보고선 그때부터 필이 꽂혀버렸다는 차지선에게 막내아들은 삶의 기쁨이오 이 갑갑한 성 안에서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게 하는 산소였다. 그래서 그녀는 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강기범 아들이 아니어서 좋아했는데. 강기범 아들이었어?" 아들의 생모가 윤이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의 차지선의 질문은 다소 독특했다. 여느 드라마에서처럼 '남편의 불륜'에 초점을 맞춘 분노가 먼저 터져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강기범 아들을 감히 나한테 키우게 한" 죄를 묻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결국 같은 방에서도 한 침대를 쓰지 않았을 만큼 부부의 정이 없었던 남편과의 관계보다는 막내아들 성재와 자신의 관계를 더 집착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분노의 초점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이토록 끔찍한 사안이 터뜨려져도 여느 드라마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멍청이라서 지랄 맞게 멍청이라서 20년을 넘게 속고 살았는데. 아. 미친년. 아아 미친년."

"뻐꾸기가 몰래 낳아 놓은 알 품구 내 아들인 줄 알고 나랑 닮았다고... 어쩜 이렇게 예쁘냐고... 내 새끼로 품고 20년을 산 미친년이야.."

 

 

눈치 빠른 서영이가 순식간에 알아버린 비밀을 자신은 21년 동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중얼거린다. "그래. 넌 똑똑하니까... 똑똑하니까... 똑똑하니까...." 말줄임표처럼 줄어드는 그녀의 탄식에 따라 눈물을 흘렸다. 둥지 안으로 들어온 남의 알을 내 새끼라 믿고 보듬어 품어주다 성조가 되어 날아가는 내 새끼 뻐꾸기를 개똥지빠귀는 이런 마음으로 바라봤겠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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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 건지 아이러니한 건지..
    이 요소를 어떻게 이어갈 지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 스토리가 참..점점 막장으로 간다는;;

  • 유동 2013.01.07 00:54 신고

    내딸서영이 소재가 여느 다른 막장드라마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해도 작가 필력이 너무 좋아서.. 글 못 쓰는 작가들은 쓸데없이 오글거리는 미사여구 잔뜩 집어넣어서 몰입을 방해하는데 소작가는 그런 것도 없고 ㅎ 닥터콜님 항상 글 잘 보고 있어요

 

내 딸 서영이를 볼 때마다 막장이라 불리는 자극적인 소재 뒤에 감추어진 작가의 놀라운 필력과 디테일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오늘은 그 섬세함에 손뼉을 치고 싶었던 장면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그저 지인의 결혼식이라고 생각하며 찾았던 결혼식장에서 문득 걸려온 남동생의 전화를 해맑은 얼굴로 받은 누나 이서영(이보영 분)이 "그대로 뒤돌아서. 여기 내 결혼식장이야."라는 상우의 목소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대는 그 모습이었습니다.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남은 사랑에 급기야 들킬뻔했던 위기의 순간을 이상우(박해진 분)는 마지막까지 아빠를 불러세우며 위험으로부터 구원해주지요. 숨어서 지켜봐야 했던 결혼식장에서 어색한 폼으로 식장 위에 서 있는 남동생 상우와 역시나 얼떨떨한 얼굴의 아버지. 그리고 비어있는 빈자리 하나의 허전한 그 공백은 분명 서영이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지만 마치 따돌림을 받기라도 한 듯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온 길목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서영이의 모습은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꼼꼼히 챙겨봤던 시청자라면 분명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데자뷰였죠. 바로 이 서글픈 비밀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 딸의 결혼식을 훔쳐보다 충격을 받고 휘청이던 아버지 이삼재(천호진 분)의 눈물을요. 드라마는 구차하게 그 장면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가며 시청자에게 감정의 이입을 강요하진 않았습니다만 오랫동안 내 딸 서영이를 지켜봤던 시청자라면 딸의 결혼식장에서 죽은 사람 취급을 받고 눈물을 쏟아내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또 하나의 중첩된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딸 서영이의 미덕은 바로 이런 점입니다. 어떤 사건이건 느닷없이 튀어나오거나 상황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진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청자를 당황시키지 않아요. 무슨 사건이든 몇 회 전에서 심지어 몇 달 전부터 준비해둔 촘촘한 복선과 실마리로 시청자를 슬픈 예감에 빠뜨리게 하고는 그것이 숙성된 순간 터뜨려져 감정을 극대화 시킵니다. 이날 서영이의 비밀 외에 준비된 또 하나의 "가족의 비극" 역시 오래전부터 계획한 작가의 복선과 감정의 디테일이 준비되어있었기에 그 놀라움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차 여사가 그토록 끔찍하게 여겼던 막내아들 성재의 친모가 실은 그녀의 주변을 떠도는 윤 실장의 아들이었을 줄이야. 설마 설마 하며 지켜봤던 조마조마한 마음이 사실이 되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야 뭐 그리 특별한 것이겠냐마는 차지선(김혜옥 분)이 막내아들 강성재(이정신 분)를 사랑하는 마음은 유독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독립적이고 싸늘하기 짝이 없는 아들 우재와 딸 미경이와 달리 유독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차 여사의 감성은 마치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외딴 섬의 외톨이 같았죠. 이런 차 여사에게 곰살맞고 정이 많으며 애교가 넘치는 막내아들 성재의 존재는 그녀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유일한 여유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차 여사의 안방을 들여다보면 남편과 한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고 두 개의 침대를 나누어 쓰는 것은 물론 남편을 똑 닮았다는 아들이 아내에게 어깨를 콕콕 찔려 억지로 차려준 스파게티 한 그릇에 감동해 차마 먹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녀가 얼마나 가족들에게 외면을 받아온 쓸쓸한 삶을 지내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성재와 차여사는 닮아있습니다. 감정의 폭이 크고 실수도 잦으며 그리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딱딱한 강기범(최정우 분)씨의 가정에서 유일하게 인간미가 풍기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특이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친모자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드라마에서는 계속해서 이런 차 여사와 성재의 각별한 관계를 부각시켜 왔습니다. 친모자보다도 애틋하고 친딸 미경이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던 아들. 이런 차여사의 애정을 받은 성재의 엄마 사랑 또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늘 아버지에게 치여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대신 볼멘소리로 투정을 해보기도 하고 아빠의 외도를 의심하며 울컥했던 장면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제겐 큰 사건을 예고하는 복선처럼 느껴지더군요. "엄마. 또 왜 그래. 아빠 진짜 바람 피우는 거야?"

 

 

 

살가운 모자 관계였던 차지선과 강성재의 인맥과 달리 유달리 성재가 불편하게 느끼던 윤실장(조은숙 분)과의 관계 또한 시청자가 그들의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바로 몇 회 전 아들을 위해 남편과 투쟁하고 집을 뛰쳐나온 차 여사가 윤 실장에게 야단을 맞는 장면에 울컥한 서영이가 그녀를 나무라는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게 했던 것도 시작될 사건의 복선 중 하나였겠죠. 결국 차지선은 윤 실장 앞에서 며느리의 똑 부러진 모습을 흉내 내느라 그녀가 써온 연설문을 즉석에서 수정하길 요구했고 별생각 없이 자신의 필체로 수정안을 남긴 윤 실장의 글씨는 차지선으로부터 오래전 낡은 편지 위의 필체 하나를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바로 성재와 차 여사가 처음 눈이 맞았던 날. 아기를 담은 바구니에 들어있었던 엄마의 편지였죠. 시청자를 기겁하게 했던 또 하나의 비밀이 밝혀진 셈입니다.

 

 

물론 반전이라기엔 이미 너무나 자주 노출이 되었었던 암시였죠. 거의 직접적으로 윤 실장과 차지선의 막내아들이 천륜의 끈으로 묶여있음을 시사했던 복선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알고있음에도 새삼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새삼 와닿은 성재의 친모 윤 실장의 비열함이었습니다. 공개된 편지를 보아하니 성재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윤 실장 본인이었더군요. 첫째 아들 강우재의 돌림자까지 떼어 쓰는 치밀한 계략부터 야심만만하다고 느껴집니다만 무엇보다 편지 서두에 밝힌 "제가 키워서는 안 되는 아이라 이렇게 보냅니다"라는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들렸던 것은 저뿐이었을까요? 드라마 내에서 계속 실마리를 깔아두었던 강기범씨의 바람이 사실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상대가 윤 실장이었다면?

 

 

 

추측일 뿐입니다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새삼 윤 실장의 치밀한 야심과 강기범의 잔혹성이 느껴져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군요. 강기범은 한때 내연의 상대였던 여성을 여전히 자신의 비서로 두고 있고 윤실장은 아이의 이름에 가문의 돌림자까지 붙여 계획을 준비하고 아들을 떠날 수 없어 비서직으로 남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아들을 감시하고 있었다면? 성재가 연기자의 꿈을 키우는 것에 그토록 질색하며 비협조적으로 나왔던 이유도 회사의 경영권을 넘겨주고 싶었던 야심이라고 생각하면 새삼 윤 실장이 참으로 무섭고 독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20여 년간 남편의 또 다른 아이를 키워왔던 차지선씨의 순박한 인생이 너무나 애처롭습니다. 마치 뻐꾸기가 남긴 알을 남의 알이라는 것도 모르고 소중히 품어 키워내는 개똥지빠귀를 보는 것 같아요. 이런 충격을 감당하기엔 차지선이 너무나 순수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 서글퍼집니다. 불길한 예측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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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속의빛 2013.01.24 21:53 신고

    닥터콜님의 글은 참 읽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제가 닥터콜님의 많은 글 가운데 마음에 들어하는 드라마에 관한 글들만을 골라 읽는 제 태도가 미안할 뿐입니다.

    내 딸 서영이 드라마의 갈등이 점점 드러나는 부분에서 잠시 드라마를 멀리하고 있다가
    최근들어 다시 드라마를 훑어보는데, 닥터콜님이 예측했던 내용이 그대로 나왔더군요.

    뻐꾸기 알에 대한 표현까지도 대사를 통해 나올 정도였습니다.

    2012년 12월을 끝으로 2013년에는 드라마[내 딸 서영이]에 대한 리뷰 글이 없어
    안타깝네요. 또 읽는 재미가 솔솔한 리뷰 글이 올라오기를 바라며 댓글 남기고 갑니다.

    • 저도 개똥지빠귀 이야기가 드라마에서 그대로 나와서 상당히 놀랐었어요. 가끔 작가님과 교감이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는데 서영이가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서영이 리뷰는 계속되고 있는데 아마 못보신듯 하네요.^^ 블로그에서 서영이로 검색하시면 최근의 리뷰를 살펴볼 수 있답니다. 마음속의 빛 같은 댓글 감사합니다.

 

"기다리는 것도 재밌어요."

 

10년째 팬클럽의 소녀팬이 스타와 결혼하면 이런 모습일까요. 드디어 미세스리가 된 새신부 호정이(최윤영 분)의 헌신이 그야말로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지를 찾은 호정과 상우. 호텔 방안에서 뻘쭘함을 감출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때마침 식사시간이라는 사실에 구원을 받아 식당으로 향하는데- 파스타를 시키는 자신과 다르게 쌀로 만든 쇠고기 리조또를 주문하는 상우의 한마디를 놓치지 않은 호정은 냅다 "오빠 소고기 리조또 좋아해요?" "양식보단 한식을 더 좋아하는 거예요?" "그럼 한식중엔 뭘 제일 좋아하세요?"라고 발랄하게 물어봅니다. 당황스러운 상우는 문득 말합니다. "소개팅하는 것 같다." 수줍게 웃으며 곧바로 고개를 숙이는 호정. 피식 웃음이 쏟아졌던 것은 이후 잠깐 스쳐 간 찰나의 전신 컷 때문이었습니다. 마주한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상대방을 향한 관심도를 드러낸다고 하죠.

 

 

식탁 앞으로 바싹 몸을 당겨 눈을 반짝이는 호정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신혼여행지를 직접 골랐다는 호정에게 다음의 스케줄을 묻자 그녀가 열거한 몇 가지 레저들 가운데서 상우는 스키나 보드를 타면 되겠네? 라고 무심하게 제안합니다. 순간 얼굴이 환해진 호정은 그 제안에 뛸 듯이 기뻐하며 "오빠. 스키, 보드 잘 타요?!"라고 흥분해서 되묻죠. 상우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스키장 안 와봤어"라고 말하는데도 호정은 금세 시무룩해집니다. 웃는 얼굴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어요. "너는 잘 탈 거 아냐?" 호정은 잽싸게 고개를 흔들며 강력하게 부정합니다. 운동 신경도 제로일뿐더러 무서워서 이런 거 정말 못한다고.

 

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로비에서 아이들에게 스키 강습을 하는 호정의 모습을 보고 상우는 충격을 받죠. 운동 신경이 제로라고 말했던 호정은 심지어 학창 시절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다고 하니까요. 아시다시피 상우는 거짓말을 싫어하죠.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거짓말이 원동력이 되어 미경과 헤어졌던 사례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호정의 깜찍한 거짓말만큼은 나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봅니다. 상우의 제안에 눈을 반짝일 정도로 스키를 그렇게 좋아하는 그녀가 오로지 상우의 체면을 보호하기 위해 실력마저 봉인해두는 아내의 배려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었겠어요.

 

 

 

뜻밖에도 상우는 "너 스키 가르쳐 주려고-"라는 말로 호정을 설원 위에 세워둡니다. 이미 거짓말을 던져버린 호정은 어설픈 할리우드 액션까지 취하며 최선을 다해 스키를 못타는척 연극을 하지요. 그런 호정의 옷을 털어주며 상우는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합니다. "너 왜 할리우드 액션이야? 나 거짓말 제일 싫어." 순간 주춤해진 호정이와 함께 제 마음도 두근거렸습니다. 아아. 가뜩이나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인 이상우(박해진 분)가 이 사건으로 아내를 미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제 예상과 달리 그는 능글맞은 한마디로 화해의 제스추어를 내보이지요. "나 가르쳐주면- 용서해주고."

 

이후 한 번도 스키장에 와보지 않았다는 상우를 쥐는 위치에서부터 기본 동작까지 세세하게 가르쳐주는 호정의 모습과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스키 연습을 하는 상우의 모습은 감격스럽기 짝이 없더군요. 또 다른 부잣집 딸 미경과 함께할 때의 그의 모습에선 이런 편안함을 느끼진 못했었으니까요. 그녀의 부유함이 두 사람을 이별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예민한 상우에게있어 가난한 아버지를 버릴 수 없는 이유로 작용하기는 했었습니다. "난 찬물에 세수도 못하는데-"라는 미경의 한마디는 그가 처음으로 강미경(박정아 분)에게 환경의 극복할 수 없는 차이와 이질감을 느껴지게 했었습니다.

 

 

 

사뭇 단순하지만 어찌 보면 무척이나 직관적인 스키와 거짓말이라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상우가 이토록 다른 태도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냐 상대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냐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다 좋은 상대를 찾기 위해 연인을 시험하듯 거짓말을 했던 미경과 오로지 그의 예민한 마음이 상처받을 것을 염려해 거짓말을 했던 호정의 모습은 그 마인드부터가 천차만별이지요. 물론 두 사람이 단순히 이 이유만으로 이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이런 상반된 성격과 감성 때문에 만약 비밀을 숨긴 누나의 시누이라는 설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우는 부잣집 아가씨로 밝혀진 미경이라는 사람과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호정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교만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잣대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에 의심이 없고 불만이 없습니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상대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가가 그녀의 최선일 뿐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상우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대로 판타지를 그려놓고 그 상상과 달라졌다며 이건 너답지 않다고 배신이라고 외치는 경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장 어리고 유치하지만 그래서 가장 투명한 사랑입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호정이는 그야말로 사랑에 빠진 바보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신혼여행 중 아내를 차에 내버려두고 누나를 만나러 나간 이 무심한 남편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그저 좋아서 헤헤거리는 바보입니다. 창문에 호호 입김을 불어 상우♡호정을 쓰다 문득 백미러 안의 상우를 발견하고 호정은 행복함에 중얼거립니다. "치- 저 오빠가 정말 나한테 오네..." 마치 짝사랑하는 옆자리 남학생을 바라보는 수줍은 여학생처럼 그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생긋 웃는 그녀의 얼굴은 마냥 행복해 보였습니다.

