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드라마리뷰 +517
빛나는 로맨스 112회 줄거리 답답이 엄마보다 나은 똑쟁이 연두의 속 시원한 활약

 

“근데 채리 이모 엄마가 집사 할머니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의 오빛나(이진 분)은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선량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지나치게 말그레한 선의가 이따금 보는 사람을 피로하게 한다.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의리걸 오빛나. 그럼에도 막상 그녀 자신의 불의는 제대로 항의조차 해보지 못하고 참아 넘긴다. 그저 내 몸과 마음이 좀 고생하면 그만이지 뭘, 하고. 그래서 때론 답답이 오빛나가 추악한 모녀 사기단, 장채리 모녀보다 더 싫어질 때도 있었다.

 

드라마의 초반은 최악의 모자 사기단에게 당해 위자료 한 푼 못하고 사기 이혼의 나락으로 떨어지더니 한참이나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며 제대로 된 복수극 한번 펼쳐보지 못했다. 드라마의 후반, 이제는 모녀 사기단이 그 배턴을 물려받았다. 초반보다 더 끔찍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오빛나는 여전한 자애와 이타심으로 그들을 끌어안는다.

 

 MBC 일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 연출 신현창, 정지인극본 서현주출연 이진, 박윤재, 조안, 허정은, 지소연

 

 

 

장채리에게 직접적인 괴롭힘을 당한 것은 물론 20년간이나 자신의 호사를 대신 누린 사람인데 도대체 누가 누굴 동정하는 건지. 진실을 알고 나면 장채리가 받을 상처가 염려돼서 본인이 친딸이라는 진실조차 밝히지 못하고 그저 끙끙대기만 할 뿐. 갖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그녀를 보면 정말 답답이라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석연치 않은 아빠의 죽음을 집착적으로 추적하여 가해자 이태리(견미리 분) 하나만이 아니라 그녀의 아들까지 복수극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여동생 오윤나(곽지민 분)의 지구력과 냉담함이 펼쳐내는 스릴러극을 볼 때마다 어디서 다른 드라마를 보는 건지 착각이 생길 정도다.

 

 

 

장채리가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눈물 글썽해서 항변하는 것 외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오빛나와 달리 언니가

당했다는 소리 한 마디에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화를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오윤나가 장채리와 머리를 쥐어뜯으며 싸우는 모습은 활명수 몇 컵을 들이킨 듯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착한 답답이 오빛나와 달리 악인을 용서하지 않는 결단력으로 시청자를 신나게 하는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그녀의 딸, 똑쟁이 연두다. 이 드라마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조미료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누구나 한번 봤다 하면 이 빠진 미소를 잊을 수 없는 귀엽고 영리한 꼬맹이. 멍청하고 악질적인 아빠와 답답한 엄마 사이에서 어쩜 이렇게 영특한 천사가 태어났을까 싶다.

 

 

 

사기꾼이 꽃뱀을 만나 위장 이혼으로 아내를 쫓아내곤 아이마저 갈취했음에도 그저 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오빛나. 점 하나 찍고 복수를 꿈꾸는 행동력 따윈 생각할 수도 없었던 너무 착한 엄마 대신에 그 사이를 파고들어 아빠의 내연녀를 통쾌하게 골탕먹인 것은 다름 아닌 빛나의 딸, 연두였다.

 

그저 착하기만 해서 쭉 당하고만 살았던 엄마와 달리 딸 연두는 깜찍한 꾀로 악인을 골탕먹인다. 엄마의 자리를 뺏은 아줌마와 아빠의 잠자리 사이를 파고들어 엠마정은 약이 올라 미치려고 하는데 시치미 뚝 떼고 "아빠~"하고 품에 안기며 애교를 떠는 모습은 통쾌함의 극치였다. 새엄마의 구박을 함구했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슬기와 달리 연두는 조금도 참지 않고 분노를 표출하는데 독한 여자 엠마정마저 그 기에 눌렸을 정도다. 연두의 엄마를 속이는 일쯤이야 껌이었지만 어린 연두는 순순히 당해줄 상대가 아니었다.

 

 

 

아마도 변태식의 카드로 잔뜩 긁어낸 쇼핑백을 한아름 들고 돌아온 엠마정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지르는데, 누군가 결혼사진 속 그녀의 얼굴에 잔뜩 낙서를 해놓고 심지어 '못된 마녀'라는 글자까지 적어놓았던 것. 기함한 어른들의 얼굴 다음으로 천진난만하게 잠들어있는 독립투사 연두의 얼굴이라니.

 

 

"그건 꼭 제 애미를 닮아가지고." 힘없이 축 늘어져 밥을 거부하다가도 할머니가 엄마 욕하는 소리를 하자 곧 눈을 치켜뜨며 독기를 담고 노려보는데 어찌나 영특하면서도 귀엽던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를 뺏길 지경에 처해서까지 무력이 아닌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선한 줄로만 알고 있는 답답이 엄마 오빛나를 보면 속이 터질 것 같다가도 싫은 것, 부당한 것은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악인을 골탕먹이는 마치 삐삐 롱 스타킹 같은 연두를 보면 탄산수 마신 듯 막힌 속이 쑤욱 내려간다.

 

 

 

알아서 몰락한 아빠네가 잠잠해진 이후로 한동안은 별 활약이 없었던 연두가 또다시 주요 사건의 키워드가 되게 생겼다. 모든 삶이 거짓이었던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하나뿐인 진실인 강하준(박윤재 분)에게 여자로서 치명적인 모욕을 당하자 채리는 드물게 엄마의 품을 갈구하며 울었다. 인생의 밑바닥으로 내려앉은 순간에 그래도 그녀를 안식하게 해줄 유일한 사람은 저주 같은 김 집사의 품뿐이었으니까.

 

그녀의 품에서 채리는 더는 부잣집 영양이 아니었다. 고용인의 숨겨진 딸인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며 통곡하는 딸에 마성의 김 집사마저 긴장이 풀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옆에서 말간 얼굴로 큰 눈을 굴리며 둘을 빤히 바라보고 서 있는 오빛나의 딸, 연두. “근데- 채리 이모 엄마가 집사 할머니야?”

 

 

 

기겁한 두 사람이 어떻게든 말을 돌려보려 했으나 이 아이는 대충 말로 둘러대면 넘어가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설프게 아이를 설득하려는 말을 하나하나 부정하며 “아닌데에? 나 분명히 들었는데에?” 하고 또박또박 대드는 똑쟁이 연두. 그로기 상태에 빠진 엄마를 대신하여 화가 아저씨, 즉 강하준의 그림을 주겠다며 어르고 달래는 채리에게 홀랑 넘어가 버린 연두는 역시나 어린아이였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가 줄 꼬마 아가씨가 아님을 잘 안다. 자신의 상처는 돌보지 않고 타인의 아픈 마음만 걱정하느라 내 것인데도 마음껏 가지지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 시청자의 탄산수 역할을 대신해줄 것임을!

 

"그래! 그러니까 고소하다 이거잖아? 너 그렇게 아닌 척 착한 척 가식 떠는 꼴 보기 싫어서라도 보란 듯이 잘 살아주고 싶었다구!" 오늘도 역시나 강하준을 잃은 분풀이를 오빛나에게 퍼부어대는 장채리의 일그러진 마음. 잠깐 울컥했다가도 곧 찍- 소리도 못 내는 채 다물어버린 엄마의 답답하리만치 순해 빠진 태도를 대신해서 울려 퍼진 구세주 같은 목소리. "신경질쟁이 이모. 나 화가 아저씨 그림 준다더니 왜 안 줘?" 유치원 다녀왔습니다-라는 발랄한 목소리로 운을 뗀 연두는 곧 심통 난 얼굴로 장채리를 압박했다. 그것도 무려 '신경질쟁이 이모'라는 통쾌한 호칭을 붙여가며.

 

 

"어어. 지금 가지러 갈 거야." 우물쭈물하는 김 집사의 태도와 기가 팍 꺾인 장채리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며 오빛나는 다른 남자와 결혼 약속을 한 엄마를 두고 왜 자꾸 민망하게 강하준을 찾을까 싶어 아이를 달랜다. 그럼에도 입을 다물지 않는 우리의 연두. "아니야! 신경질쟁이 이모랑 약속했어. 근데 엄마. 집사 할머니랑 신경질쟁이 이모랑 엄마-" 다급하게 연두야! 를 외친 장채리. 눈가에 눈물이 맺혀서는 억지로 웃는 입을 만들어 이를 악물고 아이를 달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연두야. 이모랑 약속했잖아. 착한 어린이는 약속 지키는 거야." "아! 맞다. 히히." 그 말에 천연덕스럽게 쉿! 표시까지 하는 똑쟁이 연두. 오히려 너무 천진난만해서 두려운 그 모습. 다 큰 성인 몇이 달려들어도 막아내지 못하는 모녀 사기단을 어리디어린 연두의 입으로 함락시켜 버린 것이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려! 네들이 있던 그 구질구질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라구! 당장 사라져버려! 당장!” 강하준에게 결혼 무효 선언까지 듣고 나서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장채리는 오늘도 그 분풀이를 오빛나에게 풀었다. 언니와 달리 모욕을 그냥 받아넘기지 않는 오윤나가 나한테 그렇게 혼쭐이 나고도 정신을 못 차렸냐며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었지만 역시 성모 같은 마음의 오빛나는 동생을 부여잡으며 채리의 악다구니를 그냥 받아들여 준다. 시청자의 답답함이 극에 달했을 때 문을 열어젖히는 꼬마 투사의 목소리. “시끄러! 여기 우리 엄마 방이야! 신경질쟁이 이모가 나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버럭버럭 호령하는 모습이 어른 못지않다. “신경질쟁이 이모 나빠. 나도 약속 안 지킬 거야.” 아까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사색이 돼서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이모를 무시한 연두에게 자비란 없다. “엄마. 김 집사 할머니가 신경질쟁이 엄마한테 자기가 엄마라고 했어.” 입을 틀어막혔으면서도 꿋꿋하게 외치는 연두.

 

 

 

“신경질쟁이 이모 엄마가 김 집사 할머니야?” 연두의 입으로 들었어도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녀의 만행에 본의 아니게 오윤나가 맞장구를 쳐주는 바람에 가상의 엄마 놀이라고 마무리 되었지만 정황을 모두 알고 있는 오빛나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그래애?” 그래. 도대체 어디까지 하나 보자. 더 재밌었던 것은 '신경질쟁이 이모'라고 칭할 만큼 히스테릭한 장채리의 포악질을 당하면서도 전혀 굴하지 않는 연두의 호방함이다. "이모. 손은 닦았겠지?" 이모와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게 입을 쓰윽 닦으며 내던진 일침. 우리의 꼬마 히어로는 최후의 일격마저 파워풀했다.

 

 

 

이제 모녀 사기단의 흥망성쇠는 이 꼬마 장군의 입에 달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리 순해 빠진 답답이 여주인공 오빛나더라도 자신을 기만하며 거짓으로 혜택을 누려오고 있었던 그들을 더이상은 용서치 않을 테니까.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 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공감 하트를 눌러주세요. (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내가 김 집사 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 이게 뭐야. 왜 이런 걸로까지 내 목을 조여오는 거냐구!" 20년간 내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명품처럼 근사한 그분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여자의 친부라는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그야말로 천박하디 천박한 사내가 나의 친아버지라는 사실과 마주한 장채리(조안 분)은 눈물을 흩뿌리며 절규했다. "정말 그 쓰레기 같은 남자가 내 친아빠라는 거야?“

 

 

 

빛나는 로맨스 113회 줄거리와 리뷰 이휘향 딸의 인생을 망친 비뚤어진 모성애

 MBC 일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 연출 신현창, 정지인극본 서현주출연 이진, 박윤재, 조안, 허정은, 지소연

 

"내 이름 부르지도 마. 과거에 얼마나 놀았으면 그런 쓰레기가 내 아버지야?" 생각해보면 장채리도 참 안쓰러운 것이 20년 만의 친부모를 향한 첫인상이 절망과 비탄 그리고 절규뿐이었으니. 웬만한 주인공이 출생의 비밀을 젖히고 나타난 친부모의 품으로 우다다 달려가 감격의 재회를 나누는 기쁨의 순간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운의 캐릭터가 아닌가.

 

아무리 밉살스러운 장채리라지만 그 사실을 상기하면 절로 동정이 스민다. 친아버지를 만나고 던진 첫 감상이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가 내 친아빠라는 거야?”라니. 그런 경험을 가져야만 하다니. 다스베이더와 조우한 루크의 첫마디도 이만큼의 비탄은 아니었다.

 

내가 알아서 다 할게. 넌 그냥 있으면 된다고. 20년간의 의리나 우애 따윈 져버린 냉혈한이지만 딸에게만큼은 간이라도 그냥 빼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절절한 모성애의 소유자 김애숙(이휘향 분)은 아이를 어르고 또한 달랬지만 그걸 보는 내 쪽의 심정은 “그냥 가만히 좀 있으세요. 제발.“을 외치고만 있었다.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그저 장채리와 김애숙 모녀의 효율적인 ‘사기’를 위해서라도 차라리 그녀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딸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아니 애초에 김 집사가 아임 유어 마더! 를 외치지만 않았더라도 장채리의 인생은 이토록 꼬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이야?” “아마 오늘 그 집안이 발칵 뒤집혀서 크게 전쟁 날 거야!” “아우. 괜히 싸움 붙였다가 불똥이 나한테 튀면 어떻게 해?” 이젠 엄마의 계획을 들으면 곧장 염려부터 되는 채리가 의문을 품자 김 집사는 소녀처럼 즐거워하며 너한테 불똥이 왜 튀냐고 여유를 부렸다. 빛나(이진 분)의 양어머니이자 그녀의 오랜 절친인 순옥(이미숙 분)과 강하준(박윤재 분)의 부친인 강대풍.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루머를 유포해 장재익(홍요섭 분)과의 부부 관계를 파탄 내고 어떻게든 그 자리를 차지할 심산이었다.

 

“내가 장 교수만 붙잡으면은 우리 인생은 희망의 길이 열리는 거 아니니?” “아직도 그 꿈을 못 버린 거야?” 오죽하면 강하준의 집착녀 장채리마저도 기함을 할 만큼 어처구니없는 엄마의 망상. 혹은 개꿈. 그 철없는 사기 행각이 딸에게 절망을 선사할 최악의 아이디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녀는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김 집사.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해요? 아니 내가 얼마나 망신을 당했는지 알아요?!”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오빛나를 제외하면 대체로 모녀 사기단의 악행은 우습고 유치한 어린애 장난일 뿐이다. 영리한 정순옥은 이미 애숙의 만행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요만큼의 오해도 만들지 않기 위해 지금의 남편, 장재익을 대동한 채로 전남편 강대풍을 만났던 것이다.

 

애숙의 제보를 철석같이 믿고 플래시를 터뜨리며 불륜 현장을 잡아내려 했던 대풍의 부인 이태리(견미리 분)은 티끌만 한 오해도 생길 수 없게 당당히 현 남편과 과거의 남편을 조우시키고 있는 순옥의 과감함에 혀를 내둘렀다. 사돈지간을 의심하며 카메라까지 꺼내 들고 그 자리를 습격한 이태리의 있을 수 없는 천박함에 순하디순한 장 교수 또한 뿔이 단단히 났다. 성난 얼굴로 사돈지간을 깨버리자고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너 때문에 채리랑 깨졌어. 이제 속 시원하니?” 이 사단에 혼쭐이 난 것은 애숙이 아니라 그녀의 딸, 장채리였다. 여전히, 너무나도, 그리고 언제까지나 강하준을 사랑하는 채리에게 어머니의 터무니없는 계략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남자를 놓쳐버리게 됐다. “방금 강 회장님 댁하고 합의 보고 오는 길이야. 이 결혼 서로 접자고 합의 봤다고.”

 

 

 

“내가 강 회장 만나러 나 혼자 나갔을 것 같으니? 우리 교수님하고 같이 나갔어. 네가 사부인 부추겨서 사진 찍는 사람들까지 몰고 온 덕분에 사돈댁네는 우리 그이한테 망신 톡톡히 당했다구.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이고 사돈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니. 사부인이 채리 보내겠다고 강경하게 말씀하시더라. 채리 생각을 하긴 했던 거니? 엄마라는 애가 왜 그 모양이야? 네 발등 네가 찍은 거야!”

 

 

“뭐가 어떻게 된 거라고? 우리 채리가 강 회장 댁에서 쫓겨나게 된 거라고?!” 우리 채리가를 외치며 부들부들 떠는 애숙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순간 마치 엄중한 심판의 여신 같은 얼굴을 하고선 애숙을 나무라는 순옥의 일갈에 브라보를 외쳤다. 너만 가만히 있었어도 채리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아마 빛나는 로맨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물론 장채리라는 캐릭터 또한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악녀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엄마라는 사람이 비뚤어진 모정으로 딸을 구슬리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새엄마만 중하고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좋아요. 내 인생 쫑내죠. 뭐. 어차피 아빤 날 어릴 때부터 좋아하지도 않으셨잖아요. 사랑받지 못하는 애가 남편한테는 사랑받을 수 있었겠어요? 내 인생이 그렇죠. 뭐.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악한 데다가 영리하지조차 않은 엄마의 우둔한 계략과 아버지의 냉담한 판단에 채리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는 채리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그녀가 그토록 쉽사리 친아버지에게서 마음을 돌려버린 까닭은 어릴 때부터 이 아이를 진심으로 대해주지 못한 장 교수의 태도 탓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딸이라는 사실을 몰랐음에도 남들이 그 묘한 기류를 눈치챌 만큼의 살가운 태도로 따뜻하게 서로를 대했던 빛나와 장 교수의 관계와 달리 속고 있는 상태에서도 채리는 어쩐지 할머니와 아버지의 살가운 보살핌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늘 묘한 거리감을 느끼며 자라났던 채리는 마음에 뚫린 큰 구멍을 채우다 못해 극단적으로 자신의 것에 욕심을 부리는 이기적인 어른으로 성장했다. 따뜻한 가정이지만 이타심을 배우진 못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 것을 빼앗은 오빛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언젠가 채리는 울부짖으며 외쳤다. 김 집사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내겐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사랑하는 새 아내, 순옥을 위해 사돈지간을 깨버린 아빠. 20년간 그려왔던 꿈인 장 교수의 아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살얼음판 위를 걷는 딸의 처지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이토록 무자비한 계략을 저질러버린 엄마. 부성과 모성보다 중요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로맨스. 딸의 인생보다 로맨스가 먼저인 부모의 이기적인 판단 때문에 채리는 오늘도 악녀일 수밖에 없었다. 새삼 이 드라마의 ‘빛나는 로맨스’라는 역설적인 제목이 섬뜩하게 와 닿는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 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공감 하트를 눌러주세요. (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사랑은 노래를 타고 146회 줄거리 시청률 1위가 무색한 황당 전개

 

KBS1 일일극 사랑은 노래를 타고 연출 이덕건극본 홍영희출연 다솜, 백성현, 황선희, 김형준, 곽희성

최근 드라마 ‘뻐꾸기 둥지’ 제작발표회에서 장서희는 최근 안방극장의 흐름이 막장도 드라마의 장르로 받아들이는 추세인 것 같다고 밝혔다. 과거 이수만 사장의 ‘립싱크도 문화다.’라는 소신 발언의 기시감이 느껴져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장서희가 말하는 소위 막장 드라마라는 것보다 더 이상한 드라마가 판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겠다.

