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소박한영화 +53

 

 

첫째가 워낙 대단했던 탓에 상대적으로 박한 평을 받았던 테이큰2였습니다만 그럼에도 제겐 흥미로운 두 개의 건더기가 있었습니다. 리암 니슨옹의 고갈된 체력이 문제였던 것인지 애석하게도 후속작에서 그는, 액션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싸움의 방식을 생각으로 대체했죠. 발이 묶여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딸은 액션을 이끌고 워키토키 같은 아버지의 지령을 그대로 이행합니다.

 

전작에서 물찬 제비처럼 날아다니던 리암 니슨의 화려한 액션을 메기 그레이스의 갓 태어난 망아지 워킹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불효자와 딸 바보의 팀플레이를 지켜보는 것은 나름 흐뭇한 보너스였죠. 시간을 쪼개고 공간을 나누어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장소의 흐름을 바라보는 리암 니슨의 수색대 기질은 오히려 전작보다 구체화된 느낌이었는데 그 방식이 마치 수학과도 같아서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진 못했지만, 저 같은 사람은 손뼉 치며 감탄해버렸죠.

 

감시자들은 이런 테이큰2의 소소한 재미를 보다 직접적인 스케일로 만들어버린 듯한 영화입니다.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 이른바 '감시자들'을 중심으로 추적의 재미를 극대화했죠. 어떤 이는 자리에서 지령을 내리고 어떤 이는 그 지령을 몸으로 이행합니다. 마치 사이좋은 꼬리잡기를 하듯 지령과 지령을 배턴처럼 넘겨받으며 일련의 목표로 다가가는 과정은 소소한 쾌감을 안겨주기까지 합니다. 감시자들은 생각과 행동을 혼자가 아닌 팀플레이로 결합하여 협공의 테이큰을 완성한 작품입니다. 이른바 팀플레이의 미학이랄까요.

 

 

 

혼자가 아닌 다수의 재미를 부각한 작품인 만큼 그 속에서 꿈틀대는 캐릭터의 매력은 이 작품의 재미를 절반 이상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덕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시자들의 설경구, 정우성, 그리고 한효주는 단언하건대 그들이 5년 안으로 찍은 작품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흰머리 희끗희끗한 강철중이 난장을 피우지 않고 계획적으로 수사의 중심에 들어선 모습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착한 눈 정우성의 신속한 악행까지도 어색함 없이 그럴듯하게 어울립니다. 오랜만의 명분 없는 악인을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심지어 2PM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빛나는 막둥이 '다람쥐'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극의 클라이맥스로 이동하는 장면을 보며 정말 이 작품의 감독은 그 배우의 매력을 최대치로 이용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덧붙여 이 작품에서 여심을 휘어잡을 인물은 어른 남자 정우성의 섹시함이나 이준호의 소년풍 에너지만이 아닙니다. 감시자들의 한효주는 그녀가 보여준 어느 작품에서보다 매력적인 이미지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마치 포토그래픽 메모리처럼 눈에 담은 기억을 사진처럼 저장하는 흥미로운 여경 하윤주로 분한 한효주는 기존의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탈피한 중성적인 매력으로 시선을 붙들더군요.

 

무채색 의상에 소년 같은 머리를 하고선 빨간색 이어폰을 귀에 꽂은 투명한 한효주의 얼굴은 마치 티티엘 소녀처럼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있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더군요. 그녀의 작품은 봄의 왈츠부터 꿋꿋하게 챙겨봐 왔습니다만 감시자들만큼 한효주의 외모를 제대로 이용한 작품도 드물었다고 단언합니다.

 

 

심지어 우산을 사이에 놓고 '적' 정우성과 대치하는 씬에서 제 가슴을 설레게 한 인물이 바로 한효주였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 순간 비 맞은 한효주의 얼굴은 마치 늑대의 유혹에서 그 유명한 강동원의 우산씬을 떠올리게 할 만큼 한효주의 매력이라 불리어도 충분할 장면이더군요. 정우성의 먹물 먹은 눈동자만큼이나 심장을 쪼이게 하는 강아지 같은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네요.

 

덧붙여 이 작품은 지지부진한 미련을 허락하지 않는 근래 보기 드문 개운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조금만 감정이 과잉될라 치면 가위를 들고 뛰쳐나오는 제작진의 편집 덕분에 이 작품은 신파를 다루는 순간까지도 산뜻하고 명쾌했죠. 덕분에 느끼하고 명분 없는 로맨스나 끈끈하고 집착적인 신파 코드가 없어 마음은 한결 가벼웠지만 지나치게 담백한 연출이 관객의 관점을 관망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도 남습니다. 관람 당시에는 꽤 괜찮았다 싶은데 돌이켜보면 그 정도까진 아닌 느낌이란 말이죠. 감동이 휘발되는 순간이 지나치게 빨리 찾아오는 듯해 아쉬움이 남더군요. 어디까지나 이런 영화는 오랫동안 관객의 마음을 두드리는 매니아적 쾌감이 있어야 끈덕진 사랑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럼에도 감시자들은 시리즈물로 만나고픈 오랜만의 국내 영화이기도 합니다. 정다운 캐릭터의 살가운 팀플레이. 그리고 과잉을 막아서는 담백한 연출이. 오히려 후속작은 전작 이상의 거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겨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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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3

 

이상하다. 역대 슈퍼맨이라고 쓰고 그 주인공들의 차이점을 궁리 중인데 도무지 각개의 인물로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최근의 헨리 카빌이나 드라마 스몰빌의 톰 웰링. 그리고 슈퍼맨 리턴즈의 브랜든 라우스까지. 물론 모두가 대단히 잘생기긴 했다. 울버린이 더 어울릴 법한 몸을 가진 헨리 카빌은 그야말로 300의 몸매와 베일신의 미모를 동시에 지닌 느낌이고 브랜든 라우스의 숨 막히는 눈동자는 안경 너머로도 충분히 고혹적이었다.

 

비행이라는 미끼로 진상을 좀 부리긴 했지만, 톰 웰링의 구불구불한 머리칼과 하얀 이를 드러낸 백치의 미소는 그야말로 귀여웠다. 문제는 그 모든 감상이 오로지 잘생김 하나로만 정의 된다는 점이다. 정말 잘 생겼었다는 감탄은 해도 막상 이런 느낌의 감동은 없다. 헨리 카빌만의 슈퍼맨이라던가. 이건 브랜든 라우스만 표현할 수 있는 거야! 같은 짜르르한 교감이. 좀 심하게 말해 브랜든 라우스의 자리를 톰 웰링이 대체해도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것만 같다.

 

 

 

물론 필자는 안면 인식 장애를 앓고 있는 것도 아니며 슈퍼맨에 대한 친밀감이 없는 상태도 아니다. 지금에야 크리스찬 베일의 세모입이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물 먹은 눈동자에 감탄을 해도 내 초등학교 시절 유일한 히어로는 오로지 슈퍼맨이었다. 배트맨은 그저 심형래의 장난이었고 아이언맨은 만나지도 못했으며 스파이더맨은 관심조차 없었다. 여태까지도 기억하는 추억의 미국 드라마는 베리힐스의 아이들과 더불어 슈퍼맨의 사내 연애를 다룬 '로이스앤 클락'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머릿속에는 드라마가 무척 재밌었다는 막연한 감상문이 남아있을 뿐 슈퍼맨의 자리는 온데간데도 없었다. 심지어 위기의 주부들의 수잔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으면서도 막상 슈퍼맨의 얼굴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심지어 그는 드러난 면적 또한 넓지 않은가. 복면으로 감싼 앤드류 파커의 얼굴은 똑똑히 기억하면서도 도대체 왜 그 수많은 슈퍼맨의 얼굴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슈퍼맨이 그 이름처럼 지나치게 완벽한 히어로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름부터가 참으로 거만하지 않은가. 박쥐나 거미 같은 미물 따위로 애칭을 대신한 어둠의 히어로들은 그에 비하면 참으로 겸손하다. 아이언맨이 수트를 버리고 정비공이라는 본분으로 정체성을 찾은 것과 달리 슈퍼맨은 애초에 찾아야 할 내면 따위가 없었다. 한 마리만 있어도 지구를 초토화할 수 있을 법한 이 무지막지하게 무식한 크립톤인의 피를 이어받은 칼-엘은 날 때부터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놈이다. 심지어 지구의 정기를 무럭무럭 흡수하고 자라 기존의 립톤인보다 배는 세단다.

 

이것은 결국 슈퍼맨이라는 컨텐츠의 음과 양이다. 피터 파커의 궁상과 가난, 브루스 웨인의 비련 따위를 갖지 않은 슈퍼맨은 그 어떤 히어로보다 완전하지만, 관객에게 동정심을 이끌어낼 여지가 없다. 이것은 분명 완벽한 남자, 슈퍼맨이 수십 년간 대중을 사로잡은 매력이겠지만 한편 연민이 느껴지지 않아 삭막하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최근의 히어로물에서 관객이 바라는 감상은 복면 뒤의 내면이다. 인간미와 연민 그리고 교감. 더이상 관객은 영웅의 신격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맨 오브 스틸은 위험한 도전을 했다. 어디까지나 슈퍼맨은 지구인 클락 켄트가 아닌 외계인 칼엘이라는 설명을 지루하리만큼 설명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 전개는 마치 히어로의 탄생이 아닌 신의 재림과도 같았다. 실제로 오프닝에서 수염을 기른 클락 켄트가 문을 부수고 들어와 불길 사이에 서 있는 장면은 영락없이 예수 그리스도였다. 관객은 시작부터 립톤인 칼엘을 향한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연민이 생기지 않는 칼엘만큼이나 영화는 완벽한 액션을 추구했지만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이 피로할 만큼의 영상미를 퍼부어대는데도 희한하게, 손에 땀이 차는 스릴만점이라던가 화면 속으로 뛰어든 것 같은 박진감 따위가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이 정도의 기술력이라면 제대로 된 드래곤볼의 영상화도 꿈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로지 기술에 대한 찬사일 뿐 잘 만든 액션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동은 아니었다. 그저 팔짱을 꼬며 "그래.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방관자의 심정이 될 뿐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지도 기대고 싶은 마음도 전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오히려 지구를 깨부수는 두 패의 립톤인들을 보며 자꾸만 뾰족한 감정이 생겨 견딜 수가 없었다.

 

 

이놈의 립톤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했다. 굳이 인구가 최대한으로 밀집된 도심지를 골라 일당 백으로 싸우는데 그 때문에 생긴 지구의 피해는 그야말로 자연재해 수준이다. 건물 안으로 대피하라더니 오히려 슈퍼맨 본인이 나서서 건물을 깨부수고 있다. 돌이켜보면 더 화가 치미는 게 칼엘의 아버지는 네가 지구의 새로운 신이 될 것이라며 그를 내려보냈지만 정작 사고의 시발점은 오로지 그의 아들 아닌가? 뉴욕 도심지가 원시 부족도 아니고 알아서 문명을 개척하며 잘살고 있는데 느닷없이 다른 별의 신이라는 자가 등장해 오히려 평화로운 지구의 문제 원인을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조금의 미안함이나 죄책감 따위 없이 오히려 뻔뻔하다. 나는 지구인을 지키고 싶다고. 제발 참아주세요.

 

 

지구는 애초부터 칼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지구의 도움을 받은 것은 칼엘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칼엘을 지구의 구원자처럼 묘사한다. 그러니 공감 따위 생길 리가 없다. 거부감만 늘어날 뿐.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도 방관자의 심리로 화면을 지켜보게 되는 이유다. 이 영화에 크리스토퍼 놀란의 입김이 들어갔다길래 고뇌의 히어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역시 배트맨만큼의 연민을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다. 관객은 슈퍼맨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이 도시에 가진 빚이 없어요."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인 캣우먼의 호소 따위 민폐쟁이 슈퍼맨에겐 사치일 뿐이다. 차라리 슈퍼맨의 죄책감을 투영했더라면 그나마 그를 동정했을 것이다.

 

결핍이 없는 히어로 슈퍼맨은 분명 매력적인 컨텐츠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인물을 그 재창조하는 것은 까다로운 난제다. 이미 크리스토퍼 리브가 완성시킨 슈퍼맨의 이미지에서 더 이상의 변형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 만약 슈퍼맨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관객과의 완벽한 교감을 이룰 수 있는 작품이 탄생한다면 그야말로 히어로물 사상 최고의 역작이 되지 않을까. 잭 스나이더와 놀란의 협공마저도 그 딜레마를 깨진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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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피트 주연의 월드워Z. 사실 극장을 찾기 전까진 그리 기대치가 높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개봉을 앞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공개된 티저 예고편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쥘 만큼 벅차했었습니다만 소문이 그리 좋지 않았고 한국인에게는 불유쾌한 영화라는 일부의 권고에 기대감은 스멀스멀 사라져버렸죠. 그러나, 역시 저조한 기대감은 최고의 애피타이저입니다. 잔뜩 실망할 것이라는 준비 태세를 갖추고 관람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영화 최근 찾은 극장가의 블록버스터 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전 세계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 국가에서도 인정한 유엔 소속의 007 제리. 가족의 안전을 볼모로 그에게 맡겨진 바이러스 퇴치. 그리고 미모의 아내와 천식을 앓는 큰딸.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막내. 뭐 이쯤 하면 목숨을 내걸고 좀비 떼와 사투를 벌이는 아빠의 애끓는 부정이 화면 가득 펼쳐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품게 되죠. 영화의 홍보 방향도 아빠 브래드피트의 싸움에 초점을 맞췄었고요. 하지만 이 영화 예상했던 것과 달리 그런 부류의 감동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족의 눈물을 인질로 잡고 관객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라는 얘기지요.

 

 

 

월드워Z는 누구나 그렇게 접근할만한 -가족이 등장하는 재난영화의- 보편화된 감성을 애써 무시하는 느낌이 역력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초반 여동생의 생일에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는 언니. 살아있는 강아지를 인형으로 돌려받는 아빠. 호흡기를 가져오라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단 세 컷 만에 가족의 위기를 감지해내게 합니다. 그만큼 영화는 매우 실용적인 컷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제작진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감정을 못견뎌하는 느낌이 들만큼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다 죽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지요. 그 과정이 불편한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으로 임무를 말아먹거나 제풀에 넘어져 모두의 발을 묶는 금발 아가씨 따위 없다는 얘기지요.

 

 

특히 레이디 세 명을 모시고 있는 아빠 브래드피트의 부성애가 화면 가득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와장창 무너뜨린 결단은 조금 흥미롭더군요. 물론 유엔 조사관 제리가 바이러스 유포지를 조사하러 나가게 된 계기는 결국 가족을 볼모로 삼은 정부의 압력 때문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가족 때문에 눈물을 빼는 신파 코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천식을 앓는 큰 아이의 독특한 이력은 좀비떼에 쫓기는 액션 영화에서 긴장감을 높이는 핸디캡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부분 또한 애써 무시해버리더군요. 이런 부류의 스트레스를 싫어하는 저로선 차라리 고마웠고요.

 

 

 

불필요한 감정의 과잉이 없는 만큼 그것들은 온전히 충실한 액션으로 채워져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의 좀비 액션은 공포나 스릴을 느낄 겨를도 없을 만큼 압도적인 충격을 가져다줍니다. 기존의 좀비 영화와는 무언가 다른, 예술성마저 느껴지는 컷들이 있습니다. 시각과 청각을 비롯한 각종 오감들이 활개치며 화면을 기다리는 느낌입니다. 월드워Z는 분명 지적인 모험 영화는 아니지만 액션 영화로서의 미덕은 충실히 수행해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빼먹을 수 없죠. 영화 초반에 우리나라의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나오기는 합니다. 정확히 평택이라는 지역명까지 등장하지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건 한국 속의 미국이지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배경은 주한미군이고 감사합니다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한국의 정취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좀비 철퇴를 언급한 부분은 낯뜨겁긴 합니다만 톡 까놓고 말해 북한다운 해결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딱히 모욕한다거니 매도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 그렇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슬퍼졌습니다.)

 

 

 

후련하지 않은 결말입니다. 이 미온적인 결말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유가 되어버렸지만.. 월드워Z는 심지어 결론마저 실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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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6

  • 가족영화로 만들어진 탓에 원작 팬들이 짜증내더군요.

    겨우 이렇게 만들려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판권 전쟁을 했었느냐고.

    • ㅋㅋ원작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가족이 등장하는 영화긴 하지만 가족영화라는 생각은 안들던데.

    • 원작은 다큐멘터리죠.

      영화가 노리는 뉘앙스가 그런 느낌이었달까요. ^^;

    • 지금도 충분히 암울하다는 아쉬움을 듣고 있는 영화라서 더 숨통 조여놨다가는 평이 아주 극단적이었을 거예요. 끈적한 가족 팔이가 없어서 좋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 때문에 큰 흔행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원작을 그대로 재연한 작품 역시 보고싶어지네요.

  • Eunjoo 2013.06.25 00:57 신고

    원작의 광팬인 지인도 예상외로 만족하더군요.. 상업영화로선 현명한 영화화였다 싶어요. 전 북한(혹은 중국 혹은 중동)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며 미국인이 온몸 바쳐 인류를 구한다, 요런 전개가 아니라 좋더라구요..

    • 동감합니다. 헐리우드 영화 특유의 느끼한 사족들이 하나도 없어서 만족스러웠어요. 속편이 나온다던데 제작비는 제대로 회수했나 봅니다. 기대 되네요. 흥미로운 씬들이 많았거든요.

 

"그럼 내가 레너드 니모이의 유전자를 가진 건가요?" 66년도에 24세기를 배경으로 만든 미국의 SF 티비 드라마, 스타트렉. 강산이 몇 번쯤은 바뀌었을 이 오래된 고전을 나는 아직 한편도 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내게 스타트렉은 묘하게 친근한 작품이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명언을 뒤집어 나의 아이돌의 아이돌은 나 역시 섬겨야 할 그분일 테니.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에서 셀든의 이성을 뿌리째 흔들어 놓던 그 대단하신 분. 미스터 스팍. 그리고 레너드 니모이. 딱딱한 공학박사 쉘든의 정신적 지주였던 레너드 니모이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느냐면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거부하고 악수조차 거부할 정도의 세균 공포증을 가진 그의 트라우마를 한방에 무너뜨릴 정도였다.

 

치즈케이크팩토리의 웨이트리스 페니가 아무렇지 않게 내민 레너드 니모이의 싸인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던 쉘든은 급기야 "거기 케첩 같은 것이 묻었는데 미안해요. 레너드 니모이가 입을 닦은 냅킨이라." 라는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외친 빅뱅이론 최고의 명언. "그럼 지금 내 손에 레너드 니모이의 유전자가 들어있는 건가요? 이게 무슨 의민지 알아요?! 건강한 난자만 있으면 나만의 아기 니모이를 기를 수도 있다고요." 짐 파슨스를 에미상 후보로 올린 그 대단한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도대체 레너드 니모이와 스타트렉이 무엇이길래 저 목석 같은 인간이 이렇게 무너져버릴 수 있을까 싶었다.

 

 

 

스타트렉은 1966년도에 시작된 미국의 티비 드라마다. 커크 함장이 이끄는 우주 항해선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모험이 24세기의 우주 위에 그려진다. 몇 번의 시리즈물과 영화로 제작되었던 이 작품에서 스타트렉;다크니스가 맡은 영역은 티비 시리즈 스타트렉의 프리퀄이었던 2006년도 영화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속편이다. 다소 즉흥적이고 감정에 치중하는 지구인 커크와 규율을 중시하며 논리를 입에 달고 사는 발칸인 스팍이 치고받고 깨부수다 마음을 연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미 완성된 오리지널을 보유한 리부트인만큼 캐릭터가 이끄는 매력은 이 영화의 팔 할을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흥미롭기 짝이 없다. 특히 대신해서 목숨을 걸어주겠다는 애인의 세레나데를 듣고도 "그건 논리적이지 않아"로 끊어버리는 발칸인 스팍의 무뚝뚝함은 정이 떨어질 만한데도 어쩜 그리 사랑스럽기만 하던지. 과연 쉘든이 미쳐버릴 캐릭터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저거 자기랑 똑 닮아서 그렇게 좋아했구먼 싶어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미스터 쉘든은 레너드 니모이의 광적인 팬이라 늘 재커리 퀸토를 나의 스팍은 이렇지 않아!라며 욕했었다)

 

 

 

참. 주인공 이상으로 매력적인 베네딕트 컴버배치, 이 혀가 꼬여버릴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영국 배우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사실 스타트렉의 팬이 아닌 필자에게 쉘든과 셜록은 엔터프라이즈호를 관람하는 안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이미 영국 드라마 셜록 시리즈로 국내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가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할리우드 스크린 위에서 다소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성의 스팍과 감성의 커크를 각개의 방식으로 조율하며 자기 입맛대로 갖고 노는 모습은 정말.. 한숨이 나올 만큼 매력적이어서 나의 걱정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특히 그의 목소리는 우주가 남겨놓은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역시나 대단했다.