 

 

 

미안하다- 지루했지 미안함을 전하는 상우를 두고 호정이 싱긋 웃으며 던진 한마디에 문득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어요." 아아. 호정아. 이 바보를 정말 어떡하나요. 시종일관 안절부절못하며 남편의 마음을 배려하기 위해 동동거리는 호정의 모습은 분명 애처로움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마도 그녀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상우를 바라보는 호정의 미소만큼이나 행복한 얼굴을 갖고있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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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가를 넘어서 거의 팔불출로 보였던 강우재를 두고 저렇게 착하고 희생적인 남편에게 왜 그런 비밀을 감추고 있을까? 털어놓더라도 저 정도의 남편이라면 다 받아들여 줬을 텐데- 라고 강우재의 사랑을 믿었던 사람들은 최근 그의 충격적인 돌변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아버지를 죽은 사람이라 속여 넘겼던 아내의 거짓말마저도 안아줄 것이라 생각했던 강우재에 대한 믿음이 무색할 만큼 지금 강우재가 이서영에게 하는 행동은 거의 정신적인 폭력 수준에 가깝기 때문이다. 차가운 말투와 멸시하는 태도. 마치 아내를 시험하듯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살림만 하라고 말하더니 즉각 그 부탁을 받아들이자 너에게는 일이 그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되었냐, 결국 재벌집 며느리 자리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는 거냐라고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이 남자의 꽈배기처럼 꼬여버린 마음은 분명히 실망스러울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우재는 이서영을 놓지 못한다. 강우재(이상윤 분)는 언젠가 여동생을 향해 "네 거짓말 때문에 관계를 끝내려 하는 남자라면 그만큼 널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다. 포기해라."라는 권고를 했었다. 그렇다면 그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서영을 사랑하고 있다는 거다.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끙끙대다 결국 아내를 학대할 만큼 괴로워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나는 네 치부를 알고 있다고 떠들어대지는 못하는 강우재다. 이서영의 칼 같은 자존심을 알고 있기에. 자신이 그 사실을 밝히는 순간 그녀는 그를 떠나버릴 것임을 알고 있기에. 그것은 그에게 공포이기에. 적어도 강우재는 거짓말쟁이 이서영마저 안아주는 남편은 되지 못했지만 최소한 이서영을 떠나보낼 수 없을 만큼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죽었다던 장인이 멀쩡히 살아있음을 알게 된 강우재의 돌변은 그야말로 타락 수준이다. 아니. 같은 인간이 이렇게 변해버릴 수 있나? 싶을 만큼의 놀라움의 연속이다. 심지어 그는 영악하기까지 하다. 가족이나 비서 앞에서는 여전히 트러블 없는 착한 남편 연기를 하면서 그들이 돌아서면 멸시하는 눈으로 돌변해버리는 그의 행동은 오히려 이서영이 진저리내 며 실망이라고 말해도 이해가 갈 만큼 충격적인 변신에 가깝다. 특히 이미 여동생 강미경(박정아 분)이 누구와 사귀고 있는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잔뜩 취해서 들어온 그녀가 이별을 했다며 다시는 이런 사랑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느냐며 새언니에게 성질을 피울 때 그의 잔인함은 최고조를 달렸다.

 

난 남자친구의 아버지도 좋았다. 우리 아버지랑 달라서 좋았다. 푸근하고 편안하고. 강미경이 추억처럼 읊조리는 이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바로 이서영의 친부다. 물론 그 사실을 강우재 또한 알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서영아. 우리 장인어른은 어떤 분이셨어? 사진 같은 거 없어?" 미경이 얘기 듣다 보니까 생각나서 그러는 거야-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그런데 장인어른은 어디다 모셨어? 천진한 눈망울로 아내를 떠보는 그의 잔인함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화면 안으로 뛰어들어가 외쳐주고 싶었다. 도대체 너는 뭘 믿고 그렇게 오만한 거냐고.

 

 

 

물론 나는 돌변한 강우재의 심리를 이해한다. 사람들은 강우재가 그만큼 아내를 덜 사랑했기에 이렇게 변해버렸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반대다. 오히려 너무 사랑했고 너무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에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 친구들이 비아냥처럼 던진 어찌하여 이서영이라는 (재투성이) 아가씨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뭐냐면요. 이 친구는 여자이기 전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거든요. 어떤 순간에도 고품격인 여자랄까?" 강우재에게 이서영의 양심은 거의 종교에 가까웠다. 세상에 타락해도 이 여자만큼은 믿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를 믿는다는 것이 세상을 믿는 것이나 다름없던 강우재였다. 그래서 이렇게 쉽사리 무너지는 것이다. 이서영의 치부는 신의 실수를 눈앞에서 지켜보는 순교자의 심리와도 같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우재는 오만하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만큼만 이서영을 들여다보고 그만큼만 그녀를 사랑했다. 그래서 조금의 여백도 없이 빡빡하다. 도대체 그녀가 왜 그 순간 그런 선택만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조금의 이해도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나는 강우재를 이해하지만 그의 오만에 가까운 아는 척은 경멸한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아내를 집어다 놓고 자신이 멋대로 아내에 대한 환상을 만들고 그것이 어긋나자 다른 모든 가능성도 무너뜨리고 너는 최악이라고 외치는 강우재의 오만함이 환멸스럽기 때문이다.

 

"왜애? 나는 술 마시면 안 되나? 나도 사람인데... 나도 술도 마실 수 있고.. 춤도.. 하하.. 춤은 춰본 적 없구나... 그래도 나도 사람인데..."

 

 

 

남편의 계속되는 학대에 급기야 서영은 무너졌다. 3년 동안 처음으로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그녀는 탄식처럼 중얼거린다. "그래도 강우재만 아니었으면 버틸 수 있었는데. 강우재만 아니었으면..." 사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서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 그녀의 친부마저도- 이서영이 강우재를 선택하기 위해 아버지를 버린 이유를 위너스 재벌의 며느리가 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와 같지 않다. 이서영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우재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강우재라서. 그가 그녀의 유일한 행복의 증명이었기에 그를 선택했다. 아마 강우재가 위너스 재벌의 후계자가 아닌 자신과 비슷한 환경의 가난한 빈민이었더라도 그녀는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생명의 동기가 되는 구원자를 만난다. 그것이 이서영에게는 강우재였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살고 싶어서 아버지마저 버렸다.

 

 

 

이 드라마에서는 시종일관 네가 보는 그 사람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강우재의 숨겨진 장인. 이삼재(천호진 분)는 역시 자신의 손에 쥔 거울만큼만 그를 들여다보고 판단하며 이해하는 강우재를 두고 사람이 어떻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조근조근 한 충고를 했었다. "구만리도 짧을 만큼 길고 깊은 게 사람 속인데 또 제각각 속사정이 굽이굽이 엮이고 얽혀있는 게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죄다 지 손에 들고 있는 거울로만 다른 사람들을 보려고 한단 말이지요. 자기가 겪은 만큼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으로 어디 다른 사람 속이 보이나요?" 강우재는 우연히 만난 자신의 장인을 두고 분노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물었다. 그때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었느냐고.

 

 

강우재는 애원하듯 순진한 눈망울로 그의 장인에게 묻는다. "그 사람한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까요?" 그는 비록 마지막까지 무너진 아내에게 이불조차 덮어주지 못하는 분노를 갖고 있었지만 부디 그가 장인이 던진 이 숭고한 메시지를 가슴에 담아두길 바란다. 언젠가 꾸었던 악몽에서처럼 모든 것이 들켜진 순간 제발 사위에게 자비심이 남아있길 바라며 그가 남겼던 용서의 키워드를.. "살다 보면 차마 어쩔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게 있는 겁니다. 인생 더 지나고 나면 찰나에 불과한데 그 찰나에 또 찰나에 저지른 선택 때문에 평생을 마음 졸이며 사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순간이 전부는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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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33333 2012.12.24 07:45 신고

    거울이란말.... 멋지네요
    잘보고 갑니다

  • 조금...아쉽더라고요. 그래도 제 잘못이 뿌린 씨앗이니....

  • 2012.12.24 08:55

    비밀댓글입니다

  • 잘보고 추천 누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 ~ ^ ^

  • 서우 2012.12.24 17:27 신고

    아버지의 무능력이 폭력이 될 수도 있는데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강우재는 죽을 때 까지 그런 폭력을 모르겠죠..서영이가 거짓말을 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알지만 조금은 공감이 가요. 아버지 때문에 죽은 어머니 평생을 고생하시다 죽은 어머니.. 저라면 그런 아버지를 용서 못할 것 같아요.. 아니 부정하고 싶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서영이 같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써 서영이의 아픔과 거짓말에 동감이 갑니다.

  • 토토러냥 2013.01.05 23:33 신고

    글 잘 봤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진정한 신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것일 뿐이죠.
    사실은 신이 실수한게 아니라 사람이 더 멀리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당장의 현실만 보고 신의 실수라고 생각하는거죠.
    그래서 사람은 당장의 문제만 가지고 모든걸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한 것이죠.

 

"그 사람들은 서영이한테 버림받고도 서영이를 지켜주는 거야."

"희한한 사람들이네. 왜 그렇게 지켜준대? 모진 딸이고 누난데."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이서영을 표현하는 프로필의 첫 번째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삼재의 딸. 우재의 아내. 그리고 나는 오늘 이 소개말의 마지막을 이렇게 덧붙이고 싶었다. 이상우의 누나. 혹은 어머니.

 

최근 내 딸 서영이의 돌아가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일본 드라마 사토라레 같아 가슴이 뜨거워지곤 한다. 자신의 마음이 타인에게 들리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토라레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의 마음이 다 들리면서도 들리지 않는 척 위장을 해야만 한다. 그의 마음이 붕괴 되는 최악의 순간을 막기 위해서다.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이서영(이보영 분)을 둘러싼 세 명의 남자들은 모두 그녀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각기 다른 뉘앙스로 알아채고 있지만 그것을 이서영에게 고백하지는 않는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이유는 결국 한가지다. 이서영을 보호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편으로 최근 최악의 위기에 부딪힌 이서영을 바라보며 문득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분명히 그녀는 자신이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하는 비밀을 세 남자가 이미 공유하고 있고 더욱이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위기를 예고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나름 행복한 사람이다. 이 세 남자가 하나같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녀 자신이 숨겼다고 생각하는 비밀에 또 하나의 봉인을 걸어 진실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최근까지 밝혀진 이서영 미스터리에 대한 세 남자의 지식은 대충 이러하다. 서영이의 부친 이삼재(천호진 분)는 우연히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로 참석했다가 발견한 딸의 결혼식을 통해 서영이 강우재(이상윤 분)라는 멋진 신랑을 초라하고 부끄러운 아버지 때문에 버릴 수 없어 자신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강우재는 이삼재가 실수로 남긴 이서영의 증명사진을 추적한 끝에 그녀가 감추고 있던 가족관계의 비밀을 알아차렸다. 이삼재와 강우재는 어쩌면 이서영의 거짓말에 똑같이 희생당한 피해자들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천양지차였다. 한 사람은 이해했고 한 사람은 분노했다. 물론 그것이 이서영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라는 점도 무시하진 못하겠지만 어쩌면 이 두 사람의 상반된 감정을 만들어낸 원인은 연인의 사랑으로도 완벽히 채워지지 않는 무한의 사랑은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 같은 관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마음이라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 다소 특이하게 그녀의 비밀을 알아차린 세 번째 남자가 있다. 서영의 남동생 이상우(박해진 분)다. 그는 이서영의 고백을 통해 그녀의 입으로 직접 비밀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역시 다른 남자가 그랬듯 이서영을 위해 그녀가 모르는 그 이상을 고백하지 않고 숨겨두며 그녀의 자존심을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보호해준다. 서영은 남동생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고 더이상의 비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런 서영이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진실이 존재하고 있다. 남동생이 누나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얼마나 큰 것을 포기했고 얼마나 중요한 것을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서영은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진실인 셈이다.

 

"사랑하니까. 못살아. 못 살 사람이야. 아니 살아내지 못할 사람이야."

"내가 알고 있는 거 알면. 자존심이 못 견딜 사람이야."

 

 

 

최근 아내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돌변한 강우재의 품격을 두고 많은 이들이 배신이라며 비난하고 있지만 나는 그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이서영이라는 여자는 자신의 치부를 남편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극복할 수 없는 여자다. 진실을 알고 있다고 고백하는 순간 이서영은 그를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강우재는 현재 아내를 미워하고 있지만 그녀의 상실을 견뎌낼 수 없을 만큼은 이서영을 사랑하고 있다. 두 남자는 이것을 이서영의 자존심이라 평한다. 비록 거짓말로 3년을 속이고 그 거짓말의 수위 또한 웃어넘길 수 없는 수준의 패륜에 가까운 거짓말쟁이였을지 몰라도 그녀는 시리도록 청렴한 여자였다. 두 남자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각기 이서영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함구하고 또는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아서. 하나는 그녀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러니까 새언니 자존심 때문에. 자존심 지키며 살게 하려고 나하고는 헤어지는 거야?"

 

 

 

이상우의 침묵을 숭고한 희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다. 그는 명백한 자신을 향한 이익이 없음에도 오로지, 누나의 행복을 지켜준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 심지어 사랑까지 버렸다. 울먹이며 눈앞에서 나는 이제 어떡해를 외치는 연인의 애처로운 얼굴에 "우린 이미 끝났어"라고 말하는 이 잔인한 남자의 아름다운 희생을 어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상우 역시 처음에는 이서영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잣집 며느리가 되고 싶어서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을 버린 독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마치 지금의 강우재의 오해처럼.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했던 순간에 나타난 생명줄 같았던 남자 강우재의 존재를 버리고 싶지 않았던 절규에 가까운 발버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는 그만 무너져버렸다. 마치 숙제처럼 들고 있었던 미경을 향한 마음 또한 접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알고 있기에 그는 심지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의 결혼을 서둘러 진행시킨다. 오로지 이서영이라는 한 사람을 위해 그는 이토록 많은 것을 희생하며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3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누나를 향한 형제애나 남매애가 아닌 효심의 한 종류가 아닐까라고 생각해봤다. 서영의 유일한 의지였던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그녀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같은 시절을 겪으면서도 그가 간단히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이전에 그가 의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어머니 이서영의 존재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그는 서영이만큼 배고프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등록금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고 있는 자신을 대신하여 화를 냈었던 누나의 화난 얼굴. 남동생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희망이었던 의사의 꿈을 포기하고 짜장면 배달을 한다면서 해맑은 미소를 짓던 누나의 밝은 얼굴. 언젠가 몸살이 났을 때 죽을 끓여 머리맡에 놔주던 누나의 어머니 같은 얼굴. 고작 3분 일찍 태어났다고 그래도 누나라고 그 많은 세월을 자신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던 누나의 헌신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누나가 이제 겨우 행복을 붙잡겠다는데 자신의 사랑 때문에 그것을 망가뜨릴 수 없는 것이 그의 효심이었다.

 

 

"자기가 잘못한 건데 그 정도도 감당 못해?" 비아냥대는 미경을 두고 상우는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한다. "그 전에 내가 못해." 사랑하는 사람이 생명줄일 거라고 말하는 그 마음이 어찌 미경을 향한 상우의 마음속에도 존재하지 않았겠는가. 연인에게 네가 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간청하는 상우의 심정이 이미 자신은 겪고있 을 숭고한 희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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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는 유독 '보이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없다'는 충고가 자주 등장한다. 날 알아요? 당신이 보는 내 모습이 어떻게 진짜라고 확신하죠? 처음엔 서영이가 강우재에게 권한 충고가 나중에는 오지랖 피는 사위에게 던진 장인의 지적으로 변하고 이번에는 이서영의 남동생 이상우마저도 몇 번씩이나 옛 연인 강미경에게 던지는 충고가 되어버렸다. "네가 본 내 모습이 전부는 아니었겠지."

 

 

 

"나는 어떤 선택의 순간에 하는 결정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

 

상우는 빈말로라도 이제서야 너를 사랑하게 됐다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런 말을 듣고도 그를 받아들이는 호정이는 분명 바보에 백치다. 내 여동생이었다면 머리를 박박 깎아서라도 그와 만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최호정은 이상우가 강미경을 떨구어내기 위해 자신과의 관계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받아들였다. 오히려 사랑하는 척만 하다 불필요해지면 버려도 괜찮다고까지 말한다. 마치 강아지 같은 눈동자로. 그야말로 순교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행동이었다.

 

3년 전 사랑을 시작하게 된 이상우를 향한 최호정의 마음은 이제 짝사랑을 뛰어넘어 신앙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다. 어린 소녀의 짝사랑으로 시작된 조급한 마음이 이제는 성숙하게 발효된 긍국의 사랑으로 성장해버린 셈이다. 그저 철없는 부잣집 막내 아가씨에 임자 있는 남자를 당당하기 꼬드기는 그녀의 모습은 이상우를 비롯하여 시청자마저도 질리게 하는 철부지의 절정을 달렸으나 어느 순간 그녀는 한순간의 계기로 자신의 마음을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성장시킨다.