 

아무리 복권 자동 당첨 시간대라지만 연일 빼먹지 않고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일일 드라마, 사랑은 노래를 타고. 적어도 이 드라마의 ‘이상함’ ‘기묘함’에 비한다면 차라리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민소희의 재림이 골백번은 더 나을지어다. “공정남씨세요.” “예? 누구라고요?” 남주인공 현우 아빠를 연기하는 선우재덕(박범진 역)이 황망한 얼굴로 이 대사를 읊는데 문득 그 충격에 빠진 얼굴의 절반은 현우 아버지가 아닌 배우 선우재덕 자신의 기막힘 또한 담겨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세상에. 뭐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설정이 다 있나 싶었겠어서.

 

 

 

사실 사랑은 노래를 타고는 이미 네티즌의 입에서 “막장 드라마라고 하기는 뭐한데 뭔가 이상한 드라마.”라는 불평을 쌓아왔던 드라마다. 정말 말 그대로 자극적인 설정은 없다. 천상여자처럼 살인마가 날뛰지도 않고 빛나는 로맨스처럼 등장인물의 90퍼센트가 무뢰한인 것도 아니니까.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공들임은, 조강지처를 내팽개친 전남편을 향해 복수에 이를 가는 돌싱녀가 아니라 단 한 곡의 뮤지컬 넘버로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어린 소녀일 뿐이다.


이 드라마가 이상한 이유는 소통의 부재와 상호작용의 불균형이다. 한마디로 남의 의사는 생각하지도 않고 혼자 김칫국 마시며 덤벼드는 주변 인물이 너무 많다. 지금은 의협심 넘치는 법조인처럼 그려지지만, 한때 공들임(다솜 분)의 언니 공수임(황선희 분) 또한 만만치 않게 이상한 사람이었다. 남주인공 박현우(백성현 분)을 혼자 짝사랑해온 수임은 그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연애와 상견례에 결혼까지 상상으로 해치우는 극단의 망상녀였던 것이다.

 

상대자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동의를 얻은 뒤에 연애부터 시작하는 것이 남녀 사이가 되는 첫걸음일진데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오로지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전제 조건 하나에 당연히 우리 둘은 사귀는 사이라고 못을 박았던 수임의 행동은 지성을 가진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비합리적인 이기심의 극치였다.

 

더 황당한 것은 도저히 온전한 정신 상태라고는 볼 수 없는 수임의 망상증을 나무라기는커녕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들임과 현우를 불건전한 관계처럼 힐난하는 주변 인물의 반응이다. 심지어 현우 모친인 윤지영(김혜선 분)과 수임의 현재 시어머니인 구미옥(김예령 분)은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놓고 마치 근친이라도 되는 것 마냥 호들갑을 떨어대는데 도대체 왜 이토록 비합리적인 분노를 퍼뜨려대나 싶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드라마의 기가 막힌 전개를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의 괴이함은 그저 서막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교통사고를 당한 현우는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만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공황상태에 빠진 현우 어머니보다 더 속이 쓰린 건 그 옆에서 가슴으로 울고 있는 현우의 아버지, 박범진이었다. 청문회에서 밝혀진 것처럼 타인의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 현우는 생물학적 부친을 따로 두고 있었으니까. 혈액형이 맞지 않아 이식이 불가능한 아내가 발을 동동거리며 방법을 좀 찾아보라고 하는데 보이지 않게 가슴을 치던 범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살릴 것이라며 자리를 떠난다. 현우가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기억한 의사가 차마 범진의 앞에서 권할 수 없었던 그것을 자신의 입으로 부탁하려는 이유였다.

 

아무리 현우를 살리는 일이라지만 자식의 친아버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게 좀 서글펐을까. 하지만 온통 아이를 살리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는 범진에게 체면이나 상처쯤은 떠오르지도 않을 고통이었다.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에 생물학적 친부를 찾아 나섰던 담당의에게 자료를 넘겨받은 한주호(정승호 분)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한탄한다. 현우네와 들임이네. 이 가족의 얼기설기 엮여있는 인연이 기가 막혀서.  “홍수임 변호사의 부친 되시는 공정남씨요. 그분이 현우 생물학적 아버지 되십니다.” 박범진가에 정자 기증을 했던 사람. 곧 현우의 생물학적 친아버지가 다름 아닌 들임이의 양아버지, 공정남(이정길 분)이라니!

 

 

 


아무리 드라마의 세계관이 몇 안 되는 인구로 서로 지지고 볶는 것이 기본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현우의 친아버지가 공정남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이면 극도로 난잡해지는 설정이 어디 한둘인가 말이다. 일단 집안끼리 거의 결혼할 사이처럼 결론 내렸었던 공수임과 박현우는 이제 남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관계다. 이 드라마는 친아버지가 같은 남녀 둘을 결혼할 관계로 묶어뒀다는 것인가.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피가 같은 남녀를 두고 부부가 될 것을 독촉했으니 이 얼마나 망측한 일인가.

 

 

 


수임이와의 관계가 청산됐다고 해도 이 찝찝한 인연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공정남이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임이 밝혀진 순간, 남녀주인공인 공들임과 박현우는 유사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으니까. 가족을 잃은 들임이를 공정남은 큰마음으로 가슴에 품었다. 비록 피가 통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절절하게 애틋한 부녀 관계가 아니던가. 여전히 공정남을 “아빠!”라고 부르는 들임이를 어떻게 그의 친아들인 박현우와 엮어준단 말인가.


도대체 왜 이토록 부자연스러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주인공의 친아버지가 남주인공의 양아버지와 삼촌 때문에 자살을 한 것도 모자라 그녀의 양아버지를 남주인공의 친아버지로 둔갑시킬 줄이야. 더군다나 여주인공의 친언니는 박현우네의 비리를 폭로하겠노라 이를 가는 중인데!

 

 


공정남은 말한다.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건지 인연이라는 게 참 얄궂네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이만큼의 악연이라면, 애초에 이 둘은 만나서는 안 될 사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저 둘이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펄펄 뛰었던 주변 인물의 행동은 아마도 무의식중에 이 커플의 근원적인 악연을 짐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 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공감 하트를 눌러주세요. (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내가 김 집사 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 이게 뭐야. 왜 이런 걸로까지 내 목을 조여오는 거냐구!" 이쯤 되면,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집착이라고 해야 할까.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의 악녀, 장채리.(조안 분)이 여자의 광기 어린 핏빛 사랑이 날이 갈수록 질척해지고 있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은 일일극에서 여주인공을 상대하는 악녀의 아이덴티티가 원래 이런 거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의 집요한 오빛나(이진 분) 괴롭히기는 추할 정도로 집요하다.

 

 

 MBC 일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 연출 신현창, 정지인극본 서현주출연 이진, 박윤재, 조안, 허정은, 지소연

빛나는 로맨스 108회 줄거리 리뷰 장채리 이 여자의 미친 사랑을 위한 변명

 

오빛나의 남자친구, 오빛나의 재능, 오빛나의 커리어. 심지어 그녀의 가족사마저 빼앗고 싶어하는 극단의 악녀, 장채리. 그럼에도 이따금 연민을 느끼는 까닭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거짓으로 살아야 했던 그녀의 그림자 인생이 서글퍼서다. 엄마의 비뚤어진 모성애와 야망으로 점철된 장채리의 인생은 돌이켜보니 오빛나의 그림자를 핥고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정한 아버지, 추억마저 아름다운 어머니, 재벌가 손녀가 부럽지 않을 유복한 가정. 게다가 눈앞에 나타난 백마의 왕자님.

 

 

 

언젠가 강하준(박윤재 분)은 추해질 대로 추해진 장채리의 몰락을 한탄하며 도대체 내가 알고 있는 그 여자는 어디로 가버린 거냐고 절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채리의 첫인상은 시청자에게나 강하준에게나 그리 나쁜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악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때는 산뜻하기까지 했던 그녀였다. 원하는 남자를 얻기 위해 거짓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천사를 연기했던 가증스러움도 당시에는 밉지 않은 수준이었다.

 

억지로 끌려나간 맞선 자리에서 그녀와 남자 대 여자로 만난 강하준이 잔뜩 싫은 얼굴을 하곤 부모님께 결별 사실을 통보해달라고 하자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한 자세와 유창한 언변으로 강하준을 압도하는 그 모습은 백치 같은 여주인공 오빛나 보다 사랑스러웠었다. 오빛나, 즉 그림자의 진짜 주인인 그녀와 마주치기 전까지 장채리는 비교적 건강한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게 바로 강하준이 외쳤던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감을 가진 여자, 장채리였던 것이다.

 

 

 

이런 그녀가 오빛나를 만난 이후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한다. 오빛나에겐 장채리라는 인간이 태어난 직후부터 인생의 밑바닥이자 삶의 오점이겠지만, 장채리에게도 오빛나는 마주쳐서는 안 될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진짜였고 장채리는 가짜였으니까. 진짜가 나타난 이상 그녀는 오빛나가 응당 누려야 할 모든 호사를 훔친 인생 도둑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원하지 않은 도둑이 되어버렸던 그녀가 악녀의 길을 걷는 것이 그리 생뚱맞은 결과는 아니지 않은가.

 

 

 

"정말 그 쓰레기 같은 남자가 내 친아빠라는 거야?" 척 보기에도 밑바닥 인생 같은 상스러운 사내가 나의 아버지라니. 평생 고용인 이상의 의미로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그래서 그녀가 종종 보내는 끈끈한 눈빛의 신호마저 이해하지 못했던 김 집사가 나의 어머니라니. 나의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매일. 찬란하게 빛났던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 오빛나라는 존재의 두려움. 그리고 엄마의 간교한 속삭임. 숨통이 조이는 공포와 분노 속에서 그녀는 급기야 정신이 이상해져 버렸다. "그 인간이 내가 김 집사 딸이라는 거 다 들은 거야?" "내가 김 집사 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 이게 뭐야. 왜 이런 걸로까지 내 목을 조여오는 거냐구!"

 

 

 

빛나는 로맨스는 만화 캔디캔디의 유사품 같은 드라마다. 외롭고 슬프지만 굳센 여주인공 오빛나는 캔디형 여주인공의 전형이고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약속해왔던 강하준은 동산 위의 왕자님이자 안소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바이크를 타고 나타나 뜨거운 구애를 바치는 터프한 새 남자, 한상욱(박광현 분)은 역시나 테리우스와 쏙 빼닮아있다. 앨버트 아저씨에게 입양되어 거대 저택의 영양이 된 캔디처럼 훗날 모든 고생을 보상받듯 친아버지의 대저택에서 살게 된 오빛나의 삶 또한 캔디캔디의 서사와 일견 닮아있다. 오빛나를 그토록 못살게 굴면서도 또한 집착하는 전 남편 변태식(윤희석 분)의 역할은 단연 니일이다.

 

단순히 캐릭터의 유사성뿐만이 아니라 에피소드 하나가 캔디캔디를 통째로 닮은 내용이 등장하기도 했다. 촬영 도중 강하준의 주변에서 조명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를 대신하여 떨어진 조명을 맞은 채리는 실명 소동을 일으키며 잠시 동안이라도 강하준을 가질 수 있었다.

 

 

 

나보다 그녀가 더 그를 사랑하지는 않을까? 라는 번민 속에 끝내 강하준을 놓아버린 오빛나와 죄책감에 장채리를 아내로 받아들인 강하준은 스잔나를 경외하는 캔디와 테리우스였다. 만화 캔디캔디에서 스잔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리허설 도중 테리우스를 대신하여 조명을 맞는다. 실명한 장채리처럼 불구가 되어버린 스잔나를 역시 죄책감으로 버릴 수 없었던 테리우스는 사랑하는 캔디를 떠나보내고 스잔나의 남자가 되어야만 했었다. 많은 이들에게 분노의 에피소드로 남아있는 이 이야기가 2014년 한국의 드라마에서 모녀 사기단의 ‘실명 조작 사건’으로 마무리되었으니 80년대 순정만화의 저주를 끊어낸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토록 강한 캔디가 “나보다 테리우스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스잔나를 인정했던 것처럼 그것이 집착이건 오만이건 간에 장채리가 강하준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99개의 것을 가져도 1개를 내어주기 싫어했던 장채리에게 있어서 나 자신을 던지고 타인을 구하는 희생이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받은 유일한 남자가 ‘강하준’이었으니 그는 과연 저주받은 행운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김 집사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야. 알아?" "내 이름 부르지도 마. 과거에 얼마나 놀았으면 그런 쓰레기가 내 아버지야?" 그만 내 것이면 돼. 그만 내 것이면. 아버지를 잃고 20년간의 삶을 부정당한 장채리에게 이제 남은 유일한 희망은 ‘강하준’이라는 존재뿐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처음에는 그저 조건 좋은 남자이자 인생의 비전에 불과했던 강하준을 향한 마음이 모든 것을 잃고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닌 지금에서야 진정한 사랑으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그녀였다면 과연 강하준을 대신하여 나를 내던지는 희생을 치를 수 있었겠는가.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것이 남아있는 그녀다. 이제 강하준을 향한 욕심만 내려놓아도 그녀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그 정도로 오빛나는 착한 사람이니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니까. "그래. 나 그런 후진 피가 내 몸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 피를 다 뽑아서 갈아버리고 싶어." "내가 왜 그 사이에서 태어났냐구!" 주인공이 아니라서 이런 사내와 여자를 부모로 가져야만 했던 장채리에게 닥친 가장 큰 비극은, 내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건 유복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20년이 넘게 호사를 누려왔으면서도 누더기 공주 신세의 오빛나보다 바른 인성을 가질 수 없었던 그녀의 뽑아버리고 싶은 악녀 유전자.

 

 

 

그럼에도 파국의 지름길인 강하준과 이 미친 사랑을 놓지 못하는 까닭은 강하준을 갖지 못했던 그 순간이 그녀를 그림자 인생으로 만든 시작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빛나를 선택한 이 남자가 내게 준 균열. 그 순간을 되잡고 싶은 마음. 그녀의 미친 사랑에 침을 뱉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가여움을 느끼는 이유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 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공감 하트를 눌러주세요. (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엔젤아이즈, 편견을 이겨낸 입소문의 힘

 

배우가 출연했던 작품 목록, 즉 필모그래피는 그간 어떤 활동을 해왔는가를 증명하는 명예로운 훈장과도 같습니다. 이를테면 자격증 같은 것이죠. 그가 어떤 작품에 출연해서 얼만 큼의 감동을 주었는가. 그게 곧 연기자를 향한 대중의 신뢰일 테니까요. 비단 연기자뿐만이 아니라 제법 드라마 좀 본다 하는 사람은 제작진이 누군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게 됩니다. 특히 소위 '작가놀음'이라 불릴 만큼 이야기의 힘이 막강한 안방극장에서 작가의 경력이란 좋은 드라마를 선별하는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경력이나 필모그래피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 또한 있죠. 바로 드라마 엔젤아이즈의 주연 배우 구혜선과 작가 윤지련이 그러했습니다.

 

SBS 주말 드라마 엔젤아이즈 연출 박신우극본 윤지련출연 이상윤, 구혜선, 김지석, 정진영, 정애리

 

윤지련 작가와 구혜선의 결합은 이번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녀들은 이미 5년 전,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첫 번째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엔젤아이즈는 크게 흥행했던 드라마, 꽃 보다 남자의 주요 거물이 오랜만에 손을 맞잡은 기대작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하지만 윤지련과 구혜선이라는 이름의 조합에 기대감이 아닌 도리어 그 반대의 감정이 들었던 것은 왜였을까요.

 

 

 

분명 꽃 보다 남자는 2009년 최고의 흥행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원작 만화의 무시할 수 없을 영향력과 신성 이민호의 활약에 바친 영광일 뿐 정작 작품의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여주인공 금잔디(구혜선 분)에게 쏟아진 세간의 평은 비난의 돌팔매질뿐이었습니다. 저 또한 화난 대중의 일부였다고 밝히고 싶네요.

 

호평받은 오리지널. 그리고 차례차례 리메이크된 일본과 대만의 꽃보다 남자. 유행 지나고 발목 잡는데 일가견이 있는 대한민국의 미디어가 세 번째의 꽃 보다 남자를 만들어놨을 때 나름 원작의 팬인 제가 무엇보다 경악했던 것은 그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츠쿠시(한국판 금잔디)를 어쩜 이다지도 밉살스럽게 변질시켜 놓았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만화처럼 어여쁜 구혜선 덕분에 아시아 삼국 중 미모만큼은 월등하리라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건만 그것마저도 구혜선은 가난한 여고생이라는 설정에 어울리지 않는, 소위 얼짱 메이크업으로 빛을 가렸죠.

 

 

 

그저 못하는 연기라고 말하기엔 아쉬운 기괴하고 이상한 표현력으로 시청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구혜선의 연기는 그녀의 스타일링만큼이나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듯해서 거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생활력 강한 건강하고 발랄하며 사랑스러운 츠쿠시의 이미지를 구혜선은 억척스러운 망나니로 해석해 버렸더군요. 특히 맛있게 음식을 먹는 것과 우악스럽게 집어삼키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 마치 폭식증에 걸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밀어 넣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지경이었습니다.

 

일본의 이노우에 마오, 대만의 서희원과 달리 한국판 츠쿠시의 구혜선이 호평받지 못했던 까닭은 비단 구혜선의 연기뿐만이 아니라 이 캐릭터를 대단히 잘못 해석한 듯한 윤지련 작가의 필력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만화적 상상력에 비롯된 이야기라지만 공감대를 상실한 대사와 뭉그러진 감정 묘사는 시청자로 하여금 불만을 야기하기에 충분했죠. 그 와중에 기절초풍했던 것도 모자라 작가의 사회 경험을 의심하게끔 했던 대사가 하나 있는데 가난한 고학생 신분 탓에 죽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금잔디가 한 달도 채우지 못했을 짧은 경력에 200만 원의 가불을 요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던 성실한 츠쿠시를 어쩜 이렇게 이상한 아이로 변질시킬 수 있을까 싶더군요.