 

 

광활하기 짝이 없는 우주와 24세기의 미래를 표현하는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기술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준이다. SF영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조차 조금의 지루함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입체적인 영상미는 논리와 감성을 완벽히 충족시켜준다. 묘하게 감수성이 느껴지는 배경은 CG의 힘을 빌리지 않고 거의 인간의 손으로 만든 노력의 결과물이다. 거대 엔터프라이즈호의 내부는 블루스크린이 아닌 실제 크키로 만든 세트를 사용해 현실감을 더해줬다. 가슴을 저릿하게 했던 크로노스 행성 또한 CG가 아니라는 사실이 놀라울 수밖에 없는데 감독은 12km의 세트를 직접 만들고 그것을 카메라 감독이 멀리서 촬영하는 기법으로 입체감을 더했다. 24세기의 배경을 21세기의 기술력으로 담아냈지만 결국 그 기술의 정점은 인간의 손이었던 셈이다.

 

 

이성을 중시하는 스팍과 감성에 목숨을 거는 커크가 부딪히다 교화되는 과정을 보며 나는 생뚱맞게도 국내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운과 감에 치중하던 시골 형사 송강호가 이성과 논리를 맹신하는 김상경을 만나 싸우게 되지만 결국 그토록 불신하고 경멸하던 서로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며 닮아가는 모습이 전혀 다른 세계의 두 작품을 연결시켰던 것이다. 그 쉘든 쿠퍼를 무너뜨리고, 준비해놓았던 모든 선물이 한 번의 포옹이 전하는 가치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처럼 24세기에도 우주를 지배하는 힘은 역시 생명체의 교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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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문진 2013.06.30 20:36 신고

    글잘읽고 갑니다 그런데 혹시 쉘든이 재커리 퀸토의 판넬을 보고 나의 스팍은 이렇지 않아라고 하는 부분 몇화인지 아세요?

  • 홍성빈 2013.10.13 21:37 신고

    잘읽고갑니다. 항상 빅뱅이론보면서 관계가 궁금했엇는데 최근에 개봉한 스타트렉을보고 어느정도 이해가됬었습니다. 빅뱅이론시즌7에이어서 장수방영되도록 빌고 또 빕니다~ ㅎ

  • 호랑이 2013.10.14 10:36 신고

    드라마 보시면 쉘든이 쎀킷 하는게 이해가 가실겁니다 ㅋㅋ.....
    저도 오리지널 트렉 팬인데 영화 안습 ㅠㅠ
    2015년에 새 시리즈 예정이던데 제발 엔터프라이즈처럼 망테크 타지 말길 ㅠㅠ......

 

 

돌이켜보면 내 유년 시절 영화 지분의 9할은 강시와 '할렐루야'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매년 돌아오는 명절이면 나는 연례행사처럼 잊지 않고 틀어대는 할렐루야를 경건한 의식처럼 감상했었고 어느 감독의 영화라는 것도 몰랐을 그 시절에 최진실이 나온다는 이유로 봤던 미스터 맘마, 마누라 죽이기와 안 보면 외계인 취급을 받았던 투캅스 시리즈에... 여기까지 적어내리다 문득 강우석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고 전율이 스몄다. 손톱, 올가미,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자귀모, 킬러들의 수다... 어린 날 내 모든 한국 영화의 자양분이 이 사람의 손에서 나왔구나 싶어서. 그것이 소름이든 감동이든 실망이든 무엇이든 간에 내 어린 시절의 무수한 영감은 강우석에게 키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제법 말랑말랑한 소녀 감성의 영화도 잘 만들었다. 그 철학을 얼마나 이해한다고 친구들과 명언처럼 뇌까렸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는 내가 어른들에게 외친 첫 반항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제작한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철중은 한국 영화에서 스토리가 아닌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사골을 뽑아먹듯 우려먹을 수 있는 전무후무한 캐릭터였다. 이토록 오랫동안 강우석 수하의 영감을 키워왔으니 좋아하는 감독의 이름을 꼽을 때 그를 호명하는 일이 없었을 리 만무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스티븐 스필버그와 더불어 강우석을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라 조잘대곤 했었다. 허나 철이든 무렵부터 그의 이름을 좋아해요라고 고백하기엔 퍽 난관이 있어 주저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강우석을 좋아해요라는 말을 그리 고상한 취미로 여겨주지 않았던 거다. 차라리 박찬욱 감독을 좋아한다는 말이 대외용으로는 더 써먹기 좋았으니까.

 

그래서 내게 강우석이라는 이름은 부치지 못할 편지 같은 외로움으로 남았다.

 

 

 

영화 전설의 주먹이 떴다. 정청 쇼크로 또 한 번 밥상을 차린 황정민의 차기작. 필자 또한 정청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지만 한편 강우석의 주먹맛을 보고 싶은 마음 또한 적지 않았다. 그 주먹이 그리 매섭고 정교하진 않더라도 즐거움만큼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물론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는 강우석 감독이니만큼 소위 강우석 표 액션 영화에 떠올리게 되는 몇 가지 선입견을 필자 또한 갖고 있었음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고교 시절 주먹 좀 썼다는 양아치들이 이제는 자식의 학비를 위해 링 위에 올라서는 진짜 아저씨가 되었다. 이런 줄거리는 듣자마자 떠올리게 되는 사연이 있다. 양심마저 봉쇄해버린 선을 넘은 미화. 그리고 감정 과잉.

 

"임덕규 씨는 역시 진짜 남자였네요. 남자답다구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전설의 주먹이라는 쇼는 같은 방송사 XTM의 리얼리티쇼 <주먹이 운다>에서 아이템을 가져온 듯하다. 마치 게임을 중계하는 듯한 부산한 진행자와 프로파이터 해설자를 중심으로 링 위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대결을 시키는 것까지 진행 방식은 물론 세트의 이미지까지 모든 것이 유사하다. 이 프로그램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결투는 길거리에서 주먹 좀 쓴다는 일명 스트리터 파이터가 자신만만하게 프로파이터에게 시비를 걸다 깨지는 장면이었는데 어쩌면 영화 주먹이 운다는 이 한 번의 대결을 2시간 33분의 러닝타임으로 늘여놓은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 PD는 임덕규를 향해 18세엔 멋으로 싸우고 불혹을 넘기면 돈 때문에 싸워야 하는 것이 가장의 처지 아니냐고 다그치지만 사실 임덕규는 그 열여덞살때부터 멋이 아닌 생활 때문에 주먹을 썼던 진정한 프로파이터였다. 가난하고 재능도 없는 너희들에게 미래의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주먹을 키워 올림픽 메달을 따는 길뿐이라던 관장의 충고를 몸속에 새기며. 그 남서울고 신재석이 시비를 걸어와도 그는 주먹을 남용하지 않았다. 그에게 주먹은 미래였고 꿈이었고 열여덞의 모든 의미였다.

 

영화는 꽤 공들여 어린 임덕규의 신념을 회상한다. 그는 주먹으로 학교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꽤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소주가 아닌 바나나를 마셨다. 그 모든 것이 미래를 향한 확신 때문이다. 올바르게 주먹을 사용하면 분명 보답이 있을 거라는. 그는 자기의 주먹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 확신이 무너진 순간 임덕규는 프로파이터의 길을 버렸다.

 

 

 

아이의 신념을 무너뜨린 것은 나쁜 어른의 아집 때문이다. 어떤 어른들은 아이의 주먹을 그들의 야욕에 이용했다. 돌격하는 코뿔소처럼 대책 없지만 나름 주윤발의 우정을 감탄하는 낭만을 갖고 있던 신재석의 손을 피로 물들이고 올림픽 꿈나무의 미래를 위해 대신 싸움을 받아주던 이상훈의 정의는 부친에게까지 얽혀있는 권력의 무게 앞에 초라해진다. 그는 무려 18세에 아버지의 안위를 위해 사장 아들을 친구가 아닌 상사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넌 왜 18살 이후로 자라지 않는 거니. 진호야?" 영화는 마치 18세의 이름 좀 날리던 양아치의 낭만을 다시 불러들인 중년을 찬미하는듯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진짜 시작은 그들이 그제서야 열여덞을 놓아버린 순간이다. 그들이 추억이라 생각했던 18세의 실수가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였다. 그 상처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마치 업보처럼 고스란히 그의 자식에게 쌓인다. 한껏 18세의 주먹질을 찬양하리라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결코 계몽적이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나긋한 어조로 마치 관망하듯 파이터 임덕규의 빛과 그늘을 비추어낸다.

 

강우석 감독은 이 영화 전설의 주먹을 통해 초심을 비추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마지막 임덕규의 선택은 이런 강우석의 다짐이 허울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쩌면 영화 최고의 자극이 되었을지도 모를 오락을 포기하며 폭력을 대신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오락 영화 전문의 강우석 감독이 선택했다는 것은 내게 미묘한 감동을 주었다.

 

 

배우의 노력이 극의 완성도를 차치하는 불혹의 액션 영화에서 민망하지 않은 몸과 파괴적인 킥을 구사한 중년 배우들의 존재감은 극을 압도하는 최고의 클라이맥스다. 요즘은 40대 이후 배우들에게 중년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미안해질 지경인데 농익은 완숙미를 떠나 20대의 상큼함이나 30대의 섹시함 그 모든 것을 들이밀어도 이 아저씨들의 매력을 이길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어린 날엔 아버지의 커리어 때문에 아버지가 돼서는 아들의 비전을 위해 자존심 꾹꾹 눌러가며 친구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던, 어쩌면 영화 속 가장 불운한 삶을 살았을 이상훈을 연기하는 유준상은 캐스팅 당시에 느꼈던 일말의 불안함을 봉쇄할 정도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돋보이게 상큼한 얼굴과 깔끔한 킥. 멀끔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파괴력을 지닌 이상훈의 매력을 제대로 소화해주어 눈길이 절로 갔다.

 

 

 

 

어쩌면 그 모습은 강우석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20대는 멋을 위해 주먹을 쓰고 40대는 자식을 위해 주먹을 쓴다는. 멋은 없지만 오락영화의 기본기를 가진 강우석의 일상적인 작품들. 153분의 런닝타임을 후회하지 못했을 만큼 시종 짜릿하고 흥미로웠던 오락 영화 전설의 주먹. 역시 강우석의 영화는 즐겁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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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싸웠는지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갈등이 습관화되어버린 사이. 사랑을 하면서도 서로가 불편하고 함께하는 순간이 못 견디게 괴로운. 더이상 싸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그 마음조차도 미워죽겠는.

 

 

 

연애의 온도를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중후반까진 이런 연애 왜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도저히 연애 따위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는 거다. 사귀는 순간에는 매일 싸우고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마음이 또 상처가 되고 그렇다고 헤어진 상태가 후련하기는 한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이제는 눈치가 아니라 눈총을 주게 된다. 자존심은 또 왜 그리 자주 다치는지. 차라리 연애 따위 하지 않는 게 속 편한 거 아닌가 말이다. 감정이 다칠 일도 없고 마음이 상할 일도 없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집착. 번민. 분노. 상처. 차라리 담배보다 몸에 나쁠 연애. 계산해보면 손해 볼 것 투성인데도 우리는 왜 이 빌어먹을 연애를 끊지 못하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세상에 다시 없는" 사랑을 목말라했다. 그 대상은 때론 뱀파이어가 되었다가 늑대 소년이 되기도 하고 이제는 심지어 가슴 없는 좀비에게 헌신을 요구하기도 한다. 여자들이 괴물의 구애에 빠져버린 이유는 간단했다. 맹목적인 충성심. 나의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 이타심.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만을 바라보는 눈동자. 그야말로 "세상에 다시 없는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기와 계산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었기에. 그것은 동물의 복종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거래였다. 더 큰 판타지를 위해 인간을 버리고 다른 종을 선택할 만큼 우리는 속세의 연애에 지쳐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 연애의 온도는 너무나 발칙하게도 인간의 연애를 들고 나왔다. 그냥 보통의 번민하는 사랑이었다.

 

 

 

주인공 이동희(이민기 분)와 장영(김민희 분)은 평범한 사내 커플이다. 아니 이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헤어짐을 다룬다. 도대체 무슨 계기로 찍게 되었는지도 모를 카메라 앞에서 그는 이별의 아픔을 쾌감이라 말하고 여자는 이별이 뭐 별거냐고 웃음 짓는다. 어쩌면 세상에 다시 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연연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뜨겁게 사랑하고 멋지게 헤어지기.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그저 그런 인간의 멜로일 뿐이니까 방문을 닫아놓고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여자는 헤어진 다음 날 다른 날보다 더 많이 웃고 즐거워해서 가족의 놀란 시선을 받지만 출근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흐느끼며 울고 남자는 새로운 여자를 소개받은 자리에서 전 여자친구의 이름을 욕설로 불렀다.

 

 

영화 연애의 온도는 헤어짐 직후의 넝마 같은 감정을 다루고 있다. 헤어졌더라도 사랑했던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는 여느 영화의 판타지는 이 영화에서 남의 연애일 뿐이다. 우리의 연애는 보다 질척하고 끈적이며 더럽고 치사하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페이스북을 훔쳐본 죄책감보다 벌써 새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그놈의 배신이 더 못참겠는 그녀. 예쁘고 깜찍하고 어리기까지 한 새 여자친구를 사귀면서도 지난 연애의 소개팅을 용납할 수 없는 그. 둘은 지나간 연애의 손해를 계산하고 상대의 불행을 기원한다. 차라리 이별 직후가 연애 도중보다 버라이어티했던 두 사람. 마치 연애하듯 이별하던 그들은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며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만 그 순간 그들은 깨닫는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이별만큼도 뜨겁지 않았던 연애의 온도. 그것은 마치 비 내리는 놀이 공원과도 같았다.

 

 

 

연애의 온도는 해석이 없다. 설명도 없다. 영화 내내 동희와 장영은 헤어진 이유를 곱씹어보지만 그것은 마지막까지, 그 흔한 회상신으로라도 되새겨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사귀게 되었고 왜 서로를 좋아하고 있는지조차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이 불친절함은 주인공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이동희가 어떤 인물이고 장영이 뭐하는 캐릭터인지를 구구절절하게 이해시키지 않는다. 그저 이동희는 이동희고 장영은 장영일뿐. 그럼에도 영화는 조금도 어렵지 않고 친근하다.

 

누구나 이동희 같은 남자를 만나 장영 같은 사랑을 해봤다. 저것은 남의 연애가 아니라 우리의 연애, 보통의 연애다. 그들을 남이 아닌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도록 영화는 최대한 설명을 삼갔다. 연습장 하나를 채워도 찾기 어려운 비밀번호처럼 복잡한 그녀와 누구나 열 수 있는 알기 쉬운 번호를 고집하는 단순한 그. 이 짧은 이미지만으로도 모든 이해가 가능했다.

 

 

 

영화배우이자 또는 모델인 두 명의 스타일리쉬. 이민기와 김민희를 동경이 아닌 만만하고 친근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시도 또한 훌륭했다. 친근함과는 거리가 먼 두 사람이 보통의 연애를 하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것은 두 배우의 포기 덕분이었다. 김민희는 예쁜 것을 버렸고 이민기는 멋을 버렸다. 염색이 바래가는 부스스한 머리칼을 까만 고무줄로 대충 묶어놓은 김민희의 헤어스타일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그 수수함만큼이나 민낯 같은 연기도 참 좋았다. 이미 화차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했던 김민희의 연기가 연애의 온도에서는 더 좋았다.

 

 

 

감정의 축이 여성의 관점으로 휩쓸려있던 이 작품에서 상대적으로 졸렬하고 구차해질 수밖에 없었던 남자 주인공 이동희다. 그래서 이민기는 사정없이 찌질해졌다. 이민기 자신이 워낙 튀는 인물이라 간혹 위화감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질끈 쏟아진 눈물을 한 손으로 닦아내며 애증을 폭발시킨 그의 욕지기는 이민기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이민기가 갈등을 조장하고 김민희는 진압했다. 늑대 소년의 송중기, 박보영 이상으로 섭외가 영화의 절반은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인 두 사람이었다.

 

 

 

때론 이별보다 미지근한 연애가 있다. 뜨거운 이별에 기대하고 다시 미지근한 연애에 실망하는. 그럼에도 그들은 3%의 판타지를 놓지 않는다. 마치 헤어지려고 연애하는 사람들처럼. 두 사람은 이별의 뜨거움이 그대로 연애의 온도가 되길 바랬다. 하지만 최상의 온도는 언제나 그들을 비껴갔다. 처음엔 미지근했고 두 번째는 지나치게 차가웠다. 연애의 온도는 노력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3%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비결은 연애의 온도를 맞추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집착을 버리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김광석의 노래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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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읽고 갑니다~ 여자친구와 같이 시사회때 본 영화인데... 보는 내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 헤어진 여자친구 생각이 남으로 인해서 보고 난 후에 영화에 대해서 깊게 언급을 못한게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며칠 전 친구들 만나는 곳에서 "연애의 온도"를 남친과 같이 봤는데 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데이트를 할 적에 본다고 하면 비추하고 있습니다.^^;;

    • 말씀하신대로 데이트 무비로는 적절하지 않은 영화죠.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의 판타지가 담긴 영화인지라. 그래도 지나간 과거의 미련보다는 현실에서 만들어나갈 판타지에 충실하심이^^

  • 영화 잼있게 봤어요.
    공감이 가네요,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

  • 리나군 2013.04.10 08:37 신고

    영화 재밋게 봤고, 이 글을 더 재밋게 읽었습니다.
    온도라는건 이런 의미였군요.ㅎㅎ
    차가버섯님의 말씀에 공감가네요.
    저도 이 영화를 여자친구랑 같이 봤는데, 이전에 3년을 사귀면서 만났다가 헤어짐을 반복한 그 연인이
    떠오르더군요.ㅎㅎ 그리고 그렇게 말했다가 여친한테 죽을뻔했음.

  • 잠안오는 새벽시간..잘읽었습니다.

낮에는 세차하고 밤에는 차를 모는 이 시대 진정한 근면가이, 차종우. 만원이면 서울 시내 어디든 달린다는 그에게 무려 거금 백만 원의 동행을 제안하는 한 남자. 손에 익은 꾼 기질로 손님의 핸드폰을 갈취, 번호를 따내고 이른바 '대박 손님'을 만났다며 기뻐하는 그였지만 이런 요상하게도 운수가 좋더라니- 엉겁결에 죽어버린 대박 손님은 그를 도주자로 만든다. 하룻밤 사이에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버린 그를 경찰은 물론 국정원까지 개입하여 쫓기 시작하는데 어째 호락호락하게 잡혀지지 않는다. 차종우, 그는 도망을 특기로 가진 이른바 도망전문꾼이었으니까.

 

신하균 주연의 런닝맨은 동명의 버라이어티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친근한 이름을 가졌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제목을 가지고도 그쪽에서 홍보를 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남지만 어찌 됐든 그 제목만큼이나 억울한 남자의 죽기 살기 달리기가 잘 그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런닝맨이라는 제목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의 '런닝맨'에서 비롯된 이름이지요.

 

1987년의 런닝맨은 죄수의 생존 경쟁을 티비쇼로 즐기는 미래 시대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온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목숨을 건 싸움을 그려낸 암울한 작품이었지만 우리나라 런닝맨은 누명을 뒤집어쓴 아버지의 부정이라는 두 가지 사실 외엔 그보다 훨씬 가볍고 유쾌한 코미디 액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2013의 런닝맨은 만듦새 자체가 그리 꼼꼼하지는 않은 작품입니다. 영화는 군데군데 "액션 영화니까" 혹은 "코미디 영화니까" 이쯤 하면 됐지 뭐- 하는 느낌의 퉁치고 넘어가는 무딘 장면들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장면 장면의 완성도가 무척 불균형합니다. 이거 정말 물건이네 싶다가도 한순간 폭삭 어이없어지는 컷들이 장마철의 태양처럼 오락가락합니다.