 

 

 

그것은 특이하게도 이상우가 강미경을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호정은 미경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끝까지 그녀를 위해 연민하는 상우의 진심을 발견하며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이상우와 강미경의 순수한 사랑에 진심으로 감동을 받은 것이다. 참으로 바보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하는 진심 때문에 감동을 받는 여자라니. 하지만 이 장면은 호정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오로지 잘생긴 이상우의 면상을 감상하고 싶어 선택했던 자원봉사 자리를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는 더 힘든 장소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급기야는 이상우와 강미경의 커플팬이 되어버려 두 사람을 위해 정성 들여 뜬 목도리를 선물하기도 했던 그녀의 백치 같은 마음은 사랑을 넘어선 순교가 되어버린다.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이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킨 것이다. 차라리 이상우가 더이상 강미경을 사랑하지 않고 그래서 그녀를 떨구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호정을 이용했다면 그녀의 입장이 조금은 덜 비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우의 심장을 차지한 여자는 여전히 강미경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호정의 사랑을 이용하는 이상우의 비겁한 책략을 최호정은 기꺼이 내버려둔 것이다.

 

 

 

그로 인해 최호정이 감내해야 하는 수모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 강미경과는 천하에 다시 없을 악녀로 자리 남아 원수 사이로 마감할 것이고 상우의 아버지는 그녀를 향해 "기어이 남의 남자를 뺏어버리고 만 거야?"라는 멸시에 찬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외동딸에게 거는 기대가 우주급인 어머니의 질책과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추문과 손가락질 또한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드문드문 떠오르는 바뀔 수 없는 진실 때문일 것이다. 이상우는 최호정을 사랑하지 않는다.

 

호정의 이 바보 같은 사랑의 미덕은 이 선택 또한 이런 상황으로라도 사랑하는 이상우와 결혼해보겠다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언제든지 자신을 버려도 좋다고 말하는 오로지 이상우의 편리를 위한 희생을 권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하나 한 번쯤은 울컥해질 만한데도 그녀는 혹여 상우의 마음이 불편해질까 염려하여 생긋 웃으며 "아빠는 오케이하셨으니까 며칠만 기다려줘요. 일주일 안 넘길게요."라고 약속한다.

 

사람들은 이런 호정이의 바보 같은 사랑을 걱정한다. 사랑이 없는 관계. 오로지 한쪽으로만 치우친 희생으로 이루어진 이 불편한 결혼이 과연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 아니다." "선택의 순간에 내린 결정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이상우의 프러포즈 아닌 프러포즈를 듣고 문득 생각했다. 반드시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 삐걱거리는 서영과 우재는 한때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사랑을 나누던 사람들이었다. 지금 그들이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의 이유 또한 상대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잃고 싶지 않다는 집착으로 변이했기 때문이었다. 강미경 또한 마찬가지다. 상우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자신의 배경을 감추어야만 했다. 상대를 너무 사랑한 이 남매의 문제점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과 자만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속에 이만큼의 여유도 남겨두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전부라고 단정 짓고 사랑해야만 했다. 결국 여유가 없었던 그들의 사랑은 위기 앞에서 당황하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좋은 점만 믿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서영과 이상우 이 비밀스러운 남매는 이런 믿음을 받기에 너무 많은 상처와 비밀을 감추고 있는 존재들이다.

 

반면 최호정은 한마디로 이상우의 바닥까지 들여다본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는 그와 사랑하면서도 그를 다 알지 못해 숙제 같은 이상우의 문제를 들고 와 상의하는 미경에게 항상 그를 이해하라고 조언하곤 했다. 연인 관계인 미경 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그녀가 오히려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했던 셈이다. 똑같은 부잣집 딸이면서도 미경이 감추어둔 비밀을 깜짝 선물이라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을 때 호정은 나서서 분개하며 그것은 오빠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짐이라고 선언했다. 강미경 또한 초라하게 인정했듯이 그 누구보다 이상우를 잘 알고 있는 여자다. 하지만 더 중요한 그녀의 미덕은 자신이 모르는 이상우의 비밀까지도 애써 토를 달지 않고 그를 전면적으로 이해해준다는 점이다.

 

 

 

"야. 임마. 너 바보야? 나 미경이하고 헤어지려고 너 이용한 건데. 이렇게까지 하고 싶어?"

 

상우는 집에서 쫓겨나 추위에 떨며 코까지 빨개진 호정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의 이기심을 들여다본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쓰다듬듯 말하는 상우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시작된 호정을 위한 연민으로 성장해있었다. 해맑게 괜찮다고 벌어들인 돈을 흔드는 호정의 순수함에 눈가가 글썽해진 상우를 보자 어쩐지 울컥해져 눈물이 났다.

 

 

분명 최호정의 시작은 비참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결말마저도 비참할 것이라 미리 단정할 수는 없다. 이상우의 사랑은 늦되지만 그것이 진짜가 되었을 때 그 끈질김은 오히려 함께 시작한 사랑 그것보다 더 진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어리석어서 아름다운 그녀의 짝사랑을 응원한다. 적어도 최호정은 드라마 속에서 가장 진짜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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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글즈 2012.12.16 11:30 신고

    잘 읽 고 감니다!
    내 딸서영이를 보면
    시대상 표현이 않맞다고
    생각한적이 많습니다.
    80년대 5.18 사태이후
    남녀 가치관에 혼란이 생겨
    미경이 처럼 적극대쉬도 하고
    순정적인 사랑도 있었지만
    지금은 돈이 바로 사랑이
    되어버린 비참한 현실에서
    시대 설정을 잘못한
    드라마 라고 생각함!

  • ㅎㅎㅎㅎ 2012.12.22 20:45 신고

    호정이란캐릭터도이해가안되고
    드라마내용도맘에안들고..
    아무튼잘읽고가요

 

이서영의 비밀이 밝혀지고 강우재의 달라진 태도를 보며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하긴 강우재가 누구였나. 기꺼이 아내의 발까지 씻어주며 헌신을 다짐했던 남자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시청자들은 서영이가 아빠를 버리고 아들처럼 보살피던 남동생까지 외면하고 돌아서며 끙끙 앓는 모습을 거진 절반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저렇게 착하고 이해심 넓은 남편인데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받을걸. 왜 저리 끙끙대고 있나." 강우재의 아내를 향한 헌신이 크면 클수록 시청자는 오히려 서영이의 비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다 털어놓지. 저 정도의 남편이라면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을 텐데.

 

 

 

그랬기 때문에 지금 강우재의 태도는 이서영뿐만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배신'인 것이다. 그렇게 쌀쌀맞던 이서영이다. 환경이 만든 이서영의 예민한 성질은 때론 남편 우재에게까지 뻗치곤 했었다. 매일이 이벤트 같은 남편의 따뜻한 호의를 이서영은 거의 웃는 얼굴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늘 한결같은 강우재였다. 그래서 그의 지나치게 넓은 가슴이라면 이서영의 거짓말을 알고서도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그것이 강우재의 성격과 어울리는 인품이라고 시청자들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는 작가가 군데군데 뿌려놓은 미래를 예고하는 실마리 같은 복선들을 살피며 이서영의 진실이 터지는 순간 강우재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서영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의 거짓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였다.

 

"3년 비결은 모르겠지만 결혼할 때 우재가 뭐에 반했는지는 알죠."

"멋진 자존심이래요. 멋진 자존심은 어떤 거예요? 자존심은 나도 있는데."

 

 

언젠가 슬쩍 떠보는 듯한 친구들의 질문에 이서영의 까칠함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을 때 아내의 예민한 얼굴과는 상반되는 너그러운 미소로 그는 대답했다. "그게 뭐냐면요. 이 친구는 여자이기 전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거든요. 어떤 순간에도 고품격인 여자랄까?" 이서영의 거짓말이 밝혀진 이후에도 강우재가 오히려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며 아내의 아픔을 안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청자들은 강우재에게 기대했던 사랑의 관점이 다른 것이다. 강우재는 그녀를 동정하고 있기에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멋진 자존심.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사람. 깨끗하고 청결한 마음을 가진 그녀라서 존경하고 사랑했었다.

 

아마 강우재가 이삼재를 집요하리만큼 그토록 쫓아다녔던 이유도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유 이상의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아내 이서영의 청결함과 닮아있는 고품질의 자존심이었다. 어떤 순간에도 위선을 말하지 않는 고품격의 사람. 강우재가 이서영의 비밀을 알고 나서 인격마저 망가지며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어떤 순간에도 그녀를 불신치 않고 믿고 사랑하는 사랑의 핵이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서영의 거짓말이 들통 난 순간 강우재는 더이상 착하고 헌신적인, 무한의 사랑을 베풀던 남편 강우재의 모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의 호의를 비아냥거리며 심통난 소리를 던지고 속으로는 의문을 가득 품은 채 아내를 떠보는 행동은 찌질해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그의 의심은 논리적이지도 못하다. 그는 이서영이 부모님 앞에서 아버지를 죽었다고 말했던 순간을 왜곡해서 확대해석해버린다. '저. 우재씨 잡고 싶어요.' 아버지 앞에서 위너스 사장 아들 강우재를 잡고 싶다고 말하는 이서영을 상상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꼿꼿하고 당당했다. 강우재는 절망한다.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꼿꼿하고 당당했던 이서영의 자존심이 실은 재벌남을 잡기 위한 책략이었을 줄이야.

 

 

 

그는 어느 첫눈 떨어지던 날 먼저 전화를 걸어 그를 불러냈던 이서영의 보기 드문 호의를 떠올린다. "먼저 첫눈 본 사람이 먼저 찾아가기" 떨어지는 눈에 그의 마음도 잠시 녹아내렸었다. 약속하지도 않은 장소에서 아내는 첫눈을 느끼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우재씨하고 나눌 수 있는 기억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한테 다시는 묻지 마요. 우재씨는 절대 나 이해 못 해."

"나하고 나눌 수가 없는 거야. 나누고 싶지 않은 거야."

 

 

 

 

-둘 다예요. 하지만 이서영은 최후의 기회가 주어진 순간에도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그녀 역시 강우재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서영이 자신의 입으로 먼저 거짓을 고백했더라면 강우재는, 그보다 더한 진실을 숨겼다 하더라도 그녀를 기꺼이 안아줬을 것이다. 이서영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강우재가 먼저 이서영에게 너의 비밀을 알게 되었노라고 고백했더라면 그녀는, 그 순간에 와서는 더이상 진실을 숨겨두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끝까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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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소녀를 짝사랑한 수줍은 소년은 그 마음을 직접 전하지 못해 무려 7년이 넘는 기간을 우체통에 넣은 러브레터로 대신했다. 그리고 7년 뒤. 소녀는 프러포즈를 했다. 상대는 7년간 꼬박 편지를 전하러 온 우체부였다.

 

 

 

12월의 첫 서막을 여는 내 딸 서영이는 한 쌍의 연인의 이별을 통보했고 또 한 쌍의 연인에게 불멸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이러니였다. 서영이의 발까지 씻어주며 약속했던 우재의 사랑은 그녀의 부친이 흘리고 간 증명사진 한 장에 실금이 갔다. 돌이켜보면 위너스의 딸이라서 여동생을 싫다 하는 상우를 의심할정도의 감이 뛰어났던 그가 이제 와서 아내의 미스터리에 의문을 갖는다는 것이 신기한 일인 셈이다. 우재는 누구보다 끈질기고 예리하며 때론 섬뜩할 정도의 사무적인 일면 또한 가지고 있는 남자다. 그동안 서영이를 사랑하는 팔불출 같은 마음이 그의 모진 성격을 덮어주고 있었던 것일 뿐. 이제 본격적으로 아내를 의심하게 되어버린 그가 과연 어떤 형태의 배신을 보여주게 될지가 앞으로 펼쳐질 내 딸 서영이의 주요 갈등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한편 서영이의 남동생 상우는 결국 미경을 놓아버렸다. 연인과 나누고 싶었다던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 그의 이벤트는 이별 직전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 되어버렸다. 결코 놓지 않을 것 같았던 미경을 다시 붙잡을 수 없었던 이유는 3년 만에 처음으로 듣게 된 누나의 진심 때문이었다. 차라리 재능이 적기라도 했다면 그녀의 자괴감도 덜했으리라. 아버지가 만든 퍽퍽한 삶 속에서 그녀를 지탱하게 했던 유일한 희망인 어머니를 잃고 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녀에게 나타난 강우재는 신데렐라의 왕자님이 아닌 그녀의 생명을 구원한 희망이었다. 상우는 난방비가 아까워 온수조차 틀지 못하는 아버지와 그런 상황에서도 그가 지켜주고 싶었던 서영이의 미래를 생각한다. "아버지. 아버지 이런 거였어요? 걔. 감추고 사셨어요?" 아버지가 감춰놓은 서영이의 얼굴을 붙잡고 그는 울먹였다. 이서영에게 버려진 천륜이었지만 그들은 차마 이서영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득 생각했다. 만약 이상우가 강미경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서로의 배경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두 사람은 아무런 불만 없이 행복할 수 있었을까 하고. 적어도 그동안 드라마에서 던져진 힌트를 돌이켜보면 미경은 물론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하지만 그를 이해하지는 못하는 여자였다. 물론 자신을 버린 누나의 시누이라는 장벽이 그를 미경에게 다가가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 되겠지만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상우는 언젠가는 미경을 떠나고 말 것이었다. 그녀는, 너의 부유한 환경이 싫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믿었지? 라던 상우의 의문을 평생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미경은 사랑스러운 여자다. 그녀의 털털함은 3년간 "네가 가난해서 좋아"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던 상우를 깜찍하게 속였을 정도로 결코 드러내는 위화감도 없고 감추어둔 위선도 없는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가 전부인 투명한 사람이다. 아마 내 딸 서영이에서 가장 투명한 사람을 말하라면 그 대상은 강미경이 될 것이다. 어쩌면 궁핍한 환경에서 자라보지 못한 여유로운 사람 특유의 특권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랬기에 미경은 상우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궁핍한 사람의 정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최호정을 찾아 그녀에게 연애 상담을 하고 심지어는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달라 호소까지 한다.

 

"나도 아직 상우 오빠 보는 거 힘들어서 상우 오빠 피해서 여기로 옮긴 거예요." 호정이 울먹이는 얼굴로 하소연을 해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목마른 내 마음의 갈증을 푸는 것이 우선이다. 호정이 자신과 똑같은 마음으로 상우를 사랑하고 버려진 상처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심지어 곤란한 호정에게 협박하듯 거짓말까지 시키며 상우를 불러달라는 요청까지 서슴지 않는다. 조금 시간을 줘야 한다는 호정의 말을 들은척하려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뻔뻔해진 강미경을 두고 최호정과 이상우를 연결하기 위해 캐릭터를 변절시키고 있다 불평하지만 사실 강미경의 이런 잔혹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었다.

 

 

 

미경은 자신과 똑같은 마음으로 호정이 상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그녀에게 연애 상담을 받고 조언을 듣기까지 하며 큐피드 역할을 시키기도 했다. 그 과정이 호정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은 것은 이미 연인이 있는 남자에게 끼어든 호정의 탓을 외면할 순 없으나 최소한의 방심조차 갖지 않은 미경의 오만은 결국 화를 불러일으켰다. 호정을 벌레 보듯 하던 상우에게 처음으로 그녀를 향한 연민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돌아이. 사이코 맞네. 어떻게 싫다는 사람한테 이렇게 집요하게. 너 미친 거 아니야? 미경일 팔아서 장난을 쳐?" 미경의 부탁을 받고 거짓말을 하여 상우를 불러낸 호정은 그런 상황에서도 차마 사실을 고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강미경보다 먼저 사랑했던 남자에게 끔찍하다는 말까지 듣는 순간에도 그녀는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미경에게 문자를 보내며 울먹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게 느껴지던지. 순간 연인 사이를 훼방 놓는 집착녀라 비난했던 내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시청자의 기분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 연민을 이상우라고 느끼지 않았겠는가. 순간 분풀이 삼아 그녀에게 폭언을 내뱉었던 상우였지만 곧 그 마음은 미안함으로 채워졌을 것이 분명하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헤어지자고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 첫째, 시한부로 선고받았거나. 둘째, 다른 여자가 생겼거나." 상우는 그녀의 첫 번째 가설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다른 여자가 생겼느냐는 말에는 내게 왜 여자가 없을 것 같으냐는 반문으로 그녀를 힐난했었다. "네가 이러니까 더 이상하다는 거야. 네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헤어지자고 하니까." 상우는 이제 질린다는 표정까지 지으며 물어본다. 너 원래 그렇게 모든 걸 네 입장에서 생각했었니? 마치 미경의 오빠 우재가 처음으로 그의 장인에게 야단을 맞았던 충고가 떠오르는 말이었다. "어떻게 그리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냐고."