 

 

 

결국, 그녀들의 필모그래피는 두터운 편견이자 명예롭지 않은 주홍글씨였죠. 학원물이라는 장르에서 이례적인 시청률을 달성한 화려한 필모그래피의 설명조차 그저 편견 앞에선 허울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윤지련 작가와 구혜선이 다시 만났으니 시청자는 외면할 수밖에요. 엔젤아이즈 첫 회 시청률이 불과 6퍼센트였다는 사실 또한 시청자의 선입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설이 길었지만, 이 리뷰의 끝은 새드엔딩이 아닙니다.


이토록 큰 선입견과 불신을 안고 있었으면서도 굳이 엔젤 아이즈를 시청하게 된 까닭은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편견의 눈을 이겨낸 ‘입소문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배우로서나 작가로서나 그리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대체로 ‘불호’인 두 사람의 재회를 시청자는 초반 불신했지만, 날이 갈수록 이 드라마를 향한 대중의 찬사는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 재미있더라며 소곤소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엔젤아이즈는 한 자릿 수의 시청률을 영차영차 끌어올려 매회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습니다. 최근 위축된 성적 탓에 아쉽게도 동 시간대의 ‘호텔킹’에게 그 자리를 뺏겨 버렸지만, 한동안 엔젤아이즈는 주말극 1위의 자리를 사수하는 프로그램이었죠.

 

더군다나 이젠 이쯤 하면 더 이상 시청률에 구애받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보기 드물게 작가와 구혜선에 쏟아진 신뢰와 찬사는 시청률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비로소 윤지련 작가의 세계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드디어 구혜선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엔젤아이즈는 그 제목만큼이나 투명하게 빛나는 순정만화 같은 드라마입니다. 유리알처럼 섬세한 감수성과 서글픔이 서려 있는 이야기가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죠. 사고로 눈을 잃은 여주인공에게 전해진 천사의 눈동자. 그러나 엔젤아이즈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이면엔 인간의 추악한 이기심과 누군가의 잔혹한 희생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딸에게 빛을 주고 싶어 환자의 호흡기를 떼어낸 아버지. 그렇게 갖게 된 천사의 눈동자는 바로 여주인공 수완(구혜선 분)이 훗날 사랑을 나누게 될 남주인공, 동주(이상윤 분)의 어머니 유정화(김여진 분)의 희생이었습니다.

 

 

 

엔젤아이즈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작가 윤지련과 배우 구혜선의 성장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윤지련 작가가 이토록 큰 인간애를 이야기에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미처 몰랐었어요. 그건 남녀주인공이 공통적으로 ‘정화씨’라 부르는 유정화의 큰 사랑에서 비롯된답니다. 수완이 정화 씨에게 받은 빛. 윤재범(정진영 분)이 동주에게 전한 죄책감의 크기를 넘어선 사랑. 피 보다 간절한 유사 가족의 애끓는 관계들. 윤지련 작가의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일면이었습니다.

 

 

 

꽃 보다 남자의 그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섬세함과 희생을 그려내는 윤지련 작가가 이토록 큰 성장을 한 것처럼 금잔디 또한 껑충 뛰어 어른이 되었습니다. 세밀하고 여린 감성을 요구하는 이 드라마의 순정 만화 감수성에 절대 기준이 되어주고 있는 그녀이지요. 그녀는 이제 우악스럽게 오버 액션을 담당하지도 거북한 표정을 지어 시청자를 질리게 하지도 않습니다. 연기에 여백이 생겼고 감정에 여유가 남았습니다.

 

 

 

이제 시청자는 구혜선의 연기를 보며 상념에 젖기도 하고 가슴을 절절하게 하는 서정성에 깊은 여운을 음미하기도 합니다. 특히 내게 빛을 내린 천사가 다름 아닌 남주인공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화 씨였어. 정화 씨였어. 정화 씨였어.”를 되풀이하며 목이 메 우는 그 모습엔 죄책감과 깊은 감동이 동시에 느껴지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첫인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이 반드시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긴 선입견에만 묶여있었다면 윤지련과 구혜선의 이토록 성공적인 재회에 감격할 수는 없었을 테죠. 이미 시작이 절반 이상으로 시작했던 ‘꽃보다 남자’보다 오리지널로 창조한 두 사람의 세계관이 오히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순정만화의 감수성을, 그 진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 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공감 하트를 눌러주세요. (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4


  • 안녕세요.

    궁금하게 있는데요.

    사노타 글은 있다 없다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 아. 죄송합니다. 예약 발행으로 글을 올렸는데 날짜를 잘못해서 올렸더라고요. 수정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빨리 지운다고 지웠는데 그 사이에 보셨나 봐요. 내일 오전 중에 꼭 다시 올려드릴게요.^^;;

  • 감사 2014.06.11 10:49 신고

    기사와 평론들을 보면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고, 관련 리뷰나 게시글을 보지도 않고 자극적이고 이슈화로 쓰는 경우가 있어 진정한 애청자들에게 실망과 안타까움을 크게 남깁니다.

    닥터콜님의 글을 보면 그렇지 않은 분이 여기 있음을 보아 기사와 평론에 대한 희망을 가져봄이 있고 기쁩니다.
    (이 글을 공감하는 1인인 제가 방문하는 사이트에서는 거의 모든 애청자들이 닥터콜님의 글과 같이 공감하며 본 드라마를 애청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특정팬 사이트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엔젤아이즈가 18회 마지막씬에서 애청자들을 놀라게 했지만, 남은 2회를 보만 알게 되고 어떤 드라마였는지 결론이 나겠지요.

    혹시나 해서 제가 시청하는 다른 드라마평도 읽었는데 검증없이 쓴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드네요.
    나이먹은 제가 댓글은 원만한면 쓰지 않는데 요즘들어 몇건 좀 쓰네요.

    닥터콜님! 감사하고파 이름을 부득이 감사라고 했네요. 감사합니다.^^

    •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 근래 방영중인 그 어떤 드라마보다 발군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드라마의 투명하고 애틋한 감성이 참 예쁘더라고요.

 

너희들은 포위됐다 4회 (괜찮다, 안 괜찮다) 줄거리, 리뷰 책임지는 사회 복수극을 가장한 성장드라마

 SBS 수목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연출 유인식, 이명우극본 이정선출연 이승기, 차승원, 고아라, 안재현, 성지루, 지국


 14일.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다소 불편한 전개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은대구(이승기 분)과 어수선(고아라 분). 그들이 신입 형사로서 처음 맡게 된 담당 업무, 밤낮없이 피해자를 따라붙는 스토커를 수사하는 것. 다혈질의 열혈 형사 어수선은 고작 경범죄 취급인 스토킹의 죗값에 울분을 터뜨리다 계획에도 없는 정밀 수사를 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웁니다.

 

뭐든지 체계적인 플랜을 세우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은대구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함정수사와 잠복근무를 동참하게 하곤 그녀는 피해자의 손을 맞잡아 약속했습니다. “내가 24시간 당신을 지켜줄게요.” 무예가의 딸 어수선은 이 지나친 의욕과 넘치는 감성이 화를 불렀고 엄마의 죽음에 트라우마를 가진 포토그래픽 메모리 – 마치 뇌에 사진을 찍듯 한번 훑기만 해도 필요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천재성 – 를 가진 은대구의 지나친 능력 과신과 차디찬 이성이 불을 지폈습니다.

 

SNS로 동향을 파악해 스토커의 행동에 일련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은대구는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피해자를 지킬 필요가 없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만큼.”의 확신으로 어수선을 설득합니다. 결국, 어수선은 24시간 피해자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깨버리게 되죠.

 

 

 

차라리 얻어맞더라도 증거를 잡아 스토킹의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피해자. 어수선의 책임감을 굳게 믿은 그녀는 형사보다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강력한 물증을 잡기 위해 스토커와 약속을 만들어 그의 차를 타고 집을 떠납니다. 집 앞에 서서 24시간 그녀를 지켜줄 은대구 콤비의 잠복근무를 믿었으니까요. 이랬던 그녀가 자리를 떠난 은대구와 그녀에게 고개를 돌린 어수선을 보며 절망하는 얼굴은 시청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지요.

 

홀로 스토커와 맞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피해자의 창백한 얼굴은 시청자를 분노시키기에 충분한 연출이었습니다. 찬란하게 건널목을 건너 강남 경찰서로 입성한 엘리트 은대구와 열혈 신입 어수선은 팀원들에게는 물론 시청자의 고문관으로 찍히며 비난을 받게 되었죠.

 

 

 

그리고 16일. 너희들은 포위됐다 4회에서 이다음 장면을 이은 두 사람의 대응 또한 여전히 미성숙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은대구는 절망했고 어수선은 공포에 질렸으며 마무리는 서로를 탓하며 팀워크를 깨뜨리는 그들. 거칠게 옷을 뜯으며 들어와 냅다 은대구를 발로 날려버린 서판석(차승원 분)은 흥분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릅니다. “형사라는 직업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어도 산 사람을 죽일 수는 있으니 단 한 번의 아차! 하는 실수, 한순간의 판단 미숙에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쫑 낼 수도 있으니까 절대 단독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그랬지.”

 

 

 

주인공이 소위 민폐 캐릭터가 되어가는 전개는 분명 마음 편하게 볼 수 없는 진행이긴 하지만 발에 걷어 채이고 훈계를 들어도 주눅이 들기는커녕 울분을 터뜨리듯 바락바락 대드는 은대구를 보니 작가가 왜 이런 무리수 설정을 넣었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하더군요.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친절하고 쉽게 말씀해주시던가요!”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그렇게 설명 안 했잖아요. 판단이 어려우면 질문하라고만 했지. 죽어도 형사 안 될 놈들이라더니 왜 갑자기 사건을 맡기셨어요? 그럼 사건을 맡기지 말았어야지. 사건을 맡겼으면 제대로 하나하나 짚어주고 거듭 기회를 주던가!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세 살 어린애도 그보단 낫겠다." 이게 어쩐 일인가요. 은대구는 무려 서판석에게 가르침을 달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땐데 아무리 팀장이라도 팀원을 발로 차고 그러나. 여기 진술 녹화실인 거 몰라요? 이거 녹화 다 되고 있어! 내가 이거 국가 인권 위원회에 고소할 거야! 지속적 인권 유린에 폭력 행사! 서판석! 당신 내가 끝장내줄 수도 있어!”

 

은대구가 김지용이던 시절. 과거에 얽힌 서판석과의 악연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를 정말 시건방진 어린애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은대구가 좀 건방지대도 이건 지나친 행동이죠. 은대구가 서판석에게 이토록 적대적인 이유는 살인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엄마를 독촉하던 신입 형사 시절의 서판석이 협박범으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내팽개치고 방심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물론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조직의 일원 중 하나가 서판석일 것이라는 ‘확신’이 결정적인 적대감의 원인이지만 적어도 신입 형사 은대구의 분노는 전자 쪽에 가까웠으리라 생각되는군요.

 

 

 

그는 목을 놓아 외칩니다. 네가 뭔데 감히 날 때리느냐고. 당신 끝장을 내줄 거라고. 불같은 성미의 서판석은 신입의 치기 어린 행동에 분노해서 덤벼들었다가도 드문드문 상처 입은 얼굴을 지어 보입니다. 더군다나 어린 부하에게 눕혀 멱살을 잡히는데도 맥을 추지 못해요. 그건 바로 지금 은대구의 존재가 서판석이 남기고 온 과거의 죄책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형사라는 직업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어도 산 사람을 죽일 수는 있으니 단 한 번의 아차! 하는 실수, 한순간의 판단 미숙에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쫑 낼 수도 있으니까 절대 단독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그랬지.” 이건 은대구를 향한 분노가 아닌 과거의 자신에게 전하는 후회였을 겁니다.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분명 복수극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소년. 복수를 다짐하며 조직의 스파이가 된 주인공.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주인공과 복수의 대상이 마치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서로를 가르치며 또한 배움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시민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 복수극의 무대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은대구. 동료 의식이나 책임감 또한 기계적으로 짜인 계획의 일부였을 뿐이지만 그 이상의 실수투성이 파트너, 어수선과 부딪히며 의도치 않게 어른이 되어갑니다.

 

 

 

이런 은대구의 현재는 서판석의 과거입니다. 피해자를 끝까지 지켜주지 않고 돌아서 버린 은대구의 실수는 그가 그토록 목 메이게 원망하던 서판석의 과거와 닮아있었죠. 그를 가르치며 무의식중에 지난날의 과오를 반추하고 또한 속죄하는 서판석. 아버지의 가르침이나 부자의 정을 모른 채 자라났던 은대구입니다. 어쩌면 그에게 서판석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복수의 대상이 아닌 아버지의 유대감을 가르쳐줄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대구가 서판석에게 걷어채이고 분노할 때 다소 생뚱맞게도 왜 가르쳐주지 않았느냐는 불만이 터졌던 것 역시 두 사람의 독특한 관계를 드러내는 장치였겠죠.

 

 

 

은대구의 파트너 어수선은 줄곧 책임을 입에 담습니다. “내가 당신을 24시간 동안 지켜줄게요.” “내가 끝까지 당신의 인질이 될게요.”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말. 그 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잃어버리고 말았던 소년의 어머니. 그건 은대구와 서판석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과거의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치 시트콤 같은 인질극의 풍경에서 스스로 수갑을 차며 인질을 자청하는 네 명의 신입 형사는 복수극을 가장한 이 드라마의 성질이 결국은 성장드라마의 한 페이지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좋은 형사가 된다는 것. 그리고 멋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켜주겠다는 한마디만이 아니라 책임지는 사회를 만드는 구성원이 되는 것이겠죠. 인질이 원한 것은 돈도 사과도 아닌 사회로 복귀해 ‘끝까지’ 제 일을 마무리하는 ‘복직’이었다는 사실. 이 드라마의 오프닝에서 첫 번째 범인을 마치 만화처럼 죽자사자 ‘끝까지’ 추적했던 서판석과 아이들의 모습이 괜히 만든 그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 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공감 하트를 눌러주세요. (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6

  • 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다른분들도 이 리뷰를 꼭 함께 공유했음 하는 바램입니다.

  • 리뷰감사합니다.그냥 스친 장면이였는데...다음 리뷰가 궁금해집니다.

  • 스토크 사건 다소 억지스럽던 인질극 사건으로 은대구는 서판석에 대한 적대감이 형사로서의 오판이나 책임감 등을 이해하며 차츰 성장해 가는거군요 드라마를 이해하는데 도움되는 글이네요 잘봤어요 ^^

  • 안녕하세요.

    2000년~2013년까지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허준(전광렬 버전)과 응사 밖에 없습니다.

    거의 10년 넘게... 한국드라마 보는게 너무 힘들어요...

    질투(최진실,최수종)이후 나온 트렌디 드라마나 하이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책도 사고,음반 테이프도 사고, 비디오로 또 보고... 정말 얼마나 즐겁든지....
    -단 홈드라마는 재미 없어요...

    그러나 복수,살인,죽음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일단 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마음에 준비를 하고, 수작으로 평가되는 드라마나 영화만 보고 있는데도....

    특히 드라마('미사','발리에서 생긴 일'등) 는 1화아니면 2화를 보다가 보지 않아요...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도 마지막회만 보지 않음....

    2000년대 이후는 복수의 시대라는.....

    '너포위'도 1화~2화만 본 의외의 즐거운 점 2가지만…(드라마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1. '엔젤 아이즈'와 '너포위' 그리고 '세결여'에 나오는 '강하늘'과 '지우'와 '손여은'은
    드라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의외로 큰 즐거움을 주다는…
    특히 '지우'는 '이층의 악당'에서 아역(김혜수의 딸)을 맛깔스런게 연기를 해서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역시 '너포위'에서 포텐이 터지는..

    '너포위'에서 회상 장면이 가끔 나와으면…'지우' 중심으로...

    2.포스터는 일드 '춤추는 대수사선' 필(느낌)인데, 내용은 일드 '굿럭'필(느낌)이라….

    (일드 '굿럭'의 작가 이노우에 유미코(여성)은 2003년판'하얀거탑' 각본가로 유명)

    차승원과 오윤아에게는 힐링을….

    일드 '굿럭'에서 츠츠미 신이치와 쿠로키 히토미와 같은 힐링을…

    그리고 2화 중반 이 후부터는 보지 않아서....

    주말 드라마식 자극적인 설정(주인공의 과도한 스펙,주인공의 무매너(일명 싸가지 없는 행동)등)은

    개인적으로 드라마 내용과는 상관없이 보기가 힘들어요..

    이정선 작가는 이런 자극적인 설정을 쓰지 않는 작가로 유명한데...

    시대가 변한 것지, 작가가 변화 것지...










    • 안녕하세요! 순정님. 말씀을 듣고 보니 서판석의 캐릭터를 츠츠미 신이치처럼 경쾌하지만, 외경심이 느껴지는 이미지로 확장 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은대구 또한 기무라 타쿠야 필의 아우라 충만한 주인공으로 밀어붙였다면 보다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장르에 비해 그리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종종 들더군요. 그래도 "사회인의 미덕은 맡은 바를 끝까지 마무리 하고 책임지는 것."이라는 작가의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 만큼은 중심이 잡혀있어 좋더라고요.

      함께 책임져주지 않고 떠나버린 은대구를 원망하는 어수선의 말이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기는 해도 그것 또한 이 드라마의 핵심 요소인 '끝까지 책임지는 것'의 연장선이니까요.

  • 닥터콜님의'사회인의 미덕은 맡은 바를 끝까지 마무리 하고 책임지는 것'라는 테마는 동의합니다.

    저도 그 점은 '너포위'의 큰 미덕이고, 장점인데,

    주제의식에 비해 내용은 비현실감으로 가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입니

    다....

    '너포위'는 일단 '서판석'의 캐릭터를 'P4'나 '시청자'에게

    '내가 너희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항상 네가 지키고 있다'

    라는 아우라를 각인 시킬 때라고 생각합니다.

    '서판석'은 '너포위'의 킹메이커인데, 킹메이커가 죽으면,

    '너포위'는 일본풍의 유치한 드라마로 전락...

    개인적으로는 제5화부터는 본 궤도로 안착하길...기원하고 있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PC 게임, 심즈는 인간의 성향을 본뜬 분신 같은 캐릭터를 조종하는 게임이다. 아이가 탄생하거나 캐릭터를 새로 만들 때 그에게 어울리는 성향을 만들어주곤 하는데 많고 많은 특성 중 '부적절함'의 설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문득 이 사람을 떠올리곤 했다.