 

더욱이 캐릭터빨을 몹시도 갈구하는 액션영화에서 주연 인물의 설정이 다소 엉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하균이 맡은 캐릭터 차종우는 바람처럼 사고를 몰고 다니고 주변 인물을 고달프게 만드는 민폐형이라 정을 줄 수가 없는데 여기에 대놓고 멋있으라고 만든 이민호 주연의 차기혁은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얼기설기합니다.

 

 

 

멘사에 등록된 아이큐 수재에 액션 영화 방불케 하는 싸움 실력. 덤벼라 세상아!를 외치는 반항아 기질의 순정 만화 같은 캐릭터. 좋은 거 너 혼자 다 가졌는데 이상하게 멋지지가 않고 웃깁니다. 영화 초반까지만 해도 이민호가 잡는 폼을 웃기라고 만든 정서인지 아닌지를 구분 못 하다가 정말 진지한 포인트라는 것을 알고 멎쩍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대중에게 줄곧 착하고 소심한 성격의 캐릭터를 설명해왔던 이민호는 그 선입견만큼의 연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가벼워 보이지요. 문제는 그게 또 반드시 배우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런닝맨은 좀 이상한 액션을 구사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쾌감을 얻게 합니다. 보통의 액션 영웅들이 난관에 봉착하여 묘기를 부릴 때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멋을 차종우는 아예 무시합니다. 고층에서 뛰어내리는 위험천만의 순간에도 침착한 미소를 날리던 기존의 히어로들과 달리 "에이씨" 소리가 먼저 튀어나오는 차종우의 리얼 액션은 차라리 솔직해서 친근합니다. 낙법 따위 무시해버린 차종우에게 우아한 착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까진 발이 아프다고 바닥을 뒹굴며 칭얼대는 그의 모습에 점차 묘한 쾌감이 느껴지더군요.

 

차종우의 본격 도주전이 펼쳐지면서 영화 초중반을 아우르는 그의 리얼 액션이 너무나도 재밌었기에 이 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중간중간 끼어드는 아버지의 부성애. 아들의 효심 자각. 이 눈물의 2단 콤보가 성가셔지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감동적이지도 않았지만 감동을 느껴야 할 필요가 없음에도 계속해서 울라고 지시하는 지문들이 불쾌했던 거죠. 그냥 온전히 웃고 또 웃고 싶은데 왜 울리려고 하는 걸까요?

 

 

그냥 의무적으로 넣어본 강박에 불과한 장면이라 싫었고 이렇게 한껏 유쾌해서 매력적인 차종우가 심각해지는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한껏 재밌는 와중에 스릴을 방해하는 장치가 등장하고 주축이 되는 인물이 있다면? 그러니 그의 캐릭터가 덩달아 보기 싫어지죠. 감정을 강요하는 강박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장치에 차기혁이 등장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럼에도 런닝맨이 재밌긴 했다는 겁니다. 차종우의 도망질은 이 모든 단점을 붕괴할 만큼 매력이 있습니다. 더구나 불혹의 신하균은 어쩜 그리도 헌신적일까요. 앙본좌 오세정의 말대로 살짝 조울증이 있는 것 같은 차종우의 왔다리 갔다리하는 성격조차도 신하균은 모든 것을 어설프지 않게 소화해냈어요. 맑아졌다가 흐려졌다가. 물론 맑은 쪽이 훨씬 매력적이지만요. 이렇게 헌신적인 액션 배우를 보는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신하균은 마치 10년간 일거리 없던 무명 배우가 처음 단역을 따낸 것마냥 최선을 다한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시리즈물의 제작 예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속편이 등장해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차라리 속편에서는 한국판 테이큰을 유머 버전으로 만들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들이 납치되고 그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차종우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네요.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울부짖는 희한한 히어로를 보고 싶은 분이라면 롸잇나우 극장으로 뛰어들어가도 무리가 없으리라 사료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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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헌터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내게 참으로 찝찝한 작품이었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할 것도 없었다. 그냥 그 찝찝함이 모든 감정을 잠식해 버렸으니까. 링컨의 시대를 영화의 배경으로 내세우고 그의 노예 해방 업적을 다루면서도 정작 시대의 가해자는 숨겨진 희한한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뱀파이어는 절대적인 악이었다. 노예를 부리고 흑인을 착취했다. 이 영화에서 백인의 원죄는 뱀파이어라는 제3의 개체에 떠넘겨져 있었다. 핍박받는 흑인의 고통은 시대의 아픔으로 퉁쳐졌다. 영화 속에서 링컨이 싸웠던 것은 백인의 이기심이 아닌 뱀파이어라는 괴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 속의 백인은 링컨과 같은 좋은 사람일 뿐이었다. 나쁜 것은 뱀파이어지 백인이 아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흑인이야." 가해자의 시선으로 그려진 뱀파이어 헌터와 달리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장고 : 분노의 추적자의 시선은 꽤나 직관적이고 본격적이다. 묵음의 d를 가진 노예 출신의 흑인 장고. 독일인 닥터 슐츠는 그에게 프리맨이라는 이름을 선사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넘긴다. "왜 이렇게 우리를 쳐다보는 거지?" "말을 탄 흑인을 본 적이 없으니까" 흑인이 말을 타는 것조차 불법이었던 이 시대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흑인을 주연으로 내세운 웨스턴 무비를 만들었다. 맥주를 나눠마시고 대등하게 말을 탄 두 사람의 등 뒤에 I got a name의 멜로디가 석양처럼 스며든다. 슐츠는 프리맨이라는 이름을 선사하면서 그에게 자유의 권리마저 가르쳤다.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서부 영화에 기대하는 판타지를 충분히 구현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영화다. 과거의 향수를 통째로 옮겨오면서 노이즈와 촌스러움까지 들고온 쿠엔틴 감독의 유머는 그야말로 사랑스러울 지경이다. 꾸밈없는 카메라 워크와 역동적인 클로즈업. 새빨갛고 촌스러운 자막과 투박하기 짝이 없는 연출. 그러나 복고의 형태를 가진 장고의 내러티브는 그 어떤 형태의 시대극보다 날카롭고 진취적이었다.

 

 

 

영화 속에서 백인은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일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바보다. 그 멍청함을 응집시킨 캐릭터가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캘빈 캔디다. 최대 규모의 노예 상인인 캘빈 캔디는 흑인을 사고파는 일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대대로 물려받은 노예상의 폭력성과 흉포함이 그의 온몸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이다. 마치 소모품처럼 흑인을 쓰고 버리는 그는 진지한 얼굴로 흑인의 열등 유전자를 설명한다. 3대의 백인을 섬긴 그의 오랜 하인에게 왜 아버지를 죽이지 않을까를 의아해하며 자란 캘빈 캔디는 흑인이 갖지 못하는 복수심이 두개골 속에 박힌 노예근성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참으로 멍청한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선인은 태생적으로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인은 노예근성을 타고났다는 거였다. 그러니 그들을 노예로 부리는 일에 가책을 느낄 이유가 없다는 변명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들은 진지했다는 사실은 유머 아닌 공포다.

 

 

쿠엔틴 감독은 어쩌면 그 당시에는 정설로 통했을 시대의 주장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무식한 것이었는가를 유머와 채찍질로 풀어낸다. 말을 탄 흑인을 처단하러 나선 백인의 남자들이 우르르 무너지는 광경은 영화 속에서 가장 본격적인 웃음 포인트가 되는데 KKK단의 원조격쯤될 하얀 두건의 남자들을 한 치 앞도 못 보는 바보로 묘사한 것은 백인우월주의 집단의 KKK단을 통렬하게 비튼 비아냥이었다. 무리 짓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비겁자들. 얼굴을 드러내는 일조차 두려운 겁쟁이들. 얼굴을 가린 두건 탓에 앞을 볼 수 없는 눈뜬장님들이 쿠엔틴이 바라보는 백인 우월주의의 실체였다.

 

영화는 시종일관 빨간 선혈이 낭자하고 죽음이 그득하지만 조금도 폭력적이거나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참으로 지적인 복수극이다. 그 지성의 아로마를 자중하는 담당이 바로 닥터 킹 슐츠(크리스토퍼 왈츠 분)의 존재 이유다. 제이미 폭스의 장고가 물리적인 복수의 쾌감을 담당했다면 닥터 슐츠는 보다 내면적인 고뇌를 들여다본다. "미안. 참을 수가 없었어." 백인을 채찍질하는 장고와 닥터 슐츠의 마지막 선택은 영화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모든 에너지와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 배우 모두 아쉬움이 남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특히 닥터 슐츠 역의 크리스토퍼 왈츠의 존재감은 대단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유약해 보이는 외면과 달리 악을 처단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과감함과 그와 대비되는 약한 자를 향한 고뇌는 독일 신화를 믿는 슐츠의 낭만성과 더불어 영화 속에서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역할 자체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크리스토퍼 왈츠의 연기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바스터즈의 그 지독한 나치 장교가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낭만주의자로 등장할 줄이야.

 

크리스토퍼 왈츠는 닥터 킹 슐츠를 연기하며 85회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았다. 장고의 출연진 중 유일한 수상 이력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82회 아카데미에서 역시 같은 상을 '바스터즈'의 한스 란다 역으로 수상했다는 점이다. 전혀 다른 이념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두 번의 아카데미를 수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 배우의 가치를 증명하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는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가 많다는 사실을 크리스토퍼 왈츠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감히 말하건대 이 작품은 크리스토퍼 왈츠의 연기력 하나만으로도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물론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인상적이다. 남성 중심의 웨스턴 무비가 아닌 여성 취향의 판타지라는 확신을 심어준 제이미 폭스의 섹시함. 좌중을 압도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뛰어난 스타성과 참을 수 없을 만치의 귀여움. 세 남자의 각기 다른 매력이 그냥 골라 잡솨 하는 느낌으로 통통 튀며 살아 숨 쉰다.

 

 

 

그간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폭력의 시대. 과감하게 내세운 흑인 영웅과 복수의 채찍질은 같은 종류의 시대적 아픔을 지닌 우리에게 보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선다. 이토록 찝찝함 하나 없이 산뜻한 복수극이 존재하다니. 시대를 저격한 쿠엔틴 타란티노. 대리만족을 느끼면서도 그 과감한 상상력이 조금은 부러워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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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간만에 돌아온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볼 수 있죠~ 악역은 처음이라 기대되는 영화에요^^

  • 솔직히 비중으로 봐도 크리스토프 왈츠가 <바스터즈>, <장고> 모두 다 주연급..
    왜 조연상인지 이해가 잘 안가더라고요.

  • 옥수수알 2013.04.11 12:06 신고

    거의 세시간짜리 영화임에도 시원통쾌한 재미에 빠져들어 봤던...
    전 장고에서 크리스토프 왈츠보다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매혹적이었어요.
    광기어린 치명적인 매혹?ㅋㅋ 프랑스인인데 불어못하는 설정...

    • 디카프리오도 귀여웠지요. 약간 느슨해졌을 무렵 그의 얼굴이 두둥 나타나자 순간 나른해진 정신이 팟하고 집중되는 것이... 타고난 스타성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영화 <파파로티>의 제목 속에는 두 개의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있다. 제작팀은 처음 영화의 제목으로 극 중 이장호(이제훈 분)의 롤모델인 전설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이름을 빌려 오려 했으나 온전히 그 이름을 가져다 쓰기에 감당해야 할 렌탈 비용은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결국 저작권료를 해결할 수 없었던 그들은 약간의 트릭을 이용. 파바로티의 이미테이션 파파로티를 이 영화의 제목으로 책정한다.

 

한편 영화가 시작되기 전 까만 화면 위에 인상 깊게 박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는 한마디처럼, 파파로티는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하여 화제가 된 '고딩 파바로티' 김호중 씨의 애칭이기도 하다. 조직 폭력배 출신으로 성악가에 도전하여 세종 음악 콩쿠르 1위를 차지했다던 김호중 씨와 그의 스승이자 영화 속 한석규의 모델이 된 김천예고 서수용 교사의 영화 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파파로티. 고등학생과 조직폭력배. 조직폭력배와 클래식이라는 아이러니처럼 코미디라기엔 지나치게 산뜻하고 정갈하며 예쁜 성장물이라기엔 다소 너저분하고 얼렁뚱땅하다.

 

실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조폭과 성악가는 꽤 신선한 조합이다. 하지만 이것이 영화의 소재가 되면 곧장 진부함이라는 선입견이 영화의 첫인상으로 자리 잡는다. 이미 우리는 영화 속 너무나 많은 조직폭력배와 상응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정통 느와르물이 아닌 다음에야 조폭 코미디라는 소재 자체가 식상하기 짝이 없다. 거기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휴먼 코미디물이라는 부연 설명은 더욱 이 영화를 지루해 보이도록 한다. 어디에서 울어라. 어디에서 웃으라는 지시문이 이미 관객에게 전달된 듯한 닳고 닳은 영화들. 하지만 파파로티는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의외로.

 

 

 

초반 영화의 전개는 마치 급한 일에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바삐 바삐 진행된다. 우연히 건드린 조직폭력배의 차에서 목을 잡고 튀어나오는 어깨들의 위협에도 쫄지 않던 김천 예고 음악 교사 상진(한석규 분) 이런 그를 한방에 무너뜨린 뽀얀 얼굴의 우두머리 장호(이제훈 분) 마치 내가 괴롭히던 그 녀석이 군대 선임으로 들어왔더라는 전설처럼 다음 회차에 선생과 제자로 다시 만나게 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정말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후루룩 전개해버리는 영화의 초반 스피디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만남 -> 갈등 -> 속풀이 -> 다시 갈등의 전개를 껑충껑충 점프컷하듯 휙휙 넘겨버린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공개된 실화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딱히 이장호의 비극을 과장해서 표현하지도 그의 천재성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스타킹의 그것보다 미약한 수준이다. 그의 천재성은 그저 노래 한 번으로 설명되며 지난 사연의 아픔은 후반부의 회상신으로 짐작하게끔 이끌 뿐이다. 상진의 히스테리나 존재 이유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충 짐작은 하게끔 하지만 결코 친절하지는 않다. 그에 비해 영화의 화면이나 정서는 마치 청춘드라마처럼 산뜻하고 예뻐서 내게 파파로티는 의외로 덜렁대는 청순한 여고생처럼 느껴졌다.

 

 

 

이토록 꼼꼼하지 않은 영화의 전개는 드라마와 코미디라는 두 개의 장르를 모호하게 만든다. 코미디라기엔 대범한 맛이 없고 드라마라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배우의 영향력 또한 마찬가지의 모호함을 보여준다. 한석규와 이제훈. 너무 진지한 두 사람의 코미디는 마치 혼자 개그하다 넘어가는 사람과도 같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라기엔 다소 꼼꼼함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성악가로 분한 이제훈의 디테일이 영화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파파로티에 의외로 그의 연기는 덤덤한 수준이랄까. 경상도 사투리와 성악 더빙이라는 두 개의 무거운 숙제를 갖고 있었던 그의 노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99번만 연습하고 나머지 한번을 채우지 않은 듯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이토록 무언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상태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난파선 같은 파파로티를 의외로 흥미롭게 이끌었던 것은 생각지도 못한 장르의 전환이었다. 보통 파파로티 부류의 영화들은 초반의 흥미로움과 중반부의 나른함이 후반부의 지루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파파로티의 진가는 전반부가 아닌 후반부에 쏟아진다. 바로 상진과 장호의 전쟁이 끝나는 순간부터였다. 두 사람의 불협화음이 비로소 하모니가 되어 나타나는 순간 관객은 안도하며 드라마와 코미디를 갖는다.

 

 

 

 

데자뷰 같았던 한석규의 연기도 겉돌고 있던 이제훈의 연기도 그 순간 각자의 가치를 증명했다. 한석규는 뻔한 장면도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힘을 보여줬고 이제훈의 상처 받은 얼굴은 아찔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특히 한 번도 그의 앞에서 진심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상진이 처음으로 마음을 꺼내 보여준 순간 두 사람의 연기는 왜 파파로티에 이 두 배우가 필요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장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파파로티는 드라마라기엔 눈물이 부족하고 코미디라기엔 웃음이 아쉬운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를 다른 무엇도 아닌 '로맨틱 코미디'로 바꾸어보라. 조금 부족하고 아쉬우면 또 어떠랴. 30살에 "넌 교복 입은 모습이 제일 예뻐" 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제훈의 어쩌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은 교복 패션을 감상할 수 있는데. 덧붙여 성악가 부럽지 않은 한석규의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은 영화의 보너스. 이제훈의 노래를 더빙해주었던 성악가 김요셉의 목소리가 너무나 황홀하여 마지막까지 엔딩 크레딧을 지켜보았다.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인지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끝나고도 객석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진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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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3.21 07:59

    비밀댓글입니다

  • ㅓㅓ 2013.04.06 14:43 신고

    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 깔끔하고 이도저도아니고 장르도 석연찮고 이제훈은 교복이 잘 어울리고 노래는 좋고 로맨틱코미디????? 그래서 이 영화의 장점이 무엇인가요...

  • 서춘성 2013.07.28 21:30 신고

    뭐 이러쿵 저러쿵 해도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잘 만든 웰메이드 영화다
    보는 내내 주인공들의 사연에 가슴 아팠고 그들의 화해와 성장에 같이 기뻐하고 웃음 지을 수 있었다
    실화라는 걸 영화 보고 나서야 알았다. 믿기지가 않을 만큼 멋진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강요셉(김요셉이 아님)님의 노래도 정말 좋았다. 이 영화야 말로 "내게 행복을 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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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오오 2013.03.16 16:42 신고

    정확히 말하자면 양아치짓 그만두고 싶다는게 맞죠 경찰로 돌아가고싶어하느거니까

  • 유앤아아이 2013.05.02 15:13 신고

    정말 저의 생각과 비슷한부분이 많네요 격하게 공감하고 갑니다 ㅎㅎㅎ
    윗분처럼 그부분은 전 다르게 생각한게..
    제생각에는 이자성이 아이가 생기면서 조폭도 싫고 경찰도 싫으니
    신변의 위협때문에 멀리 도망가고 싶다라고 느꼈거든요 ㅎㅎ

  • 대박 2013.07.08 21:16 신고

    어쩜 이리 똑똑하게쓰셨습니까ㅜ
    신세계를한번본뒤이영화가말하고자하는의도를파악하지못해힘들었는데정확하게짚어주셨네요
    다시한번봐야겠습니다감사합니다

  • ㅂㅈㄷㄳ 2013.08.11 20:16 신고

    말씀하신 일드 '언페어'는 무간도 리메이크 드라마입니다. 판권을 사서 드라마로 리메이크했지요.
    신세계는 무간도를 표절한 영화가 맞습니다. 무간도1,2를 완전 베껴 만들었죠. 그리고 앞으로 나올 신세계2도 무간도2와 똑같이 과거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네요. 박훈정감독의 전작인 '혈투'도 이미 표절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스토리가 흥미로워서- 선택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대다수는 아마도 하정우와 류승범 그리고 한석규를 류승완의 프레임에서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거기다 선녀 같은 전지현은 보너스로. (유일한 불안 요소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만) 나는 북한 소재의 영화를 싫어한다. 아니 영화뿐만이 아니라 드라마나 그 어떤 영상물이라 할지라도 '북한 소재의'라는 설명문이 있으면 관심이 뚝 식어버린다. 내가 반공주의 사상이 있기 때문인가? 이유는 단 하나다. 그동안 보여줬던 북한 소재의 영상물들이 지독히도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베를린 또한 스토리 자체만 놓고 보자면 재미가 없는 첩보물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기승전결이 거의 날림에 가깝고 유리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은 섬세하고 치밀한 전계 따윈 찾아보기 어려우니까. 액션 영화를 명작과 수작 그리고 졸작으로 나누는 것은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모두 만족시켰을 때, 볼거리만 있을 때, 아무것도 없을 때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기준에서 베를린은 명작은 아니라도 수작은 되는 작품이다. 화려하고 격하면서도 눈이 어지럽지 않아 좋았던 스타일리쉬한 카메라 워크에 녹아든 눈부신 액션 장면들. 그간 류승완 감독의 미덕을 촌스러움과 세련됨의 경계에 서 있는 성장형 액션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베를린은 후자의 느낌에 더 충실한 작품이었다.