 

한때 상우를 질리게 하였던 철부지 호정은 변하고 있었다. 단순히 남자 하나 잡겠다고 자원봉사를 하러 들어온 그녀는 이제 간절한 마음으로 인사 이동을 원한다. 편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힘들어지고 싶어서 그런다고. 환자가 시킨 떡볶이를 사러 들어온 그녀는 한쪽 편에서 술에 취해있는 상우를 보고 기겁한 얼굴로 심부름을 한다. 그녀의 안타까운 모습에 상우 또한 일말의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앉아서 기다리라구. 들어와. 사람 더 미안하게 하지 말고 들어와! ...춥잖아.."

 

 

 

성숙해진 호정은 이전의 철부지 소녀가 아니었다. "너 미경이 부탁이라고 왜 말 안 했어? 왜 말 안 하고 혼나고 당했냐?" 변명도 없고 투정도 없고 집착도 사라졌다. 심지어 그의 사랑을 응원하기까지 한다. 어른이 되어가는 호정과 달리 궁지에 몰린 미경은 점차 아이가 되어버린다. 호정의 장점이 드러날수록 미경의 단점이 눈에 띄게 되어간다. 이기적이고 자신밖에 모르며 오만하기까지 한. 언젠가 미경은 이상우 팬클럽 회장에서 커플팬으로 변해버린 호정이 이니셜까지 새겨 내민 커플 목도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미경은 알았어야 했다. 방심조차 되지 않는 이 소녀팬이 언젠가 스타의 연민을 받는 적수로 둔갑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녀는 심지어 미경은 이해하지도 못했던 부자라서 네가 싫다는 상우의 마음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여자였다. 그것은 심지어 강미경 자신도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니었는가. "너한테 정말 못할 짓인 거 아는데 상우를 제일 잘 아는 게 너라서." 그토록 벌레 보듯 했던 호정에게 처음으로 호감을 갖게 된 상우의 태도. 그것은 미경의 오만과 이기적인 사랑이 부른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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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갱 2012.12.03 10:35 신고

    미경이는 아이가 되고, 호정이는 어른이 되어간다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사실 처음에 호정이가 미정이에게 당당히 상우오빠를 좋아한다드니,페어플레이 하자느니 라는 말을 들을 땐
    그녀가 아무리 상우를 잘 이해하곤 있지만 저건 아니지않나..? 싶었거든요.

    그녀의 그런 말들을 꽤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미경이를 보면서 한편으로 오만일수도 있지만, 어르스러움일수도 있을까..? 라는 생각이 아주 얼핏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 수록 그건 미경이가 호정이를 이해하는 어른스러움이 아닌 그저 오만인 것 같더라구요.

    호정과 미경이를 보면서, 자기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호정이의 모습과 '내 잘못도 있지만' 을 외치며 이별의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미경이의 모습이 참.. ㅎㅎ
    사람을 찔리게 만들기도 하고, 저런게 바로 어른스러움과 아이스러움의 차이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
    49일을 참 재밌게 보다가 마지막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는데, 이번 작품은 그러지않길 바랄 뿐입니다 ㅠ.ㅠ

  • 저희 엄마가 즐겨보시는 내딸서영이ㅎㅎ 좋은글이네요~ 잘보고갑니다~

  • 지나가다 2012.12.03 14:21 신고

    토요일 방송분은 보지 못해 몰랐는데 어제 방송분을 보니 이해 되네요.
    아이가 되어 버린 미경이와 어른이 되어가는 호정이 좋은 표현 인것 같아요.
    이해하고 노력하고 그 모진 말을 들어 놓고도 나는 괜찮다고 하는 호정이를
    보니 벌써 부터 걱정이네요.
    상우를 위해서 이용 당하는것도 괜찮다고 할텐데 이제부터 힘들어 질것 같아서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ㅋㅋㅋ

 

"그냥 인사 아니라니까. 어떻게 맛없을 수가 있어."

"당연한 걸로 감동 받지 마. 넌 틈나는 대로 아침 저녁 했던 일이야."

 

 

 

쌀쌀한 12월의 바람 같은 차가운 서영이에게 언제나 변치 않는 훈기를 불어 넣어 주는 따뜻한 사람. 강우재의 사랑은 늘 "처음부터 그대로 말했더라도 저런 남편이라면 이해하고 넘어가 줬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이날은 더욱 각별했다. 어쩐지 요즘 한껏 예민해져 있는 아내를 위해 그는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하여 마치 크리스마스의 선물 같은 아름다운 기억을 선사해준다. 무엇보다 감동이었던 것은 직접 만든 요리 이상으로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만들어준 우재의 마음 씀씀이였다. "생각해보니깐 난 한 번도 너한테 음식 만들어 준 적이 없더라구."

 

 

 

혼자서만 이런 행복을 독점할 수 없었던 서영이는 거의 처음으로 마치 인어아가씨의 아리영 같은 깜찍한 잔꾀를 부려 시어머니를 감동하게 했다. 우재씨가 어머니 저녁해 드린다고 해서요. 어머니 크림 파스타 좋아하신다고 장 봐왔어요. 저희. 자기가 다한다고 손도 대지 말래요.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아마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크림스파게티를 제가 직접 만들어드릴게요- 라고 했다면 이날 그녀의 시어머니는 그리 감격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처음으로 아들이 직접 만들어준 스파게티를 먹지도 못하고 울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행복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직접 음식을 만들어 준 적이 없었다는 우재의 고백을, 그렇다면 어머니 역시 아들의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지 않았을까로 이어지는 서영이의 마음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사랑은 또 하나의 사랑을 키워낸다. 강우재의 어머니. 그리고 이서영의 시어머니인 차지선 여사는 아들에게 들려줄 그 어떤 찬사보다도 그의 아들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선물해주었다. "서영이. 많이 먹어라."

 

 

 

우재의 따뜻한 마음이 싸늘하고 깐깐한 서영이의 마음마저 여유롭게 했다. 그 마음은 처음으로 서영이를 향한 시어머니의 마음까지 녹여버렸다. 서영이가 처음으로 들었던 시어머니의 이 따뜻한 한마디는 그동안 우재네의 식탁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가족의 화합을 이끌어냈다. 우재의 아버지는 보기 드물게 따뜻한 말을 아내에게 하고 가족들은 감사와 사랑을 식탁 위에서 나누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이 어쩐지 서글픈 복선처럼 느껴져 안타까웠다. 가족의 믿음과 사랑이 커지면 커질수록 배신감은 더 극대화될 것이다. 조만간 터져버릴 시한폭탄 같은 서영이의 비밀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마지막 평화와도 같아 보였다.

 

생명의 은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이 생소한 일은 아니겠지만 강우재의 건실한 인품을 생각하더라도 그의 보은은 집착 수준에 가깝다. 싫다는 사람을 끝끝내 추적하여 일자리를 안겨주고 그것을 한사코 거절하자 이제는 큰 눈을 부라리며 협박하듯 자신의 곁에 두고. 간간이 그를 찾아가 "술동무 되어주세요." "같이 식사나 해요."라고 삼재를 곤란하게 하는 그의 끈질김은 딸을 위해 그림자로 살아야겠다 명심했던 아버지의 부정마저도 멈칫하게 했었다. 오죽하면 원망하듯 자신을 바라보는 죽은 아내의 사진을 보며 변명했겠는가. "우재. 그놈 끈질긴 거 당신도 잘 알잖아."

 

 

 

하지만 그의 곁에 남는다는 것은 자신을 죽었다 거짓말하고 떠난 서영이의 위험을 극대화하는 행동이다. 언젠가 회사 앞에서 마주칠뻔한 서영이를 두고 삼재는 더는 이 위험한 사위의 곁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결국 예순에 가까운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훌쩍 떠나버리면 흥신소라도 불러서 난동을 피울 것이 그의 사위 강우재의 성격이었기에 삼재는 우재를 찾아가 거짓을 늘어놓는다. 부산에 가구공장을 하는 친구가 있어 그곳으로 떠나야겠다고. 집착꾼 우재가 쉽사리 그를 보내준 것이 의외일 정도였다.

 

 

 

그렇게 떠나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재와 서영이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들의 신뢰를 깨뜨릴 유일한 위험은 서영이가 죽었다고 거짓말한 자. 이삼재 자신뿐이다. 혹여 우재가 변덕을 부릴까 무서워 서둘러 회사를 떠나버린 그였다. 하지만 천륜은 결국 증거를 남겼다. 떠나버린 삼재가 서두르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물함 안의 유리구두 한 짝. 삼재의 딸. 그리고 우재의 아내, 이서영의 증명사진이었다. 상우가 미경을 버리면서까지 놓지 못해 울었던 부자의 천륜이었다.

 

삼재는 자신의 사위인지도 몰랐던 강우재에게 첫눈에 호감을 느꼈다. 자신의 딸인지도 모르고 똑같은 이름의 어느 아가씨에게 부러움을 느낄 정도의 잘생기고 건실해 보이는 신랑 우재를 향한 호감은 강우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집착은 단순히 생명의 은인을 대하는 그것이 아니었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강직한 마음의 사람. 엘리트 강우재를 무너뜨렸던 이서영의 이미지를 그의 생명의 은인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다 집착하고 싫다는 그를 쫓았다. 아마 한사코 우재의 선의를 거절하는 그의 깐깐함 또한 우재의 마음을 반하게 했던 원인일 것이다. 서로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꼈던 두 사람의 인연은 서영이의 끈으로 이어진 본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날도 우재는 삼재를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그는 문득 얇은 옷을 입고 추위에 떠는 삼재의 모습을 떠올렸다. 부랴부랴 두꺼운 옷을 집어들고 포장도 하지 못한 채 그가 떠날까 봐 서둘러 쫓아 내려왔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사물함 속에 들어있던 아내의 사진 한 장 뿐이었다.

 

 

 

우재의 사랑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퍼주고도 "감동하지 마. 넌 틈나는 대로 아침저녁 했던 일이잖아."라던 이 남자에게 어찌 감동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쌀쌀한 서영이의 소박한 마음을 언제나 돌려줘야 할 고마운 마음으로 갖고 있었던 그를. 그렇게 퍼주고도 오히려 자신의 흠만을 지적하며 미안하다 말하는 이 남자의 애달픈 아내 사랑을. 기꺼이 아내의 피곤한 발을 씻어주는 헌신을 담은 그의 사랑을. 어디 서영이에게 뿐이었던가. 마음을 주지 않았던 그의 헐벗은 은인을 위해 마지막까지 추위를 피할 수 있을 두터운 패딩 점퍼를 준비했던 그의 고마운 마음을.

 

 

 

언젠가 삼재는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말하는 우재의 교만을 야단쳤다. 사람이 어떻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겠냐고. 그것은 마치 언젠가는 맞닥뜨릴 서영이의 비밀에 우재가 지나치게 노여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장인의 부탁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저런 남편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헌신에 가까운 사랑을 베푸는 우재의 사랑이 과연 아내의 비밀이 터진 그 순간에도 침착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이서영에 대한 사랑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삼재에 대한 믿음이 컸던 것만큼 그가 받을 상처와 배신감은 상대적으로 비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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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말처럼 무의미한 게 어딨어? 절대로 돌아갈 수가 없는데." 차라리 이서영이 강우재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편했을 것이다. 재벌 총수의 아들 강우재의 비전을 갖고 싶어 과거를 속이고 배경을 세탁하고 아버지가 죽었다 말하고 동생이 사라졌다 눈속임을 했다면 그저 악녀라 돌을 던지고 외면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이서영이 거짓말을 유지하는 동기만큼은 순수하기 짝이 없어 감히 탓할 수도 없는 마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의 새하얀 위선을 지켜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서영은 잔인하다.

 

 

 

이 드라마에서 미스터리로 가득한 예민한 아내를 불평 한번 없이 감싸주는 강우재의 인품과 마주할 때마다 시청자는 버릇처럼 이렇게 되뇌였으리라 확신한다. "사실대로 말했더라도 저 정도의 남편이라면 이해하고 넘어갔을텐데." 그렇다. 강우재라는 사람의 이서영의 초라한 과거를 손가락질하며 그녀를 외면했을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초라함만큼 그리고 그 괴로웠던 마음만큼 이서영을 안아줬을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적어도 결혼식 직전에라도 밝혔더라면, 아니 하물며 어제였더라도. 하지만 수없이 if를 되뇌이면 무엇하겠는가. 이서영의 말대로 시간을 돌린다면, 그 말만큼 무의미한게 어디 있겠는가. 돌릴 수가 없는 것이 시간인 것을.

 

 

 

이 드라마가 특이한 것은 기존의 드라마에서 시청자가 바라봤던 몇 가지 패턴과도 같은 드라마의 소재들을 완벽히 뒤집어 갈등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다른 드라마였다면 이서영은 이미 결혼 전까지가 갈등의 클라이맥스였을 것이다. 신데렐라가 될 이서영의 유리구두를 한사코 반대하는 강우재의 집안과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이서영과 강우재의 사랑. 하지만 이 드라마의 시작은 이서영이 결혼하기 전이 아니라 결혼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여느 드라마에서 흔히 쓰이는 겹사돈이라는 소재 역시 이 드라마에서는 3년 전 이서영의 행동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거울처럼 비추어보게 한다. 이상우는 이서영의 하나뿐인 남동생이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녀의 고통을 비슷한 수준으로 느꼈을 유일한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서영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최소한 이해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부자라서 속였다는 연인의 거짓말을 가난해서 속였다는 누나의 거짓말과 반추해서 돌이켜본다. 처음으로 3년 전 누나의 패륜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네 환경 알면, 그 환경을 싫어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 너는 네 거짓말만 실토하고 사과하고 그러면 끝이라고 생각했지? 네가 재벌 딸인 게 싫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믿었지?"

 

상우는 기가 막혔다. 그의 연인은 3년간 그를 속이면서도 막상 그녀의 배경 때문에 그와의 관계가 깨질 것이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위너스의 딸을 도대체 누가 거부하겠어? 자신의 배경이 미래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까 두려워 가족을 버렸던 누나의 절박함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똑같은 거짓말인데도 그 거짓말 뒤에 어떤 배경이 감추어져 있었는가에 따라 하나는 깜짝 선물이 되고 하나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선고하는 것이다.

 

 

 

"이상우. 너 왜 그래? 너 뭔가 이상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집까지 데려다 줄 생각하고 차 가지고 다니라고 그럴 사람 같지 않거든."

"왜. 나도 네 정체 알고 접근한 걸로 보이냐?"

 

 

 

연애나 하자- 라던 상우의 말이 최후의 보루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미경은 그의 이런 찜찜한 제안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는 미경이 하고 싶었다던 데이트 코스를 돌아준다. 야시장에서 시장 구경을 하고. 버스를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나 잠든 미경을 깨워 그녀의 집 앞에서 내린 그가 여자의 집으로 바래다주는 풍경까지는 그녀도 그리고 시청자 또한 당황시키는 데이트 코스의 마무리였다.

 

 

 

"우리 동네 여기 정류장 어떻게 알았어?" 순간 미경의 찜찜한 얼굴이 그녀가 줄곧 의심했던 다른 남자들처럼 상우의 의중을 의심하는 전형적인 장면이라고 착각했다. 이전에 얼굴 한 번만 보고 위너스 중역이라는 것을 알아챈 상우가 수상하다는 오빠 우재의 코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완벽한 치팅이었다. "넌 너무 사랑밖엔 난 몰라" 스타일이라 걱정된다던 강우재의 예리한 추리력마저도 정작 자신의 사랑 앞에선 흐려져 앞을 못 보는 것처럼 미경의 상우를 향한 마음 또한 의심과 불안으로 퇴색되고 흐려질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농담하지 마. 그런 오해는 안 해. 이상우한테는."