 

 

 

 

2009년 무한도전의 고정 멤버로 영입되어 무려 5년의 세월을 함께했지만, 인정받는 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고 정들만하자 떠나버려야 했던 사람. 무한도전의 최종 하차 멤버, 길이다.

 

 

부적절함 특성을 가진 자는 이른바 TPO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다. 결혼식장에서 흰 드레스를 입고 웃지 말아야 할 공간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한마디로 눈치가 없고 타인에게 환영 받지 못할 행동을 한다.

 

쉽사리 피고 지는 대한민국의 예능계에서 5년이라는 기간은 프로그램 하나가 정착하는데에도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길이 신문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 사고 하나 없이 무한도전의 멤버로서 환영 받지 못했던 까닭은 그가 웃기지 못해서도 남들보다 유별나게 문제를 많이 일으켜서도 아니다.

 

 

 

23일. 길의 음주운전 소식을 접했다. 당시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09%로 이는 면허 취소가 가능한 수치다. 기사의 헤드라인을 읽자마자 나는, 어쩜 이 사람은 이렇게도 눈치코치가 없을까라는 생각부터 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고 바로 최근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불안과 슬픔에 잠 못 이루는 매일. 웃음이 단속되고 예능은 죄악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중의 감시망은 연예인을 중심으로 맴돈다. 모두가 슬퍼해야 할 지금 TPO를 지키지 못하는 연예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관찰하고 심판하기 위해. 하필 이런 시기에 사고를 터뜨린 그는 참. 음주운전 자체가 덧붙일 필요 없는 죄악이지만 이쯤 되면 그의 취기보다 심각한 것은 눈치 없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무한도전 내에서 길의 캐릭터는 부적절한 인간이었다. 그건 주변을 썰렁하게 만드는 남자, 정형돈의 어색함과도 달랐고 박명수의 노여움과도 다른 것이었다. 늘 주제가 바뀌는 무한도전에서 길의 아이디어나 선택은 언제나 미스를 냈다. 문득 서로에게 선물 주기 게임에서 냉면 만들기 세트라는, 결과물을 시청자가 확인하기 어려운 물건을 가지고 나와 박명수로부터 핀잔을 들었던 그 언젠 가의 길이 떠올랐다.

 

"넌 선물 주는 것도 제대로 못 하냐." 분위기 파악을 못 해서 실언을 내뱉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자신 또한 인터뷰에서 예능 활동을 업신여기는 발언을 일삼아 또 다른 파장을 만들어내기도 했었다. 무한도전 팬들의 입장으로선 도저히 예뻐해 주려야 예뻐해 줄 수가 없는 멤버가 길이었다.

 

 

 

오랜만의 장기 프로젝트였던 카레이싱 대전에서도 길의 부적절함은 변하지 않았다. 속도가 승패를 좌우하는 카레이싱에서 길은 스피드를 거부하는 카레이서였으니까. 안전 주행을 위하여 느릿느릿 굼벵이 속도로 기어가던 길의 평온함은 스피드가 야성을 깨웠다며 보기 드문 남성미를 뿜어내는 멤버들의 혈기와 너무나 다르게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내가 길에게 배신감마저 느꼈던 것은 이토록 바른 운전, 안전 운전을 위해 주제를 위반하며 스피드를 포기했던 그가 난폭 운전의 극치인 음주운전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이번의 장기 프로젝트는 그간 무한도전이 선택했던 그 어떤 경기보다 안전을 염려 받는 스포츠다. 전문가가 아닌 그들이 A부터 Z까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차근차근 카레이싱을 배워갔던 이유 또한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라도 비난을 면치 못할 잘못이지만 나는 몇 번이나 왜 하필 이런 때였느냐며 그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길의 하차 결정 이후 무한도전은 그가 포함되어 있었던 몇 개의 프로젝트를 내려놓아야만 했다. 개중에는 무척이나 고생하며 찍었다던 그리고 너무나 고대하고 있었던 주제 또한 담겨 있어 한숨이 쏟아졌다. 장기 프로젝트 또한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2주 만에 방송을 재개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세월호 참사 사건의 비통함에 애도의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또 한 번, 길의 하차 소식을 전하며 그들은 다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죄책감과 책임감을 담은 사과였다. 무한도전 멤버와 제작진은 이른바 연대 책임을 졌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길의 하차 소식을 전한 유재석은 그 어떤 변명의 여지가 필요 없는 일이라며 길의 잘못을 미화하지도 덮어주려 하지도 않는 냉정함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사뭇 차갑게 시작된 그의 말에는 길의 잘못마저 끌어안겠다는 무한도전 수장이 지녀야 할 책임감과 은퇴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떠난 비운의 멤버인 길을 향한 진한 연민이 느껴졌다.

 

 

 

"일단 오늘 저... 이 얘기를 안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서 우리 길씨가 하차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말로도 사실 변명이라든지 할 얘기가 없는 저희 제작진과 그리고 저희들 모두가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한도전을 아껴주시고 성원을 보내주신 시청자분께 정말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고요."

 

"앞으로는 방송뿐만이 아니고 저희들 방송 외적인 여러 가지의 생활도 더욱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길 씨도 자숙의 시간을 갖고 정말 철저하게 뼈저린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이 더욱더 두 배 세 배 아니 그 몇 배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또 무한도전을 지켜봐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 번 시청자 여러분 열심히 하겠습니다."

 

 

 

길의 불미스러운 행동을 그들의 성실함으로 채우겠다는 무한도전의 멤버들이었다. 두 배 세 배가 아닌 그 이상을 노력하겠다며 고개를 숙이는 그들을 보니 도리어 황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당신들이 그렇게까지 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5년을 함께한 멤버였음에도 잘 가라는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멤버 길을 향한 작별의 인사가 아닐까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길은 분명 무한도전의 멤버들과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 모두에게 큰 폐를 끼쳤다. 하지만 자진 하차라는 결정을 했음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고 그가 미운 진짜 이유는 제작된 프로젝트를 망쳐서만은 아니다. 나는 언젠가 길이 그 깍두기 같은 이미지에서 탈피해 무한도전의 정식 멤버로서 인정받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살벌하게 느껴질 만큼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무한 상사에서 길의 위치는 정식 사원이 아닌 인턴사원이었다. 무려 4년째 인턴사원이었던 길의 처지는 그대로 그가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듯했다. 무려 4년간 면접을 봤다. 언젠가는 신입사원 지드래곤에게 정사원의 자리를 뺏기기도 했다. 멤버이되 멤버가 아닌. 언제 쫓겨날지도 모를. 그 회사의 사원이면서도 사원이 아닌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랬던 길이 정식 사원이 되는 날이 오기를. 만년 깍두기였던 그가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는 날이 오기를 미약하게나마 나는 응원하고 있었다. 무한도전 8주년 특집의 절반인 4년의 인턴 생활을 마감하고 드디어 정사원임을 인정받은 그날의 감동처럼. 그의 미숙한 행동이 정말 시기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하필 최근의 길이 "물이 올랐다."는 말을 들을 만큼 호평을 받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무한도전의 팬들조차 서서히 길을 달리 보던 시점이었다. 이제 막 정식 사원이 될 수 있었던 그가 이제 좀 정을 주려고 하자 훌쩍 떠나버렸다. 5년간의 정을 마무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그 시간을 달라 조르는 것조차 불미스러운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것 하나만큼은 슬프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한도전의 깍두기이자 인턴사원이었던 길은 이별의 방식조차 이방인스러웠다는 것이.

 

글의 전문 무단 도용을 금지합니다. 트랙백과 링크 스크랩만 허용합니다.


신고

Comment +8

  • 그의 이별방식조차 이방인스러웠다는 한 마디로 무한도전에서 길의 5년이 모두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길은 회색인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진심인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그 성격이 왠지 모르게 꺼려지게 했죠.

  • ???? 2014.05.06 13:28 신고

    안전을 "염려 당하는" 이라는 표현에 눈을 의심했습니다.

    • 일반인이 도전하기에 안전을 염려한 나머지 감시 당할 만큼 위험한 프로젝트라는 의미였는데 너무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나 봅니다.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상상 2014.05.07 13:44 신고

    길 본인으로서는 피차 잘된 일일겝니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갉아먹어야..

  • "이 재판은 살인에 대한 재판입니까,아니면 어머니 장례식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에 대한 재판입니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중에서..
    .
    저의 개인적인 생각도 무한도전에 하차를 하는 것에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길'이 이런 불미스러운 행동(음주운전)이 없어도 하차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무한상사'의 인턴 사원 '길'하고, 리쌍의'길'은 알파에서 오메가의 거리 만큼 괴리감이 너무 크다는...
    한마디로 '길'의 무모한 도전.....유재석,박명수가 가수로 성공할 확률과 길이 '무도'에서 성공할 확률이 비슷....
    '
    무도의 다른 멤버와 달리 신화의 '전진'이나 리쌍의 '길'은 성공한 장수 아이돌(신화의 '전진'),성공한 힙합 가수(리쌍의 '길')라는...

    가수의 아이덴티티(정체성)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맞지 않고,

    그리고 '무한도전'과 신화의 '전진'이나 리쌍의 '길'하고는 태생적인 한계도...

    무한도전-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는 여섯 남자들이 매주 새로운 상황에서..그러나 '전진'이나
    '길'은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상위권에 있는 남자들인데,,,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행동하는 것은....


    저는 길이 음주운전를 하는 행위는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이와 연계하여 연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주 운전->프로그램 하차 또는 비판은 당연하지만,

    '무도'의 이방인,회색인,부적절한 인간이라는 비판은 "오만이죠"(허지웅 왈 인용)..- 농담입니다. 한번 허지웅 멘트를 한번 사용 하고 싶어서...닥터 콜님의 애통한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길'의 하차보다 '무한도전'의 폐쇄성(신규 멤버 충원 X )이 가속화 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한도전'의 '길'은 개방과 전문성(프로)의 상징적인 캐릭터인데, 이 상징적인 캐릭터가 하차하면서

    이 위기를 복고주의적(웃음/재미,의리라는 원론적인 해결방안)으로 수습하고 있지만,

    이 복구주의적 방안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





    • 생각해보면 무한도전 내에서 거북한 발언, 치명적인 실수, 심지어 음주운전 이상의 불법적인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도 있습니다. 유재석을 제외하고는 그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독 길 하나만이 무한도전 역사의 절반을 함께했으면서도 멤버가 아닌 특별 게스트 취급을 받았던 것은 그가 못 웃겨서도 아니고 프로 밖에서 문제를 일으켜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길만큼 못 웃겼던 멤버도 그 이상의 문제를 일으킨 멤버 또한 부지기수니까요.

      그건 길이 종종 보여줬던 부적절한 언행과 소위 T.P.O를 지키지 못하는 눈치 없는 행동이 불법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로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고문관으로 찍힌 길은 어떤 행동을 해도 예뻐 보이지가 않았겠죠. 이건 네티즌만의 문제가 아니라 무한도전 내에서도 길은 그리 돌봄을 받지 못했어요. 일례로, 정형돈이 한참 슬럼프였을 때 무한도전에서 퇴출 되어야한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지만 김태호 피디는 그를 감싸주기는커녕 오히려 제7의 멤버 타령을 하며 더 꾸짖었거든요.

      잘못한 아이를 꾸짖으려할 때 누군가 대신 나서서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체벌을 하면 도리어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듯이 정형돈에게 시청자 또한 그랬어요. 이후 정형돈은 무한도전 뿐만이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불쌍한 캐릭터로 인식되어 시청자의 극진한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 유명한 이휘재 사건에 심지어 한참 인기있던 비까지 욕을 먹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불쌍하다.” “왜 쟤만 안 챙겨줘?” 예능 프로그램에서 편집은 당연한 시스템인데 오로지 정형돈을 편집했나 안 했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그 시절이죠. 김태호 피디는 훗날 그가 계산한 전략이라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식구를 내쫓는다는데 분개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후 김태호 피디는 정형돈을 위한 단독 특집도 몇 개나 만들어줬었어요. 마치 프로레슬링처럼 하하를 ‘선인 정형돈을 괴롭히는 악당’이라는 캐릭터까지 부여하면서요. 하지만 길을 위해서는 그 어떤 노력도 기울여주지 않았었지요.

      무한상사에서 길의 역할이 인턴 사원이었던 것처럼 시청자 또한 그를 멤버라고 생각해주지 않았고 길 자신마저 무한도전이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는 듯이 인터뷰하곤 했었어요. 같은 멤버인 개리가 런닝맨이나 예능을 대하는 자세와는 확연히 달랐죠. 저는 4년 만에 정사원이 된 무한상사처럼 그가 시청자의 정사원이 되는 날을 기대했지만 5년을 함께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인턴사원’이더군요. 퇴출을 애석해하는 의견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차라리 잘됐다. 진즉에 빠지지 않고 뭐했냐는 말이 대부분이었고요. 다른 멤버였다면 그보다 더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비호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무한도전의 이방인이라고 칭하는 것이 오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안녕하세요.

    "오만이죠"(허지웅 왈 인용)..라는 말은 농담으로 한 말입니다.그런데 닥터 콜님이 심각하게 받아 드렸으면 이 것은 농담이 아니죠.. 정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댓글의 한계때문에 표현이 너무 직설적으로 나왔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상한 해법들이 나와서...
    (수학여행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무도'에서도 새로운 멤버 영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팬들이 많아서...

    '서사'의 시작은 새로운 인물이 기존 체제로 들어 오면서 시작이 가능한데, 새로운 시작을 새로운 인물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을 하고 있는
    '무도'를 보면서 너무 신규 멤버에 대해 거부감이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으로 한 말입니다.

    -'무도'의 새로운 멤버에 대해 선입견를 갖는 것에 대한 비판로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닥터 콜님에게 '정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또한 저는 '길'의 문제보다는 앞으로 '무도'의 방향성 때문에 제기한 것입니다.
    이제는 '무도'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는 남자들 컨셉에서 벗서나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동안 활동을 했으면 어느 정도 프로로 성장를 하고 새로운 동력을 얻어야 하는데...
    유재석만 계속 진화하여 예능계의 '손석희'로 성장...
    박명수는 '어떤 가요'에서 가요계에서 비판을 받고,유재석이 사과하는 사태까지 가고..
    '2013년 무도 가요제'에서‘I got C’표절 문제로...
    성장의 좌절....
    정형돈은 돈까스 사업-도니도니로 신뢰성의 상실문제.......
    정준하,노홍철,하하는 아직 독자 활동이 미미하고....

    현재 '무도'는 김태호PD와 유재석의 힘과 팬덤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일본의 'SMAP'처럼 개인 활동을 하면서 성장도 하고,
    전국적으로 콘서트도 하고...

    제가 '무도'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지만,
    그 기대감은 '무도'의 잠재력를 믿기 때문에....

    P.S- 정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 네. 신경쓰지 마세요. 화나지 않았어요.^^ 그동안 순정님과 나눈 대화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독한 뜻으로 내뱉은 말이 아님을 믿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은 저 또한 공감합니다. 그래도 이번 회차의 무한도전을 보니 그들 자신도 치부를 질타하며 변화하려는 노력을 모색중인 것 같더군요.

 

신의 선물은 무척이나 친해지기 어려운 드라마다. 마치 상자 속의 상자 같은 이 드라마는 등장인물 전원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채 시청자를 지그시 응시한다. 진범과 진실이라는 알맹이를 맛보기 위해 벗겨 내는 껍질이 너무나 성가시다. 손에 잡히는 범인마다 진범에게 상납 된 재물일 뿐이고 내 주위의 이웃은 배신자거나 유괴 조작단이거나.

 

등장인물의 차단된 시점이 극의 트릭이자 메시지인 이 드라마의 세계관에서 꺼내놓은 모습이 진짜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 누군가는 과거의 죄를 묻기 위해. 누군가는 악의를 선의로 포장하기 위해.

 

 

 

배우자를 향한 따뜻한 미소나 어린아이에게 내밀었던 호의마저도 협박과 탐욕이 시킨 위선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존경하는 남편, 내가 연애를 걱정했던 후배, 살가운 도우미 아주머니, 아름다운 첫사랑, 내 딸을 수시로 ‘실종’ 시켰던 아이의 아이돌. 온 사방 천지에 배신자를 깔아놓고 살았던 샛별이 엄마 김수현은 마치 지뢰 찾기 게임의 공백 같다.

 

더 끔찍한 사실은 그들이 노리는 대상이 바로 내 딸이라는 것. 그들이 바라는 결말이 내 딸의 죽음이라는 것. 심지어 운명마저 내 편이 아닌 14일의 카운트 위에서 엄마 김수현은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진짜 14일에 한지훈(김태우 분)은 아이를 잊지 못해 발광하는 아내를 두고 끝내 대못을 박을 한마디를 던졌다. 첫사랑에 눈이 팔려서 아이를 내버려둔 당신의 방심을 용서할 수가 없다고. 그러나 리턴된 14일에 한지훈은 불륜의 앙금과 전화 속의 협박범에게 정신이 팔려 아이를 잃어버린다.

 

그날 샛별이를 주민아(김진희 분)에게 맡겨놓고 방심했던 김수현처럼 한지훈 또한 으레 잘하겠거니 싶어 도우미 아주머니께 아이의 안전을 맡겨놓은 것이다. 이것이 자의로 저지른 유괴 사건은 아닐지라도 순간의 어리석은 방심이 부른 미필적 고의인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이 드라마는 작가의 집착이 느껴질 만큼 몇 가지 코드에 집중을 한다. 그것은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의 방심이 타인의 안전을 해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 14일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샛별이 사건은 한 사람의 악의가 만들어낸 단독 범행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방심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집단 범죄나 다름 아니었다.

 

결국, 운명처럼 돌아온 쓰레기 봉투 안의 그 옷을 입었던 날. 영리하지도 영악하지도 못한 엄마는 발작을 일으켜 아이와 떨어지고야 만다. 사악한 아빠는 형체 없는 인권 보호에 정신이 팔려 끝까지 아이를 지켜봐 주지 못했다. 망설인 끝에 샛별이를 데리러 나온 도우미 아주머니 또한 유괴범의 끄나풀일 뿐이었다. 찰나의 양심에 눈치를 주어 도망칠 기회를 만들어주긴 했지만. 돌아선 샛별이는 역시나 자신을 지켜보지 않는 아빠에게 뛰어가지 못한다.