 

 

 

특히 필자는 액션 전문 도구가 아닌 "이런 것도 살인 무기가 되다니!" 싶은 주변 사물을 이용한 생활형 액션을 좋아하는데 역시 류승완 표 액션은 이런 나의 기대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결국 영화를 보고 나온 나의 액션 게이지는 풀 배터리로 꽉꽉 충전되어 나왔으니 나머지를 포기하고 볼거리 하나만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더라도 그 나머지에 대한 미련이 그리 아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베를린은 볼거리 이상의 알맹이가 참 매력적인 작품이다. 한번 봤을 때는 그저 부실하고 상투적인 내용을 화려한 액션으로 무마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베를린의 매력이 눈앞에 아른거려 나를 다시 극장으로 이끌었던 비결은 볼거리가 아닌 영화의 그 부실한 이야기들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밍밍하고 상투적이기 짝이 없는 첩보 영화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던 베를린의 스토리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토리를 만드는 캐릭터의 관계 구도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물론 스토리 자체는 여전히 뻔뻔하리만큼 밋밋하고 심심하다. 하지만 그 부족한 내러티브의 결함을 팔 할 이상의 연기력으로 채울 수있었던 것이 베를린 호화 잔치의 미덕이다. 이 영화에서 하정우의 매력은 철조망을 올라타고도 눈부시게 작렬하는데 마치 기계 인간처럼 포커페이스를 달리던 그이가 유일하게 무너지는 인간적 표정을 발견할 때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순간 놓쳐버린 엘리베이터 속 적군에게 포위된 미모의 아내를 무너지는 눈으로 바라보던 그 애절한 눈빛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염려하는 아내의 목소리에 여전히 무심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다. 마음 달래고 있으라."라고 말하던 터프한 감수성은 여심을 달달달 흔들어 놓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왜 하정우, 하정우를 외치는지 이해가 갔던 장면들.

 

 

 

재미있는 것은 대놓고 멋지라고 만든 하정우의 표종성 이상으로 진짜 나쁜 놈 류승범의 동명수 또한 상당히 그 매력을 어필한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영화를 볼 때는 내내 하정우 앓이를 해댔지만 극장을 나오고 나서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것은 희한하게도 하정우가 아닌 류승범의 동명수였다. 진정한 싸움 고수는 많은 동작이 불필요하다고 했던가. 그저 한 손가락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 무림의 고수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초반 영화의 위압감은 혼자서 다 차지해 먹더니 점차 열광적인 미치광이가 되어가는 그의 모습에 도무지 화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장담하건대 베를린의 스릴과 갈등 그리고 설렘과 심지어 코믹적 요소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류승범의 동명수였다.

 

그저 일방적인 감정 분출의 캐릭터로만 묘사되는 동명수에게서 분노와 광기 이상의 미묘한 디테일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류승범의 섬세한 연기력 때문이었다. 특히 베를린은 총성이나 깨지고 터뜨리는 소리 등 액션에 필요한 음향 하나만큼은 타격감이 느껴질 정도의 효과가 탁월한데 희한하게 인물의 대사 처리만큼은 관객의 피로함을 요구할 정도로 제대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거기다 자막조차 존재하지 않는 북한말이 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대부분의 배우들이 웅얼거리는 소리로 엉터리 북한말을 구사하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한둘이 아녔던 것이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류승범의 목소리만큼은 제대로 들렸고 북한말 또한 배우들 중 가장 자연스럽고 안정적으로 구사했다.

 

 

 

제3자가 바라보는 차단된 시점의 인물을 묘사하면서도 동명수의 미묘한 감정선을 표현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미스터리를 느끼게 했다는 것은 류승범의 탁월한 캐릭터 묘사에 있었다. 자신보다 무엇이든 앞서 간 표종성을 동경하면서 또한 분노하는 동명수의 갈등을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몇 가지 장면에서 섬세하면서 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련정희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이야. 단란하구만."라고 비꼬는 그의 목소리와 다소 징글맞게 속옷을 문질러대던 장면의 능글맞은 얼굴. 눈앞의 련정희의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게 만들었던 동명수의 대사. "내래 이래서 형수를 좋아한대니까." 류승범이 전지현을 지칭하는 "형수"는 아만다의 "파파" 와 더불어 영화 속 끌리는 호칭 베스트. 흐흐. 대놓고 멋진 표종성(하정우 분)과 이러면 안 되는데 멋진 동명수(류승범 분)의 애와 증을 오고가는 미묘한 관계 구도는 포착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기쁨의 포상이다.

 

 

 

특히 표종성의 기지로 일이 어그러지고 총격전이 펼쳐졌을 때 순간 류승범이 보여준 표정은 그가 얼마나 이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베스트였다고 말할 수 있다. 목숨이 노려지는 긴박한 상황에 터뜨려지는 총성을 듣고 순간 그거 터뜨린 짜증 섞인 얼굴은 이러다 죽겠네가 아니라 저 자식 때문에 일이 꼬인 데에 대한 불만이 먼저 느껴지는 표정이라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후 저 에미나이 하나만큼은 끝을 보리라는 듯 광기 어린 눈으로 허공에 기관총질을 해대던 동명수의 모습 또한 같은 의미에서 매력적이었다.

 

 

 

돌이켜보면 북한 소재의 영화 베를린이 내게 흥미로웠던 이유 또한 이와 같다. 북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나라와 나라의 사상이 개인의 취향을 침범하지 않았다는 점. 그저 동명수와 표종성, 개인의 이념이 분쟁이 되어 하나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내게 몹시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북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전혀 계몽적이지도 않고 사상적이지도 않았다. 대 배우 한석규가 불필요하게 낭비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의 캐스팅이었기에 남과 북의 접전이 필요치 않은 이 영화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에너지를 빼고 감정 과잉 없이 침착하게 관조하듯 연기하는 전지현의 연기력 또한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영화 세븐이 떠오를 정도로 매력적이다. 스카이폴이 그랬듯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하나만 봐도 영화 하나 건졌다는 느낌이랄까.

 

북한을 소재로 하면서도 집단의 사상이 아닌 개인의 이념을 엑기스로 뽑아낸 매력적인 영화 베를린. 영화 내부에서는 시종 배신이 꿈틀대도 적어도 하정우와 류승범의 매력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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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스필버그라고 불리우는 길예르모 델 토로. 그의 전적은 꽤나 화려합니다. 쿵푸팬더2와 판의 미로. 호빗과 가디언즈 그리고 마더앤 차일드까지.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판타지물을 넘나들며 상당히 많은 작품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손을 댔었죠. 기획을 하기도 하고 직접 프로듀싱을 하기도 하며 때론 각본을 제공하고 심지어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장르를 넘나들며 여러 가지 재주를 선보인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독특한 이력의 감독이죠. 하지만 이 감독의 특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역시 공포물을 기획할 때가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공포물에서 흔한 패턴이 되어버린 공포의 정석을 뒤따르지 않고 자신만이 기획한 서글픈 공포의 근원을 쫓아가는 차분한 시선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공포를 조성하는 크리쳐들도 신선했고 그 공포를 조장하는 감정 또한 남달랐습니다. 제작에 이어 연출과 각본까지 직접 담당한 판의 미로나 그 초석이 되는 악마의 등뼈와 같은 작품을 살펴보면 이 감독이 얼마나 남다른 감성을 공포로 이끌어내는 천재적인 감수성의 소유자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감독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은 이미 알려진 작품들이 아닌 '줄리아의 눈'이라는 스페인산 마이너 영화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감독은 '길예르모'가 아닌 '기옘 모랄레스'였습니다만 길예르모 감독이 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의 홍보 방향은 판의 미로와 길 예르모였죠. 비록 본인이 선두지휘해서 만들어낸 작품은 아닙니다만 이 줄리아의 눈을 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남다른 감수성의 공포를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영화 '마마'의 홍보 방향은 역시 줄리아의 눈의 수순을 밟고 있더군요. 분명 길예르모는 이 작품의 연출가가 아닌 제작자일 뿐임에도 온통 이 영화를 소개하는 말은 '길 예르모' 감독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저조차도 길 예르모라는 이름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으니 말 다했죠.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의 3분짜리 단편 영화를 보고 그에게 함빡 반했다는 길 예르모 감독의 찬사를 믿고 그가 선택했던 또 하나의 신선한 공포 '줄리아의 눈'의 산뜻함을 기억하며 마마를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마마- 라는 제목과 달리 이 영화에 등장하는 부모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잔혹합니다. 별거 중이었던 아내를 총으로 쏴죽이고 어린 딸 둘을 납치해서 설원을 달리는 이 무책임한 아버지는 심지어 이 불쌍한 아이에게 직접 총구를 겨누기까지 하는군요. 순간 그의 총을 빼앗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이름 모를 크리쳐.. 세월이 지나 아이들은 그것을 '마마'라고 부릅니다. 5년여의 세월 동안 아이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가를 스쳐 지나가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 올려놓은 아이들의 서툰 그림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신선함을 느꼈던 유일한 한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두 발의 소녀가 점차 네 발이 되고 동생은 피를 토하고 그 모습을 울상으로 바라보는 언니의 그림이 많이 슬프고 가혹하더군요. 아이들은 5년간 마마의 체리를 먹으며 점차 정서가 차단된 동물에 가까운 형태를 띠며 생존하게 됩니다. 그리고 5년 뒤에서야 숲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주온이나 링과 같은 일본 특유의 음습하고 불편한 저주와 맞닿아있습니다. 귀신과 인간의 교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지요. 한을 풀어주면 성불하는 우리네 착한 귀신이나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해코지는 안 하는 마인드가 애초에 통하지 않는 미친 마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의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인간들의 해결사 노릇이 그야말로 뻘짓으로 느껴져 지루하기만 합니다. 3분짜리 단편 영화를 100분으로 늘리면서 이만큼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겠지만요.

 

 

 

여러 편의 영화를 함께 보고 있는 듯한 진부함을 느끼는 것 역시 마마에서 느낀 불만이었습니다. 장화홍련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자매의 잔혹 동화라서만은 아니었지요. 어떤 장면에서는 헬렌 켈러가 떠오르기도 하고 늑대소년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합니다. 식스센스가 엿보이기도 했으며 이 장면은 분명히 사다코의 공포의 비디오 같았고 심지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반가웠던 카메라 플래시 씬도 역시 줄리아의 눈에서 이미 써먹었던 아이템이지요. 물론 영화 마마가 이 모든 영화를 차용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만큼 누구의 머릿속에나 한 번쯤 나왔을 만한 이야기를 그대로 교집합 해놓은 진부함의 결정체라는 뜻이지요. 심지어 공포의 크리쳐는 정말 이제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싶은 주온과 엑소시스트의 허리 뒤집은 각기 귀신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게 제겐 공포보다 두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아쉬움만 남았던 작품은 아닙니다. 진부함의 일색이라고는 했지만 공포를 조성하는 방식만큼은 기존의 공포영화와는 다른 기발한 창의성이 느껴지는 부분이죠. 아마 길 예르모 감독이 반한 것 역시 이런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을만큼요.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어느 하나 아쉬운 부분 없이 매끄럽게 맞아떨어집니다. 릴리 역의 어린 배우는 워낙 미숙해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것인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미숙해 보이는 부분마저도 연기였던 것을 알고 나서는 무척이나 감탄했었죠. 길 예르모 감독이 손을 댄 작품들이 다 그러하듯이 공포와 판타지물이 결합된 신비스러운 분위기 또한 이 영화만의 독특한 장점입니다.

 

 

설치류는 새끼를 낳고 그 환경이 새끼를 키울만한 적합한 곳이라 판단되지 않는다면 새끼를 그대로 잡아 먹어버리는 습성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약체로 태어난 새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지요. 동물이라서 가능한 행동이라구요? 우리는 이미 많은 기사 속에서 접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선택한 자살을 아이에게까지 강요하며 죽음까지 함께하려고 하는 이기적인 부성애와 모성애.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나의 만족을 위해 아이를 놓지 못하는 이기심이 만들어낸 처참한 비극을요. 모성이 집착이 되는 순간 아이는 소유물이 되고 죽음마저 함께해야 만족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미친 엄마 유령의 경우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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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빠져나오며 흥분된 마음으로 잭 리처의 평을 검색하고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잭 리처를 보게 된 건 마침 그 시간에 영화가 보고 싶었고 근처 상영관에 잭리처 이외의 영화가 상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계획에 없었던 영화였기에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독설을 내뱉고 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그저 웬만큼 성공한 영화는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알아서 정보를 대령하는 무보수 알바들이 넘쳐나는데 이 영화는 예상외로 참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죠.

 

탐 아저씨의 이름값은 못하는 영화인가보구나 라는 추측 정도를 안고 영화를 관람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별 기대감은 없었지만 선입견은 가지지 않은 다소 최적의 상태로 잭리처를 관람할 수 있었네요. 그러니까 다행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이 영화에 쏟아지는 악평을 알고 나서 관람했다면 악평을 받은 이유를 내내 생각했을지도 모르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를 저주받은 걸작이라 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1~2점에 만족해야 할 그 정도의 졸작은 아닙니다.

 

 

 

정작 미국에서 어떤 어감으로 받아들여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언제부턴가 '잭'이라는 이름은 고독의 동의어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본 영화 속 '잭'들은 그랬으니까요. 심연의 해결사처럼 느껴지지만 늘 독고다이로 문제를 해결하고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는 것은 물론 그들 자신의 실체조차 없어 유령처럼 부유하는 신비로운 떠돌이들. 심지어 만화 속 캐릭터인 '잭 프로스트'도 그랬는걸요. 나쁜 잭이건 좋은 잭이건 제가 봤던 잭들은 하나같이 지독한 외톨이였습니다.

 

톰 크루즈의 '잭 리처'는 이런 잭의 이미지를 하나로 취합한 듯한 인상을 주는 인물입니다. 핸드폰과 이메일, 자동차도 없는 잭 리처는 심지어 가진 옷도 한 벌 뿐인 단벌 신사입니다. 그는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까요. 집도 신분증도 면허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방랑하는 잭 리처는 흡사 부유하는 유령 같습니다. 그저 그는 잭 리처라는 사상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잭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 스스로 현장에 나타나는 것.

 

영화는 대낮 강변을 걷는 시민들을 향해 발포된 여섯 발의 무차별 총살 살인의 피의자 '제임스 바'의 요청으로 시작됩니다. 변호사 위임권을 내려놓으라는 검사와 경찰의 압력을 두고 침묵을 지키던 그는 내밀어 진 종이에 싸인 대신 다른 이름을 쓰죠. "잭 리처를 데려와" 하지만 실체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령 같은 잭 리처를 무슨 수로 그의 앞에 대령할 수 있단 말입니까. 골머리를 앓는 그들 앞에 마치 짠 것처럼 등장한 잭 리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을 연상케 하는 영화의 사전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잭 리처는 몸이 아닌 머리를 쓰는 영화입니다. 필요한 정보는 한번 들었던 것이라도 마술처럼 암기하며 숨소리만으로 상대를 파악하며 주어진 증거물 몇 개로 마치 그 장소에 서 있었던 듯 사건 현장을 되새길 수 있는 그의 천재성은 차라리 셜록에 더 가깝지요. 물론 셜록만큼의 교만에 가까운 천재성을 휘두르는 캐릭터가 아니다 보니 그 추리력마저 밋밋하게 느껴질 여지도 있습니다. 톰 아저씨의 셜록은 꽤나 친절하거든요. 잭 리처는 톰 아저씨의 사려 깊은 셜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이도 저도 아니라는 인상을 받는다면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질 만한 영화겠지요.

 

묘하게 아날로그의 풍미가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연출 또한 상당히 투박해서 가공 이전의 날것 상태라는 생각이 드는데 무방비한 편집으로 방관하듯 내버려둔 후반부의 액션신이나 배경음 하나 없이 꽤 긴 시간을 투자하는 자동차 추격신은 관객을 시험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네. 이 영화는 멜로디가 거의 없습니다. 멜로디 없는 액션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는 것은 꽤 인내심이 뒤따르는 일이지요. 이런 부분을 신선하게 느낀다면 영화가 꽤 흥미롭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오락적 재미를 반감시키는 투박한 연출에 대한 지리함만 느껴질 뿐이겠죠. 저야 1퍼센트 취향의 전자였지만 후자의 평이 영화를 채우는 대다수의 소감이 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투박한 연출의 무뚝뚝한 인상과 달리 이 영화는 의외로 세련된 유머를 구사하는데요. 친절한 성품의 잭 리처가 간혹 말이 안 되게 뻔뻔한 짓을 하는데 일관적인 영화의 분위기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은 잭 리처의 개그 감각은 손 꼽을만합니다. 예를 들어 제발 옷 좀 입어요!를 외치는 블론디 변호사에게 한 벌 뿐인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다가서는 장면에서 그녀의 오해만큼이나 우리는 당연히 키스를 상상하겠지만 잭 리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밖으로 나갈 것을 종용하죠. 이상하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은 잭 리처라는 인물에게 기본적인 호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누가 봐도 쫓기는 신분의 잭을 누구 하나 고발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은 물론 오히려 쓰고 있던 모자까지 내밀어 그를 보호해주는 것은 웃음이 절로 터지는 장면이었지요. 이후 나란히 앉은 버스 안에서 쫓기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오히려 그를 도와줬음에 뿌듯한 미소를 짓는 노인의 얼굴은 정말.

 

 

영화 초반 별 의미 없이 봤던 과녁의 움직임이 실은 섬세하게 계산된 관객에게 제공한 정보라는 사실 또한 인상적이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전하는 잭 리처의 선택 또한 산뜻하고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최근의 히어로물에서 유행처럼 퍼지는 패배주의 결말에 질려버린 분들이라면 이 영화 주저 없이 선택해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007과 셜록을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잭 리처의 캐릭터가 꽤나 마음에 들었기에 시리즈물로 계속해서 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영화의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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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24 07:39

    비밀댓글입니다

    • 구성이 너무 단조롭고 투박해서 지루함이 느껴질만 했어요.ㅎㅎ 저도 질척한 하품을 세번 정도는 했다는 ㅋㅋ 전 오히려 탐크루즈가 좀 나이 들었다는걸 느낄때 임메아리를 닮은 어리디 어린 샌디랑 함께 있으니 나이가 확 느껴지더군요.흑흑 ㅠㅠ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뭐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친구를 결정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한다는 취향은 그저 소녀 취향의 고전 소설 하나를 함께 좋아한다는 공감대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 큰 세계관을 갖게 된다.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목가적 정경의 공간을 사랑하고 소녀들의 다소 과장되지만 엄숙했던 생명마저 담보로 내건 우정의 맹세를 공감하고 무엇보다 어디 하나 예쁜 구석 없는 수다쟁이 빨간 머리 소녀의 사랑스러움을 이해한다는 이야기다. 그 사실 몇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인터넷이 보급화되고 얻은 한가지 수확은 내가 어린 시절 사랑했던 추억을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범위의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충족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내 소소한 취향을 함께 공감하고 있을 줄이야. 그래서 나는 보다 많은 빨간 머리 앤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우연히 열어젖힌 홈페이지나 블로그의 프로필 사진에 창문 가에 턱을 괸 주근깨 말라깽이 아가씨가 눈에 보일 때면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빨간 머리 앤 사랑을 듣다 보니 한가지 석연치 않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분명 빨간 머리 앤은 캐나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Anne of Green Gables>가 그 원작이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앤의 이미지 대부분은 바로 지브리의 TV판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이었다는 점이다. 무슨 차이냐고? 그린 게이블즈의 앤을 빨간 머리 앤으로 기억하는 사실부터가 이 작품을 접하는 첫인상의 모든 이미지를 상징하게 되지 않을까. 인어공주 하면 이제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아닌 디즈니의 에리얼-물고기를 닮은 얼굴의 빨간 머리 소녀와 언더 더 씨를 떠올리는 것처럼. 노란색 보풀려진 소매에 에이프런 같은 하얀 겉치마를 두르고 치렁치렁한 까만 머리를 8자 모양으로 땋은 맹한 얼굴의 다이아나와 툭 떠놓은 순두부에 리본 메어준 모양새로 생겨난 미니메이의 깜찍한 얼굴은 모두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비록 디지털화가 보급화 되지 않은 시대라 할지라도 동심 파괴에 맞먹는 위화감이 들었던 디즈니식 결말과 달리 지브리의 빨간 머리 앤은 오히려 원작보다 더욱 목가적이고 소박한 앤 특유의 소녀 감성을 정확히 살려낸 작품이라는 점이다. 교실로 들어가기 전 점심시간을 고대하며 차가운 시내를 자연 냉장고 삼아 보관한 우유 담긴 유리병이나 앤이 꿈속에서까지 입맛을 다신다는 초콜릿 캐러멜을 다이아나의 소꿉놀이 접시 위에 늘어놓던 장면. 엄격하면서도 묘하게 자상함이 느껴지던 해설가의 목소리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듯한 앤 특유의 OST까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앤에 호감을 느끼는 모든 추억은 캐나다의 몽고메리 여사와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 그리고 대한민국 성우들이 심어준 앤의 목소리까지. 그 삼국의 풍요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빨간 머리 앤이 다른 어떤 콘텐츠도 아닌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으로 극장에서 상영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마음은 그 어떤 기대중의 할리우드 대작들보다 화려하게 부풀었다. 혹여 이 작품이 막을 내릴까 서둘러 극장을 찾아 앤 만큼이나 말이 많은 뒷좌석의 초등학생 두 명과 데려온 아이보다 더 큰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한 상기된 얼굴의 주부와 함께 추억을 상영했다. 아아.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은 초록색 지붕 집의 부엌을 바라보는 심정이라니. E자가 끝에 붙은 그녀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앤을 만나는 것보다 더 뭉클해오는 이 감정은 애니메이션의 빨간 머리 앤이니까 생길 수 있는 느낌이겠지. 마릴라의 부엌 안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굴뚝이 달린 초록색 오븐의 반가움. 그 속에서 설거지를 위한 뜨거운 물을 달구어내고 달콤한 브라우니를 구워냈었지.