 

 

 

미경은 금방이라도 끈을 놓아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사람에게 매달려 줄을 잡고 있는 것처럼 상우의 손을 꼭 잡고 결코 그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불안에 젖어가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순간 그녀는 알아챘다. 상우의 이 이상한 행동이 결국 이별을 위한 마지막 배려심이었다는 것을. 그녀의 얼굴이 순간 울 것처럼 변해가던 미묘한 표정은 내 마음마저 아리게 했다. 박정아의 연기력이 눈부시게 성장했음을 비로소 입증한 장면이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차마 꺼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길고도 짧은 침묵 사이에 박정아가 보여준 연기는 그야말로 내 딸 서영이에서 봤던 최고의 연기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었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순간 튀어나온 살짝 쉰듯한 목소리 "너..." 그리고 울 것 같은 얼굴. 또 잠깐 이어지는 침묵.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 박정아가 이 역할에 얼마나 몰입했는가를 비로소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생각. 설마... 하는 생각. 혹시나 하는 생각."

 

- 우리 헤어지자

 

 

 

"아줌마. 손 안 시려워요?! 으으. 난 찬물로 세수도 못하는데."

 

강미경은 여느 재벌에게 갖는 이미지를 드러내지 않는 그야말로 평범에 가까운 털털한 여성이었다. 상우의 가난한 집을 두고 몸서리치지도 않았고 어쭙잖은 동정심으로 그의 화를 돋웠던 일도 없다. 재벌 아가씨를 연상케 하는 위화감을 동반하는 부내를 풍겼던 기억도 없이 언제나 소박하고 평범했던 그녀였다. 그래서 3년간 상우를 속일 수 있었을 것이다. 고아에 몹시 가난하다고. 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빈부격차의 위화감을 상우는 찬물로 세수도 못한다는 그녀의 한마디에서 몸서리치게 와 닿게 된다.

 

 

 

물론 이 장면 하나만으로는 설득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꼭 가난해서 찬물로 세수한다는 설정은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이날 상우를 울컥하게 하였던, 돈을 아끼려고 온수를 잠그어두었던 아버지의 궁상이 존재했기에 이 장면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순간 시청자는 느끼게 된다. 찬물로 세수도 못한다는 그의 부유한 연인을 바라보는 가난한 상우의 미묘한 표정이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그렇게 안 했을 거야. 어떻게 후회를 안 할수가 있어."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과오를 바라보게 하는 거울로 사용하는 소현경 작가는 상우와 미경의 연애를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끝내버리지 않았다. 상우는 미경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문득 그가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던 누나의 마음 마저 들여다본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에게 "왜 그랬었어?"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왜 그랬냐는 질문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빈곤했었다고.

 

 

소현경 작가는 복선이나 상징적인 의미를 굳이 여러 번 되풀이하여 시청자에게 강요하진 않지만, 문득 지나치고 말 듯한 평이한 대사와 상황들을 훗날 어느 상황에서 커다란 카타르시스로 다가오게 하는 복선으로 사용한다. 이번 장면에서도 그랬다. 난방비가 아까워 온수도 틀지 못하는 아버지와 야시장 데이트는 즐기면서도 찬물에선 세수조차 못한다고 몸서리치는 연인의 아이러니. 하지만 작가는 촌스럽게 이 장면에서 굳이 난방비가 아까워 벌벌 떠는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하게 하지 않았다. 그저 미묘하게 변해가는 상우의 표정 하나만으로 이전에 쌓였던 감정이 터지는 위화감을 만들어냈던 것이었다.

 

 

 

굳이 빈부격차를 극단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부유한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돌아섰던 누나의 선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만들어준 것은 물론 아버지의 가난에 비추어 연인의 사소한 위화감에 감정이입하게 했다. 소현경 작가의,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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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제작 비리를 신랄하게 파헤치며 자학하는 고발드라마 '드라마의 제왕'. 죽을 각오로 만들었다던 제작진의 말처럼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을 드라마 제작 과정의 비리들이 마치 자학처럼 펼쳐지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폭로 중 하나는 바로 드라마 속의 간접 광고 PPL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드라마의 제작 스폰서가 원하는 오렌지주스의 간접 광고를 위해 작가에게 이 오렌지주스가 화면에 노출될 수 있는 장면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제작진. 그것은 내 창작 의도와 상반된다며 거부하는 작가. 결국 작가가 병가를 낸 틈을 타 신인 작가 이고은(정려원)을 시켜 만들어낸 화면들은 그야말로 뜬금포의 연속이었다.

 

 

 

까만 가죽 재킷을 입고 패싸움을 벌이는 고독한 얼굴의 남주인공이 그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오렌지주스를 집어들고 쥐어짜는 장면이 연속해서 몇 번이나 등장했던 것이다. 드라마의 내용과는 무관한 오렌지주스의 클로즈업이 화면 가득 당당하게 나오는 것은 물론 남주인공은 우는 얼굴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렌지주스를 입안으로 짜 넣는 깨는 모습을 엔딩으로 보여주어야만 했다. 나는 이 신랄한 코미디가 어처구니없어 웃으면서도 문득 이 장면을 지시하는 앤서니 김(김명민)의 자학 같아서 더 큰 웃음을 터뜨렸다. 김명민 역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심각한 안녕을 고하다가 그가 지나치는 굴다리의 합성 문구를 보고 엔딩의 여운마저 깨졌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잘 차려입은 강마에를 뒤로하고 "천호 통마늘 진액"이라니. 이건 너무 깨잖아.

 

 

 

드라마 내 딸 서영이는 많은 등장인물이 적지 않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주말 드라마의 표본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사건의 흐름은 결국 주인공 이서영에게 흐르게 된다.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각개의 사건들이 터져 나오지만 결국 그 사건들은 따로따로가 아닌 이서영의 갈등을 위해 준비된 복선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들의 개인적인 사연과 사건이랄 지라도 그것이 드라마와 무관한 억지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소위 깨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게는 상우(박해진)와 미경(박정아)의 사랑에서부터 슈퍼마켓 주인아저씨가 빌려준 신분의 대역마저도 결국에는 각개의 이야기가 아닌 이서영의 갈등과 연결된 사건의 뿌리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그것은 따로 논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느닷없이 사고를 치고 친구이자 상사인 서영의 시아버지에게 혼쭐이 나는 최민석(홍요섭)의 모습 또한 그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삼재(천호진)가 딸의 시집살이를 걱정하는 장면으로 이어져 사용될 정도다.

 

 

 

물론 전혀 사건과는 무관한 그야말로 개인적인 사연이라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퇴사를 하고 내 인생을 찾겠다며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치고 있는 민석의 이야기는 사건의 중심과 전혀 무관한 내용이라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 장면을 두고 생뚱맞게 불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중년을 즐기기 위해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삶을 즐기는 민석의 여유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둬야 해서 병가를 내고 애처롭게 일자리를 구걸하는 삼재의 퍽퍽한 중년과 비교되어 감정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스토리 자체는 별개의 개별적인 내용이지만 감정만큼은 따로 놀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드라마의 심각한 이야기와 무관한 에피소드들이 튀어나와도 시청자는 그것을 드라마의 우울함을 환기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처럼 생각하고 웃어버린다. 드라마의 이전 감정을 흐트러뜨릴 정도의 이질적인 불쾌함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등장하기 시작한 강성재(이정신)의 서브 스토리는 그야말로 앞서 이야기했던 사건의 연속성도 감정의 개연성도 없이 그저 따로 겉돌며 존재하는 부수적인 이야기로 시청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연기자 지망생 강성재(이정신)와 그를 가르치는 연기 선생 서은수(설현)의 티격태격한 러브스토리가 이제는 거의 매회 드라마의 고정 패턴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서은수의 초반 존재감만큼은 설득력이 있었다. 강성재는 마치 이서영 미니미처럼 퍽퍽한 표정과 딱딱한 말투에서 이서영의 과거를 반추한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서영의 반대편 거울을 바라보게 하는 방식은 내 딸 서영이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제는 까먹은 줄 알았던 이서영의 무채색 셔츠와 바지 차림. 백팩을 메고있는 포니테일의 소녀는 고시생 시절 서영이의 모습이 떠올라 반갑고 애처로운 감정마저 느껴지게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피피엘처럼 주어진 신인 가수 홍보를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심 끝에 이와 같은 내용을 등장시켰을까 싶어 그 애처로움이 이젠 작가 쪽으로 향해진다. 내 딸 서영이 15회부터 등장한 아이돌 가수 설현은 무려 22회가 될 때까지 같은 패턴으로 드라마와 전혀 무관한 이야기를 그녀의 홍보를 위해 이용하고 있다. 이제는 거의 매회 십분 이상으로 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마치 화장실 가는 타이밍으로 느껴질 정도다.

 

 

 

물론 강성재 또한 이 드라마의 다른 조역들이 그러하듯이 서영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중심 사건에 속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서영이의 과외를 받는 학생으로 그의 관계는 이서영을 남편 강우재(이상윤)와 만나게 하는 계기로 사용되었다. 문제는 서영이 결혼을 하고 더는 그와의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제작진은 강성재를 반드시 등장시켜야 할 서브스토리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강성재가 소속된 그룹 씨엔블루의 소속사가 만든 걸그룹 AOA의 멤버 설현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게 된 이유다. 결국 시청자는 드라마의 매회 십여 분 이상을 같은 소속사 아이돌 그룹의 피피엘을 위해 의무적으로 시청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강성재와 설현의 서브 스토리가 드라마의 내용이나 감정적인 측면으로 어떻게든 연속성을 갖는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등장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저 연기자 지망생 강성재가 기획사의 연기 선생 서은수에게 연기를 배우며 친해진다는 로맨틱 코미디 같은 가벼운 내용인지라 드라마의 분위기와 겉도는 것은 물론 어느 하나 사건의 중심으로 맞닿는 개연성이 없다.

 

 

 

문제는 비록 드라마에서 따로 노는 이야기라 할지언정 연기자의 연기력이라도 출중하다면 드라마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서브스토리로 즐겁게 봐줄 수 있을 텐데 두 배우의 연기력 또한 습작에 가까운 수준이라 도저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넘겨 봐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더욱이 두 사람의 배역이 연기자 지망생과 연기 선생으로 등장해 시종일관 연기력을 배우고 가르치는 이야기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실제로 아이돌의 신분으로 연기자를 지망하는 두 사람의 처지와 맞물려 드라마를 이 둘의 연기 연습 장소로 쓰이는 불쾌한 느낌은 더욱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홍보를 위해 억지로 등장시키는 이야기인 만큼 드라마에서 이들을 다룰 수 있는 소재도 극히 한정되어있어 억지스러움의 극치를 달린다. 심지어 아이돌 가수 설현은 이 드라마에서 강성재를 버리고라도 기획사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연기 천재급으로 등장하는데 따박따박 강성재를 지적하는 그녀의 연기력은 남을 뭐라고 탓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일단 발음부터 형편없는 그녀가 연기 천재처럼 등장하여 그보단 나은 강성재에게 연기를 지적하는 아이러니라니. 이런 장면은 설득력이 떨어져 실소가 나오고 결국 드라마의 수준을 깎아 먹는 주범으로 자리 잡는다.

 

 

 

사실 내 딸 서영이 22회차를 보면서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며 안도를 했었는데 드라마의 말미에 이르러 등장한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이전의 갈등과 여운을 한 번에 날려 버리는 조잡함의 극치였다. 특히 길거리에서 강성재에게 연기 테스트를 시켰던 서은수가 그의 조잡한 포즈를 두고 마치 셜록처럼 각도까지 측정하며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이제 내려갈 순간만을 앞둔 고독한 탑배우"라는 즉석에서 써낸 긴 문장의 감성적인 문구를 한 번에 맞춘다는 것은 그야말로 드라마를 조잡하게 만드는 절정이었다. 이 어설픈 두 명의 아이돌을 띄워 주라는 요구에 뿔이 난 소현경 작가가 어디 한번 엿 먹어보라고 억지로 써낸 스토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장면이었다.

 

 

 

이정신의 소속사는 그동안 몇 개의 드라마에서 자신의 소속 아이돌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전례를 갖고 있다. 특히 이정신과 같은 씨엔블루 소속의 아이돌 강민혁은 드라마 '넝쿨째 굴러 온 당신'에서 김남주의 남동생 차세광역을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을 받으며 무사히 소화했던 기억이 있었다. 가족드라마에서 아이돌 강민혁의 등장이 거북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이야기가 드라마에서 꾸준히 갈등을 빚어온 연적 같은 시누이 방말숙과 차윤희의 관계가 강민혁이 맡은 배역 차세광의 갈등으로 이어져 관계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개별적인 이야기 같았던 방이숙의 사랑도 오빠를 잃어버린 날 태어난 죄의식으로 남자를 자청하며 죽어지냈던 그녀의 열등감을 위로하는 장면으로 이어져 전혀 생뚱맞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의 강성재-서은수의 서브 스토리는 그저 신인 가수를 홍보하기 위한 의무적인 분량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간접 광고란 이미 필수가 되어버린 부분이지만 한 소속사의 아이돌을 띄워 주기 위하여 거의 매회 십여 분 가량을, 드라마의 여운이나 퀄리티마저 깎아 먹으며 의무적으로 내보내야 하는 것일까?

 

 

 

내 딸 서영이는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게 사실적인 연출로 내 마음을 이끌었던 드라마다. 요즘은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운 스크래치난 2g 폴더폰을 들고 있는 서영이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비련을 알 수 있었다. 최근 서영이의 아버지 삼재가 입고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노란색 군용 보온복을 입고 나온 모습을 보며 그가 난방비를 아끼고 있다는 것마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까지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퀄리티가 신인 가수의 홍보를 위해 매회 십여 분 가량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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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이 2012.11.26 15:33 신고

    정말 드라마의흐름을 깨는 성재와 연기선생 에피예요... 전체 이야기에서 겉도는 건 물론 재미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너무 지루하고 연기는 민망할 정도로 너무 어설프고...이 둘의 에피를 왜 공중파 전파 낭비하면서 봐야 하는지...끼워 놓기의 폐해를 제대로 실감하게 해 줍니다. 연기 초자인 성재도 엄마와 붙는 씬에서는 제몫을 한다고 봤는데 서로 어설픈 연기자끼리 붙는 데에서는 연기력이 바닥이 나더군요.
    소속사가 좀 현명하다면 연기 초자인 이정신군을 위해서라도 무리한 끼워 넣기를 안 했어야 했는데 이 소속사는 오늘 연기선생인 설현을 두고 대대적으로 언플한 걸 보면 뻔뻔하기가 참 대단하더군요...

  • 완전공감 2012.12.02 13:16 신고

    그 여자 신인가수. 대사를 하면서 계속 어깨를 춤츄듯이 흔들거리던데 보는 내내 아슬아슬 하더군요 감독이나 누구든지 아무도 지적을 안하나요? 길거리에서 추락한 탑배우 연기를 알아맞추면서 무슨 어째를 앞뒳 그렇게 흔드는지... 목소리도 책읽는듯하고... 그런애가 연기 선생이라니. 보다보다 화가나서 나도 한마디 합니다.

  • 설현♥ 2012.12.08 21:14 신고

    저도 설현 팬이지만 설현연기는 정말 눈뜨고 볼수없더라구요..차라리 첨에나왔던대로 차가운 연기만 하는게 더 났겟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정말 드라마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얘기이기도하면서 설현이 워낙 연기를 못하다보니 보기가 싫어집니다..ㅠㅜ

    • 외모는 참 깜찍하고 예쁘던데 말이죠. 첫 연기 도전인데 너무 무리한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역할도 적절히 구색 맞춰주는 감초역이면 좋은데 드라마와 무관한 스토리를 거의 의무적으로 10분 이상 매회 내보내니.. 홍보가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가 아닌가 싶네요.

  • 이지은 2012.12.09 20:28 신고

    애교부릴때 억지로 앵앵거림 계속 흔들어대는 어깨 발음 등등에 억지의 진부한 스토리.

    너무 보기싫어요

    연기부족한 신인답게 상큼한 감초 역활이였음 좋았을텐데..

  • 짤롱 2012.12.12 23:55 신고

    설현이 연기를 못한다는게 아니라..
    너무 이야기에 흐름을 끊어 놓는 느낌이에요..
    분위기가 고조 되었을때 찬물을 끼얹어 놓는듯한..

    아이돌이 배우처럼 연기해달라는건 바라지 않지만..
    스토리 전개상 좀 억지로 끼워 넣은거 같은...
    너무 눈에 보이듯이 화장실 가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어쨋든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 ㅁㅁ 2012.12.17 21:09 신고

    어떻게 고작 몇분 카메오로 나온 양요섭보다 못해..

  • 아오 2013.02.02 20:50 신고

    이러면서 개가수들은 노래 하지말라 뭐라 하는데... 가수들 연기하면 뭐라말해야함???