 

 

 

그 나잇대 아이에게 아이돌이란 백마를 타고 온 왕자님과도 같다. 스태프를 피해 숨어들었던 테오(노민우 분) 오빠의 차를 이번엔 정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숨어든 샛별이. 하지만 테오의 매니저는 울먹이며 유괴의 위험을 호소하는 아이를 보고도 좁디좁은 좌석의 틈마저 허락해주지 않았다. 제발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아이에게 택시비 줄 테니 알아서 가라고 하곤 그저 제 가수의 안위만 걱정되어 으름장을 놓는다. 열린 뚜껑의 틈 사이로 바라본 샛별이의 왕자님은 약에 취해 그의 팬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가까스로 택시를 탄 샛별이의 모습을 감시 카메라로 확인하며 수현은 안심했지만, 불행히도 샛별이는 어른의 보호 아래 종점으로 향하지 못했다. 매니저 아저씨에게 그 와중에도 택시비가 있다고 말했던 샛별이가 기사에게 꺼내 보인 돈은 달랑 천 원짜리 한 장뿐이었다. 택시 기사는 위그든 씨의 아량을 베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젖내 폴폴 나는 어린 여자아이를 한밤중에 길가에 버려두곤 내뺐으니까.

 

집에서 살해 위협을 받았음에도 집 아니면 갈 곳이 없어 어떻게든 집으로 향하고 싶었던 샛별이. 결국 이날 샛별이를 끝까지 데려다 준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아이의 안전을 타인에게 맡겨버렸을 뿐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대신하겠지-하는. 범인의 끄나풀이 되어버린 도우미 아줌마. 이 와중에도 방심하는 부모. 택시비 대신 아이를 버린 매니저. 그 택시비조차 양보하기 싫었던 택시기사. 약에 취한 아이돌. 술에 취해 도움이 되지 않는 아저씨.

 

 

 

서로가 책임을 회피한 상황에서 샛별이를 마지막까지 책임지려 했던 유일한 사람. 그는 바로 기영규(바로 분)이었다. 누군가는 경멸했고 누군가는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내 아이에게 주의를 시켰던 사람. 감시 카메라로 그의 모습을 확인한 기동찬마저도 – 형의 트라우마 때문이겠지만 – 영규를 믿지 못해 의심부터 했던. 언젠가는 샛별이 엄마에게 유괴범으로 오해 받아 뺨까지 맞았던 영규. 그는 샛별이 엄마가 선물한 초록색 운동화의 약속을 떠올리며 장정에게 덤벼들어 샛별이를 지키고자 했다. 부모조차 방심하고 내버려둔 이 아이를 영규만큼은 마지막까지 내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잘못이라고. 잘못했다고 웅얼대며 더 잘했어야 했다고 미안하다고 자책하는 영규의 정의에 수현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내 아이를 품듯 영규를 품에 안는다. 부모마저 버린 책임감을 최후까지 사수한 노란 정장의 기사님에게 경의를 표하듯.

 

 

 

12회의 후반부에 묘한 감상을 남기는 장면 하나가 있다. 정신병동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제니(한선화 분)의 연기력이 필요했던 동찬과 수현. 마침 범인에게 당해 부어터진 얼굴을 스스로 내려치며 자해라는 병을 앓는 두 사람의 딸 역할을 연기한 제니였다. 그 열성적인 연기 때문에 보호자 역할로 진료실 안에 들어설 수 있었던 두 사람. 그런데 불필요하리만큼 길게 잡힌 이후의 의사 표정이 어쩐지 묘했다. "일단 검사를 좀 해야 하니까 보호자분께서는 좀 나가주시겠습니까?" 아이의 부모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마치 선량한 의사에서 범인으로 돌변한 얼굴을 하고 비열한 표정으로 제니를 비웃는 의사. 드라마는 몸부림치며 외친다. 자칫 방심하고 책임을 떠넘긴 순간 아이를 지켜주는 어른은 없다.

 

인권 운동가, 존경받는 선생님, 사람 좋아 보이는 문구점 주인, 정다웠던 도우미 아주머니, 사랑받는 톱스타. 세상이 존경하고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사람들이 하나씩 본성을 드러내며 유아 범죄라는 최악의 사건을 이끌어내는 반면에 누구에게나 외면을 받았던 사회의 약자가 오히려 그 두렵고 외로운 밤에 샛별이를 지킨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아프고 쓰다.

 

 

덧. CCTV로만 보면 영락없이 샛별이에게 위해를 가하는 모습처럼 보였던 돌을 든 영규. 오히려 아이를 살리고도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이 아이의 모습에서 그의 아빠 기동호(정은표 분)의 모습이 겹쳐 보인 것은 저뿐만이 아니겠죠.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7

  • 항상 닥터콜님 리뷰는 잘 보고 있습니다
    신의선물을 보면서 첨에는 추리극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추리가 중요한게 아니라는 관점이 동의합니다 물론 제가 볼때는 작가의 힘이 너무 많이 떨어진게 눈에 보일정도라 그것또한 안타깝지만 역시나 이보영 조승우의 연기력때문에...
    뭐 중요한건 잘 보고 있다는 거고 님의 리뷰는 저에게 드라마를 봄에 있어 시야를넓여주는 스승과 같아 감사함을 표합니다

    • 오랜만이네요.^^ 드라마를 보고있으면 작가가 '방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무방비한 아이와 무관심한 어른에게 초점을 맞추어 집착하네요. 마치 애니메이션 같았던 일련의 오징어 먹물 트릭이나 부실한 개연성을 미루어 생각해봐도 장르 드라마로서의 완성도가 그리 큰 작품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범인을 추리하고 진실을 추측하는 것이 그리 의미있는 드라마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안녕하세요.
    닥터콜님 리뷰는 동의합니다.
    다만 개연성도 떨어지고,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어,공감이 안되는게..영 난감합니다.
    신의 선물의 리뷰를 보면는 재미없는 드라마의 전형을 보는 느낌입니다.
    이보영의 스모키 화장은 이보영의 문제보다는 연출의 부재..
    <- 연출자와 작가가 너무 이보영를 믿고 가는 느낌..
    우연을 남발하고 극의 긴박한 국면을 데우스엑스마키나 극복하는 시나리오...
    아이 유괴 사건에 대통령까지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산만함....
    아이와엄마는 민폐 캐릭터로 전락하고...
    이제는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어 수습도 안되고...
    신의선물이나 쓰리데이즈를 보면서 장르필력의 부재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그리고 신성 미나토 카나에(고백,속죄등)의 등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안녕하세요. 순정님. 그러게요.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대주제인 이 드라마에서 모성애를 민폐로 받아들이는 시청자가 대부분인 이 상황은 분명 이 드라마가 실패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겠죠. 서스펜스를 이끌어가는 능력과 추리 드라마의 개연성과 탄탄한 디테일이 많이 부족한 작품입니다. 무리해서 추리 드라마로 만들지 말고 차라리 일본 드라마 마더 같은 감동을 이끌어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참신함, 미야베 미유키의 묵직함, 미나토 카나에의 대범함을 닮은 작가가 우리나라엔 아직 드문듯합니다.^^

  • 개인적으로 1992년도에 MBC에서 방영한 "분노의 왕국"-1990년도 MBC를 드라마 왕국으로 만들고 팩션 드라마를 개척한 작품이라고 생각 됩니다.
    최불암,김무생,고두심,이정길,김희애의 안정된 연기와 MBC가 과감하게 신인 변영훈를 기용하는 대범한 모습 그리고 신인 문영남 작가의 대범(일본 천왕 암살기도)하고 참신(팩션 장르를 과감하게 드라마에 접목)한 극본....
    그런 작품를 쓴 작가가 KBS"폴리스"(이현세 만화 원작)로 졸망하고,홈드라마로 변절하여 이제는 막장드라마의 쌍두마차로 극본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는 슬픈 마음이...

    응답하라1994 - 개인적으로 응답하라1997은 응사를 위한 테스트용(?)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1990년대 문화적 정서(대중문화의 황금기)를 순정만화 장르의 감수성과 접목하여 보편적인 감성(첫사랑,향수)
    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려 일으킨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가능하게 만든 배우 정우
    (이미"바람"으로 준비된 상태)
    이우정 작가는 개인적으로 참신한 재능과 순정만화 장르의 감수성를 또 어떤 형태로 변형 할지 정말 기대되는 작가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천성일 작가(로맨스를 접목하면는 그냥 흑역사),김은희 작가(개연성과 디테일은 부족하지만,뚝심은 있는 작가),김지우 작가,김인영 작가
    로맨스를 쓰면는 졸망이지만,장르에 대한 재능은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소설은 역시 정유정 작가(7년의 밤)는 라이징 스타.....

    P.S - 1990년대 MBC가 최종수PD(심의부 부장,제작국 부국장,기획 시절) 체제에서는 스타PD(곽영범,이병훈,황인뢰,김종학,이진석등),스타 작가(김수현,임충(사극),김정수,송지나등)스타 배우(원미경,김희애,도지원,오연수,최진실,채시라,고현정,심은하,고소영,이덕화,유인촌,박상원,최재성,최수종,홍학표,장동건,감우성,차인표,송승헌등) 가 쏟아져 나오는 MBC...정말 후덜덜한 리즈 시절.....

    -정말 1990년대 최종수PD 기획작품들은 찬양하며 경배하는 닥본사의 레전드...






  • 이 드라마 한편도 보지 못했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본방송을 사수 할 정도로 열광하고 있다더군요. 닥터콜님의 글을 보니 왠지 엄정화 주연의 오로라 공주가 생각 납니다. 그 영화 속에서도 살해 당하는 인물들 모두가 사실은 살해 당한 어린 소녀를 무책임하게 방치 해버렸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위의 글을 보니 영화와도 비슷한 설정도 있네요. 차비가 부족하다며 대교에서 아이를 차에서 내리게 했던 택시기사를 보며 분노가 일어났던 기억이 나네요..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아이들 범죄와 부모의 학대 살해... 입에 담기도 어려운 그 단어들이 왜 어른이 지켜야 할 아이들에게 덧씌워져야 하는지... 슬프고 화가 나는 요즘 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의 결말이 궁금 하네요.. 닥터콜님 글 잘 보고 갑니다.

    • 오. 저도 택시씬에서 영화 오로라공주를 떠올렸었어요. 그러고보니 문성근의 캐릭터가 한지훈과 일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작가가 오로라공주를 많이 참고하지 않았나싶네요. 샛별이를 다소 성가신 아이로 설정한 것도 이유가 있지 싶어요.ㅠㅠ

 

 

요즘 네티즌들 사이에선 ‘발암드라마’라는 말이 유행이다. 속 터지는 전개로 가슴을 치던 시청자들이 “이거 보다가 스트레스받아서 암 생기겠다.”며 이런 말을 만들어냈다. 속된 표현이지만 한편으론 기발하다. 이런 드라마는 카타르시스조차 없어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 이상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단다.

 

등장인물 통틀어 정상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왕가네 식구들’을 시작으로 퍼뜨려진 이 말은 최근 SBS 드라마 ‘신의 선물’을 칭하는 수식어로 쓰인다. 막장 드라마는커녕 명품 드라마, 웰메이드라는 극찬 속에 시작된 이 드라마가 어찌하다 이런 불명예 딱지를 붙였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여주인공 김수현(이보영 분)과 그녀의 딸, 한샛별(김유빈 분) 탓이다. 모녀의 미련함에 가슴을 치던 시청자는 급기야 그들을 ‘민폐 모녀’라 부른다.

 

 

 

민폐 모녀라니. 정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네티즌의 댓글 문화를 야유해야 할 만큼 잔혹한 별칭이다. 생명을 잃어버린 아이. 죽음과 맞서 싸우는 엄마. 이 거룩한 투쟁을 ‘민폐’라고 칭하는 것만큼 잔인한 욕설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건 모성애에 침을 뱉는 짓이나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일단 TV를 켜고 모녀의 미련함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김수현의 모성애를 편 들 수 없다.

 

김수현과 한샛별 모녀를 향한 공통적 불만은 속 터질 것 같은 답답함에서 나온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 미련하기 짝이 없는 해결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속 터지게 하는 단독 행동. “제발 말 좀 들어 먹어라.” 화면을 향해 수시로 외치는 한마디다. 정말 이 모녀, 징하게 사람 말을 안 듣는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이미 1회부터 샛별이는 남다른 아이였다. 아이가 다 그렇다지만 샛별이처럼 유난스럽게 오지랖이 유별난 아이도 없을 것이다. 모르는 아저씨가 집을 침입해도 사이좋게 피자를 나누어 먹고 친구가 되려 하는 넉살과 강심장. 순수를 뛰어넘어 새하얀 도화지 같은 샛별의 머릿속엔 위기의식이라는 것이 없다.

 

조그만 녀석이 아이돌 오빠를 쫓아다닌다며 툭하면 연기처럼 사라지곤 하는데 진짜 키우기 힘든 애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 아이는 일단 신기한 것이라면 쫓아가고 본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 위험한 사람의 표적이 되기 딱 쉽다. 엄마가 그리 사정하는데도 사라지는 샛별이를 보면 부러 죽음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다.

 

 

 

사람 말 오지게 안 듣고 단독행동으로 사고를 자초하는 화상은 샛별이 혼자만이 아니다. 모녀의 유전이 아닌가 싶을 만치 아이 엄마의 외고집 또한 남다르다. 그녀는 수사의 전문가 기동찬(조승우 분)을 기용하고도 수시로 팀워크를 깨뜨리며 단독행동의 우를 범한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 어떻게 아줌마가 그래. 나한테? 어떻게 나를 의심할 수가 있어? 나 쳐다보지 마. 고개 돌려. 꼴 뵈기 싫으니까. 멍청이. 칫."  그의 신실함을 여태껏 지켜봐 왔으면서도 일말의 타협조차 없이 기동찬을 적으로 돌리는 김수현의 미련함은 정말.

 

경찰의 총을 뺏고 연쇄살인범의 취조실에 들어가는 무모함이야 모성애의 발로라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이후의 행동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피해자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범인에게 “미미는 살아있다.”고 진실을 알려주지 않나 “자수하지 않으면 내 딸 샛별이가 죽는다.”라고 도리어 딸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행동은 김수현이 샛별의 구원자가 아닌 엑스맨이 아닌가를 의심하게 할만치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김수현만큼이나 세계적인 부성애를 가진 테이큰의 리암니슨에게 열광했던 것은 그의 선택에 군더더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누비며 딸의 유괴범을 사살하고 아이를 구해내기까지. 그의 수사 방식엔 브레이크 한번 걸리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것이 딸을 구하는 길이었으며 그의 생각이 곧 정답이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범인을 사살하는 그의 행동력은 통쾌함의 절정이었다.

 

그에 비해 김수현의 수사 방식은 미련하리만치 답답하기 짝이 없다. 너무나도 비효율적인데다 걸림돌이 많으니까. 운명을 적으로 두고 싸우는 형국이니 그 고충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다혈질적이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불안정한 사람의 해결 방식이 심지어 유능하지조차 않다면 누구의 환영도 받을 수 없다.

 

김수현 모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더 나은 선택이 있음에도 굳이 왜?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신의 선물 관련 기사에는 언제나 아이를 안고 집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의문이 주도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드라마를 비평하는 의견 중엔 아이를 구한다면서 막상 내팽개쳐두고 있는 김수현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 또한 다수다.

 

 

 

물론 드라마는 초반 이런 의문을 차단하고자 했다. 어떻게든 운명을 바꾸고 싶었던 수현은 14일의 옷을 버리고 무려 해외로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묘수는 해결방안이 아니었다. 운명에서 도주하려는 모녀를 벌하듯 아이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으며 버렸던 옷은 되돌아와 있었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지속적으로 그냥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가진다. 이것은 결국 작가의 운명론이 시청자를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한 결과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소재로 한 일본의 공포 만화 ‘공포신문’이라는 작품이 있다. 미래의 죽음을 배달하는 공포 신문은 구독료로 100일의 수명을 받는다. 겁에 질려선 피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며 누군가 지켜주면 화를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답답해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만화는 내가 생각했던 꼼수마저도 기가 막힌 방식으로 차단해버렸다. 유령 같은 괴현상은 혼자가 아니면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주인공을 지켜주는 어른이 있음에도 공포신문은 창문을 뚫고 유리파편을 튀며 날아들었다. 물리적인 힘을 써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신문을 구독하게 하는 악령의 힘을 도무지 막아낼 수 없었다.

 

신의 선물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이 압도적인 운명의 힘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차피 괴현상을 다루는 이야기니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사용해서라도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의 공포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 심지어 김수현조차도 그 위력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토록 운명을 두려워하면서도 막상 가장 핵심적인 그날의 실책을 반복하고 있으니까.

 

 

 

신의 선물 10회에서도 수현의 판단력은 아쉬움을 남겼다. 연쇄살인범과 맞서 싸울 정도로 절박한 그녀가 막상 실종의 틈 앞에선 수수방관이다. 이날 샛별이는 안데르센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다가 수현의 질색에 울상이 되는데 잔뜩 화가 난 아이가 방을 빠져나갈 때 따라나서지 않는 수현의 디테일이 조금은 아쉬웠다. 어둡고 낯선데다 연쇄살인의 용의자일지도 모를 사람을 추적하는 와중에 잠깐이라도 아이를 홀로 나가게 내버려두는 수현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샛별이가 좀 잘 사라지는 아이던가.

 

 

 

마지막 장면에서 어둡고 외진 주차장을 걸어갈 때 모자 안에 든 장신구에 눈이 팔려 홀로 뛰어 나가는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수현의 행동 또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도무지 아이를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엄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기에. 지금의 수현은 내 품의 아이는 쉽게 내주면서 범인을 잡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샛별이가 죽임당하는 것이 피할 길 없는 운명이라면 죽음의 신이 반드시 진범 하나라고만은 생각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이번에도 샛별이는 엄마의 만류를 무시한채 홀로 튀어 나갔고 이번에도 김수현의 무력한 “한샛별. 너어~!”라는 야단이 다였다.

 

 

 

이 절박한 상황에 너무나 쉽게 틈을 내줘버린 김수현에겐 심지어 여유마저 느껴진다. 결국 김수현은 입이 틀어막힌 아이의 우는 얼굴과 마주쳐야만 했다. 그것은 범인을 잡을 단서에만 집착하는 김수현이 정작 아이를 지키는 일엔 소홀해지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김수현이 집착하는 것은 범인을 잡고자 함인가. 아니면 샛별이를 구하고자 함인가. 김수현조차도 헷갈리고 있는듯하다.

 

모녀의 어긋난 마음은 이 드라마의 테마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아이를 되찾기 위해 눈을 뽑아버린 어머니의 희생은 개의치 않고 그저 아기가 살았는지만을 궁금해하던 샛별이. 융통성있게 아이를 달래면 될 것을 막무가내로 책을 빼앗아 아이를 품에서 빠져나가게끔 한 김수현.