 

 

 

물론 온전히 극장판의 퀄리티로만 놓고 보자면 영화, 빨간 머리 앤 : 그린게이블로 가는 길(2010)의 완성도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TV판 빨간 머리 앤을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이미 2년 전 일본에서 개봉된 빨간 머리 앤은 전혀 새로울 것 없이 그저 6회 분량의 티비판 애니메이션을 스크린 위에 올려두었을 뿐이다. 아마 엔딩을 접하게 되는 순간 "아..."하는 탄식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토록 추억이 건재한 작품을 섣불리 손을 대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르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추억을 있는 그대로 재건시켜놓았다는 칭찬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더빙판 성우의 목소리를 이전의 KBS 성우 군단들로 채워두지 않고 갈아엎어 버렸다는 점인데 따로 노력을 기울였던 부분이 오히려 화로 작용하게 된 케이스다. 그저 추억에만 의지하는 이 작품에서 정경애 선생의 음 이탈한 꾀꼬리스런 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애석한 상실감이다.

 

 

 

제목 그대로 새삼 앤이 그린 게이블즈로 가는 길을 다시 보고 있으려니 참 이 아가씨 비참한 삶을 살았다. 퍽이나 슬픈 이야기다. 앤을 다시 고아원으로 데려다 놓기 위해 마릴라 아주머니와 함께 달리던 마차 위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마릴라의 말에 뛰쳐나가서 한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그 엄격하고 고지식한 마릴라가 토라져 있는 앤의 일탈을 나무라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가슴 아렸다. 한참 후에 돌아온 앤은 특유의 밝은 얼굴로 "투정부려서 죄송해요. 아줌마한테 제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라고 웃는다. 슬펐다.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앤의 미소가 이렇게 슬프고 거룩한 것이었었나.

 

이윽고 앤의 성장 배경이 등장한다. 교사 출신의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명의 아주머니댁을 거쳐 가며 살아갔던 앤이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술주정뱅이였고 아이들은 여럿이었다. 마릴라는 조심스럽게 그 아주머니들은 너에게 잘해주셨니? 라고 묻는데 순간 깜짝 놀란 앤의 대답에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잘 해주려는 마음은 있으셨어요. 분명. 마음만 있으면 잘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잖아요." 순간 그렇게나 많이 빨간 머리 앤을 보면서도 한 번도 흘려보지 않았던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앤이 자신의 괴로운 성장 배경을 설명하는 목소리 위에 덧입혀진 해설가 아저씨의 목소리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녀의 말은 이따금 다른 곳으로 새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가혹한 과거를 이야기하는 앤에게 있어 휴식 같은 것이었다."라고.

 

 

 

앤은 분명히 몽상가에 수다쟁이다. 하지만 그 많은 상상과 수다들은 마치 부잣집 아가씨 세라 크루가 비참한 환경을 '하는 셈 치고'라며 상상으로 덮어버렸던 것처럼 괴로운 순간을 잊기 위해 만든 그녀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이제서야 알고 나니 이 작품이 다시 보이게 됐다. 소설 속에서 앤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갖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모습까지 그려지는데 그녀의 상상 속에서도 검게 물들일 수 없었던 빨간 머리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풍성하게 아름다운 갈색 머리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더이상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아가씨가 아니었던 앤은 수다도 상상도 줄어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어른이 된 앤이 더이상 결핍된 현실을 상상으로 메꾸지 않아도 될 만큼 만족스러운 환경에 놓였다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수다쟁이 몽상가라고 생각했던 앤에 대한 내 나름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저 애이번리의 풍요롭고 소박한 목가적인 정경만을 동경했던 나에게 오랜만에 돌아온 앤의 성숙한 인품은 새삼 그녀에게 반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매력이었다. 그저 동경하기만 했던 소설 초록색 지붕 집의 앤이 이렇게 슬픈 이야기였을 줄이야!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만화 주제가의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럽다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앤을 그 송곳 같은 아주머니의 댁에 내팽개쳐두지 않고 다시 초록색 지붕 집의 앤으로 데려와 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고마워요. 몽고메리. 고마워요. 마릴라.

 

글의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자료의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와 신문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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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2

  • 2013.01.15 08:35

    비밀댓글입니다

  • 정말 어릴적에 봤었는데..
    아직도 어느정도 기억이 나는군요 ^^

  • 라합 2013.01.15 11:47 신고

    정말 댓글을 남기지 않을수가 없네요..
    공감×100입니다..
    그리고 정말 반갑고 고맙네요..
    님 글을 매일같이 들어와 읽는 애독자이면서도
    생활에 쫓겨 여유가 없다보니 마음으로만 감사할 뿐 표현을 못했었네요..
    앤 열권 전집을 모셔놓고 틈틈히 읽는답니다
    저 역시 몽고메리와 마릴라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시간에 쫓겨 이만 줄일게요..
    담에 인사 또 드리겠어요..

    • ^^ 이렇게 앤으로 얻은 공감대를 또 키워보네요. 소설 속의 앤도 참 매력적이고 재밌죠? 나중에 앤이 동네 사람들 개화하는 느낌으로 성장해나가는데 ㅋㅋ 그것도 나름 매력적이더라구요.

  • 흥미롭게 잘 보고 갑니다.
    아무쪼록 평안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린우 2013.01.15 14:41 신고

    반갑네요. 앤의 모습과 초록지붕집을 발견한 순간 가슴에 그리움같은 먹먹함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기쁨이 밀려와요. 이제는 우리딸과도 앤을 이야기하고 함께 캐나다에, 앤이 태어난 곳에 가보자고 약속했어요. 앤은 정말 눈물나게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워요.

    • 일본 애니메이션의 큰 인기로 캐나다에 앤 관광용 상품이 많이 만들어졌나보더라구요. 저도 꼭 프린스 에드워드섬을 방문해보고픈 심정입니다. ㅠㅠ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 소설을 분명 보기는 했는데, 앤이 성장한 이후의 이야기는
    [작은 아씨들]과 기억이 마구 뒤섞여 있어요.
    정확하게는 [작은 아씨들]의 둘째의 스토리와 말이죠...-_-;
    결국 기억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분명히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라는 반증...
    그렇다고 이 소설을 다시 읽자고 마음먹기에는 이미 취향이 너무 하드보일드해져서.
    아, 감수성 풍부했던 중고딩 시절이여~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나~

    • 작은 아씨들의 둘째 조와 앤이 비슷한 면이 있긴 합니다.ㅎㅎ 둘다 책을 좋아하고 몽상가 기질이..그런데 저는 조는 좀 신경질적이고 약간 이기적인 면도 있어서 앤 성격이 더 끌리더라구요.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조와 에이미 두 여자와의 썸싱이 있는 로리 도련님은 우리의 베일신이 연기해주셨죠 ㅎㅎ

  • lyre 2013.01.15 21:00 신고

    아아..사랑스런 앤. 잊고있었던 옛추억이 방울방울 ㅠㅠ. 이 글을 읽고나니 빨간머리 수다쟁이 앤이 넘 보고싶네요.

  • 유지연 2013.01.15 23:57 신고

    아저씨 돌아가실때 어찌나 울었던지요.... 20년이 넘은 기억인데도 해설하시는분이랑 앤. 그리고 다이아나, 마릴라 아줌마 목소리가 음성지원되네요 ㅎㅎ 추억을 다시금 되뇌이게 하는 좋은글였습니다

    • 저희 동네에서는 더빙판을 방영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일본 성우 목소리로 보게 되었는데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예전 KBS 성우들의 목소리가 그립더군요.ㅠㅠ 특히 저는 해설가 아저씨 목소리랑 앤 ost가 어우러지는 느낌이 참 좋았세요.

    • 행인 2013.09.03 02:59 신고

      아 저두요~오늘 다시 봤는데 인생을 살아보고 나서 다시 보니 슬픔이 더하네요.
      돌아가신 아빠 생각도 나고,매튜가 죽기 전에 앤에게 다정하게 넌 내 딸이다라고 말한 장면이랑 연결지어지니까 그 애틋함이...ㅠ

  • 옥수수알 2013.01.16 23:36 신고

    저 캐나다 살아요!! 프린스에드워드섬... 비추입니다 가보고 환상이 깨졌어요... 저도 지브리판 빨간머리앤 인상깊게 봤어요 소공녀랑 작은아씨들이랑... 책 '큰 숲속의 작은 집'에서 특히 새하얀 버터밀크에 당근물을 들여 노란버터를 만드는것과 흰 눈위에 단풍나무 수액을 부어 황금빛 사탕 만들어 먹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 하루닷 2013.02.13 11:45 신고

    10권짜리 앤 시리즈를 읽고 좋아하던 부분만 주로 또 읽고 읽던 기억이 나네요. 1권도 열심히 읽었지만, 그보다는 앤이 점점 성장하면서 겪는 부분들을 더 많이 읽어서 앤 하면 저는 귀여운 소녀가 아닌 여전히 소녀처럼 풋풋한 감성을 지녔지만 어른스러워지기도 한 여인이 떠오른답니다. 하긴 상당히 오랜 그녀의 삶을 저는 책을 따라 읽으며 상상해온 셈이니까요. 그래서 그린 게이블즈에 오기 전에 혹독한 삶을 살았던 (그러나 갓난아기때는 일찍 돌아가신 것말고 달리 흠잡을 때 없는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기억이 아닌 이야기로 그렇다고 알고 있는) 앤이 여전히 밝고 긍정적인 것이 좋았고, 그런 앤이 공부를 잘 하고 훌륭한 재능을 키워가는 것이 (교육수준이 낮아서 그럴 수 있겠지만, 고교를 나오면 교사가 될 수 있고 대학을 나오면 바로 교장이 되는^^) 좋아보이다가 그래도 그 섬에서는 가장 공부를 잘 한 앤이 결국 택한 것은 많은 아이의 현명한 어머니이자 남편을 내조하는 주부라는 것이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했어요.(뭐 읽었던 시절이 직업을 통한 자아성취와 사회적 성공을 한 여성에 대해 더 동경하던 시절이었고 뭐랄까 나이를 먹어가는 앤의 재능이 낭비되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지금은. 사실 앤이 그냥 공부를 잘 한 정도일 뿐, 스스로 작가의 능력이 그녀의 어린 제자이자 시인이 된 폴 정도가 아니어서 그런 폴이나 앤의 연극을 함께 하며 스스로의 자질을 발견해 멋진 여배우가 된 두명의 제자라도 잘 키워냈으니 그게 어디냐는 생각이 듭니다만.. 아무튼.)

    게다가 그녀의 자식들을 전쟁에 내보내게 되는데.. 마지막 10권은 앤의 시점이라기보다는 앤의 딸의 시점에서 쓰여져서 그런지.. 앤과 달리 좋은 부모와 그런 대로 풍족한 환경에서 앤처럼 꿈을 키우며 커간 아이들이 전쟁터로 떠나거나 남아서 기다려야하는... 이야기들이 안타까왔답니다.

    제가 읽을 때는 아무래도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그걸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 번역판으로 읽었었는데 요새 나오는 앤은 좀 더 제대로 된 번역판인지 궁금하네요. 작가의 원 영어판도 청소년용으로 딱지가 붙은 만큼 영어가 그닥 어렵지 않아 영어 공부용으로 읽을만 하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 만화들은 워낙 좋아하지만 앤은 다 찾아본 것이 아니라 역시 저에게는 소설 책(번역판이든 원본이든)이 더 기억에 남고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림 속의 앤보다는 번역판 삽화 속의 앤 (이 앤은 점점 성장하니까요)이 더 기억에 남고 그러네요.

    앤이 힘든 어린 시절을 살았지만 사실 또 살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서 역시 (비록 자식들을 전쟁에 보내는 힘든 시기도 겪어야 했고 아마 그것이 1차대전이었을테니 나중에 손주들마저 2차대전에 나가는 것마저 보았어야 했을 슬픈 세대일지도 모른다고 해도) 앤은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 마음속의빛 2013.08.03 19:23 신고

    덕분에 그린 게이블즈의 앤 소설 10권 전집을 빌려 읽고 있답니다.
    옛 추억의 애니메이션(더빙판) 또한 운 좋게 구할 수 있어서
    소설 1권의 경우 책을 좀 읽다가 그 부분을 만화로 다시 봐보기도 하고 있어요.

    정말 사랑스러운 빨간머리 앤이에요!!

  • 행인 2013.09.03 02:54 신고

    앤 디비디를 구해서 처음부터 아껴가며 다시 봤는데 마지막편까지 보면서 정말 엉엉 울었어요.
    일상에서 느끼는 소박한 아름다움 즐거움 우정과 작은 갈등들을 풀어나가는 과정 등등 앤의 성장기로 가슴 훈훈하고 인물들의 따뜻함이 이렇게 공감되고 감동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에피는 매튜의 죽음과 그 이후의 이야기인데 애틋함과 슬픔이 어찌나 깊이 파고들던지..그러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한 앤의 모습에 감동까지...작품 전편에 거부스럽지 않게 교훈도 잘 녹아있고...
    처음에는 옛날 만화 특유의-또는 얀이라는 캐릭터의 과장스로움과 수다스러움이 약간 유치하기도 하고 간간 손발 오그라드는 장면들도 많았지만 중간 중간 너털 웃음도 터뜨리게 하고 미소고 짓게 하고 중반 이후에는 정말 앤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더라구요.
    그냥 옛 추억을 떠올리고 싶어서 디비디 구입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감동적이고 맘이 따뜻해질 줄은 몰랐네요.
    검색하다가 생판 모르는 님의 블로그까지 오게 되고 글도 남기는데 님의 글을 읽으면서 또 공감돼서 울컥합니다. 앤을 같이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유대감이 생기네요 ㅎ
    근데 어릴적 읽었던 책에서는 후반에 길버트와의 로맨스도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애니에서는 그 부분은 없고 그냥 우정을 회복하는 것이 몇 장면 나와있네요. 다시 책을 읽어봐야지.
    암튼...전편을 다시 보시기 강추합니다.
    며칠에 걸쳐 아껴가며 야금야금 봤는데..어쨌건 정말 정말 좋네요

  • 마음속의빛 2015.08.18 14:28 신고

    길버트와의 로맨스... 결혼 후 첫 유산.... 힘겨운 출산에 세계대전까지...

    소박한 시골마을 이야기에서부터 그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 게 놀라웠던 소설이었네요...

 

빨간 당구공 이야기를 아시나요? 필자의 초딩 시절은 이상하리만큼 낡은 괴담들이 떠돌아다니던 해였다. 그 유명한 홍콩할매 귀신이며 혈액형별로 입을 찢는다는 빨간 마스크의 이야기까지. 유머인지 공포인지 신파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도시 괴담의 한 종류로 메아리 돌기도 했었는데 그중 유행했던 기묘한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빨간 당구공의 비밀'이었다.

 

내용은 뭐 어이없을 정도로 심플하다. 어느 수험생이 느닷없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빨간 당구공 3개만 구해주세요. 성적을 올려 보일게요.' 아버지는 빨간 당구공과 시험 성적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의아했지만 물에 빠진 지푸라기라도 주워보자는 고3 부모의 마음으로 빨간 당구공 세 개를 구해주었다. 부탁한 빨간 당구공 세 개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소년은 신기하게도 성적을 올려 부모를 기쁘게 했다. 빨간 당구공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었다. 이후에도 소년은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아버지에게 역시나 빨간 당구공 세 개를 구해달라고 했고 역시 성적은 올라갔지만 이유에 대해서는 결코 함구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아버지는 자식의 성적을 떠나 빨간 당구공 세개의 비밀이 몹시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재촉해도 아이는 답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토록 고대했던 대학에 합격한 어느 날 불행히도 아이는 교통사고에 몸을 다쳐 중태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아이의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서도 아버지는 이대로 아이가 떠나가면 결코 들을 수 없는 빨간 당구공의 비밀이 궁금해졌다. 아이에게 재촉하자 소년은 아버지의 귀에 대고 빨간 당구공의 비밀을 알려주었고 그 상태로 숨졌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아버지는 자식이 죽었다는 슬픔보다도 빨간 당구공의 비밀이 너무 우스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고 아버지를 운전해가던 택시 기사는 물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웃긴 것이냐고. 겨우 웃음을 참으며 기사에게 빨간 당구공의 비밀을 알려주던 아버지는 이윽고 돌진해오는 차에 부딪혀 죽어버렸다. 그리고 빨간 당구공의 비밀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라는 이야기다.

 

멀고 먼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말하기 전에 느닷없이 전혀 연결고리도 없는 이 황당무계한 어린 시절 괴담을 꺼내는 것은 내가 이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이 황망한 감정이 초딩때 들었던 빨간 당구공의 비밀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빨간 당구공의 비밀을 듣고 나면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한다. "아니 그래서 뭐 어쩌라고?"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막이 내린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도 이와 동일했다. "그래서 뭐?!"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중심을 이끄는 것은 불교의 윤회사상이다. 전생의 악연이 후생의 인연이 된다. 현생을 만든 것은 전생의 선택 때문이다. 이른바 업이라 불리는 불교용어인 카르마가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거대한 상상력을 완성시킨 주춧돌이 되는 셈이다. 이야기는 500년의 돌고 도는 생애를 다룬 만큼 퍽이나 많은 인생들이 존재하는데 어느 백인 변호사의 인생을 바꾼 흑인 노예의 첫 번째 스토리가 1849년 태평양 항해 위에서 그려지며 1936년의 벨기에와 영국에서는 어느 아름다운 얼굴의 청년이 그의 재능을 늙은 작곡가에게 착취당하는 모노톤의 유럽을 담아낸다. 한편 1974년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종군기자였던 아버지를 닮은 열혈 기자 루이자 레이의 액션 스릴러가 펼쳐지며 2012년 현재 영국 런던에서는 가족의 음모로 요양원에 갇히게 된 어느 노년의 출판업자가 폐쇄적이고 강제적인 불합리한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고 동료 노인들과 탈출을 펼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2144년의 뉴서울은 100년 뒤 가라앉을 해수면으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복제인간 손미의 혁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문명이 사라지고 난 100년 후의 미래는...