  • 무명 용사 2013.02.09 13:05 신고

    먼가 겉도는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차라리 "누구 여동생"이런 배역이면 괜찮겟는데...연기는 머 첨이니까 한번은 넘어간다치고 지금 맡고있는 역자체가 신인에게는 맡기기는 어려운 역일뿐더러 드라마에서도 계속 겉돌기만하는역인것 같네요

  • 무명 용사 2013.02.09 13:07 신고

    먼가 겉도는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차라리 "누구 여동생"이런 배역이면 괜찮겟는데...연기는 머 첨이니까 한번은 넘어간다치고 지금 맡고있는 역자체가 신인에게는 맡기기는 어려운 역일뿐더러 드라마에서도 계속 겉돌기만하는역인것 같네요

 

 

지금이야 흔해진 연기자의 발연기 논란이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던 2004년. 박정아는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를 통해 그 어떤 논란의 배우도 겪어보지 못했던 슬픈 굴욕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걸그룹 쥬얼리의 맏언니였던 그녀는 긴 머리가 허리까지 닿을 듯한 넘치는 여성성을 어필하며 특히 남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한 몸에 사로잡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었고 소위 박정아의 해가 아닌가 싶었던 그 시절에 그녀는 가공할 만한 인기를 당연한 수순으로 무대를 돌려 티브이 드라마 위로 뛰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습니다. 준비하지 않은 섣부른 연기력이 부른 오만의 결과는 가수 박정아의 인기로도 막을 수 없는 분노를 부른다는 사실을.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박정아는 당시 그녀의 주된 이미지가 그러했듯이 여성성을 마음껏 드러낸 고수의 첫사랑 이미지를 고수하느라 잔뜩 치장한 청순한 외모로 화면 위를 나부꼈지만, 시청자의 시선은 오히려 그리 여성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거의 꾸미지도 않은 민낯에 가까운 얼굴의 그녀 박예진을 향하고 있었죠.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의 박정아가 무려 박정아의 해였음에도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던 당시 신인에 가까웠던 배우 박예진의 쌩얼을 이기지 못했던 이유는 물론 극단적인 두 사람의 연기차 때문이었습니다.

 

박정아는 지나칠 정도로 연기를 못 했고 박예진은 신인으로선 꽤 놀라울 만큼의 연기력으로 캐릭터를 곧잘 소화했었죠. 탐탁지 않은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드라마에서 늘 그렇듯 시청자는 박정아가 아닌 박예진을 주인공의 자리로 요청하기 시작했고 이 빗발치는 요구는 심지어 드라마 중반 박정아 퇴출설까지 불러올정도의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박예진이 받았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어서 그녀는 한동안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을만큼의 아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에서 박정아의 연기력이 정말 그만큼의 비난을 받아도 될 정도로 형편 없는 것이었나. 당시 고수의 연기에 흥미가 있어서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했던 저는 지금의 기억으로도 그때 박정아의 연기력이 그런 굴욕을 겪을 정도로 심각했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 따지고 들어가자면 그 당시 박정아의 연기력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배우들을 충분히 열 명 이상은 말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당시 박정아의 연기를 보며 무언가 책을 읽는 듯한 감정의 교감이 잘 안 되는 답답한 느낌을 받았었지만, 어차피 거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박정아에게서 그정도의 연기력은 그리 놀라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박정아가 그런 아픔을 겪었던 것은 당시 은연중에 깔렸었던 아이돌에 대한 대중의 혐오. 그리고 그때는 낯설었던 아이돌 배우의 연기자로서의 개인 활동에 대한 충격이 논란 그 이상의 논란을 불러왔고 이것은 결국 편견으로 작용하여 박정아의 잘못 이상의 평가를 쏟아지게 하지는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보게 합니다. 어쨌거나 국내 초유의 사태라고 할만한 이런 통증을 드라마의 첫 시작부터 불러일으켰던 그녀는 어쩌면 그 이후 어떤 연기를 해도 행동 이하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불운의 연기자가 되어버렸죠.

 

 

 

이후 박정아는 몇 편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여전히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남자가 사랑할 때만큼의 퇴출 요구를 받는 일은 없었으나 어느 작품에서도 "박정아의 재발견"이라거나 연기자 박정아를 재평가하며 다시 보게 하는 역사적 이력을 만들어두진 못했죠. 비교적 최근작인 웃어라 동해야에서 과감한 악녀 역할에 도전했던 그녀였지만 여전히 대중은 그녀의 연기력을 수준 이하의 것으로 평가하며 역시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후로 그녀의 작품을 계속해서 챙겨봤던 저는 박정아의 연기력이 여전히 너무한 수준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견을 깰 만큼 대단한 연기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사실 대중의 이 정도의 싸늘한 반응을 단순히 편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박정아 또한 만족스러운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못하는 연기는 아니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연기는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프로가 지향할 점은 후자이지 결코 전자에 안주해선 안 되죠. 더욱이 첫인상부터 대중에게 나쁜 기억을 각인시켰던 그녀는 그들에게 드라마틱한 사고의 전환을 부르기 위해서는 정말 확 달라졌다 싶은 대단한 계기를 만들어주는 방법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 딸 서영이에서 박정아는 기존의 박정아에게 생각했던 대중의 이미지가 조금은 달리 보이는 듯한 신선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제게는 박정아가 이전에 추구했던 여성성의 극치보다는 오히려 이런 털털하고 사내아이 같은 톰보이걸의 이미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위너스그룹의 재벌 딸이면서도 3년간 고아임을 숨긴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허울이 없는 그녀는 여성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털털한 남자아이 같은 강미경의 캐릭터가 제법 그린 듯이 잘 어울립니다.

 

툭툭 내던지는 무심한 말투와 가끔은 너무 투명해서 잔혹해 보이는 그녀는 인식하지 못하는 가진 자의 투명한 오만이라던가.. 재벌그룹의 딸이지만 신분을 감추고 서민의 흉내를 내는 남자아이 같은 모습을 그녀는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여전히 드라마 관련 커뮤니티를 비롯한 실시간 SNS 메시지에는 여전히 박정아의 연기력을 낮추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고 아직 어떤 여론도 박정아의 재발견이라거나 그녀의 연기력을 고평가하고 다시 봤다고 호외를 날리는 말은 아직까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박정아는 아마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너무 선입견을 품고 바라보는 것은 아니냐. 잘하고 있는데. 사실 이 페이지를 박정아의 연기력을 재발견했다는 내용으로 채울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방영된 내 딸 서영이에서 박정아가 맡은 미경이라는 캐릭터가 처음으로 급진적인 감정의 변화를 보여줄 때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버벅거리며 겨우겨우 쫓아가는 박정아의 연기를 보며 시청자의 선입견이 이유 있는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정아는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하게 강미경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지만 그 캐릭터의 깊은 내면을 표현하는 연기는 여전히 미숙한 수준이더군요.

 

 

 

어쩌면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기도 예술의 한 장르이고 기본적인 이해도와 예술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표현하기 어려운 분야인데 그것을 편견에 둘러싸인 박정아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요. 하지만 이런 기적을 이행했던 범상치 않은 인물이 바로 박정아의 코끝을 대고 연기하고 있는 걸요. 그가 바로 박정아의 상대역, 이상우를 연기하는 박해진이죠.

 

박해진은 첫 데뷔를 드라마 소문난 칠 공주라는 히트작으로 시작하여 당시 부족했던 연기력으로 시청자에게 캐릭터의 이름 연하남을 본떠서 만든 발하남이라는 굴욕적인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하며 시청자의 손가락질을 받곤 했었습니다. 그냥 아쉽다는 정도가 아니고 정말 너무하리만큼 못한다는 평을 받았던 그는 문영남 작가가 직접 대본 지시문에 뛰는 모습이 어설프다며, 두 번 다시 뛰라고 하지 않을 테니 제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뛰어달라는 구걸을 할 정도였죠. 그의 무언가 사연 많아 보이는 잘생긴 얼굴이 아까웠지만 그럼에도 그의 연기력이 발전하여 기대치를 주는 배우로 되새기게 될 줄 당시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이었습니다. 아마 박해진 본인도 그리 상상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박해진은 그 다음 회의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이라는 일일극에서 조금씩 연기의 기본기를 배우기 시작하더니 이후 매 순간마다 사건이 터지는 전혀 다른 장르의 통속극 에덴의 동쪽에서 정말이지 확 달라진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여 시청자를 그야말로 깜짝 놀라게 했던 기적을 일으켰었습니다. "박해진 맞아?"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죠. 그가 맡았던 역할이 쉬운 역할이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드라마의 배역들 가운데서 가장 연기력이 있어야 하는 안티 히어로의 캐릭터를 부여받은 그는 캐릭터의 찌질함을 처연함으로. 궁상맞은 스토리를 하나의 서글픈 사연으로 둔갑시키더군요. 아니 어떻게 한 사람이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가 있나 싶어 놀랍기 그지없었던 그의 연기력은 이후 누구도 그를 발하남이라 부르지 못하게 했었습니다.

 

 

 

내 딸 서영이에서 박해진은 분명 완벽한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완벽한 이상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확고한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밝고 서글서글하지만, 은연중에 슬픔을 등장시키는 그의 침착한 연기 전환은 무척이나 인상적인 감동을 자아내게 하죠. 적어도 내 딸 서영이 내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충만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은 박해진은 최근 박정아와 더불어 그녀의 거짓말을 눈치챈 순간에 급격하게 흔들리는 캐릭터의 갈등을 여전히 이상우의 캐릭터를 유지하며 그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분노와 슬픔으로 정확하게 연기하는 감정 표현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특히 너의 배경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라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그 표면적인 말의 뉘앙스만 긍정하는 미경이 "우리 부모님만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했어."라는 말에 순간 충격을 받아 굳어져선 슬픔을 담아내는 그의 눈빛은 고요한 감동을 안겨주더군요.

 

 

 

미경을 사랑하면서도 그녀와의 인연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갈등이 교차하는 박해진이 문득 회상한 지난날의 두 사람의 연애. 그리고 그것을 시작한 첫 프러포즈에서 그가 잔뜩 장난스러운 얼굴로 남동생 대하듯 허물없이 장난을 걸다 순간 터져버린 사랑에 위협적으로 미경에게 다가서서 한순간의 감정을 눈빛으로 담아내는 그 순간의 표현력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더군요. 드라마가 끝나고도 한동안 그 눈빛의 잔상이 잊히지 않을 정도로 순간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정아가 비교적 괜찮은 미경을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시청자의 선입견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그녀가 친해지지 못한 캐릭터의 이해도가 박정아 자신마저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짓말이 들통 나고 처음 격한 감정을 터뜨리며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의 연기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다고 지나치게 오버해서 과도한 눈물을 짜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적어도 그 순간 미경이 느꼈을 공포와 슬픔은 그 정도의 강도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정아는 분명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손색이 없는 강미경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고전적인 악녀 연기라던가 여성성을 한껏 드러낸 작위적인 캐릭터에서 박정아를 그대로 빼어 박은 듯한 털털하고 투명한 재벌녀 강미경의 캐릭터는 분명 박정아의 연기가 처음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무언가 터뜨리지 못하고 머뭇하며 돌아서는 그녀의 소극적인 태도가 조금은 아쉽습니다. 평이한 상황에서의 허울 없이 긍정적인 강미경을 연기할 때가 아닌 강미경의 슬픔과 고통을 보다 확실히 표현할 수 있는 순간 박정아를 향한 진짜 선입견도 사라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이전의 드라마와 달리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처음으로 선입견을 없앨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녀이기에 조금만 더 그녀가 캐릭터에 몰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굳게 가져보게 됩니다.

 

내내 남동생을 대하듯 장난스러운 이상우의 대외적인 이미지로 그녀에게 장난을 걸던 그가 한순간에 톰보이 강미경을 여자로 느껴지게 할만큼의 설레는 눈빛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박해진 본인이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며 무엇보다 그 캐릭터를 표현하는 마음을 아끼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정말 적극적으로 캐릭터가 담아내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폭을 조절해야 하는 방법 또한 능숙하지요. 적극적이지만 결코 도를 넘어서지는 않습니다. 박해진의 눈빛이 박정아에게 전해주는 교훈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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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딸 서영이는 막장극 아닌 진짜배기 가족 드라마

 

안방극장 속에서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이 늘어가고 있고 왠만큼의 자극에는 무딘 감흥만 느끼는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티비 드라마 속의 충격적인 장면은 나날이 그 수위를 올려가고 있지요. 더욱이 다시 찾은 내 딸과 함께 살고싶은 마음에 남편의 아들과 결혼을 시킨다는 엽기적인 발상의, 내 시어머니가 내 친어머니였다는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엽기를 이미 접했던 저에겐 이 드라마의 충격적인 수위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다시 나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보면서 하늘이시여의 도 넘치는 소재를 뛰어넘는 소름 끼친 장면을 보게 되고야 말았네요. 그것은 단순한 막장 드라마의 자극이 아니라 공포 영화의 끔찍한 장면을 마주 대하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아 나온 공포와도 비슷한 감정이었습니다.

 

 

 

"근데. 우재야. 서영이는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남동생하고도 연도 끊어지고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어머니는 무슨 병으로 이 세상 떠나셨는지 입을 안여니. 너한테도. 지 남편한테도. 아무리 힘들었어도 결혼이 뭔데요. 서로 거짓 없이. 숨김 없이. 털어놓고 드러내고 그러면서 신뢰를 쌓는게 결혼이야. 너어. 쟤 뭐 숨기는거 있는거 아니니? 과거에 지 아버지 무슨 큰 일 저질렀던 사람 아니야. 혹시? 우리가 한번 알아봐야 하는거 아니야?"

 

 

모처럼 배푼 호의에 인사치례를 듣지 못했다고 팽 토라졌다가는 서영이가 어머니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한마디에 다시 빵긋이 웃는 우리 차여사(김혜옥)의 모습은 이럴땐 꼭 백치 같다가도 한번씩 소름 끼칠 정도의 놀라운 선견지명으로 꽁꽁 숨겨놓은 서영이의 마음을 미리 열어본듯 알아맞추는 얘기를 하는 통에 서영이는 물론이오 시청자 마저 깜짝 깜짝 놀라게 합니다. 그러게요. 부모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내 속의 어둠을 남김없이 끄집어내어 함께 공유하고 한치의 속임수도 없는 거짓 없는 마음씨로 서로를 마주보며 그렇게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바로 부부의 관계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부부 사이는 촌수 조차 없는 무촌이라 부르겠어요. 하지만 서영이는 "이제는 말해줘도 되지 않어?" 라고 묻는 우재에게 "어떤 사람에게 어떤 상처는 평생 입 밖에 내고싶지 않는게 있는 거예요. 그게 누구라도요!" 라고 조개처럼 진실을 함구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죠. 그녀는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속이고 있는 거였으니까요.

 

서로 거짓 없이. 숨김 없이. 털어놓고 드러내고 그러면서 신뢰를 쌓는 것이 결혼이라는 차여사의 말은 그녀의 캐릭터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명명백백 주옥 같은 명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던지며 서영이의 부모를 궁금해하는 차지선은 과거 "어떤 부모는 차라리 죽은게 나을 수도 있다" 는 말로 서영이가 가진 아버지의 존재가 치부였음을 더욱 공고히하는 무언의 협박을 심어줬더랬죠. 속임수 없이 시작해야 했을 결혼이라는 관계를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 말하고 연락이 닿는 남동생을 절연이라 속이며 거짓으로 시작한 이서영의 비밀과 그에 속아 넘어간 강우재의 결혼은 차지선의 말에 의하면 뿌리부터 썩어있는 관계인지도 몰랐습니다.

 

 

 

서영이가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속이고 그와의 관계를 부정했던 패륜에 가까운 행동들은 비난을 받아 마땅한 잔혹한 속임수였지만 그럼에도 드라마는 끈덕지게 서영이가 아버지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드라마 초반 꿋꿋이 설명해왔었습니다. 성실하고 능력도 있는 유별난 재능을 가진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부채처럼 떠맡긴 아버지의 실수를 정리하느라 허송세월로 흘려보냈었는가. 그리고 그렇게 흘려보내기엔 서영이는 얼마나 능력 있고 착실한 사람이었는가.