 

 

 

"그러나 언제나 굳은 다짐뿐이죠. 다시 너를 구하고 말 거라고." 마법에 걸린 공주를 어둠의 탑 안에서 구해내겠노라는 기사의 다짐을 담은 노래 '마법의 성'. 기동찬은 샛별이를 위해 마법의 성 세레나데를 바치고 10회 샛별이는 골치 좀 썩는 기동찬을 보면서도 마법의 성 고백을 떠올리며 꿈결 같은 미소를 짓는다.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나를 구하고 또 구해줄 거라고 믿는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 샛별이가 운명이라는 저주의 마법에 걸린 공주님이라면, 공주님이 기사로 선택한 사람이 엄마가 아닌 기동찬이라는 사실 또한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14일 뒤 샛별이를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운명적 원인은 그림자 속의 진범이 아닌 것 같다. 그토록 서글프게 애원하는데도 번번이 엄마를 무시하고 사라지는 아이. 정 많고 타인의 고통을 잘 헤아리는 감성적인 샛별이가 엄마의 아픔만은 헤아리지 못한다. 이 아이에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불쌍하고 재밌는 대상이 너무나 많기에.

 

 

 

14일의 고통을 겪고도 김수현은 여전히 이성적이다. 정작 아이는 남에게 맡기고 연쇄살인범을 쫓는다며 마치 툼 레이더 놀이를 하는 듯한 김수현의 행동은 운명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운명에 순응하는 모양새다. 모녀가 해결해야 할 진짜 운명적 과제 그리고 지난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길은 미래를 향한 저격이 아니라 서로를 믿고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이 아닐까.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4

  • 신의 선물은 뭔가 큰 그림을 그리기는 했는데, 그것을 충족시킬 재료와 구도의 부족으로 억지 추상화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장르드라마의 현주소가 그것뿐이겠죠.

    • 괴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는 과정이 참 어렵겠죠. 그래서 많은 준비가 필요한 법인데. 작가가 의도한 바겠지만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밉상이예요. 일단 김수현 자체가 좋은 사람이 아닌데 하는 행동마저 미련하니.ㅠㅠ 심지어 착한 샛별이도 짜증의 극치.

  • 답답함을 버리면 이야기를 이어나갈 건덕지가 없는 작가의 자질 부족이라고 보는데요.....한마디로 내공빈약....^^;

    • 맞습니다. 장르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은 논리적 결함을 최소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 드라마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게된다면 실패가 아닐까요.

 

최근 조금은 머쓱한 기사 하나가 네티즌의 도마 위에 올랐다. MBC의 대하 사극 ‘기황후’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방송 1위를 장식했다는 거였다. 이 기사의 서두에는 “역사 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라는 부끄러운 한마디가 붙는다. 기자가 의도한건 아니겠지만 시청자의 수준을 야유하는 것 같아 쑥스럽기 짝이 없다.

 

 

 

기사가 터지자 네티즌은 입을 모아 탄식을 쏟아냈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주요 댓글은 “앞에서는 애국자인척 뒤에서는 역사 왜곡 드라마를 본다.”며 기가 막혀했다. 생각해보면 그것부터가 아이러니다. 인터넷에서는 기황후를 보이콧하는 목소리 외엔 찾아보기 어려운 기황후가 무한도전마저 제친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 되다니. 시작부터 여태까지 역사 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 드라마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방송 1위’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실 하나는 시청자가 선택한 월, 화 오후 10시의 채널은 MBC이며 그 선택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리라는 현실이다. 총 51부작인 이 드라마가 고작 10회 분량을 남겨놓기까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숱한 논란과 보이콧 소동을 무색케 할만큼 드라마적인 재미가 대단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네티즌은 혀를 찼지만 그건 한편으로 이 드라마의 재미를 증명하는 결과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딱히 놀랄 것도 없다. 이 드라마의 작가진이 결정된 이후 이미 기황후는 결코 함락되지 않을 철옹성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정경순과 장영철. 이 부부 작가는 2010년 자이언트를 시작으로 실패라는 걸 모르고 지내왔던 안방극장의 소문난 이야기꾼이다. 자이언트에서 샐러리맨 초한지 그리고 돈의 화신까지. 기황후를 보이콧하는 이들에게 도통 이겨낼 수 없는 끝판 대장이나 다름없었다.

 

로맨스가 팽배한 대한민국의 드라마 시장에서 마치 미드를 연상시키는 선 굵은 소재의 장르물을 드물게 성공시킨 이력의 이 작가들은 이미 드라마 세계의 마니아에게 믿고 보는 작가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들이 가진 이야기의 힘은 내게도 남다르다. 2004년 장영철의 신 인간시장이 저조한 시청률로 허무하게 조기 종영 되어버렸을 때 먹던 사탕을 빼앗긴 기분을 그때 처음 느꼈었으니까. 그날의 쓰디쓴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었는가는 몰라도 이후 그의 작품은 뭐든지 승승장구였다.

 

 

 

기황후의 역사 왜곡 논란 또한 그에겐 처음 당하는 경험이 아닐 터였다. 이미 2010년 자이언트에서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시대를 왜곡한 작품이라며 보이콧을 당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전에 네티즌의 미움을 받은 사실만은 동일하지만 뚜껑을 연 자이언트가 그 반대의 이유로 찬사를 받은 것과는 달리 기황후는 방영 내내 무시와 비방에 시달려야만 했다.

 

기황후 역사 왜곡의 핵심은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악인을 선인으로 선인을 악인으로 둔갑한 사실에 있다. 원나라 황제의 황후 기황후는 국내 사극의 여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존재다. 일년 전 드라마 신의에서 묘사된 내용 그대로 그녀의 형제인 기씨 일가는 고려의 왕권을 위협하는 탐관오리였으며 원나라의 기황후는 형제와 협공하여 안팎으로 고려를 흔들었다. 공민왕의 반원 정책으로 오라비 기철이 죽임 당하자 그녀는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고자 했다. 그녀의 매국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의견도 있지만 역사적 사실만을 비추어볼 때 국내 사극에서 자랑스레 묘사될 인물이 아님은 분명하다.

 

 

시청 거부 운동에도 불구 방영을 중단하진 않았지만 기황후 제작진 또한 나름의 방책을 강구하긴 했었다. 기황후 이상으로 논란이 되었던 실존 인물, 충혜왕을 왕유라는 가상의 캐릭터로 대체한 것이다. 충혜왕은 국내 역사 최악의 오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폭정을 일삼은 폭군이다. 역사에 남은 기록만 보더라도 새어머니와 장모는 물론이오.

 

이웃 나라의 공주까지 겁탈한 강간범에다 살인과 주색잡기에 심취해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고야 말았다. 오죽했으면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백성 하나가 없었다고 하니. 이런 충혜왕을 기개 넘치는 로맨티시스트로 묘사하려고 했던 작가의 사상이 무섭기까지 하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방송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에 시청률 1위의 위엄을 달성하면서도 막상 기황후를 대놓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암암리에 보는 불온 서적 같은 취급을 받고 있으니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도대체 왜 이토록 부잡스러운 짓을 해가면서까지 굳이 기황후여야만 했을까? 라는 것이다.

 

 

역사에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면 기황후가 아닌 가상의 인물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지금의 기황후가 재해석의 수준을 넘은 창조에 가까운 드라마라서 더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야유를 받으면서도 놓을 수 없는 재미를 가진 작품이라서 더 아쉽다.

 

국내에서 처음 다루어진다는 캐릭터니 새삼 네임 밸류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인물도 아니었지 않나. 반드시 실존 인물이 아니라도 가상의 캐릭터를 가지고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른 ‘해를 품은 달’의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왜 굳이 ‘기황후’여야만 했을까.

 

한류 드라마가 유행이라는 북한은 우리와 별반 큰 텀 없이 ‘왕가네 식구들’을 시청한단다. 당연히 북한에서는 금지된 행위이다. 감시자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하지만 목숨까지 걸고서 재미있는 이야기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 만든 드라마는 최고의 세일즈다. 하물며 가상의 이야기마저 문화를 담는데 사극이라면 또 오죽하겠는가.

 

기황후 논란으로 깨달은 사실은 야유와 사명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기황후를 비난한다고 해서 잘못된 역사가 바로잡히진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칼을 이기는 펜을 그들의 작품으로 몸소 증명해보인 정경순, 장영철 작가. 그들이 가진 이야기의 힘. 그 멋진 능력이 최고의 효과를 발휘했음에도 논란거리로만 회자되는 역사 드라마의 원죄가 조금은 씁쓸하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5

  • 2014.04.01 08:58

    비밀댓글입니다

    • 그러게요. 해를 품은 달처럼 아예 가상의 시대로 만들어버렸더라면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괘념치 않고 자랑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나는 기황후를 본다'는 말을해도 부끄럽지 않았을 테죠. 참 안타까워요. 캐릭터의 대부분이 만화적 이미지를 차용했던데 왜 굳이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깔아버렸던 건지.

  • 전 안보는 사람중 한명입니다. 재미를 떠나서 도저히 볼수가 없네요.

  • 2014.04.02 03:14 신고

    중국에 수출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

  • 지나가다 2014.04.30 13:45 신고

    마지막 회 보셨나요...
    저는 역사 쪽에 관심이 많지도 않고 그냥 예전 학교에서 배운것과 몇권의 책을 읽은게 다입니다만,

    실제적으로 공녀 차출을 금지하고 원나라에게 제대로된 독립을 시작했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공민왕을
    공녀를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보내는 왕으로 그렸다는데 어이가 없음을 떠나서 제작진에게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공민왕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나시겠네요.

    이순신 장군께서 일본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일본에게 군량미를 보내는 것으로 그린 것과 뭐가 다른가 싶습니다.
    (픽션입니다~ 라고 다 끝나고 자막처리 되는 것을 방패삼아서요)
    다른나라 특히 일본에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했다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이런 드라마가 시청률 1위라니... 정말 유감입니다...

 

비밀 터지는 맛에 보는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에서 또 하나의 감추어진 진실에 직면한 조안(장채리 역)은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동안 이 불여우가 좀 모질게 오빛나(이진 분)을 괴롭혔었나.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끝까지 제 엄마를 “김 집사”라고 호칭하며 발버둥을 치는 그녀의 발악을 보고 있노라니 새삼 서글픈 생각이 앞섰다.

 

대한민국 순정만화의 황금시대, 그중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만화가 바로 신일숙 작가의 ‘리니지’였다. 작가의 며칠간 꿈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작품은 선왕의 적통, 데포로쥬 왕자가 빼앗긴 왕좌를 되찾는 여정을 그려낸다. 작가 특유의 선 굵은 그림체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갈등에 빠져 몇 번이고 다시 읽은 작품이지만 보고 또 봐도 마음에 스며드는 이질감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도무지 남주인공인 데포로쥬 왕자를 응원해주고 싶지가 않았다.

 

 

 

반왕에게 왕좌를 빼앗기고 성에서 쫓겨난 적통 왕자의 비애와 남주인공이라는 의무감이 나를 붙들었지만 그럼에도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도대체 왜 꼭 얘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마녀마저 홀려버린 매력에 타인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군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거기다 뛰어난 검술 실력과 화려한 언변. 아름다운 용모에 기품으로 무장한 반왕은 그야말로 제왕의 품격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데포로쥬 왕자의 타고난 그 자리를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데포로쥬는 그저 자신이 적통이라는 명분 외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데다 그 자신조차 적통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 외엔 지닌 신념조차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이 뛰어난 인재인 반왕이 그저 적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리숙하고 무엇이든 그보다 모자란 데포로쥬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겨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국내 드라마에서 가장 정체된 장르가 바로 일일 드라마다. 중장년층의 채널 선택권이 우선인 이 시간대는 어느 방송사든 소재만 다를 뿐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다룬다. 착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 가난하고 착한 여주인공은 비록 초중반은 서러운 삶을 살아갈지라도 결국 작가의 무한 공세를 받으며 악인을 타도하고 최상의 자리에 올라서고야 만다. 이것만으로는 심심했던지 출생의 비밀이라는 지리멸렬한 소재가 끼어든다. 알고 보니 여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금 숟가락 입에 물고 나온 로열 패밀리라는 것.

 

 

일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 또한 같은 공식을 따른다. 전 남편의 불륜에 버림받자 첫사랑인 재벌남이 나타난다. 거절하고 사양해도 그 자신이 애걸복걸하며 사랑해달라고 애원하는 형국이다. 이번엔 출생의 비밀이 끼어든다. 약혼자 강하준(박윤재 분)의 사랑을 받는 오빛나를 시기하는 것도 모자라 증오 수준으로 포악을 부리던 악녀 장채리. 그럼에도 나는 부잣집 외동딸이라며 오빛나의 가난을 비웃었는데 그 자리마저 제 것이 아니란다.

 

20년간 하인 취급하며 얕잡아 봤던 김 집사, 애숙(이휘향 분)이 그녀의 친모였으며 할머니의 유일한 직계 손녀이자 돌아가신 친어머니라 굳게 믿고 있던 그 사람과 아버지 사이의 하나뿐인 자식은 바로 그녀가 아닌 오빛나였다. 그러니까 그 유서 깊은 청운각의 적통이 바로 그토록 미워했던 오빛나의 자리였던 셈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장채리는 몸부림을 쳤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얼마 전엔 뺨까지 내리쳤던 친모 애숙에게 매달려 애원과 협박이 뒤섞인 절규를 내뱉었다. “뭐하고 있는 거야? 아빠 마음을 언제 사로잡을 거야? 나 김 집사만 믿고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야?” 모녀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청운각의 장남, 장재익(홍요섭 분)을 유혹해 청운각의 핏줄이 되려는 모략을 세우고 있었다. 다급해진 애숙은 오빛나의 양어머니, 순옥(이미숙 분)을 찾아가 지방으로 떠나지 않으면 딸을 뺏겠다는 협박을 일삼기도 했다.

 

 

 

모녀의 모략은 교활하고 악랄하다. 그야말로 간교라고 부를만했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장채리의, 김 집사라는 호칭에 서글픔을 느꼈다. 이 판국이 됐으면서도 그녀는 애숙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은 결코 그녀가 내려놓을 수 없는 가진 자리의 증명이자 최후의 자존심이었으니까.

 

 

 

장채리는 마치 가진 재능을 시기하는 살리에르처럼 오빛나와 마주친 순간부터 그녀의 모든 타고난 것들과 맞서 싸우다 패배감을 느끼곤 좌절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강하준의 존재는 간절하게 갖고 싶은 소망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남자는 오빛나를 선택하고야 말았다. 온갖 수를 써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남자가 몇 번이고 싫다고 사양해도 오빛나를 놓치려 들지 않았다. 이미 첫사랑이라는 아득한 기억 속의 인연이 두 사람을 묶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타적이고 따사로운 아빠. 남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신념이라는 할머니. 그 사이에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성품을 가진 장채리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생모인 김 집사를 닮아있었다. 사람의 성격마저 타고난 것이라고 일축해둔 이 드라마의 세계관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장채리의 못된 소갈머리에마저 안쓰러움을 느끼게 된다.

 

 

 

김 집사의 말처럼 어딘가 손녀에게 데면데면했던 할머니가, 진짜 피를 이어받은 오빛나에겐 첫 만남부터 남다른 친근함을 느낀다. 심지어 오빛나의 절대 미각조차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땐 작가의 지나친 로열 패밀리 미화에 급기야 거부감이 들었다. 모든 것은 물려받은 것. 그리고 천부적인 것. 재산이건 재능이건 사랑이건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그저 세습으로만 돌고 도는 세계. 그 지독한 일일 드라마의 순혈주의.

 

동화 나라의 판타지와 권선징악의 대리만족을 위해 우리는 일일 드라마를 본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 세계는 너무나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 여주인공을 구원하는 것은 재벌이고 재벌가의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적통이 아닌, 열의와 갖은 노력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악녀를 비난하며 그의 불행을 기다린다. 적통인 주인공의 재벌 세습을 응원하며.

 

 

 

 

물론 일일 드라마의 악녀 같은 인간들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오빛나의 신분을 가진 사람은 상위 몇 프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왕위를 계승하는 사람은 한 명 뿐이고 그녀는 타고난 로열 패밀리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여주인공의 신데렐라 신드롬을 기대한다. 그게 노력과 선한 마음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보상일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실상은 신데렐라 판타지보다 불공정한 부자의 대물림을 응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2

 

사실 캐스팅부터가 알리바이였던 사람. 너무 선량해서 오히려 조작된 선의가 아닌지 의심되었던 사람. 그럼에도 절대 범인이 아니었으면 했던 그 사람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순간 나는 문득 일본 드라마 언페어를 떠올렸다.

 

서스펜스 드라마 언페어는, 수식어 그대로 방영 내내 시청자를 불안과 긴장에 시달리게 했던 작품이다. 여주인공 시노하라 료코는 믿고 의지했던 인물 전원에게 배신을 당한다. 이 사람만큼은 아니겠지 하면 어느새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며 총구를 들이미는 지인.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이 된 것 마냥 리나 – 샛별이 –의 손을 잡았나 하면 놓치고야 마는 김수현(이보영 분)처럼. 언페어 또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쉽사리 진범의 정체를 드러내 주지 않는다.

 

 

 

언페어와 신의 선물의 궁극적인 공통점은 겹겹이 쌓인 이중 트릭이다. 드라마 신의 선물의 진범은 이를테면, 러시아 인형인 마트료시카와 같다. 한 꺼풀 벗겨 내면 똑같은 인형이 웃고 있는 마트료시카처럼, 범인을 잡은 손엔 탈피된 껍질만 남아있을 뿐.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다.