 

 

 

 

역사, 드라마, 스릴러, 코미디, SF 등을 이 하나의 영화에서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여섯 개의 이야기가 모두 나름의 완성도를 갖고 있으며 따로 각개의 이야기로 등장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실제로 이중 몇 개의 이야기는 독립된 공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작품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지경이니까. 하지만 여섯 개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해서 여섯 배의 완성도가 느껴졌다는 것은 아니다. 각개의 존재만으로도 나름의 완성도와 개성을 갖추고 있는 여섯개의 이야기들이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 하나의 영화에 모여서 조금씩 접합점을 찾아가며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쾌감이 이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꽤나 산만하고 허망하다. 먹어도 먹어도 만복감이 느껴지지 않는 예식장 뷔페 같은 영화였다고 말하면... 너무 심한 비유인가?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타임지 선정 2012 최악의 영화 (미국에서는 이 영화의 개봉일이 작년이었다) 에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필자 역시 이 영화를 비판에 가까운 논조로 비평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작년 한 해 최악의 영화 1위를 차지할 만큼의 졸작이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이 영화가 최악의 영화 1위를 차지하게 된 경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하게 했던 영화다. 그리고 지나치게 흥미로웠다. 워쇼스키 남매의 이름값이 이 영화를 그럼에도 지탱하는 변명이지만 오히려 그 기대치가 영화의 관람 목적을 상실하게 했다. 타임지는 졌다. 그리고 나도 졌다. 이 영화는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남매라는 이름값으로 관람해선 안 되는 영화다. 닌자 어쌔신의 워쇼스키라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스피드 레이서의 워쇼스키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 영화에서 철학과 수수께끼와 실마리를 찾으려 골때려서는 안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눈이 즐겁고 귀가 황홀하며 다분히 오락적인 영화다. 재미 이상의 남겨 먹을 것을 찾으려 한다면 이 영화에서 남는 느낌은 황망함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빨간 공의 비밀이 전하는 메시지와도 비슷하다. 반전이 있을 것 같지만 결국은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반전이 없고 결론이 없지만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또한 마찬가지다. 무언가 있을 것 같지만 결국에는 없다. 마지막에 가서야 터뜨리고 소름이 끼치는 전율에 멍 때리는 그런 부류의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이미 영화 전반부에 충실히 깔아놓았다. 반전도 없고 수수께끼도 없고 뒤통수를 치는 철학도 없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먹을 부르짖고 머리털을 바짝 세우며 어떤 실마리와 철학과 남겨 먹을 것을 준비해두었는지 분석해대기 시작하면 이 영화, 정말이지 시시해진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난해한 듯 하지만 퍽이나 친절하고 단순한 영화다. 명심하자.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에반게리온도 아니고 매트릭스도 아니다.

 

 

 

 

꽤나 직설적으로 묘사되는 약육강식의 분노가 500년의 세월을 관통하면서도 진화하지 않는다는 비극적 메시지만큼은 절망스러웠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전하고자 했던 진정한 카르마가 아니었을지. 분석하지 말자고 해놓고 또 분석하고 앉았네.-.-

 

 

덧. 그러나 이 영화에서 한국 배우 배두나가 나왔다고 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어떤 애국적인 환상을 갖는다면 제발 아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뉴 서울은 그저 공각기동대에 컬쳐 쇼크 먹은 할리우드 감독들이 만들어낸 십수 년 전 왜색 미래 도시에서 조금도 진일보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유카타 입은 일본 청년스런 장혜주와 다다미 깔린 방 위로 떨어지는 매화인지 벚꽃인지의 홀로그램은 황당함을 넘어 절망스러울 지경. 그나마 다른 할리우드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엉터리 한글이 적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될 지경이지만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인 장혜주를 남자 주인공의 이름으로 썼다는 것과 클론이 마시는 음료의 이름이 정체불명의 의미 -비누-라는 사실은 실소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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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9

  • 그냥 어느 '소소한 이야기' 정도로 파악해야 즐거운 영화지요.
    화려하게 표현된 '소소한 이야기'.

    배두나도 배두나지만 주신의 변신은 정말 못알아볼 뻔..

    • 즈라더님 표현이 딱이네요. 소소한 이야기를 화려하게 표현한 볼거리가 즐거운 오락영화. 너무 큰 기대를 갖고 보면 이 영화의 즐거움을 놓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 마지막의 분장쇼는 정말 유쾌하더군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순간 내가 안면인식장애인가 의심을 했던 ㅋㅋ

  • 2013.01.11 07:57

    비밀댓글입니다

    • 처음 들으시다니. 설마 저랑 세대차이 느껴지는 나이?ㅋㅋ 맞습니다. 비교적 적절한 곳에 사용된 한글은 마음에 들었지만 왜색 돋는 설정은 서글프기까지 하더군요. 그래도 배두나가 참 매력적인 배우라는 느낌은 다시 한번 확인했어요.^^

      정말 휴그랜트의 변신은 놀라울 지경이더군요. 영국 배경의 휴그랜트와 70년대 핵 발전소의 ceo로 나온 휴 그랜트까지는 쉽게 알아봤는데 나머지 장면까지 휴 그랜트였을 줄이야.. 특히 뉴서울에서 깜짝 등장한 휴그랜트는 진짜 ㅋㅋㅋㅋ 뭔가 휴그랜트스러운 설정이기도해서 더 웃음이;;

  • 린우 2013.01.11 18:43 신고

    기대하지 않고 봐서 그런지 전 아주 재미있었어요. 어렵다는 평을 보았는데 오히려 아주 단순한 영화더군요. 메시지를 숨겨놓지도 않았고 반전이랄것도 없고.

    • 린우 2013.01.11 19:56 신고

      그래도 빨간 당구공 이야기만큼 허무하진 않았는데.. 너무 박하시네요. ^^ 저는 우울한 와중에 나름 힐링되는영화였는데 말이죠. 평소에 닥터콜님 리뷰를 읽으며 공감을 많이 했던터라 개인적으론 아쉽군요.^^

    • 아니 이런. 그냥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진짜 재미없는 방법으로 감상한 한심한 예시를 들었을 뿐이랍니다. 그래도 비슷한 점은 있어요. 1. 진짜 흥미진진하다 (뭔가 터질 것 같아서) 2.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다. 으하하. 저는 힐링까진 아니지만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스토리가 있어서 ㅋㅋ 2012년의 요양원 탈출기가 진짜 재밌었거든요. 마음에 들어서 블로그 프로필 사진으로까지 올려두었죠. 저 약올리는 제스추어 하며 정말 ㅋㅋㅋ 저 장면이 보고싶어서 또 극장을 찾아갈 생각입니다.

  • 샤랄라 2013.01.13 22:13 신고

    전 정말 재밌게 봤고 워쇼스키가 만든 매트릭스를 뛰어넘을 수는 없지만 꽤나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사람 마다 다르게 느끼니까 ㅎ. 아쉽네요.

  • 혀니 2013.01.26 02:30 신고

    비누는 2차대전때 나치가 만든 유태인 비누를 비유한게 아닐까요...

 

고작 빵 한 덩어리 때문에... 배고픈 조카를 위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죄로 19년의 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장발장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절도 행각이 옳았는가 나빴는가? 혹은 그가 받은 처벌은 타당했는가 아닌가에 대한 토론은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과제였으니까. 그리하여 장발장의 이름은 어느샌가 우리에게 억울함의 상징처럼 기록되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보편적으로 기억하는 장발장의 상징들은 그런 것들이다. 빵과 은촛대 그리고 가난. 하지만 장발장의 이야기는 이게 다가 아니다. 빅토르 위고의 1862년의 장편 소설 <레미제라블>은 어느 가난한 사내의 억울한 호소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한다. 불어 제목의 레미제라블, 그 뜻은 비참한 사람들이다.

2012년의 스크린은 과연 호불호의 해였나. 어느 영화건 절반의 싫다와 절반의 좋다로 나뉘는 평이 대부분이었던 작년 한 해에 2012년의 끄트머리에 시작했던 <레미제라블>은 그야말로 한술 더 뜬 극단적 호불호의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낯설다, 불편했다는 불만은 약과의 수준이다. 심지어 도입부와 엔딩을 제외하고선 지루해 죽을 뻔했다는 충격적 비평 역시 적지 않다. 실제로 졸았다는 사람들까지 봤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호평하는 사람들의 평은 극찬 그 이상이라 재미있다. 내 인생 최고의 영화였다. 8천 원의 영화 비가 8만 원 이상의 가치를 보여줬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기립 박수를 쳤다는 등 싫다는 사람도 좋다는 사람도 그 중간이 없다.

그렇다면 필자는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다행이다. 내 반응은 후자였다. 작년 한 해를 돌이켜보며 영화가 끝나자마자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던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언젠가 어느 일본 작가의 수필집 가운데 극도로 피곤했던 어느 순간에 관람하게 된 오페라를 통해 지쳐있었던 몸과 마음의 노곤한 피로가 풀려버렸다는 희한한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책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이게 말이 되느냐며 비웃었는데 실제로 이날 레미제라블을 관람했던 내가 그와 비슷한 체험을 했던 것이다. 온몸에 자석을 붙여놓은 듯 땅바닥이 죽죽 잡아당기는 듯한 묵직한 몸을 이끌고 거의 그로기 상태의 최악의 조건에서 영화를 감상했음에도 이 158분의 긴 시간은 내게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숨 자고 일어난 듯한 말끔한 기분으로 극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레미제라블이 지루했다, 불편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마 이 영화에 대사가 거의 없이 9할 이상의 분량을 노래로만 채웠다는 사실에 대한 이질감 때문일 것이다. 흔히 레미제라블 하면 따라붙는 전문용어 중 송스루(Song-Through)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작품의 모든 서사를 말이 아닌 '노래'로 대신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레미제라블을 두고 "왜 이렇게 노래가 많은가"라던가 "도대체 언제 말할래?"라는 불만을 품는 것은 뮤지컬을 보러 가서 "왜 노래만 하는데?"라고 따져 묻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레미제라블에 노래가 많은 것은 영화적 결함이 아니라는 뜻이다.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닌 할리우드 스타들을 구성으로 만들어진 이 뮤지컬 영화의 관건은 배우들이 얼마나 괜찮은 가창력을 가지고 있는가일 것이다.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구현하겠다는 감독의 원대한 포부가 담긴 첫 번째 과제는 모든 노래를 후시 녹음이 아닌 현장 녹음의 생동감으로 연출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소 노래하기 편안한 환경에서 스튜디오로 목소리를 입히는 기존의 과정이 아닌 연기를 하면서 그대로 목소리를 녹음해야 하는 과제를 가진 배우들의 부담은 상상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담스러운 환경에서도 배우들은 상상 이상의 가창력으로 관객을 놀라게 했던 것은 물론 노래와 연기가 어우러진 뮤지컬 스타일의 연기를 완벽히 소화해냈다.

 

 

특히 장발장역을 맡은 휴 잭맨의 한 서린 가창력과 연기력은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작품을 통해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되는 앤 해서웨이의 눈부신 탈피는 그야말로 눈이 시릴 지경이다. 어린 딸 코제트의 약값을 벌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리고 어금니를 뽑히고 육체와 정신을 농락당한 비극적인 상황에서 한여름밤의 사랑을 노래하는 그녀의 독주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다 함께 지켜봤지 않은가.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 그저 예쁘장한 하이틴 로맨스 물의 주인공으로만 만족할 줄 알았던 그녀가 진짜 여배우가 되어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쾌거였다.

원리원칙주의에 집착하는 인물은 개인적으로 혐오하는 캐릭터 설정인데 이런 캐릭터의 표본이라 말할 수 있는 자베르역의 러셀 크로우는 가끔 음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음정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더욱이 그의 걸쭉한 목소리와 낯설지 않은 얼굴이 자꾸 노래하는 류승룡을 떠오르게 해 감정 몰입을 방해해서 아쉬웠다. 필연적 유리 성대를 가진 듯한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불안한 고음은 위태로웠지만 파파, 파파하고 재잘대는 참새 같은 노랫소리는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진짜 코제트 같아서 좋았다.

한 사람의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을 구원하고 한 사람의 희생이 더 큰 혁명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화였다. 장발장에게 은촛대까지 내어준 어느 신부의 사랑이 죄수 번호 24601의 장발장을 사랑의 증명으로 바꾸어 놓았다. 결국에는 악이 승리한다는 결론의 영화를 이제 질색하는 나에게 이 영화의 결말은 거북할 수 있었음에도 나는 오히려 희망과 구원을 느꼈다. 희생된 이들의 피를 닦으며 속삭이는 어느 주부들의 탄식. "그 아이들도 남의 집 자식들이었을 텐데...!" 그것은 겨우 골목 하나를 채울만한 작은 바리케이드로 시작된 혁명의 증거를 재촉하는 시발점이었다.

 

8,000원. 분명 작은 돈은 아니다. 두 시간여의 문화생활을 소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비용이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을 보며 정말 오랜만에 이 영화는 고작 8,000원 주고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뮤지컬의 생동감을 전달하기 위해 후시녹음을 선택하면서까지 뮤지컬이라는 콘텐츠를 스크린 위에 올려놓기 위해 얼마만큼의 공을 들였는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고품질의 음악들과 귀를 황홀하게 하는 웅장한 사운드들. 뮤지컬 배우 수준의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혼신의 열연을 멜로디로 펼쳐 보인 배우들과 그 사이를 파고드는 환상적인 화음의 오케스트라.  오히려 이렇게 많이 노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였던 것이다, 내겐. 이만큼의 수준 높은 뮤지컬을 불과 8천 원이라는 비용을 지급하고 볼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다.

 

뱀다리. 그렇기 때문에 코제트를 그리고 마리우스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던 것으로 안다. 누구는 가슴팍에 총탄이 박혀 신음하고 있는 와중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어대는 이것들이 고까운 것은 당연지사. 누군가는 혁명 속에서도 사랑은 꽃핀다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라지만 나는 그냥 코제트의 인생 역전을 담아내기 위한 과정 정도로 파악했다. 상대적으로 비참한 에포닌의 인생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때 묻은 곳 없이 예쁘기만했던 청초한 코제트가 싫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코제트는 슬픔도 모르고 아픔도 모르는채로 순수하고 예쁘게만 자라나길 바랐다. 그것이 그녀가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장발장에게나 딸 코제트를 위해 어금니와 머리칼까지 뜯겨가며 고생만 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간 판틴의 서글픈 삶을 보상해줄 희망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혁명가 마리우스를 반대하던 부잣집 할아버지의 집에 다시 돌아가 거창한 피로연을 여는 마리우스를 보고 이게 바로 강남 좌파가 아닌가... 싶어 찜찜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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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6

  • 2013.01.04 07:01

    비밀댓글입니다

    • 맞습니다. 저도 묘하게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던 영화였습니다. 2012년은 유독 빡빡한 한해였었나봐요. 레미제라블을 관람하면서 작년 한해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노곤노곤해지고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게 되더라구요.^^

  • sad 2013.01.04 20:46 신고

    뭐 취향의 차이이긴 하겠지만 전 정말 재미없게 보고왔습니다. 노래들이 슬프고잔잔&합창 이란 단조롭고 비슷한 노래들 뿐이라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대사로 해도 될것까지 노래로 처리하니 뭔가 어색하고, 뭣보다도 뮤지컬을 보고나면 한곡쯤은 귓속에 맴도는 노래가 있을텐데... 레미제라블은 그런 노래가 없네요

    • 앗 그러셨나요. 멜로디가 익숙하고 쉬워서 귀에 쏙쏙 들어오던데. 전 영화를 보고나서 계속 흥얼거리고 있어요. 발까지 굴려가며 룩다운을 외치고있죠.ㅋㅋㅋㅋ

    • sad 2013.01.05 13:18 신고

      여튼 이 영화는 정말 신기하게 재밌다는 분은 정말 재밌고 감동적이였다고 하고 재미 없단 분은 지루하다고 하니 ㅋㅋ

  • 신나라 2013.01.05 23:21 신고

    저도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름 영화매니아라고 자부하고 지루한 영화도 잘 참는데.. 정말 너무 지루해서 혼났습니다. 같이간 사람 3명 모두.. ;; 뮤지컬에 최적화되지 않은 대사를 억지로 노래로 맞춘 느낌이랄까요.. 나름 연기력은 좋았지만 감정이입이 너무 안되더군요.. 한마디로 실망.. 그것도 기대가 커서 그런지 거의 절망 수준입니다..ㅎㅎ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영화는 없다. 반대로 모두가 불만족하는 영화도 없다. 만족과 불만족의 경계가 유달리 심했던 영화를 두고 우리는 호불호가 심했던 작품이라고 말한다. 2012년 올 한 해 동안 이런 호불호가 심했거나 불만족의 평이 많았던 작품 중에서 필자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2012년, 이 영화 나만 괜찮았었나요? TOP3

 

 

 

침착하고 따뜻했던 감성 과학 영화 - 루퍼

 

어느 영화 평론가가 이 영화를 두고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만든 터미네이터 같다>는 평을 남겼는데 나는 무릎을 쳤다. 이 간결한 설명만큼 이 영화의 감성과 이성을 제대로 표현한 문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염세적이고 현실적이며 축소된 상상력의 미니멀한 블록버스터다. 타임머신과 염력이 존재하는 미래를 그리면서도 이 영화는 소박하고 이성적이다. 루퍼의 미래에서 타임머신이란 정부가 은폐하고 마피아의 세련된 범죄 도구로 이용되고 있으며 염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은 기껏해야 동전을 허공 위로 띄워 여자아이를 유혹하는 데에 써먹는, 불필요하지만 있어서 좋은 것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이 영화의 이런 부분이 '루퍼'를 기대하던 관객들을 실망 시킨 이유로 자리했을 것이다. 예고편을 보면 차세대 액션 스타 조고레와 왕년의 슈퍼 스타 브루스옹이 신명 나게 한판 싸움박질을 하는 속 시원한 블록버스터쯤으로 느껴졌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 사람의 이념과 이념의 싸움일 뿐이었으니. 영화 <루퍼>는 라이언 존슨 감독이 10년 전부터 기획해왔던 단편 영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러니 2시간 가까이의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지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특히 조가 조직을 탈출하고 선택한 도시 밖 농장의 배경은 마치 다른 이야기를 보는 듯 늘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토록 고요한 시선으로 미래를 응시하면서도 이 영화는 묘하게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영화 중반 스치듯 지나간 미래의 조의 회상에 아이처럼 울먹이는 브루스옹의 민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첫사랑의 모습과 현재의 조가 선택한 최후의 결론은 단순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말을 결정하는 순간까지도 이 영화는 침착하고 이성적이었다. 인상적인 영화다.

 

 

 

괴작과 취향 사이 - 점쟁이들

 

사실 이 영화를 "좋았다"고 평하기엔 조금 용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호불호가 갈린다"라고 말하기에도 좋다고 말하는 평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니까. 영화 점쟁이들을 제작한 신정원 감독은 시실리 2km와 차우를 연출하고 소위 '병맛 코미디'라 불리는 골 때리는 영화의 선두주자처럼 불리고 있다. 흥행 성적이 높은 감독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의외로 그를 지지하는 병맛 중독자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필자는 기괴하게도 시실리 2km와 차우를 본적이 없어 예방 접종을 맞지 않은 상태로 이 작품을 접한 것이나 다름없음에도 정말 잘 웃고 나왔다. 올 한해를 더듬어보니 이 영화만큼 나를 웃겨준 영화가 없었던 것 같다.

 

 

한 섬에서 일어나는 비과학적인 죽음과 음흉한 사고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명의 전문가들이 뭉쳐 퇴마의식을 펼친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구미가 당기는 소재라 말할 수 있다. 캐스팅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귀신 잡는 인기 역술가 박 선생을 연기하는 김수로. 초음파를 분석하여 디지털카메라와 컴퓨터로 귀신을 포착한다는 신세대 이공계 퇴마사 석현 역의 이제훈. 귀신이 보이는 눈을 가진 심인 스님 역의 곽도원. 타로와 수정 구술을 비기로 사용하는 점술가 승희 역의 김윤혜. 미래가 보이는 소년 월광 역의 양경모. 어벤져스까진 아니더라도 누구 하나 부딪히는 패턴 없이 서로 다른 소재로 귀신을 잡는 오컬트, 역술, 과학과 종교의 혼합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문제는 그들에게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고 시종일관 진지하지 않다는 점인데 심각한 상황인데도 계속해서 개드립을 시전하는 실없는 친구를 보는 느낌이다. 이 개그가 먹혔던 사람에게는 즐거운 작품이 되어주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유치한 장난쯤으로 느껴졌으니 문제다.