 

늘 비슷한 차림새이지만 그녀의 꼿꼿한 성격을 대변하듯 청결하게 다림질해서 입고 나온 여성성을 버리고나선 서영이의 초라한 의상과 그녀의 등에 메어져있는 커다란 백팩과 낮은 플랫 구두. 그것을 또각거리며 새벽이슬을 맞고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매일 도서관을 나서던 서영이의 우울한 얼굴을 떠올리면 차마 그녀의 포악질을 패륜이라 비난할 수는 없었죠. 분명 이삼재 (천호진) 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오히려 세간에 평가가 좋을 참 선량한 성품의 아버지였지만 무능했고 실수가 잦았고 심지어 가족을 지킬 깡조차 없어 가족을 희생시키는 우매한 짓을 되풀이 했죠. 하지만 이것까지는 서영이 또한 참을만 했었습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억척같이 살아가던 어머니를 방치하여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분노였죠. 이것은 이성적인 서영이에게 아버지에 관련해서는 본능적인 증오 밖에 남을 수 없는 한으로 되새겨졌습니다. 그녀에게 아버지의 존재란 단순히 미움의 응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죠. 평생 나의 미래를 어둠으로 물들일 부채 같은 관계. 단순히 강우재의 집이 부자라서 깐깐한 시어머니를 가지고 있어서 초라한 아버지의 명함을 들이밀 수가 없었던 속좁은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서영이에게 있어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일종의 강박으로 남을 만큼 공포의 패턴이 되어버렸습니다. 서영이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인정하고서 자신에게 행복한 미래라는 가치가 다가올 수 있을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두려웠던 거죠.

 

그래서 저는 서영이를 이해했었습니다. 인생의 유일한 달콤한 빛과 같은 사랑하는 연인, 우재를 속여넘기고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에겐 유학을 떠난다 거짓말을 하고선 기어이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 알리며 신부측의 자리를 비운 결혼식을 올렸을 때도 마침 비극적으로 결혼식장 하객 아르바이트의 자격으로 그 자리를 들어선 아버지가 딸의 이름과 같은 신부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대다 '거 신랑 참 잘생겼다'며 마치 서영이의 행복을 빌어주듯 크게 박수를 치다 진짜 서영이의 얼굴이 들어서자 창백해지는 얼굴을 봤을 때도 그렇게 마냥 서영이를 비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져도 저는 그녀를 이해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딸의 패륜마저 "잘했다" 고 감싸안으며 자신을 버리고 떠난 딸의 행복한 미소에 마냥 흡족해진 그의 얼굴을 보자 문득 서영이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치솟기 시작하더군요. 자식은 부모의 야속함을 복수하여도 부모는 자식의 패륜을 복수할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그는 한번씩 자신을 속여넘기며 말 그대로 쇼를 하는 아들과 딸의 임기응변을 시큰둥하게 넘기며 더이상 딸의 현재에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것은 아마 서영이에게도 안심이 되어주었겠지요.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그의 부정은 딸 자신이 아니라 딸의 남편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져 차에 치일 뻔한 우재를 위해 대신 몸을 던져 희생을 강행했을 정도였지요. 심지어 그날 그가 기약도 없이 딸이 사는 곳을 찾아왔던 이유는 꿈에서 봤던 남편과 시부모에게 버림 받는 서영이에 대한 악몽 때문이었습니다. 늘 등산복 차림으로 딸의 삶을 곁눈질 하던 그가 오히려 자신을 버린 딸의 패륜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딸을 끌어안고 보호하는 자신의 악몽에 기어이 새벽 이슬을 맞으며 딸의 안부를 찾으러 뛰어갔던 것이지요. 우재의 말마따나 동네 잡부로 의심 받을 만큼 초라한 차림을 하고서 말입니다.

 

 

 

비몽사몽의 정신 상태에서도 혹여 아버님이라고 불리어보지도 못한 사위에게 낯을 익히게 될까 두려워 간호사에게 누가 나를 데려왔냐 묻고 착각한 간호사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해주었을때 안심을 했던 그는 심지어 자신의 신변을 묻는 간호사에게도 본명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인대가 늘어나 팔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도 우재의 존재를 두려워하여 기어이 병원을 떠나가버린 삼재의 부정을 마주하면 친아버지는 죽었다고 방치하고선 모르는 아저씨의 안부를 찾으며 반드시 보답을 하자고 말하는 서영이의 행동은 참으로 야속하게 느껴져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이후 드라마는 마치 이런 서영이를 단죄하듯 그녀의 목을 옥죄이는 공포로 뒤덮힙니다. 아버지를 죽었다고 속여넘긴 대가. 그 현실을 눈앞에 마주한 서영이의 다리가 후둘거리듯 저 또한 가장 끔찍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본듯 소름이 우수수 돋아나더군요. 정성스레 차려진 망자를 대접하는 식탁과 초대 손님의 이름을 증명하는 "위신 이삼재" 라는 소름 끼치는 위패를 바라본 순간 이 이상의 소름 끼치는 쇼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영이가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말하여 받아야 하는 대가는 이미 어느정도 짐작한 바였지만 이토록 공포 영화 뺨치는 흉물스런 장면이 연출될줄은 저 또한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우재는 얼마나 다정한 남편이었던가요. 다정해서 너무나 다정해서 더 두려웠던 남편의 배려. "내가 어머니한테 말씀 드렸어. 올해부터는 장인어른 제사. 날마다 우리가 모시기로 했어." "아니. 얘. 왜 그러고 섰어." "얼른 손 씻고 옷 갈아입고 와. 바지 말고. 예쁜 정장. 그걸로 갈아입고 와." 심지어 위패에 절을 하기 위해 챙겨 입고 나오라는 시어머니의 배려는 그야말로 달콤한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끔찍한 배려가 또 어디 있을까요. 아무리 아버지를 죽였다고 속이고 급기야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로 자리에 앉게된 아버지를 몰라봤던 당돌한 서영이었지만 이정도의 충격은 그녀조차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서영이는 후둘거리는 다리에 급기야 그 자리에서 한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무너져 내립니다.

 

 

 

요즘 드라마 착한 남자에서 그야말로 가족이라는 이름의 악연을 제대로 연기해주고 있는 한재희의 몹쓸 오빠역 한재식역의 양익준은 영화 똥파리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이기도 하죠. 그가 연출한 영화 똥파리는 가족이라는 관계는 CF 가 아닌 공포 영화일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표현한 작품이었죠. 누구도 드러내지 못했던 치부. 남 보다도 못한 가족. 차라리 남이 더 나을 가족. 어쩌면 서영이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존재는 차라리 그녀에게 짊어지운 부채이자 업보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끊고 싶다고 하여 끊어질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천륜이라 부르는 가족이라는 관계일테죠.

 

드라마는 그렇게 끊어내고 싶어도 마음껏 끊어내지 못하는 태초부터 선택할 수 없이 자동으로 묶여진 가족이라는 관계의 비극을 다시금 탐구합니다. 그것은 점차 서영이 자신을 옥죄여옵니다. 심지어 손사래치며 외면하는 아버지의 배려가 있다한들 천륜은 돌고 돌아 다시 서영이에게 찾아오고야 말죠. 하필 그날 소박 맞는 딸의 꿈을 예지몽처럼 꾸고 새벽길을 달려온 아버지. 그리고 하필 서영이의 전화를 받다 차에 치일뻔했던 서영의 남편. 하필 본능적인 부정이 튀어나와 자신의 몸을 굴려 사위를 구한 아버지. 그리고 그것은 서영이의 유일한 희망인 남편을 살리고도 그녀에게 절망을 예고하는 비극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실하고 선량한 사위, 우재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고마운 은인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아내와 상의를 합니다. 그 대상이 자신이 끔찍히도 감추고 싶은 비밀 아버지의 존재인지도 모른 서영은 천진하게 모르게 도와드리면 되지- 라고 그의 취직 자리를 알선하지요. 삼재가 엉겁결에 둘러댄 슈퍼 주인의 신변을 대신 찾아온 우재는 그를 설득하여 삼재를 취직 시키기 위한 전략을 짜고 친구의 속임수에 넘어간 삼재는 정확히 말하면 딸이 아이디어를 내서 알선한 취직 자리를 뭣도 모르고 찾아 나섭니다.

 

 

 

신용불량자의 입장에서 무조건 거절될줄 알아 쭈뼛거리던 그는 이력서조차 들여다보지 않은 직원의 무사 합격으로 드디어 정상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시켜만 주시면 감사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기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려 몸에 대어보던 그는 순간 뒷자리로 다가와 다정스레 "아저씨" 라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고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눈으로 들고있던 유니폼을 떨어뜨리죠. 바로 그를 아저씨라 부르는 사위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딸 서영이의 자극적인 소재와 장면들 때문에 이것을 패륜이라며 그리고 막장 드라마라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작품을 막장 드라마가 아닌 휴먼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가족이라는 대상이 반드시 CF의 산뜻한 정취나 동화속 아름다운 풍경들처럼 마냥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이미지만은 아닐테지요. 이런 형태의 가족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때론 가족이라는 존재가 마치 부채와도 같은 형벌과도 같은 천형으로 다가오는 경험은 안방극장을 시청하는 시청자들 또한 느끼고 있는 감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손으로 끊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천륜이라는 이름의 업보이자 원죄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는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사소하고 관련 없는 장면에서마저 조금씩 썰을 풀어놓으며 미묘한 복선을 중간중간 배치하기까지 하여 가족을 버린 서영이에게 점차 다가오는 형벌과도 같은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서영이의 유일한 형제인 쌍둥이 남동생 이상우 (박해진) 의 결혼까지 생각한 상대를 강우재의 동생인 강미경 (박정아) 로 배치한 설정은 이런 드라마에서 흔해빠진 겹사돈 관계일 뿐이지만 등산복을 입고 딸을 곁눈질 하러 찾아가는 아버지의 비밀을 오빠의 회사에 직접 요청하여 등산복을 주문하고 그것을 삼재에게 선물하여 그가 입게하는 웃을 수도 없는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이나 자신이 너무 부자이기 때문에 혹여는 너무 가난하기 때문에 마치 서영이처럼 스스로의 가족 관계를 감추고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뗄 준비를 하는 두 사람의 모순된 입장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서도 결국 이서영과 이삼재의 비극적인 운명으로 되돌아오는 효과적인 증폭 장치로 이용 되고 있지요.

 

 

"짜식. 죄 짓고 제 발 저려 엄청 동동대네. 그러게 거짓말은 왜 해?!"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가족을 숨기고 있다는 여동생의 거짓말에 우재는 싱긋이 웃으며 이와 같이 답변했습니다. 농담으로 던진 관계 없을 한마디가 왜 그리도 섬뜩한 불운의 예고처럼 느껴지던지요. 과연 우재는 아내의 거짓말을 직접 마주하고도 이와 같이 싱긋이 웃으며 농담을 던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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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고정 코너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아침마당에서는 매주마다 이산 가족 찾기와 같은 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이 코너를 진행했을 당시에만 하더라도 내 나이가 꽤 어렸었기에 깊은 관심을 갖고 티비를 시청했던 것은 아니었지만은 그럼에도 이때의 잊지 못할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있었다. 가난 때문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른 집에 맡겨져서 입양처럼 길러졌던 딸은 수십년이 흘러서야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찾으러 나왔다.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은 다소 특이했는데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 와서 행상을 하며 기웃거리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금희는 이 말을 듣고 "아마도 아버지가 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일부러 학교 앞에서 행상을 하셨나보다..." 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설명을 듣고나니 어찌나 가슴이 찡하게 먹먹해오던지. 시간이 촉박하여 아버지를 찾은 딸의 모습까지는 나오지 않았기에 나는 며칠을 그 딸이 아버지를 찾았는가를 궁금해했었다.

 

 

 

"아버지 도대체 산에 무슨 좋은 일이 있길래 그렇게 자주 등산을 하시는 거예요?"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아들 상우는 아버지가 정말 좋은 여자라도 있어 산을 찾는다고 생각하며 흐뭇해하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매일같이 등산복으로 갖춰입고 찾아가는 목적지는 바로 누나의 집이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한다. 두 남매가 공유한 비밀을 벌써 예전부터 알아차리고도 모르는척 해주고 있다는 것도.

 

"저 유학 가요. 언제 올지 몰라요."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딸이 사실은 정말 공부에 갈증이 나서가 아니라 자신과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이곳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는 아마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결혼 사실조차 감추고 눈 앞에서 버젓이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딸의 모습을 하객의 입장도 아닌 경조사 아르바이트의 자격으로 관전해야 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신부의 아버지의 자리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비워두고서 말이다.

 

 

 

이날 내 딸 서영이에서는 바로 전회에서 점프해서 3년 뒤로 뛰어버린 삼재의 이후 심경을 과거의 회상으로 담아내었다. 삼재는 순간 토악질이 밀려올 것 같은 어지러움에 결혼식장을 뛰쳐나간다. 그럼에도 혹여라도 자신의 모습이 딸에게 들켜 소동이 일어날까봐 잔뜩 몸을 숙이고 얼굴을 가려가며 벗어난 그 자리.. 후둘거리는 다리를 어찌할바 몰라 그대로 무너져버린 그는 이내 밀려오는 숨막힘 증상에 목이 조여오는 것 같아 넥타이를 끄르다가 끝내 꺽꺽대는 울음을 삼키며 입을 다문다.

 

 

 

그러나 그는 다시 결혼식장을 찾는다. 신부의 가족들. 터지는 플래시 세례들. 화려하게 꾸민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양쪽에 두고 번듯한 얼굴의 남편과 팔짱을 낀채 결혼 사진을 남기는 내 딸 서영이. "여기서 뭐하세요?" "아..아닙니다. 아닙니다." 삼재는 걸음을 돌려 밖으로 뛰어나간다.

 

"왜 아버지가 내 아버지고 우리 엄마 남편인지 밤마다 하느님한테 물어봤어요. 아버지가 내 아버진게 정말 싫었어요."

 

-어휴.. 신랑 참 훤칠하게 잘 생겼네.

 

 

 

삼재는 문득 자신이 멀리서 바라보던 참 훤칠하게 잘생긴 신랑의 약력을 떠올린다. 회사 CEO의 아들.. 전도유망한 미래가 보장된 수재. 그리고 문득 딸의 약력 또한 다시 되새긴다. 신부 이서영양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인 한국대 법대에 재학중인 재원입니다. 삼재는 걸음을 멈춘다. 생각한다. 두 사람의 약력은 분명 화려하다. 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삼재가 이 고통과 원망에서 해방되기에는 최소한 몇 년의 세월이 걸렸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삼재는 의외로 그날 하루 만에 딸에 대한 원망을 풀어버린다. 아니 이 말은 적합하지 않다. 애초에 서영이를 향한 어떤 원망도 품지 않았던 그였다. 삼재는 신랑 참 훤칠하게 잘생겼다고 감탄하며 흐뭇하게 바라봤던 우재의 모습을 떠올린다. 너무나 말쑥한 내 마음에 쏙 들었던 남의 집 아들. 하지만 그 아들이 내 딸의 남편이 될줄은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의 소개 받지도 못한 장인이 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그였다. 어쩌면 그는 흐뭇하게 바라봤던 우재의 모습 속에서 내 딸도 저런 남자를 만나 결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 또한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감히 키울 수는 없는 꿈이었음을 회상한다.

 

 

 

"그래... 그래.. 그래.. 잘했다. 서영아. 잘했어. 저리 잘난놈을 못난 애비 때문에 놓치면 안되지. 안되지... 잘했어..."

 

 

 

그는 잘했다고 말한다. 서영이의 패륜을. 잘했다고 몇번이나 다독이며 미소를 짓는다. 이후 상반되게 펼쳐지는 서영이와 남편의 빛처럼 찬란한 지금의 생활들. 마치 지금의 행복을 만들어준 행운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징크스 같이 일요일 마다 우재가 사준 곰탕을 사먹는 서영이의 모습. 방에서 국물까지 다 마셨던 곰탕의 맛을.. 철 들고 처음이었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받아보는 따뜻한 느낌.

 

 

 

뜨끈한 곰국으로 배를 채우는 서영이와 달리 산 정상에 올라 슈퍼에서 산 빵을 뜯어 먹고 삼키던 삼재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빵을 한입 깨물던 그가 문득 꺼내든 공책 하나에 나는 기어이 울컥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아버지의 가계부였다. 마을버스 900원.. 버스 1100원.. 빵 900원.. 화려한 이력도 아닌 기껏해야 천원 내의 소비들을 꼬박꼬박 기재하는 삼재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삼재가 과거의 삼재가 아닌 이제는 천원에도 벌벌 떠는 돈이 무서운 줄을 알며 작은 일에도 기쁨을 갖고 일하는 성실한 가장의 모습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였으니까. 

 

 

 

 

아버지가 단돈 50만원이라도 꼬박꼬박 벌어오는 것이 소원이었다던 서영이. 지금의 아버지는 그때의 아버지가 아닌데. 이 모습을 서영이가 봤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랬다면 그녀의 얼음장 같은 마음이 조금은 풀려졌을까.