 

먼저 왜 하필 샛별이여야만 했는가? 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녀자 살인 사건에서 표적이 된 여성들처럼 샛별이 또한 무작위 하게 선택된 불운의 피해자였을까? 그렇다면 범인은 왜 하필 – 아이가 많은 - 놀이터나 학교 앞이 아닌 – 아이가 거의 출입하지 않는 - 방송국 앞을 선택했는가? 그건 바로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를 가진 딸이자 그 시간대에 엄마를 따라 방송국을 출입했던 샛별이의 스케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부녀자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범인은 방송국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온다. 초반 통화는 영락없이 살육에 미친 정신이상자의 헛소리 같은데 울먹이는 샛별이의 목소리에 이성이 나간 김수현과 덩달아 우왕좌왕해진 분위기 속에 범인이 키득키득 웃으며 흘리고 간 마지막 한마디가 굉장히 낯설었다. “어이. 대통령 나으리. 이앤 당신 덕분에 죽는 거야.” 대통령? 느닷없이 대통령에게 범행의 원인을 돌리며 도발하듯 그를 원망하는 범인의 한마디. 도대체 그 말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이제껏 드라마에서 드러난 대통령 김남준(강신일 분)의 유일한 신념은 흉악무도한 범행을 저지른 살인마를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아주는, 사형 제도의 부활이다. 그리고 이 신념은 김남준을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서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이를테면 김남준을 뽑은 사람들은 그에게 사형 제도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 수형 중인 사형수에게 살해된 피해자가 202명. 그중에 약 80% 이상이 어린이와 여잡니다. 그 피해자들의 인권에 대해선 왜 말하지 않습니까? 지난 15년간 사형수 60명을 살려두기 위해 쓰인 예산이 연간 13억 2000만 원. 사형수 일 인당, 약 2200만 원입니다.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가족을 죽인 살인마를 살리고 있는 유가족 인권 또한 왜 말하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쓰이는 세금마저 아깝다는, 사형수를 향한 김남준의 강한 거부감. 그리고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것을 상기했을 때, 샛별이 사건이 아니었어도 사형제도는 언제든 부활 가능성을 노리고 있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범인이 던진 대통령을 향한 원망은 결국, 사형제 존속을 향한 불만에 담겨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범인의 범행 의도를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의도로 추측하게끔 하는데, 하나는 대통령에게 사형 제도의 부활을 기대하다 그것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자 그를 재촉하기 위하여 범행을 저지른, 부녀자 살인마를 지극히도 원망하는 피해자 가족의 범행이었을 가능성과 오히려 언제든 대통령이 시도할지도 모를, 사형제도 부활을 향한 불안이 재촉해서 만든 가해자 가족의 범행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생기는 두 번째 의문, 왜 하필 김수현의 운명공동체는 기동찬(조승우 분)이어야만 했을까? 이건 첫 회에서부터 들었던 의문이지만 두 사람은 인연이랄 것도 없이 기동찬의 실수로 코믹한 첫 만남을 가졌던 것이 전부다. 사람의 의심하지 않는 샛별이의 순수함이 기동찬의 양심을 흔들어놓긴 했지만 구체적인 동기 부여는 되지 못했었다. 차라리 김수현의 첫사랑인 현우진(정겨운 분)과 묶이는 인연이라면 또 몰라도 김수현과 기동찬은 그 어떤 공통분모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두 사람을 묶어주는 것이 바로 사형제도다. 샛별이의 죽음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이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여 첫 사형의 희생자로 내세운 사람이 바로 기동찬의 형인 기동호(정은표 분)였으니까. 14일을 받은 기동찬은 어떻게든 노인을 구슬려 유산을 받기 위해 힘을 쓴다. 하지만 같은 운명 공동체, 김수현의 절규를 듣고 나서 그는 내가 받은 14일에 힘을 써야 하는 곳은 백억이 아니라 형의 목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이 꼬맹이를 구하면 우리 형도 살릴 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게 서로 무관해 보였던 몇 가지 사건들이 얼기설기 엮여 하나의 공통분모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소름이 끼쳤다. 그들은 모두 사형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 초반 자의로 몸을 던진 김수현과 타의에 의해 물에 빠뜨려진 기동찬. 그리고 두 사람 사이로 마치 물 아래로 뛰어들 듯 사형을 당한 기동호. 김수현과 기동찬이 공동운명체인 것처럼 기동호와 샛별이 또한 생과 사를 함께하는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이중 트릭과 반전을 거듭하며 신의 선물이 가리키는 코드는 ‘미필적 고의’다. 이 사건의 범인은 한 명이 아니라 몇 명의 미필적 고의가 실타래처럼 엮여 수면 아래 잠들어있는 사건의 진상을 향해 다가간다. 그것이 바로 진범의 진상이자 범행의 진짜 의도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하나의 대의명분, 사형제도 폐지라는 목적 아래 벌어진 참극이다.

 

“결론은 돈 노리는 유괴범이었구먼. 그러면서 정부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건. 그게 다 쇼였네?” 범인과의 통화라고 생각했던 그놈 목소리가 돈을 요구하자 경찰은 티비에서 거창하게 떠들어대더니만 대의명분 따윈 없었고 돈이 목적이었다며 혀를 찬다. 최란 작가는 꽤 디테일하게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경찰의 이 말 또한 그저 나온 대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김수현에게 돈을 요구한 전화가 범인을 사칭한 양아치의 소행이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범인은 샛별이가 유괴된 동안 그 어떤 물질적인 요구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샛별이의 사인이 익사였다는 사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범인은 샛별이를 죽일 의도까진 없는 사람이었을 가능성 또한 크다. 결국 샛별이는 고의로 죽임당한 것이 아니라 거창한 대의명분을 가진 하나의 진범과 몇 명의 위장된 범인이 만들어낸 미필적 고의로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마녀가 불에 타 죽은 게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어."

 

사형제도라는 하나의 공통분모에서 바라본 진범의 진의. 그것은 돈이나 피를 바라는 정신이상자의 소행이 아니었다. 범인 자신에겐 선의이며 대의명분이자 정의다. 범인의 목적을 향해 다가갈 때 이 사람 역시 이 운명으로 엮어진 미필적 고의와 집단 범죄의 중심인물임을 짐작하게끔 한다.

 

자. 생각해보자. 이 드라마에서 가장 강력하게 사형 제도의 폐지를 요구했던 사람이 누구였는가를. 그 누구보다 다정했던 김수현의 남편. 샛별이가 엄마보다 더 의지했던 사람. 대통령의 화려한 언변으로 대중에게 사형제도 폐지를 설득시키지 못한 것은 물론 공개적 망신을 당했던 사람. 바로 샛별이의 아빠, 한지훈(김태우 분)이다.

 

인권변호사 지훈은 사형제도 존속을 외치는 김남준의 주장과 맞서다 뉴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된 어린 소년의 죽음으로 경각심이 커진 대중에 의해 무너지고야 만다. 아마도 한지훈은 이날의 사건에 큰 트라우마를 갖고 비슷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경각심을 일으켜 사형 제도를 부활시킴과 동시에 그의 신념과 극과 극에 치닿아있는 김남준을 파멸시키고자 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사형제도 폐지를 외친 아버지. 그와 정 반대의 주장으로 대통령이 되고 끝내 범인의 범행 동기가 되고야 만 김남준. 아이러니하게도 샛별이의 죽음으로 사형제의 부활이 결정되었고 김수현의 운명공동체인 기동찬이 형의 사형을 막기 위해 샛별이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작가가 오밀조밀하게 짜놓은 이 섬세한 이중 트릭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다.

 

한지훈이 이 드라마의 진범이라는 추측은 성급할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사건의 시발점이자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명분을 갖고 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면 강박적으로 정의에 집착하는 한지훈의 성격상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부분마저도 그의 신념과 맞닿아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분명 스스로 사건을 만들고자 했거나 아니면, 그가 과거에 저지른 죄가 결국 딸을 숨지게 한 미필적 고의가 되어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수현은 샛별이에게 동화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어준다. 어머니에게 큰 영감을 받은 안데르센이 그의 어머니를 모델로 하여 지은 자전적 소설.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한 어머니의 아이를 찾아 나서는 여정. 그에 반해 한지훈이 딸에게 들려준 동화는 헨젤과 그레텔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부모에게 버림받아 숲 속을 헤매다 마녀의 집으로 들어가는 어느 남매의 이야기.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어줄 수 있는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자신의 명분을 위해서라면 아이를 버리는 것조차 가능한 헨젤과 그레텔. 한지훈은 헨젤과 그레텔에서 진짜 범인은 마녀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맞는 이야기다. 헨젤과 그레텔의 진범은 마녀가 아닌 남매를 숲 속에 유기한 친아버지니까. 덧붙여 헨젤과 그레텔이 보다 함축된 의미를 품고 있다면, 이 동화의 마녀는 또 하나의 사형제도 폐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인물, 기동찬의 친모일 가능성이 높다.

 

 

 

문득 이 드라마가 담은 제목의 숨은 의미를 돌이켜 본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대신 보내셨다.”는 탈무드의 격언을. 신의 선물의 또 다른 이름은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닐까.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18

  • 신의 선물 2014.03.19 11:11 신고

    와우~
    늘 그렇지만 콜님의 분석에 감탄만 하고 갑니다...

  • 멋지네요! 닥터콜님 글 보면 신의선물 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ㅋㅋ
    아 참아야 하느니

  • 너무너무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헌데 한가지 확인이 필요할 듯 합니다.. 한지훈이 대통령이 되려다 대중을 설득하지 못한게 아니라 대통령후보자와의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의 하나가 아니었었나요? 제가 잘 못 본건지 궁금합니다..

    • 오. 말씀을 듣고 재확인해보니 제가 그 부분을 착각했었군요. 이 방송분을 보면 이보영은 대권 후보를 상대로 조심해서 설득하라고 하고 한지훈은 이기고 지고가 어딨냐며 겸손한 가운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죠. 그럼에도 막상 토론할땐 대통령의 논리로 무장한 언변에 무너지고야 마는데 공교롭게도 자신이 겪은 이날의 치욕이 사형제도 부활을 바라는 대통령을 대중이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더군다나 그날 겪은 망신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공홈 프로필에는 한지훈이 사형제도의 폐지를 외치다 딸의 죽음을 접하고 사상이 바뀌는 변호사라고 나와있는데 오히려 아내를 궁지에 몰아가면서 인권을 외치는 역할을 도맡고 있을 뿐이라서 의아하더군요. 초기 설정에서 바뀐 부분이 있는 건지.^^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수정해야겠네요.

    • ~| 2014.03.19 19:10 신고

      대통령의 논리무장한 언변때문에 토론에서 진것이 아니라 토론도중 소년을 죽인 살인범이 잡혀서 대통령의 사형제도에 힘을 실어준것으로 봤어요~~

    • 네. 그 부분 또한 본문에서 언급했습니다.

  • 신선 2014.03.19 14:44 신고

    ㄴ네. 한지훈은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토론회 사형집행 반대 의견쪽 패널이었죠. 글의 마지막 부분... 기동찬 어머니에 대해 언급하신 내용을 설명해주시고 마무리를 하셨으면 좋았을것을... 결론 부분이 뭔가 더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습니다.

    • 기동찬 어머니에 대한 부분은 생각을 조금 더 해봐야 할것 같아서요.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내용은 아니고 다음 리뷰에 요청하신 부분을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보영의 꿈이나 환각이었다는 설정 이상으로 싫은 결말을 향해 치닿고 있는 뉘앙스도 느껴져서 (정부의 음모론 ㅠㅠ) 조금은 우려스럽네요.

  • 2014.03.19 15:50

    비밀댓글입니다

  • 첫회에서 샛별아빠가 수현에게 전화하면서 샛별이 죽인범인이 누군지 알았다며 차를 몰고 급하게 어디론가 갔잖아요 근데 샛별아빠가 유력한 용의자라뇨?

    • 그 대사가 이중 트릭이 아니라면, 본문에 언급했던 것처럼 범인의 악의를 불러낸 미필적 고의를 저질렀던 것만큼은 분명하겠죠. 이 드라마가 말하는 운명은 샛별이의 죽음 하나만이 아닌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미필적 고의가 결국 샛별이 사건으로 향하는 운명적 전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 근데 이 드라마의 용의자로 3명이 나오고 마지막에 진범이 나올 것 같아요, 첫회 시작할때 그림동화처럼 나오는데 머리카락달라는마녀, 가시덤불, 물귀신, 그후 죽음의 사자를 만나게 되잖아요, 문방구주인도 관련있는 인물일뿐 그다음 용의자 한번 나오고 범인이 나오겠네요. 제생각엔 샛별아빠가 범인일것 같아요 ㅠ

    • 문구점 주인이 읽는 책을 비추어주던데 복선의 일종이겠죠? 나사의 회전. 아마 진범이 밝혀지기 전까지 용의자들은 딱히 악의를 가진 인물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하는 행위가 정의라고 믿는 정신이상자들의 미필적 고의가 주로 다루어질 것 같아요. 남들이 보기엔 정신병자에 살인마일 뿐이지만 그들 자신에겐 정의이자 아이를 돕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들의 행위를 통해 샛별이 엄마의 모순 또한 돌아보는 계기가 될듯 싶고요. 문구점 주인 또한 악의 없이 그 자신은 아이를 구한다는 착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진짜 이상한 이야긴데.. 미친 사람들의 정신 나간 모성애인 거죠. 일종의.

      저는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위기의 주부들에서 다루어진 소아성애자의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구요. 진짜 부당한 사람은 누구인가. 신의 선물에서 근본적으로 다루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 서영님의 추리도 일리가 있어요. 굳이 끼워 맞추어보자면, 여성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머리카락 = 부녀자 살인사건의 용의자 미카엘 복지재단의 선생님. 가시덤불에 몸이 엉킨 엄마 = 문구점 주인의 방에서 샛별이의 몸을 묶은 로프와 테이프가 발견되죠. 그리고 물귀신과 죽음의 신. 안데르센의 동화에선 죽음이죠. 정말 안데르센의 동화처럼, 죽음의 신보다 그의 집에 먼저 도착해버린 김수현에게 진범은 똑같은 대사를 내뱉을지도요. "어떻게 나보다 먼저 도착했지?" "전 어머니입니다."

  • 닥터콜님은 능력이 어디까지인가욬ㅋㅋ 어졔회차로 확실해졌어요~ㅋㅋㅋㅋ

 

 

- 세결여, 드라마보다 흥미로운 이지아 코트 보는 재미

 

 

 

 

역시 김수현이다. 악의가 있어서 나쁜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못된 사이코 새엄마 채린의 활약으로 그간 주춤했던 세결여에 불이 붙었다. 언젠가 무릎팍도사 이순재 편에서 그가 말하길, 김수현의 대사는 어순이 워낙 완벽해서 애드립을 추가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단어 하나하나, 한 문장 한 문장마다 피라미드의 축처럼 촘촘해서 하나라도 빼버리거나 멋대로 추가하면 완성도가 무너진다는 얘기였다. 노장 배우 이순재가 밝힌 거장 김수현의 글은 대본이 아니라 하나의 문학 같다고 한다.

 

 

 

확실히 세결여를 보고 있노라면, 글은 이렇게 쓰는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감칠맛 나는 대사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가 활개를 친다. 저속하고 자극적인 소재마저도 김수현의 손에서 풀어내면 막장이 아니라 고전 문학이 되는 그녀의 글재주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 드라마 역사 속 46년 경력의 산증인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김수현의 대본을 듣는 맛 이상으로 보는 맛 또한 짭짤하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여주인공 오은수로 활약 중인 이지아의 청담동, 아니 한남동 며느리룩을 감상하는 재미가 그에 못지않다. 이전 드라마에서 이지아가 딱히 옷을 세련되게 입는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는데 디테일 장인 김수현의 지시 때문인지 코디의 솜씨 덕분인지 아니면 이지아 자신이 옷 입는 센스가 늘었는가는 몰라도 드라마 내내 펼쳐지는 이지아의 재벌집 며느리 패션이 짜릿한 스토리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이지아는 이 드라마에서 중견 기업 대표 김명예 회장(김용건 분)의 며느리, 그리고 그의 밑에서 경영인이 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부잣집 도련님, 김준구(하석진 분)의 아내 오은수 역을 맡고 있다. 김준구는 그녀의 속 썩이는 두 번째 남편이다. 첫 결혼의 실패라는 중압감과 두고 온 아이를 향한 죄책감 탓에 어떻게든 참고 잘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떠안은 캐릭터다. 이런 오은수의 마음은 그녀의 꼿꼿한 의상 분위기로 고스란히 표현된다.

 

 

 

이지아가 드라마에서 선택한 오은수의 의상은 단순하고도 평범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심심하다 느낄 수도 있지만 겹쳐진 옷의 조화가 그림처럼 잘 어울리는데다가 하나같이 소재가 좋아 보여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부유한 인상을 준다. 갑작스럽게 횡재한 졸부의 돈 놀음이 아니라 돈 자랑을 하지 않아도 부유함이 몸에서 배어 나온다. 이른바 부내가 넘쳐나는 이미지라고나 할까. 우아하면서도 고압적이지 않은 품격이 느껴진다.

 

 

 

이지아의 완판 된 코트 패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오은수의 외출 의상은 도회적인 인상을 주지만 한남동 며느리 오은수의 모습은 주로 부드러운 크림색 컬러의 가디건과 앙고라 니트,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받쳐 입어 온순한 며느리와 지고지순한 아내 역할을 상징한다.

 

 

 

오은수의 머리 모양이나 화장법 또한 그녀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한하는데 정갈함 그 자체인 의상과 달리 흐트러져 느슨한 머리 모양과 덜 칠한 듯한 무채색 화장은 표정없이 시들어가는 오은수의 스트레스를 겉모습으로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완벽을 요구 당하는 재벌집 며느리의 고충에 점차 생기를 잃어가는 오은수의 속내. 그 폭발 직전의 욕구 불만과 스트레스가 의상과 머리 모양, 화장법을 통해 절묘하게 표현된다. 회를 거듭할 수록 온유함 위에 히스테릭을 얹은 듯한 그녀의 코디가 연기 만큼이나 빛났다.

 

 

 

 

언젠가 SBS 한밤의 티비 연예는 김수현 특집으로 구성된 코너에서 한참 인기리에 방영 중이었던 드라마, 청춘의 덫의 대본 일부를 공개했다. 락앤락 용기 사용 금지에서부터 미역 불리는 양까지 꼬치꼬치 지시하던 김수현 작가가 청춘의 덫에서 주로 지적했던 것은 배우들의 의상이었다.

 

 

 

특히 전광렬의 스타일이 백마 탄 왕자님 역할과 어울리지 않게 배 나온 아저씨 같다는 지적을 무지막지하게 받았는데 당시 여성들의 워너비였던 심은하 또한 의상 지적이 끊이지 않았었다. 이지아의 한남동 며느리룩은 과연 몇 점을 받았을까? 새삼 세결여 대본이 궁금해진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7

  • 벚꽃놀이 2014.03.15 19:29 신고

    응사때부터 닥터콜님 리뷰 팬이였습니다.
    이 드라마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했어요.
    개인적으로 김수현 작가님 드라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배우들은 엄청 힘들것 같아요. 감독님도 작가님이 요구하시는게 너무 많아서 연출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을것 같아요. 정말 꼼꼼하고 칼같은 대본으로 유명하잖아요.
    그런 작가님이 이지아씨를 주인공으로 선택했을때 조금 어떤 생각으로 캐스팅을 허락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 김수현 작가의 캐스팅은 일부 시청자들에겐 사단이라고까지 불리며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돌 맞는 여자 구원하는 나사렛 예수의 심정으로 -_-; 욕먹는 사람들만 쏙쏙 골라서 작품에 불러주곤 했었어요. 비난받는 이들이여 내게로 오라~

      적어도 캐스팅만큼은 드라마에서 강조하는 윤리나 도덕을 무시해버리는듯합니다. 전 이지아보다는 이찬의 캐스팅이 사실 더 놀랍고 불편했던지라..