하지만 내게 이 영화는 충분히 웃기는 작품이었다. 물론 극장 안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터지지 않는 가운데 거의 나 혼자 큭큭거리고 있어 민망할 지경이었다. 점쟁이들을 재미 없게 봤던 사람들도 그나마 웃겼던 요소로 꼽는 김수로의 먹으면서 체조하는 장면에서야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깔깔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보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주제에 계속해서 을진리의 이장님에게 집착하는 김수로 이하 일행들의 모습에 실없이 웃음이 터졌다. 눈앞의 검은 악령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자기 할 말만 지껄이는 수다쟁이 강예원의 봉변은 그야말로 병맛 코드의 백미. 이 장면이 통째로 배우들의 애드립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라는데 그래서 그 병맛 농도는 더욱 진득하고 유쾌했다. 이 영화를 통해 더이상 김수로의 개그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반대로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 코미디에서 김수로가 필요한 이유를 발견했다. 희대의 괴작, 망작이라 불리며 평점 1점과 10점의 극과극으로 통하는 작품이지만 희대의 괴작이라는 평은 인정할 수 있어도 망작이라는 악평까진 좀 너무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청춘의 스파이디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012 박스오피스 결산 6위를 차지한 이 작품을 '흥행 실패작'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잘 만든 전작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평가 절하를 당한 비운의 작품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호평을 받은 전작을 뛰어넘은 사례를 찾기는 아마도 어렵겠지만 전작 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작만큼의 매력적인 감수성을 가진 흥미로운 리부트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올 한해 봤던 많은 영화들 가운데 2시간여 가까운 시간이 아쉬울 만큼 가장 몰입도가 뛰어났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춘과 액션 그리고 SF가 모두 짬뽕 된 이 매력적인 영화가 지루할 리가 있었겠는가. 거기다 어메이징 앤드류라고 외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주인공이었던 앤드류 가필드의 비주얼과 30살의 나이가 무색한 호연까지.

 

실제로 원작의 팬이라면 더 손을 들어주고 싶을 만큼 원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이었다. 기존의 히어로들과는 다른 미성년 히어로로 서막을 열었던 청춘의 스파이디 피터파커는 마크웹 감독의 감수성이 녹아든 연출 위에서 보기 드문 상큼함과 산뜻함을 전달해준 청춘의 히어로였다. 잔스포츠 백팩을 메고 스판덱스 유니폼을 입은 채 "유기농 달걀이요? 알았어요."라고 대답하는 피터파커의 귀여움이라니. 50주년을 마지막으로 종결된 원작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결말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할 만큼 충격적이고 배신에 가까웠던지라 2012년의 앤드류 파커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열거한 작품들은 극단의 호불호를 경험한 영화들이기에 반드시 '추천'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대체로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희소가치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위의 작품들 외에 기억에 남는 저주 받은 걸작으로는 '프로메테우스'와 '케빈인더우즈'를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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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9

  • 세 편 모두 보지 못했네요~
    사는 게 뭔지~ 참~
    동장군이 찾아온 2012년 마지막날을 멋지게 보내세요~

  • 2012.12.31 16:36

    비밀댓글입니다

  • 루퍼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저도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

  • 점쟁이들 2013.01.01 08:04 신고

    점쟁이들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몇 안되는 관객 중 한 분이시군요. 강예원씨가 머구리 찾는 장면에서는 정말 박장대소 했었는데 그 장면도 애드리브 였던 건가요. 저도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었는데 평이 너무 안좋더라구요. 점쟁이들 재미있게 보셨다면 시실리 2km 도 언젠가 꼭 보시길. 제가 평생 본 코미디 영화 중에 가장 웃겼던 영화예요. 블랙코미디의 진수죠. 개인적으로 신정원 감독 특유의 유머코드를 너무 좋아해서 욕먹더라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하고 바라고 있어요.

    • 그쵸? 그 장면 정말 재밌었죠?^^ 점쟁이들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아무런 격식 없이 친구가 되고 싶을 정도입니다. 시실리 2km도 꼭 봐야겠어요. 점쟁이들 보다는 나은 평을 받아서 기대가 되네요. 저도 점쟁이들의 병맛 코드에 푹 빠져버려서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검색해보니까 더 독이라는 작품을 구상중이던데 이 작품에서도 스님역의 곽도원씨가 나오구요. 외계 생명체에 감염된 개에 대한 내용이래요. ㅎㅎ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기대중입니다.

  • 린우 2013.01.11 20:07 신고

    스파이더맨은 저도 참 재밌게 봤어요. 루퍼는 꼭 찾아봐야겠네요. 혹시 강철대오란 영화는 보셨나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 구국의 강철대오 말씀이시죠?ㅎㅎ 극장 예고편으로 보고 너무 재밌어보여서 꼭 봐야지 했었는데 아쉽게도 놓쳐버렸어요.ㅠㅠ 보지는 않았지만 제 취향일 것 같다는 느낌이 파박..!! 막돼먹은 스토리하며 울퉁불퉁한 캐스팅까지 모조리 제 맘에 듭니다 ㅋㅋ

    • 린우 2013.01.11 21:14 신고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으로 개봉했죠. 제가 재미있어하는 영화들은 왜 다 흥행에 실패하는지ㅠㅠ 극장에서 저는 수시로 빵빵 터지는데 다른 사람들은 조용~하더라는ㅠㅠ

    • 린우 2013.01.11 21:17 신고

      90년대에 20대를 보낸 분이시라면 공감되는 부분이 아주 많아요. 결말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2012년 올 한 해 동안 스크린을 빛냈던 무수한 영화들을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콘텐츠'와 '캐릭터'의 한해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스파이더맨. 배트맨을 비롯하여 어벤져스의 영웅들까지. 국내 영화 산업에도 유독 스토리를 뛰어넘는 캐릭터의 열연으로 승부를 봤던 많은 영화들이 존재했죠.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았던 다섯 명의 (명이 아닐 수도 있죠?) 캐릭터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편의상 순위를 기록했지만 큰 의미는 없답니다.

 

 

 

5위. 만약 내가 신이라면 청춘을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다 두었을 것이다

은교 <은교>

 

만약 이 영화에서 김고은이 열연했던 은교가 진한 쌍커풀을 가진 입체적인 미모의 서구형 미인이었다면 아마 이 영화의 완성도는 절반 이상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 예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다소 평범하게 생긴 은교가 아름다웠던 것은 그 나이대 아이들은 젊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 예쁜 아이들이 없다는 젊음이 깡패인 청춘의 증명 때문이었다. 영광과 부를 이룩하고도 매사에 권태로움을 느끼며 사는 낙이 없던 시인 이적요의 삶에 판타지처럼 떨어진 여고생 은교의 아름다움. 낡아빠진 스니커즈와 안나수이 거울. 끝이 뻗친 단발머리에 교복 아래 받쳐입은 체육복 바지까지. 오히려 낡고 초라해서 더 아름다웠던 은교. 영화 중간에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는 이적요의 판타지에서 문득 그 젊어진 얼굴이 소녀 은교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 이적요가 그토록 은교에 탐닉했던 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되돌릴 수 없는 청춘을 향한 열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녀 은교를 표현하기에 배우 김고은은 부족함이 없었다. 박해일과 김무열이라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상대하면서도 내 눈은 시종일관 은교의 싱그러움을 쫓고 있었으니까. 이 작품 외에 김고은의 연기를 본 적이 없어 원래 그런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고생 특유의 어른을 상대하는 말투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은교 왔어요." "안녕히 계세요-" 영화가 끝나고 청춘의 현신이라 느껴졌던 싱그러움 그 자체의 시구 장면까지. 그녀의 젊음은 완벽했다.

 

 

 

 

4위. 기억의 습작을 로맨스로 만들어버릴 줄이야!

 

건축학개론 <어린 서연>

 

국민 ㅇㅇㅇ라는 호칭만큼 웃긴 말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중에서도 "국민 첫사랑"이라는 말은 낯간지러움의 극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영화 속 어린 서연을 연기했던 수지가 국민 첫사랑의 대표주자가 된다는 것에 딱히 반감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건축학개론의 서연이 그리 완성되지 않은 인간형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위 첫사랑의 그녀 하면 떠오르는 아카시아 향기라도 날 것 같은 순하고 아름다운 판타지의 뮤즈에서 벗어나 건축학개론의 서연은 아나운서가 되어 부잣집에 시집을 가겠다는 열망을 품은 다분히 속물적인 그 나이 또래 소녀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메시지가 용납될 수 있었다. 조금은 이상한 비유지만 다크나이트와 같은 사람 같은 영웅들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처럼 어느 순간 영화 속에서 구현된 첫사랑의 판타지마저도 이제는 속을 드러내 보이는 인간적인 캐릭터가 유행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특히 수지는 또래의 아이돌 배우 가운데서도 이 정도의 성공을 이끌어낸 배우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건축학개론이 수지를 일명 럭키걸로 불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는데 건축학개론의 성공이 단순한 운이었다고 말하기엔 억울할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수지의 노력이 들어갔던 작품이었다. 당시 감독은 수지가 자리를 비우면서 남기고 간 대본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 감독 자신도 파악하지 못한 서연에 대한 연구와 캐릭터 분석이 대본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3위. 아저씨. 그 나이에 그렇게 멋지면 반칙이잖아요.

 

어벤져스 <토니 스타크의 아이언맨>

 

한 명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데 일곱을 모아놨으니 그 즐거움이 어찌 배가 되지 않으리오. 2012년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는 단연 어벤져스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벤져스야 워낙 뛰어난 캐릭터의 활약이 넘치는 작품이고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한가지만은 아니지만 캡틴 아메리카의 힙과 한순이 언니의 쫙 달라붙는 유광 가죽 재킷을 뛰어넘은 매력남은 바로 65년생의 히어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의 아이언맨.

 

사실 영화 <아이언맨>을 보면서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오히려 단독 샷이 아닌 7분의 1로 나눈 그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졌던 이유는 뭘까. 로키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당하는 캡틴 아메리카를 두고 발포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블랙 위도우를 구원하는 음악 소리. ACDC의 shoot to thrill!!! "로마노프 요원. 나 안 보고 싶었어?" 달달한 목소리와 함께 뛰어든 아이언맨의 손바닥 발포 샷은 그야말로 어벤져스에서 가장 설레였던 장면 중 하나.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으면서도 누구보다 큰 무게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농담을 달고 사는 이 귀여운 아저씨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심지어 부유하기까지 하네요.

 

 

 

 

2위. 어메이징 앤드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스파이더맨>

 

이 영화를 2002년에 개봉한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과 비교하며 졸작이라 평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토비 파커의 그것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내겐 그 이상의 작품이었다. 특히 스파이더맨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 토비 맥과이어와 달리 스키니 보이에게 스파이더맨은 꿈이나 다름없다는 스파이더맨의 광팬 앤드류 가필드의 열연은 코믹스의 원판 스파이더맨의 환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30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그의 동안의 앳된 얼굴과 틴에이저의 웅얼거림이 느껴지는 디테일한 연기력은 그야말로 어메이징 그 자체!!

 

 

토비 파커가 끼고 있던 안경을 벗은 것과 달리 앤드류 파커는 오히려 렌즈를 빼고 안경을 썼는데 이공계 특유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면모로 직접 스파이더맨의 거미줄과 스판덱스를 제작해가는 흥미로운 과정과 영웅들 가운데서도 유독 어린 나이의 청춘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의 개성을 앞세워 청춘 영화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었던 마크웹 감독의 서정적인 연출력은 감동적일 정도였다. 특히 사물함을 사이에 둔 채 꿈에도 그리던 퀸카 그웬 스테이시와 머뭇거리며 약속을 잡는 피터 파커의 모습은 앤드류 가필드와 마크웹 감독의 청춘의 진수가 녹아든 장면. 스파이더맨을 다른 캐릭터와 차별화하는 절반가량을 입으로 싸우며 깐족대는 습성을 그대로 재연해 위기의 순간에서도 나불거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의 입담은 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잔스포츠 백팩에 스케이트 보드를 꽂은 스파이더맨이라니!

 

 

 

 

1위. 이제는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늑대소년 <철수>

 

분명히 2012년은 송중기의 한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늑대소년이라는 까다로운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던 송중기의 연기력은 이제 그에게 어떤 역할을 맡겨도 불안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생길 정도였다. 기존의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영화와 달리 송중기의 늑대소년은 보호받기보다 보호해주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캐릭터였는데 순이의 기타 연주 소리에 큰 눈망울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귀여운 얼굴을 보며 세상을 등지고서라도 너를 보호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늑대는 온순해진 상태에서는 실제로 개와 비슷한 행동력을 갖춘다고 한다. 마임을 배우고 앤디 서키스의 작품을 연구하고 동물원에서 늑대의 행동을 관찰하며 완성시켰다는 송중기의 늑대 연기는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일등 공신이었다. 특히 동물은 사람과 달리 분절의 개념이 있어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툭툭 끊어지며 사물을 바라본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연기로 구현하여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였던 분석력은 그야말로 박수를 쳐주고 싶은 부분이었다. 이리떼들 사이에서 동물의 본성만을 간직하고 있던 그가 조금씩 사람의 행동을 학습하고 감성을 깨달아가며 늑대에서 인간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미묘한 성장 속도는 송중기가 얼마나 감성적인 배우인가를 증명하게 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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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28 07:31

    비밀댓글입니다

  • 좋은리뷰 잘 읽고 추천 누르고 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 ! ^ ^ ~ ~ ~

  •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파커는 제가 원작을 좋아해서 그런가, 되게 좋았는데 별로 좋지 못한 평이 많더군요ㅠㅠ 심지어 어디서 뽑은 12년의 액션영화에 스파이더맨이 끼지도 않고..ㅠㅠㅠ

    • 개인적으로는 올 한해 가장 즐겁게 관람했던 오락영화였는데 워낙 전작의 평이 좋았어서 평가절하된 부분이 아쉽더군요. 2014년에 나온다는 어메이징스파이더맨2는 아무래도 평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작을 모르시는 분들이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을 원작처럼 생각하시는터라..그 괴리감에 더 낮은 평을 받은 것은 아닌지 아쉽습니다^^

 

2002년 첫 개봉된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국내 영화계에서 참 특이한 영역을 가진 영화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호불호가 심하다는 평을 내리기에도 머쓱하죠. 이 영화를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대한민국 영화계를 좀 먹는 질 나쁜 영화의 대표로 이 시리즈를 서슴없이 이야기하며 심지어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 지성과 교양을 판단하는 증거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정도로 극악의 불호만 가득 찬 영화는 호불호가 심하다는 평을 내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에로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다섯 편 이상의 시리즈물을 계속해서 기획한다는 것은 그리 흔한 사례가 아니죠. 그것은 분명히 대한민국에서 극단적으로 싫다!고 외치는 이 영화를 꾸준히 찾는 관객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2002년 가문의 영광이 터뜨린 전국 520만의 기록을 시작으로 2005년 가문의 위기가 순 제작비 30억 원을 들여 570만을 기록했으며 이후 2006년 가문의 부활은 제작비 32억 원. 전국 관객 수 350만을 기록했습니다.

 

이 세 편의 영화가 모두 대한민국 영화 스코어 50위권을 장식했으며 4편 가문의 수난이 잠시 주춤한 250만이라는 성적에서 그쳤으나 이 역시 작은 숫자는 아니죠. 그토록 대한민국의 관객들이 썩은 감 취급을 하던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중 하나라는 말이 됩니다. 길거리에서 인터뷰를 해도 그런 영화 안봐요라는 평이 대부분일 이 영화를 도대체 누가 10년간 꾸준히 찾아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분명히 가문의 영광 시리즈만이 갖고있는 고유의 미덕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악평뿐인 조폭코미디물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생각 없이 두 시간여에 가까운 시간을 웃기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내세울 만한 무기죠. 그런 면에서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오락영화의 품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였습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와 겉모습은 얌전하지만 울컥하면 쌍욕이 튀어나오는 조직의 장녀가 만나 가문을 이룬다는 스토리도 꽤나 참신한 아이템이라 말할 수 있죠. 번외편의 투사부일체와 덧붙여 희한하게 조폭코미디물과 환상의 앙상블을 이루는 정준호를 비롯한 가문의 시리즈와 딱 들어맞는 캐스팅 또한 이 시리즈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주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가문의... 시리즈를 찾는 관객들은 이미 웃을 준비를 갖춘 사람들이라는 거죠. 어떤 속임수를 쓰나 보자 싶어 양팔을 꼬고 마술을 지켜보듯 심사하는 느낌으로 이 영화를 찾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요? 작품의 완성도라거나 작품성 따위를 따지고 드는 까다로운 손님은 아마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런 일면에서 가문의 귀환은 꽤나 공평한 관객층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참작하고 그저 가문의 시리즈 내의 프레임에서 이 작품을 평한다고 해도 제게 가문의 귀환은 꽤 실망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가문의 귀환은 10년 전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2대를 잇는 조직 '쓰리제이파'가 가문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아냅니다. 막내딸 진경의 죽음으로 깨달음을 얻은 장정종(박근형 분)은 딸이 그토록 질색했던 피묻은 손을 씻기로 하고 이제는 더이상 어둠과 야합하지 않는 정상적인 기업 '장삼 건설'을 차려내지요. 하지만 철들기 전부터 펜이 아닌 각목을 쥐었던 아들들이 타이만 둘렀다고 엘리트가 될 수 있겠습니까. 기업인이라지만 하는 행동은 조직폭력배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아들들을 믿지 못한 장정종은 결국 가문의 유일한 엘리트. 사위 박대서(정준호 분)에게 사장의 직함을 넘겨줍니다. 그다음의 이야기는 짐작하실 그대로입니다. 박대서에게서 장삼 건설을 뺏기 위한 세 아들들의 꼴통 짓거리가 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니까요.

 

가문의 귀환은 다섯 줄 남짓의 스토리가 전부인 영화입니다. 캐릭터도 뻔하고 스토리도 뻔하고 반전도 예상했던 그대로고 액션 또한 진부하기 짝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기대할만한 웃음 포인트마저도 고루하고 칙칙하다는 것이지요. 거의 일 년 이상 반복되어 이미 패턴이 다 읽히는 개그콘서트의 코너 하나를 보는 느낌입니다. 물론 그 뻔한 맛도 맛이라면 맛이겠지만 그것도 일정 수준의 퀄리티가 있어야 품격이 되지요. 이 영화는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작품입니다.

 

 

 

코미디 영화에서 웃으라고 던져놓은 포인트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만큼 민망한 상황이 없지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야만 했습니다. 특히 메인 스토리를 보조하기 위한 번외편처럼 준비된 두 개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커다란 감점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가문의 손자 장영민(윤두준 분)을 내세운 황광희-손나은-윤두준의 삼각 관계와 김정은의 빈자리를 채울 효정(김민정 분)의 번외 스토리는 샅샅이 흩어져 따로 놀고 있으며 메인 스토리와는 동떨어져 어울림을 주지 못합니다. 가문의 영광과 브레이킹던 타짜를 한꺼번에 보는 느낌인데 그 모든 것들이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코미디를 무안하게 만드는 팔 할은 배우의 어색한 연기력 때문입니다. 뉴페이스로 들어온 아이돌 출신 배우 윤두준, 황광희, 손나은 중 그나마 제대로 연기를 하는 사람이 윤두준 하나뿐이었습니다. 특히 광희는 워낙 다재다능한 이미지라 연기를 제법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이어 이 작품으로 그의 길은 연기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시되더군요. 그저 광희스러운 연기를 하라고 부탁을 받은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못합니다. 손나은은 영혼을 이탈한 것 같고요. 김민정의 연기력이야 나무랄 데 없겠으나 가문의 시리즈와 무언가 겉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문 시리즈에는 그와 어울리는 부류의 배우들이 따로 존재하는 느낌이네요.