 

 

 

"아저씨. 아저씨."

 

사위는 장인의 첫 인사를 아저씨라 불렀다. 그날도 딸의 행복한 모습을 멀리서라도 바라보고 싶어서 서성댔을 아버지였다. 하지만 운명은 얄궂게도 피곤에 지친 아내를 두고 홀로 나온 우재의 모습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한다. "지금 나오게? 나오지마. 30분 더 자. 드렁가서 깨워줄께. 그래-" 아내와 다정한 통화를 나누느라 잠시 정신이 팔려 있었던 그는 순간 뛰어드는 차량을 피할 겨를도 없었다. 그때, 그를 밀어내고 순간적으로 대신 차에 치이게 된 한 사람의 그림자. "아저씨. 아저씨." 정신이 든 그가 아저씨라고 부른 그 사람은 바로 서영이의 아빠, 그의 장인이었다.

 

 

 

아마 그는 이날도 서영이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고 싶어 전봇대 뒤를 서성였을 것이다. 왜 오늘은 서영이가 안 나오지? 어디 아픈가 정도의 의문을 갸웃대며. 전날 꾼 시댁에서 버려진 서영이의 꿈이 어쩌면 그를 새벽부터 방황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튀어나온 차량이 소중한 내 사위를 다치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계산도 없이 사위를 밀어내고 대신 차에 부딪히는 희생을 감수했다. 하지만 나는 이 희생이 어쩐지 더 큰 비극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드라마 속에서 특이하게도 결혼식 이후 삼재가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무언의 교류를 나누게 했던 대상은 서영이가 아닌 그의 사위였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첫인상부터 참 좋았던, 어쩌면 내 딸도 저런 남편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 바라봤던 훤칠하게 잘 생긴 녀석. 딸의 배신마저도 저렇게 잘난 놈을 나 때문에 놓치면 안된다고 수긍하고야 말았던 그 잘난 녀석. 심지어 그는 서영이도 아닌 사위의 목숨을 대신 구해주며 이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옥탑방 만학도 이서영의 신분과 회사 CEO의 아들이라는 스토리에 흔히 떠올리는 것은 신데렐라의 반전일테다.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 그리고 생겨나는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이 아주 지긋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는 프로필에서부터 그녀의 처지를 못 박아두었다. 우재의 아내. 삼재의 딸. 이 첫 설명이 의미하는 것. 삼재에게는 내 딸 서영이라 불리고 우재에게는 우리 서영이라 불리는 그녀. 이름마저 비슷한 두 사람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서영의 비운..

 

 

 

아마 우재는 평소의 성품으로 보아 자신의 은인인 삼재를 결코 그냥 넘겨두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백방으로 그를 수소문하여 찾고 보은을 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더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그런 노력에 서영은 아마 무너질 것이다.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행복이 처음으로 깨질지도 모른다는 초조한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의 위기는 아마도 아빠의 목숨을 건 희생과 보은에 감격하기보다도 오히려 그를 원망하게 될지도 모르다. 그 모습은 얼마나 비참하고 우울한 색깔로 덧칠해질까. 그럼에도 딸을 위해 자신을 찾는 사위의 배려를 만류할 삼재의 미래가 훤히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건이 터지기 전날 삼재는 악몽을 꿨다. 서영이 시댁에서 손가락질 당하며 소박을 맞는 꿈이었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서영이를 삼재는 보호하듯 감싸안으며 아이를 지킨다. "내 딸 건드리지마."

 

 

 

아버지는 옥탑방 이 초라한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왜 이따위 집을 버리지 못하느냐는 아들의 항변에 그는 이 집에서 살고나니 운이 텄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사실 그가 이 집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를 서영이가 방황하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그의 피곤을 감수해서라도 이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서영이의 엔딩곡으로 쓰여졌던 비틀즈의 The Long And Winding Road... 길고 험한 길의 제자리에서 당신은 오래 전에 날 여기에 세워두었고... 여기서 날 기다리게 하지 마요. 당신의 문 앞으로 날 이끌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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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2 14:08

    비밀댓글입니다

    • 앗 감사합니다.^^;; 아빠와 비슷한 이름이라 인상적으로 기억했었는데 글을 쓰면서 오타를 냈나보네요. 얼른 수정하겠습니다. 오랜만입니다. 항상 글 잘 읽고 있어요.^^

 

이날 내 딸 서영이의 시작은 마치 로드무비의 프롤로그처럼 그렇게 고요하고 잔잔했다. 삼재(천호진역)는 행복한 얼굴로 평온하게 시장에서 장을 보고 아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옥탑방 툇마루에서 함께 밥을 나누어 먹고 속옷은 좀 삶아서 세탁하라는 아들의 잔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삼재의 하루는 평온했던 것이다.

 

 

 

 

여전히 옥탑방에서 그것도 장 접기 직전에 반협박으로 뜯어낸 저렴한 식재료를 삼재가 직접 요리하여 남자 둘이 궁상맞게 나누어 먹고 심지어 식사와 빨래는 물론 모든 소소한 가사일을 삼재 혼자서 하고 있다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던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가난의 뿌리와 대조적일 정도로 대비되었던 서영이의 몇 년 후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밝고 아름다웠다.

 

 

 

서영은 아버지를 살해한 한 존속살해범의 패륜적인 범죄에 대한 검사의 열변을 꿈꾸듯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재판석의 상부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고 빨갛고 까만색의 판사복을 입은 채였다. 나는 이 장면을 순간 서영의 꿈이라고 생각했다. 부녀의 관계를 끊고 싶었던 서영은 차라리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없는 사람이길 바랐고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아버지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남편과 시부모에게 아버지를 죽은 사람이라 소개했고 그것은 실제로 마음속에서 서영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영은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고 그날 아버지는 자신이 앉아야 할 부모의 좌석을 비워둔 채 경조사 아르바이트생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관하여 전날 유학을 떠난다던 딸이 소개도 받지 못한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존속살해범으로 심판을 받는 피고인의 모습은 서영이에게 자신의 죄책감이 투사된 환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꿈이 아니라 몇 년이 흐른 뒤 서영이의 실존하는 이미지였다. 이서영은 더이상 플랫 구두와 똑같은 셔츠를 다림질해입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도서관을 향해 메마른 반찬으로 살기 위해 도시락을 먹는 가난한 서영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판사와 변호사를 고민할 수 있는 위치의 부유한 환상을 현실로 만들었으며 그녀의 남편은 회사의 CEO였고 두 사람의 사이에는 여느 가족드라마에서 필수 요소로 등장해주시는 남편의 외도 사실이라거나 지독히도 괴로운 고부갈등으로 말미암은 괴로움 따위도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이서영은 성공했고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물론 아직도 며느리를 탐탁해하지 않는 우재(이상윤역)모의 태도는 깐깐했지만 이서영은 이를 개의치 않아 할 뿐 아니라 그녀의 처세술은 거의 시어머니의 경멸을 한 수 위의 관망으로 무시하는 하이레벨이라 차지선(김혜옥역)의 허세가 서영이의 행복을 가로막을 위협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특히 처음 도전해본 레시피라며 몇 개씩 군침 나오는 음식들을 그것도 자연스럽게 가정부를 부리며 요리해내는 서영이의 모습은 내겐 이전의 그녀의 잔상이 떠올라 조금은 위화감이 느껴지는 이미지이기도 했는데 마치 시크릿가든의 김주원이 길라임이 아닌 인어아가씨의 아리영을 선택해 결혼을 하고 그 이후를 보여주는 모습 같았달까. 무언가 청담동 며느리스러워진 서영이의 우아함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했다.

 

 

 

 

상우는 몇 번인가 아버지에게 어디를 그리 자주 마실 나가시느냐고 정말 사귀는 아줌마라도 생긴 것 아니냐는 몇 번의 농담을 던졌는데 나는 이것이 드라마에서 깔아놓은 하나의 복선이라고만 생각했다. 삼재는 내 염치로 어떻게 새로운 인연을 만나냐며 서글픈 받아치기를 했지만 한 번도 아니고 두어 번이나 되풀이해서 묻는 상우의 질문이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그것이 서영이의 또 다른 갈등이 되려나. 남편의 얼음장 같은 모습이 서럽다 서럽다 외치는 차지선의 투정이 심상치 않았는데 그럼 두 사람이 설마...? 아침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일게다.

 

드라마는 한 시간여 가까이 이 부자 사이에서 '서영이'라는 존재를 입에 올리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삼재에게는 하나뿐인 딸이며 상우에게는 유일한 형제인 누나의 이야기를 부자는 밥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그녀의 이야기로 화제를 올리지 않았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서 지난 몇 년 전의 사건은 그저 사라져버린 이야기처럼 그리고 이서영이라는 존재가 애초에 두 사람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그들의 대화에서 이서영은 사라진 존재였다. 삼재에게서 서영이의 존재가 떠올랐던 것은 그가 초반 한 슈퍼에서 음식 재료를 구매할 때 누가 서영이 아빠 아니랄까 봐 딸보다 더 지독하네 라는 푸념을 들으며 재룟값을 흥정하던 그 장면의 한마디뿐이었다. 제작진은 영리하게도 드라마 초반 타인의 입으로 서영이의 존재를 슬쩍 떠보듯이 한번 올려놓고는 금세 수면 아래로 가라앉혀버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특이하게도 드라마가 끝나기 거의 십여 분이 남은 촉박한 시간에서 문득 이서영이라는 존재를 시청자에게 다시금 상기시킨다. 다시금 그 슈퍼 아저씨의 입을 빌려서. 그런데 서영이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며? 타인에게 전해 들은 아버지의, 누나에 대한 이야기. 상우는 문득 지난 몇 년간 아버지가 지독히도 외면했던 누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아버지의 존재가 자신의 미래 사이로 끼어드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던 서영은 독하게 아버지를 죽였다고 거짓말해버리고 그에겐 자신이 유학을 떠날 것이라는 한마디로 아버지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차단해 버린다. 만약 실제로 서영이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지라도 그토록 자신을 떠나고 싶어했던 서영이의 마음을 알기에 내가 얼마나 싫었으면 멀고 먼 이국으로까지 몸을 숨겨 나를 피하려고 하나라는 자괴감이 상처로 남았을 아버지였다. 상우는 여기에 더불어 그녀의 유학 사실조차 거짓이었고 아예 자신을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여 먼 나라 보다 더 먼 곳으로 자신과의 인연을 끊어내고 싶어했던 딸의 진심을 결혼식장에서 목격했던 아버지의 비밀을 알지 못했다.

 

누나의 거짓말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그였지만 아버지를 연민하는 7할 외의 3할을 누나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채웠을 그는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누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누나가 유학을 간 것처럼 그의 앞에서 몇 번의 연극을 했었다. 누나가 외국에서 사진을 보냈다느니 편지를 보냈다느니 시답잖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가짜 증거를 보여주고 쇼를 했던 그의 모습은 아마 삼재의 눈에 보여질 때마다 상처로 되새겨졌을 것이다. 상우는 그때마다 다른 말로 돌리며 딸을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아마 단순히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훌쩍 유학을 떠나버린 딸을 서운하다 생각하고 있었다고 착각했을까.

 

 

 

도대체 어떤 좋은 인연을 만났길래 그렇게 마실을 자주 다니냐는 상우의 질문은 실없는 농담이 아니었다. 삼재는 실제로 좋아하는 사람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아예 죽었다고 부정했던, 그래서 결혼조차 알려주지 않았던 내 딸 서영이. 그는 등산복 차림으로 전봇대 뒤에 숨어 아직 소개도 받지 못한 사위와 함께 나란히 운동복을 입고 행복한 얼굴로 고급 승용차에 올라타는 딸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처음으로 서영이가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이 터졌다.

 

 

 

"정당방위는 적용 안 되더라도 20년을 아버지 폭력과 학대에 시달린 것을 고려한다면 25년은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저는 5년 정도면 어떨까 싶습니다. 피고인 오수진씨가 죄값을 받고 나왔을때 남은 인생은 살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영이가 아버지에게 유학을 간다 거짓말을 하면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던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삼재의 모습을 보고도 서영이의 패륜을 이해했던 나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영은 존속살해범인 피고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 판사들에게 가족의 학대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아직 서영은 아버지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고 있지 않고 여전히 그를 미워하고 있다는 증거를 간접적으로나마 시청자에게 전달한 장면이었다.

 

"피고인은 수없이 죽을 기회를 넘겼어요. 죽지 않았다고 해서 살만했다고... 겪어보지도 않은 남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최근 늘어나는 패륜 범죄에 대한 사회의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법정 최고형을 내려야 한다는 동료 판사의 말에 서영은 마치 자신이 실형을 받기라도 한듯 동요한다. 아무리 개인의 고통이 심했대도 아버지를 죽이는건 있을 수 없다는 경험해보지 않은 자의 단언이었다. 서영은 순간 흥분하여 대신 살아보지 않는다면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고 살아남았다고해서 살만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만이라 말하지만 "이판사는 아버지의 폭력, 학대를 경험 해봤다는 소리야?" 라는 말에 순간 발을 빼며 냉정해졌다. 그건 아닙니다라고.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 수년 여간을 자신도 아닌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채무자로 살아야만 했던 사람이 미래에 어떤 계획을 세우고 버티며 살아가는지를. 아버지가 없는 미래. 그것이 서영이에게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줄 사람이 나타났다. 서영이는 처음으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에 다시금 아버지를 끼워 넣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아버지 때문에 불운해질지도 모를 자신의 미래가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서영이를 이해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거짓말을 패륜이라 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여간을 딸을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그녀를 화제에 올리지 않았던 이삼재가 등산복을 갖추어 입은 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뿌예진 눈을 가늘게 뜨고 전봇대에 숨어 내 딸 서영이를 바라보는 표정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몇 년간 몇 번이나 반복됐을 아들과 딸의 깜찍한 거짓말을 접할 때마다 그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 아예 그녀를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그가 서영이에게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부정이라 생각하고 그는 서영이의 존재를 아예 차단해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잊지 못하는 딸을 가까이 바라볼 자격도 없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유령처럼 뿌연 모습은 살을 에이는 아픔이오 헌신이었다.

 

 

 

"천륜을 배반한 패륜아입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무능력과 폭력에 시달렸다 해도 자식이 부모를 더구나 잔인무도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도 없고 용납 되어서도 안 되는 극악한 범죄행위임을 주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본 검사는 생명을 주신 부모를 무참히 살해한 피고인 오수진에게 징역 25년을 구행하는 바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져주길 바라는 마음에 결혼 사실조차 통보하지 않고 자신은 유학을 떠났다는 거짓말로 그의 인생에서 내 딸 서영이의 자리를 비워버린 딸의 비밀을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눈으로 목격했을 때의 아버지의 심정이란. 그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펐을까. 그러나 그는 이런 비참한 패륜을 겪고도 딸의 죄를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남편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딸의 모습을 전봇대 뒤에서 훔쳐보던 삼재의 눈은 웃고 있었다. 딸의 인생에서 죽임 당한 아버지였지만 그는 딸의 행복이 그저 기쁘기만 했던 지극한 부정이었던 것이다.

 

 

 

처지를 바꾸어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뒤바뀌었다면 아마 이 드라마의 장르는 복수극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를 복수해도 부모는 자식을 복수하지 않는다. 그는 몇 년여간 이어진 딸의 거짓말을 오히려 자신의 탓으로 생긴 비극이라 생각하며 그녀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인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다.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드라마 초반 그 사건이 점프되고나서 삼재의 모습이 왜 그토록 행복해보였는가를. 딸은 행복하고 아들 또한 행복하다. 그것 이상의 기쁨이 부모에게 또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딸의 모습. 그것을 신부 측 아버지의 입장이 아닌 경조사 아르바이트의 자격으로 바라봐야 했던 부친의 비극. 이런 장면을 목격했을 때 사람들이 그다음으로 원하게 되는 것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순간 삼재가 느꼈을 어떤 고통이나 차후의 선택을 시청자에게 아예 보여주지 않고 수년 뒤로 점프시켜 버렸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기 십여 분 전까지 그의 입에서 내 딸 서영이의 이야기가 언급조차 되지 않게 차단했다. 딸의 결혼을 목격하던 그가 혹여나 딸에게 들킬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던 그 모습의 엔딩컷처럼... 결국 서영이를 훔쳐보는 아버지의 비밀이 처음으로 드라마에서 터져 나온 순간 시청자는 적극적으로 삼재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주말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운 놀라운 퀄리티의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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