 

 

가문의 귀환을 보러 가기 전 몇 개의 짐을 벗어두었습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에게 바라는 몇 가지 덕목들을요. 심지어 기대치마저 내려두었습니다. 벌써 네 번이나 우려먹었는데 뭐 특별할 것이 있겠나 싶었던 거죠. 하지만 그저 웃겨주기만 했어도 되었을 제 작은 만족도마저 채워주지 못한 가문의 영광 5 - 가문의 귀환은 이제 정말 단물 쓴 물 다 빨아먹고 껍데기만 남아있는 시리즈가 아닌가 싶었어요. 아무리 사람들이 비웃는 소위 조폭코미디라고 해도 그만의 품격이 필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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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영감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터잭슨과 J.R.R 톨킨이라는 두 천재의 합작, 또 다른 반지 시리즈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전율을 일으킬 만한 행복한 사건이죠. 판타지 소설은 물론이오. 각종 게임과 수많은 영화들을 비롯한 각종 판타지 계에 하나의 역사와 신화를 창조해준 톨킨의 업적은 심지어 먼 나라의 흔히 입으로 말하는 신조어로까지 쓰여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호빗이라던가 오크라던가 엘프라던가 하는 공통적인 이미지들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영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저 전율을 일으킬 수밖에 없죠. 톨킨은 그저 구전으로만 떠돌던 북유럽의 신화들을 명확한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지금 현대의 대중들에게 각인시켰죠. 마치 디즈니사에서 만든 까만 머리에 빨간 머리끈과 봉긋하게 부푼 파란색 소매에 망토 같은 드레스를 입은 백설공주의 이미지를 전 세계의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백설공주의 이미지로 각인한 것처럼 말이죠.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방대한 세계관을 만든 위대한 톨킨의 직업은 작가가 아닌 언어학자였다고 합니다. 소설의 탄생 배경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요. 현재 판타지 문학의 교본으로 자리 잡는 반지 시리즈의 첫 시작은 사랑스러운 손자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소박한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손자들에게 들려준 꿈과 모험이 가득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바로 반지 시리즈의 전신인 호빗이었고 훗날 톨킨의 첫 번째 출판물로 발간된 이 책이 지금의 호빗 : 뜻밖의 여정으로 만들어진 셈이지요.

 

톨킨의 손자들도 우리들과 똑같이 어둠과 악몽을 무서워하는 꼬마들이었겠지요. 그런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악몽을 쫓아낼 작은 기사들로 호빗과 엘프를 창조했을 톨킨 할아버지의 자상함을 떠올려보세요. 현대문학은 물론이오 각종 판타지물의 역사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위대한 세계관이 실은 이토록 소박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신비롭고 아름답기 짝이 없습니다.

 

 

 

영화 호빗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전설이 창조되기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Prequel)로서 절대 반지의 소유자 빌보 배긴스가 어떻게 그 반지를 가지게 되었고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 소박한 종족 호빗이 어찌하여 이리 장대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호빗 : 뜻밖의 여정은 절대 반지 시리즈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해설서와도 비슷한 작품입니다. 당연히 이미 전설이 완성된 이후의 시리즈보다 완성도나 흥미 요소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온갖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마치 종합 선물 세트처럼 튀어나오던 반지 시리즈만큼의 임펙트있는 등장인물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벤저스를 보고 나서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등을 따로 시청하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호빗은 충분히 사랑스러운 작품입니다. 그리고 반지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한 번쯤은 품어봤을 왜 톨킨은 그토록 호빗이라는 종족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찌하여 이토록 보잘것없는 호빗이 이토록 큰 판타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를 되새겨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호빗을 보면서 남다른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톨킨이라는 창조주가 비록 판타지의 세계관이라 할지라도 무계획적으로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존의 판타지에서 너무나 막연한 세계관으로 손가락 하나를 놀려 세계를 망가뜨린다든가 영웅 하나가 드래곤 하나는 통째로 씹어먹는 힘을 가졌다던가 라는 등의 스토리와 비교하면 어쩌면 톨킨의 판타지 속 영웅들은 꽤 소박하고 검소한 힘을 가지고 있지요. 심지어 중간계의 신이나 다름없는 간달프마저도 철저하게 힘이 통제되어 있으니까요. 여느 판타지였다면 벌써 썰어버리고도 남았을 몇 마리의 몬스터를 여러 명의 영웅들이 당해내지 못해 낑낑대다 호빗 빌보 배긴스의 재치로 풀려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것은 반지 시리즈의 프로도와 프리퀄의 빌보 배긴스에 이르기까지 이 방대한 판타지의 주연으로 호빗을 선택한 톨킨의 소박한 선의와도 맞닿아있습니다. 사실 호빗족은 모험에 어울리는 종족은 분명히 아니지요. 모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집안에 있는 것을 즐기며 그리 용감하지도 않고 힘이 세거나 무슨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여타 판타지에서 알고 보니 천재적인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더라-하는 영웅담의 주인공과는 너무나 다른 소박한 생명체, 까짓 호빗 주제에 어찌하여 이토록 크고 위대한 스토리의 중대한 임무를 맡을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은 영화 속에서도 반복해서 되풀이 됩니다. 그리고 빌보 배긴스 자신도 던지는 질문이죠. 왜 하필 호빗인가. 영화 속에서 호빗은 분명히 작고 평범하며 특별한 능력이나 화려한 액션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아닌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일 뿐이죠. 하지만 그들의 소박함은 한정된 영웅들이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 특별한 용기와 교훈을 안겨줍니다. 이 작은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을 감당하고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호빗은 그 어떤 종족보다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강한 종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반지 운반자라는 막중한 임무마저 가능했던 것이겠죠. 아마도 그 힘은 호빗이라는 종족이 가진 작고 사소한 일에 감사하며 일상적인 일들에 행복을 느끼는 소박하고 간결한.. 사랑스러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간달프는 말합니다. 내가 두려움을 느낄 때 그의 존재가 용기를 준다고. 아마 그것은 톨킨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위대한 판타지의 핵이 이토록 작고 소박한 존재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합니다.

 

글의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자료의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와 신문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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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지연 2012.12.24 00:10 신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글을 참 잘쓰세요. 감동이네요
    결혼전엔 반지의제왕 책도 다사서읽고 영화와 ost도 다읽엇는데 .. 이젠 아기가 어려. 호빗은 못보네요
    님의 글을읽고 설레네요. 영환 못보겠지만요... 호빗이 나올때의 영화음악이 이글을 읽으면서 내내 맴도네요

  • 옥수수알 2012.12.25 08:08 신고

    어벤져스를 보고 아이언맨 따로 보는 느낌이란 표현 딱이네요!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시엘 2012.12.25 09:27 신고

    정말 공감하는 글입니다. 형제들 중에 작고 부족해 보였던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처럼요.

 

뒤늦게서야 늑대소년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 영화를 <트와일라잇>의 정서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예쁘장한 얼굴의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긴 하지만 이 영화 속 사랑은 소년과 소녀의 연애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책임지지 못한 길들인 사랑에 울먹이는 영화 AI의 모성애와 더 흡사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의 어느 여름밤. 동네 친구들이 한 마리의 개를 둘러싸고 모여있었다. 이미 강아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커다란 덩치의 내 몸집보다도 긴 허리를 갖고있는 누렁색 토종개였다. 전혀 귀엽지도 않았고 특별하지도 않은 이 잡종개는 커다랗게 끔벅이는 눈망울만큼은 아름다웠는데 개의 신변을 염려하는 아이들의 걱정에 내 특유의 오지랖이 끼어들었다. 나는 그 커다란 개를 호령하여 우리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줄로 묶이지도 않은 개가 내 호령만으로도 나를 주인으로 인식했던 듯 아무런 일탈 없이 나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어린 자식이 끌어들인 덩치 큰 개의 뒷담당은 당연히 부모의 몫이었다. 데려온 개를 내팽개쳐두고 잠을 자는 나 대신에 부모님은 그 커다란 개를 둘 곳이 없어 고민해야만 했다. 집은 작았고 개는 늑대만큼이나 컸으며 마당은커녕 툇마루조차 없는 비좁은 공간에 그 개가 자리할 수 있는 구석은 없었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개는 집을 떠나고 난 뒤였다. 엄마는 그 개를 시골에 보냈다고 말했다. 나는 안도했다. 누렁이는 우리 집 보다 더 넓고 깨끗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얼마나 비겁한 어린애의 자기 위안이었던가. 우리 시대에 '개를 시골에 보냈다'는 한마디는 개장수꾼에게 개를 팔아넘겼다는 거짓된 위선의 포장지였다.

 

 

 

순이는 젓가락질을 하지 못하고 야수처럼 밥을 씹어 삼키는 철수를 길들이기 위해 애견 훈련 백과에 눈을 둔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와 "기다려"라는 교감을 한다. 배고픈 짐승에게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욕구를 억제하고 '기다리는' 일이다. 그것을 복종시킨 순이는 현명했다. 짐승이 기다림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삶에 끼어들기 위해 포기해야 할 본능을 버리는 일이다. 그 고통을 짐승은 감내한다.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하여 길들여지는 고통을 선택한 것이다. 철수는 기꺼이 길들여지는 삶을 받아들였다.

 

 

 

"왜 저를 버리려고 하시는 거예요? 사람이 아니어서 죄송해요. 허락하시면 인간이 될게요." 하지만 사람은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을 간과하기 십상이다. 버려지는 너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국 길들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버리는 것이 갖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소유는 의무가 되고 의심이 된다. 그리고 짐으로 자리 잡힌다. 그래서 순이는 철수와 함께 남지 못했다. 심장이 쪼개질 만큼 울먹였지만 어린 소녀가 감내하기엔 그는 너무나 큰 책임이었다. 똑같이 나뭇잎이 쌓인 어느 깊은 숲 속에서 버림당하는 철수의 슬픈 눈동자는 로봇 데이비드의 절규를 떠오르게 했다.

 

어린왕자는 그 어떤 애견 훈련 교본 보다 완벽한 교감의 교본이다. 순이는 애견 훈련 백서가 아닌 '어린왕자'를 읽었어야만 했다. 그 시절의 어린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길들이기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린왕자를 읽어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 길들여진 순간 그 대상에게 나는 전부가 되고 우주가 된다. 그래서 버려지면 돌이킬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영화적 완성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나 나는 늑대소년이라는 콘셉트에 송중기와 박보영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얼마나 위대한 감독의 역량인가 싶어 찬사를 아니 보낼 수 없었다. 이미 송중기와 늑대소년이라는 캐스팅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완성을 목전에 둔 것이었다. 전쟁터에 사용될 생화학무기로 인간의 유전자와 늑대가 결합 되어 만들어진 늑대소년이라는 조합물을 송중기는 완벽하게 학습한 늑대의 행동양식으로 풀어내 설득력을 주는 것과 동시에 인간 이상으로 감상적인 소년 철수의 감수성을 상상력으로 풀이하는 그 본능적인 연기에 대한 감은 시종일관 찬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특히 격정적으로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넣어 삼킬 때 커다란 덩어리의 음식을 목을 길게 빼어 텁텁 몇 번으로 나누어 담는 모습은 그야말로 개과의 완벽한 구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들은 아름다운 소리인 순이의 멜로디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짐승의 본능이 점차 인간의 감성으로 젖어 들어가는 그 미묘한 전달력은 송중기가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한 배우인가를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필요를 위해 더 편리한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이 그 편리를 뛰어넘는 순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연인의 사랑이거나. 부모의 사랑이거나. 심지어 로봇 데이비드조차도 자신의 애완 로봇 테디베어의 마지막을 참견하지 않고 내버려두었지 않은가. 늑대소년을 보면서 한 번씩 되새겼던 AI의 트라우마가 깨진 것이 고마웠다. 영원을 사는 로봇 테디베어가 홀로 남아 수만 년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나의 트라우마를 영화 늑대소년의 엔딩으로 해소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것 또한 길들인 사람의 비겁한 자기 위안일지도 모른다. 너는 내가 참견하지 않아도 행복할 것이라고. 나는 영원히 그 누렁이를 향한 죄의식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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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달이 소년을 불렀다. 너의 이름은 잭 프로스트라고. 소년은 듣고 싶어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냐고. 달은 대답이 없었다. 소년은 300년간 달이 내려다보는 수면 아래의 캄캄한 어둠과 잭 프로스트라는 이름만을 기억하고 살았다. 아이들은 그를 상상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잭 프로스트에게 300년 만에 처음으로 달의 회답이 돌아왔다.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잠의 요정 샌디. (샌드맨) 아이들의 추억을 수집하는 투스. (이빨 요정) 탄생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부활절의 토끼 버니. (부활절 토끼) 그리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상징하는 크리스마스의 선물 놀스. (산타클로스) 각자 주어진 소명으로 아이들을 지키는 네 명의 수호신과 함께 '가디언즈'가 되라는 것.

 

 

 

내게 크리스마스란 동화 같은 추억이 아니었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에게 크리스마스는 '대목'이었지 아이들에게 꿈을 실현시켜주는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상상력이 그리 풍부하지 않았던 부모님은 어린 나에게 산타를 믿게 해주려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분들이었고 당연히 크리스마스날 눈을 뜨면 양말 아래에 선물이 놓여있다던가 하는 환상적인 풍경은 내 차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꽤 오랫동안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아직 내 차례가 오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내게도 산타의 선물이 도착할 것이라고. 눈 오는 날이 싫어지고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으면 어른이 된 증거라고 하는데 나는 꽤 오랫동안 철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나는 책장에 꽂혀있는 크리스마스 동화를 읽었다. 언젠가 큰 맘 먹고 어머니가 사주신 신세계 창작동화의 몇 권인가에 존재하던 산타클로스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으며 나의 크리스마스를 지켰다. 부모님이 지켜주지 못한 산타의 존재를 믿게 했던 것은 내 스스로 키운 상상의 힘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마 나는 꿈을 깨고 싶지 않은 절박한 심정으로 산타를 믿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 나에게 상상이란 일종의 보호 본능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상상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들은 대부분 이런 내용을 주요 갈등이자 주인공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내세웠었다. 아이들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 이 상상의 나라도 없어질 것이라는. 그래서 주인공은 아이들의 꿈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결국 마무리는 해피엔딩이다. 애니메이션 '가디언즈'는 우리가 만화 속에서 수차례 봤던 "상상의 나라를 지켜주세요"라는 슬로건을 한치의 반전이나 재해석 없이 상투적으로 풀어간다. 그 과정에 참신함은 없지만 주인공 '잭 프로스트'를 방황하게하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의문은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존재해야만 하는 해답을 제시한다.

 

 

꿈과 희망 그리고 유년의 추억과 호기심을 만드는 즐거움은 결국 그것을 믿는 아이에게만 존재할 수 있는 상상의 친구들이다. 아이들이 상상의 친구를 믿고 있기에 그들은 아이들의 꿈을 추억을 희망을 지켜줄 수 있다. 물론 꿈과 희망은 눈에 보여서 확인되는 종류도 아니고 물질적인 이득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를 이겨내는 자산이 된다. 상상은 공포를 키운다. 하지만 그 공포를 잠재우는 것 또한 상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포가 존재하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이 상투적인 애니메이션이 전하는 가장 뜨거운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다.

 

 

이미 산타를 믿지 않는 어른들에게는 코웃음이 나올 내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어른들이 이 영화를 관람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상상을 믿게 하는 힘을 키우게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어른의 몫인가를. 결국 상상의 친구 가디언즈는 어른에게 주어진 역할인 것이다.

 

 

물론 이 상투적인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어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성 또한 존재한다. 잭 프로스트가 추억을 개봉했을 때 그가 표현하지 못한 슬픔의 몫은 오로지 어른들에게 주어진 힌트일 것이다. 피치의 마지막 절규에서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는 허락되지 않은 권선징악의 연민은 어른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기묘한 감상일 테다.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명품 트레이닝복을 입은 누군가가 떠오르는 꽃미남 잭 프로스트의 아름다운 얼굴은 3D 캐릭터 주제에 성인 여성의 마음마저도 홀리기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총집합 된 것 같은 환상적인 화면들. 동화 같은 색감을 입은 캐릭터들의 사랑스러운 입체감. 마치 놀이공원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환상적인 기분은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느끼기에도 손색이 없다. (빨간 꼬깔콘들과 환상의 모래 요정 샌디의 입체감은 정말 키우고 싶어질 정도.)

 

상상의 힘이 사라진 시대에 상상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는 영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엔 미처 산타의 방문을 받지 못할 아이들의 가디언즈가 되어주고 싶다. 문득 내 가슴을 두드려 물어본다. 나의 상상은 안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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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의 전작을 상대로한 차기작은 시작부터가 난관입니다. 이전 작품을 너무 재밌게 본 매니아의 눈은 있는대로 높아져서 시작부터 원죄를 씌우고 작품을 감상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이미 성공한 작품이 건네준 양날의 검을 움켜쥐고 게임을 시작했습니다만 오히려 전작의 무게감을 덧씌우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또 하나의 즐거움을 건네주었습니다. 그것은 17세의 틴에이저 스파이더맨이 건네줄 수 있는 놀이의 즐거움입니다.

 

 

 

간혹 스파이더맨 개봉 이전의 극장가에서 이따금씩 쏟아지는 스파이더맨의 예고편을 볼때면 "와우. 이거 정말 재밌네." 라고 외치던 앳된 목소리의 함성이 가장 큰 기억으로 자리 남았는데요. 예고편 속에 괜히 그 목소리를 끼워넣은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토비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이 주어진 힘을 때때로 저주처럼 받아들였던 것과 달리 앤드류 가필드의 힘은 1초의 고민이나 고뇌도 자리하지 않은 틴에이저의 놀잇감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를 닮은 영리한 머리로 스파이더맨의 거미줄 장치를 만들고 시건방진 플래시를 눈 가리고 약올리는 제스추어로 한방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지 않나 어지럽고 골치아픈 불운의 연속 속에서도 여전히 거미줄을 타고 하늘을 공중 비행하는 그의 목소리는 "거미인간 떴습니다"를 외치는 경쾌함의 극치입니다.

 

 

더욱이 이 영화는 액션 블록버스터의 거대하고 막중한 임무를 가진 밤의 영웅을 거창하게 회고하는 내용을 다룬 것이 아닌 이제 막 성장중인 스파이더맨의 드라마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큰 줄기가 아닌 작은 소품 같은 사소한 행동들에 더 큰 초점을 맞추어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스파이더맨을 그려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심이 아닌 여심을 울리는 스파이더맨이 되어버렸달까요.

 

 

앞으로의 시리즈를 이어갈 막중한 임무를 가진 스파이디 답게 배우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낸 감독은 그가 보여주는 사소한 소품 같은 행동들에서 어메이징 앤드류의 가치 평가가 곧 영화의 가치 평가라는 것을 몇번이고 되새깁니다. 굳이 필요치 않은,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뒤로하고 렌즈를 뽑아 통속에 집어넣는 섬세한 디테일에 안경까지 덧씌우는 선물을 시작으로 너드와 킹카를 오가는 앤드류 가필드의 압도적인 매력은 영화 전반부를 아우르는 거대한 힘입니다. 정말이지 이 영화에서 앤드류 가필드의 매력은 그야말로 어메이징 그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위협적이게 사랑스럽습니다. 이쯤하면 액션의 화려함이고 스토리의 장대함이고 그딴 것은 아무 필요가 없어지지요.

 

 

 

호평 받는 전작을 뛰어넘는 2탄은 존재하기 어려울테지요. 하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토비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을 뛰어넘지는 못했더라도 앤드류 가필드가 그를 뛰어넘은 단 한가지 진실은 존재합니다. 바로 전작에서 느끼지 못했던 청춘영화의 즐거움을 이번 작품에서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죠. 열일곱살의 피터 파커에게 즐거움이란 오로지 사진을 찍는 행위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능력 역시 타인을 찍어주는 능력 외에는 감지할 수 없었죠.

 

 

 

하지만 그에게 초인적인 힘이 찾아온 순간 피터파커는 그 힘을 즐거운 놀이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더이상 타인을 찍는 존재가 아닌 타인에게 찍히는 존재가 되어버린거죠. 그 순간이 찾아다준 짜릿함은 점차 너드 피터파커를 영웅으로 성장시킵니다. 그순간이 전해주는 유쾌한 설렘은 분명 전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산뜻한 에너지였죠.

 

 

무겁고 묵직한 스토리속에 다소 음울한 스파이디가 전달해주는 짜릿한 손맛을 잊지 못하신 분이라면 어쩌면 아직을 불완전하고 유치한 이 어린 17세의 스파이더맨에게 실망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스파이더맨의 본질은 다른 영웅이 갖지 못했던 소소하고 불완전한 사랑스러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원작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 작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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