      부러 시청자가 싫어하는 사람을 뽑아 인정받게 만들어주고픈 부정한 선의인지. 아니면 논란을 즐기는 타입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수현이 좋아하는 여배우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뭔가 유복하게 잘 자란 인상을 주는 깨끗한 인상의 사람. 연기 이상으로 김수현이 집착하는 인품이 바로 기품인듯하더라고요.

    • 벚꽃놀이 2014.03.15 23:30 신고

      예전에 홍석천씨를 컴백시킨 사람이 김수현 작가였지요...이승연씨도 그렇고..진짜 논란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는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응급남녀도 보시는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고 있는지 궁금해요 ^^ 저는 요즘 이필모씨가 참 좋더라구요. 이혼에 대한 상처를 가볍지 않게 다루고 있어서 더 좋아요

  • 지나다 2014.03.15 21:37 신고

    이지아씨가 옷은 간결하면서도 세련되게 입었어요~ 저도 이 드라마에서 이지아 코트 멋지더라구요~ 공감합니다

  • 2014.03.16 12:59

    비밀댓글입니다

  • 안녕하세요~~ 완전 예전에 아빠어디가에서 준이가 빈이가 뿌려놓은 소금국수 먹는장면에 관해
    써놓으신거 보고 닥터콜님의 글들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생각나서
    보러 왔습니당~~ ㅎ 근데 티스토리라는 것에 가입을 해야하네요 ㅠㅠ 뭔 초대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초대해주실 수 있나요? 암튼 세번결혼하는여자도 요즘 갑자기 빠지게 되어서 보고있는데
    저도 이지아가 입고 나오는 옷들이 어찌나 그렇게 고급지던지 ㅋㅋ 누구의 센스인가 궁금하더라구요
    말투도 왠지 디게 우아한 말투고 다른글들도 궁금해서 또 보러갑니당~
    댓글을 보니까 그 이지아의 언니 친구가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가 이찬인가보군요 ㅠㅠ
    아.. 좀 거북스럽긴 하네요 흑흑 그래도;; 드라마 재미로 봐야져 뭐;; ㅋ
    이찬의 거북스러움 보단 이지아의 패션과 자존감을 지키는모습을 보고싶은게 더크네염

김지영 VS 허정은, 성인보다 나은 아역배우의 똑 떨어지는 연기

주말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일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세 번 결혼해야 할 여자, 오은수. 세 번 결혼해선 안 되는 여자, 오빛나. 우유부단한 남편과 마녀 같은 시어머니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나고, 본의 아니게 사랑하는 딸마저 상처를 전이시켜야만 했던 엄마의 비극.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슬기가 불쌍한 아이라면, 빛나는 로맨스의 연두는 가련한 아이다. 이 아이들은 가족의 사랑이 부족해서 불쌍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지나친 어른의 사랑이 불행을 이끌었다. 함께 살 수 없는 어른들이 서로가 아이의 보호자라고 주장하니, 어찌 보면 행복한 고민이지만 차라리 조금 덜 사랑 받고 엄마의 품에서만 컸으면 좋았으리라.

 

슬기 역의 김지영 양과 연두 역의 허정은 양의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가련한 연기는 약자를 응원하고 악한 사람을 미워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나로 내린 머리와 양 갈래로 묶은 머리 모양의 차이처럼 연기 스타일은 다르지만 두 배우 모두 아역 이상의 존재감으로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슬기의 캐릭터는 아마도 김수현이 요구했을 그녀 드라마 특유의 애늙은이 스타일 그대로다. "때린 것도 일렀지? 한때 때린 건데 열대 때렸다 그랬지?" "그건 말 안 했다니까요. 진짜예요. 말 안 했어요." "왜 안했어? 왜 안했어?!" "아줌마가 실수한 거라고 그랬잖아요. 화해했잖아요. 화해했으니까 안 했어요." 이성을 잃은 눈으로 아이에게 덤벼들며 어린애 같은 말투로 윽박지르는 채린에게 울먹이면서도 이치에 맞는 말을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슬기를 보면 도대체 누가 아이고 누가 어른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애써 밝은척하다가도 곧 그늘이 지는 얼굴에 질투하는 새엄마 채린의 포악을 진즉부터 눈치채고 한숨을 푹푹 쉬는 모습은 지나치게 어른스러워서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새엄마의 구박을 참고 참았다가 드디어 그 모습을 현장 목격당했을 때 도우미 아주머니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선 가슴이 메어질 만큼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내가 나쁜 아이, 재수 없는 아이인가 봐요. 고모." "나 때문에 엄마 아빠도 이혼하고 나 때문에 아줌마 아빠도 헤어지게 되는 거고." 너무나 슬픈 이야기를 그렁그렁한 눈으로 똑 부러지게 말하는 슬기의 어른스러움은 비로소 이 드라마의 모든 어른이 반성해야 할 한마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슬기야. 아니야. 절대 그런 거 아니야. 그게 다 어른들 잘못이지 너무 아무 잘못한 거 없어. 엄마랑 아빠랑 헤어진 거. 할머니, 고모, 네 엄마, 아빠. 다 같이 모두 잘못한 거고. 지금도 마찬가지. 우리 어른들 잘못이지. 너는 아니야. 너 혼자 쏙 빠져. 너 혼자 깨끗해."

 

 

 

어른보다 어른 같은 아이, 슬기와 달리 연두는 마냥 어린애 같아서 귀엽다. 덧니가 난 치아로 해맑게 웃으며 온갖 재롱을 부리는 모습이 어찌나 깜찍하던지. 그렇게 밝고 명랑했던 연두가 엄마를 빼앗기고 침울해져 있는 모습은 차마 바라보기 힘들었다. 엄마를 유괴범으로 신고 해서 손녀를 빼앗아온 할머니의 만행까지 제대로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한순간에 상냥한 친할머니와 다정한 엄마 품에서 벗어나 느닷없이 등장한 새엄마와 살아야 할 연두는 쏟아지는 슬픔에 끼니조차 거부했다.

 

 

 

엄마를 잊으라며 개똥철학을 읊다 쿠키로 손녀의 맘을 회유하려는 할머니가 싫어 고개를 돌리고 입을 앙다문 채 눈물 젖은 눈으로 슬픔에 빠져있는데 아니 조금까지 그렇게 발랄했던 아이가 어쩜 저런 서러움을 대사 한마디 없이 분위기만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놀랍기 그지없었다. 기본이 탄탄한 김지영과 달리 조금은 서툴지만, 본능적인 표현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허정은의 연기력 또한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엄마와 살고 싶다는 아이를 기어이 뺏어 품에 가두면서까지, 손녀를 끔찍이 생각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아이러니한 마음이 있을까 싶다. 모진 말을 내뱉고 유괴 신고까지 하여 손녀를 품에 가두려는 그녀들. 며느리에겐 악독했지만, 손녀 하나만큼은 돈 주고도 바꿀 수 없어 포기하지 못하는 그녀들. 그것은 곧 그들의 인간성을 배신하는 행위이자 한편으로는 유일하게 사람다움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글의 전문 무단 도용을 금지합니다. 트랙백과 링크 스크랩만 허용합니다.


 

신고

Comment +0

 

신의 선물, 이보영 3회 만에 드러난 짙은 화장의 비밀

 

캐스팅으로 보나 완성도로 보나 SBS의 기대작임이 틀림없으면서도 여느 드라마보다 홍보가 적었던 신의 선물. 아마도 제작진은 이 사람을 캐스팅한 이후로 홍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이보영, 이름 석자 만으로도 기대감에 채널을 선택하게끔 하는 안방극장의 구세주. 물론 뚜껑을 연 신의 선물은 아니나 다를까 이보영의 절절한 모성애로 시청자를 사로잡았지만, 뜻밖에 이 드라마의 첫 번째 논란은 다름 아닌 이보영에게서 나왔다. 그것은 리얼리티의 부재였으며 프로의식에 대한 실망이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화장이 지나치게 진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어린 시절 나는, 드라마를 보며 생각했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왜 저 아줌마는 잠옷 바람에 화장한 얼굴일까. 막 샤워하고 나온 여주인공이 젖은 머리를 털며 가운까지 챙겨 입었음에도 막상 얼굴은 풀 메이크업 되어있는 리얼리티의 부재가 나는 몹시도 거슬렸었다. 어디 그뿐인가. 눈 밑에 하얀 펄이 덕지덕지 붙은 여고생은 물론이오.

 

빚에 쪼들리는 재투성이 아가씨가 겨울 한 철 코트는 어쩜 그리도 많이 가졌던지. 물론 어떤 상황에서라도 아름다워야 할 의무가 있는 여배우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코트 한 벌로 겨울을 나는 외국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보면 그게 참 부러웠더랬다.

 

 

 

그럼에도 말이다. 나는 그렇게 논란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아쉽다고 투덜거렸던 이보영의 풀 메이크업을 보면서도 딱히 거슬린다거나 거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커멓게 칠한 눈에 잿빛 입술. 온통 무채색인 그 얼굴은 분명 아름다움을 위한 화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논란이 되었다는, 아이의 납치 장소를 찾아 회한의 시간을 보내곤 자살 결심을 하고 강가 위에 선 이보영의 얼굴은 그야말로 풀 메이크업으로 무장되어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애처롭다는 생각을 했다. 가면처럼 진한 화장으로 표정을 감추고 자살하기 위해 강 위에 선 엄마의 모습. “예뻐야 돼. 무조건 예쁜 게 좋아.” 사건이 일어나기 전 청순했던 얼굴과 달리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무장한 채 노래처럼 복수를 읊조리던 금자씨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의 의상은 마치 유니폼마냥 고정된 까만색의 롱 원피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어두운 그녀의 옷은 무수한 소년을 죽음의 여행으로 이끈 자신을 자책하며 애도하는 의미로 입은 일종의 상복이었던 셈이다. 내겐 강가에 선 이보영의 짙은 화장이 마치 죽음 직전의 메시지 같아 섬뜩하면서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먼저 보낸 아이를 애도하고 그 아이를 쫓아갈 자신을 자책하는.

 

 

 

물론 이보영 자신이나 제작진의 의도가 아닌 그저 필자의 망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배우의 화장 논란이 다름 아닌 이보영이라 그녀를 편 들 수밖에 없다. 이보영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느라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여배우 아닌 연예인이 아니다. 내 딸 서영이에서 그녀는 수수하면서 정갈한 옷차림으로 캐릭터의 현실감을 극대화했다는 극찬을 받은 배우였으니까.

 

 

 

 

 

 

셔츠와 바지 차림에 백팩을 둘러매고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채 굽이 낮은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이 그녀의 기본 차림이었다. 부유한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는 늘 비슷한 스타일을 고수했었다. 몇 가지 안 되는 옷을 빳빳하게 다려서 청결이나마 지키려 했던 서영이의 모습에서 그녀의 자존심 강한 성격이 그대로 엿보였다. 너도나도 스마트폰 시대에서 홀로 구닥다리 폴더 폰을 들고 있는 디테일마저 꼼꼼히 챙긴 캐릭터가 바로 서영이였다.

 

그것뿐인가 하면,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스스로 아름다움을 포기하기도 했다. 제작진에게 지나친 보정 처리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젊음과 미모에 집착해서 보정에 힘을 쓸수록 정작 시청자가 봐야 할 눈빛 연기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 정도로 리얼리티와 프로의식에 집착했던 이보영이 고작 더 예뻐 보이기 위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한도의 풀 메이크업을 주장하지는 않았으리라.

 

 

 

 

신의 선물 3회에서 이보영의 짙은 화장은 타임워프라는 판타지 아래 빛을 발했다. 물에 젖은 시커먼 눈으로 살아 돌아온 아이의 전화를 경악과 환희에 차서 받는 표정은 미스테리 판타지라는 드라마의 성격을 제대로 구현하는데 한몫을 했다. 이쯤되면 이보영의 화장은 프로의식의 부재가 아니라 판타지 드라마의 효과적인 장치다. 운명과 맞서 싸우는 엄마, 이보영의 얼굴이 이제는 어떤 색을 칠할지 새삼 궁금해진다.

 

글의 전문 무단 도용을 금지합니다. 트랙백과 링크 스크랩만 허용합니다.

 


 

신고

Comment +34

  • 이전 댓글 더보기
  • 글쎄요 2014.03.11 12:15 신고

    내 딸 서영이에서도 아이뷰러로 지나치게 속눈썹을 집어 올려서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던 이보영씨인데요. 그때도 노메이크업처럼 보여도 속눈썹은 포기 못한다고 해서 말들이 많았더랬죠.일단 연기자가 아닌 연예인은 맞는 거 같구요, 눈썹 정리조차 일부러 안하고 나왔던 집으로 가는 길의 전도연씨와 많이 비교되네요

  • 메롱 2014.03.11 13:24 신고

    저도 왠지 꿈보다 해몽 같다는 생각이 드는건, 님처럼 이보영을 좋아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네요. ^^;

    • 꿈 보다 해몽일 수도 있지요.^^;;

    • 장맙ㅇ 2014.03.11 23:23 신고

      맞아요~꿈보다해몽~아이를 잃은 엄마가 화장이라뇨~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을텐데~저는 세븐데이즈도 안봐요~상상만으로도 끔찍해서~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껄요~미안한말이지만 아직 그정도 연기력은 아닌듯하네요~

  • 프로맘 2014.03.11 15:35 신고

    공감안되는 억지스러운 의견...
    저도 이보영씨가 싫거나 하지는 않지만 밀양의 전도영씨와는 사뭇 비교됩니다.

    • 네. 밀양의 전도연 씨도 참 대단했었죠?

    • 000 2014.03.12 08:29 신고

      전도연이 화장하고 나온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듯..고현정도 거의 쌩얼이며...인반인 역할은 더더욱 그렇고 게다가 사고가 난 주인공의 역할은 더 할 수없듯..

  • 공감해요 2014.03.11 16:06 신고

    공감합니다. 전 일부 사람들이 자꾸만 화장, 화장 거리길래 무슨 말인지.. 하고 기사사진들을 봤었는데, 립스틱은 커녕 아이라인도 짙지 않던데요..? ^^: 아무래도 아이를 잃은 부모라면 아얘화장을 하지말아야한다? 뭐 그런의견인것 같기도 한데... 방송에서 범인에게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방송인데 아주 옅은 기본 베이스? 그런 화장정도 연출한건 괜찮다 싶었고 강가에서 자살할때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화려하진 않아도 기본으로 곱게 하는게 좀더 상식적..?이지 않나.. 이런 생각했어요 하하;; 드라마 보면서도 전혀 거슬리지 않던 터라..; 자꾸 화장 언급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되게 글이 공감가네요.

  • 이지은 2014.03.11 16:13 신고

    좀 억측인것 같네요
    전체적인 메이크업의 문제가 아니라 스모키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거잖아요
    웬만한 드라마 여주인공들도 잘 안할만큼 강하게 스모키를 했던데요 ㅡ.ㅡ
    글쎄요 엄청난 눈화장으로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고 있긴 하지만
    이 극에서 그런 영상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오히려 굉장히 몰입감을 방해하고 있어요.


  • 임진형 2014.03.11 17:10 신고

    예쁘기만하고
    드라마재나고만별걸다따져
    그런모든드라마배우다화지워야지왜이것만갖고지랄이야

    • 000 2014.03.12 08:26 신고

      예전에 이태성 나온 분식집 아줌마 역할 보면 얼굴을 갑자기 많이 고쳐서 누군지 못알아 봤다는....원래 얼굴을 맣이 고치면..특히 눈부부..이렇게 되면 눈화장을 잘 못지움....전도연 같은 배우가 더 연기를잘한다고 몰입되는건 항상 쌩얼이기에 그런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고 봄..하지만 주인공이 모든걸 이끌어간다고 생각하고 지나치게 많이 주는 캐린터는 문제..일단 시나리오와 연출부분 그외에 그곳의 기운이 시청자에게 그대로 들어옴에도 울 나라는 주인공이 다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는부분,,,,그래서 고가의 주인공을 써도 망하는 작품이 부지기수

  • 문제없음 2014.03.11 17:19 신고

    근데 화장으로 인한 문제가 터질걸 모를리 없을테고~~
    배우나 감독 스탭들이 알면서도 화장해서
    방송 나온거 보면 뭔가 화장에도 큰 의미를 심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님 그냥 옥의 티일수도 있고~~

  • 안색을 위한 화장은 감정을 잘 드러내기애 좋은 듯, 밤샘해서 피부 안좋으면 화장은 두꺼워 질 수밖에 없구요, 괜함 트집인 듯 느껴지네요

  • 2014.03.11 18:22

    비밀댓글입니다

  • 키이라 2014.03.11 19:14 신고

    이보영 스모키 화장한거 처음 봄. 예쁜건 둘째치고 분위기가 확 달라보여서 좋았는데. 너목들의 이보영이 아니라, 신의선물 이보영으로 변신한 것 같아. 화장이 드라마 분위기 잘 살리네 싶었는걸

    • 이보영은 작품마다 메이크업이 달라서 더 좋더군요. 만약 이보영이 신의 선물에서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 화장을 했다면 실망스러웠을 겁니다. 시커먼 눈화장이 마치 전투를 목전에 둔 여전사 같아서 참 좋았는데 말이죠. 아무튼 예쁘려고 한 화장은 아님에 분명합니다. 이보영은 연하게 화장하는게 더 예쁜 얼굴이니까요.

  • 다들 모르시나 2014.03.11 22:02 신고

    이보영씨 연기를 좋아하고..또 대본 고르는 탁월한 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선물 같은 작품을 내심 기다렸는데 월화 볼게 생겨서 좋구나 싶구요
    다만 이보영씨 눈화장에 관해선..뭐 화장이 짙다거나 역에 맞지 않다거나 생각한게 아니라
    뭔가 최근에 한 시술을 감추고 싶어하는 정도로 보였습니다.
    최근 잠깐 쉬는 동안 뭐 대단한 수술을 받은 것은 아니겠지만
    눈매가 확실히 너목들 때보다 달라졌어요. 그래서 뭔가 화장으로 살짝 커버하려는 느낌이었습니다.
    성형을 한 사람들은 중독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수 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늘어지거나
    주름이 생기거나.. 특히 코성형은 엄청난 후유증이 생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래서 이것 저것 손을 볼수밖에 없게 되죠.
    또 나이가 들거나 살이 빠지거나 찌거나 이런 변화에 따라 예전 성형 처음했을때보다 못나보일수도
    있기에 손을 대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중독이라기보다 어쩔수 없이 반복되는 악순환 같은 느낌이에요.

    이보영씨도 이런 류의 성형을 했는지는 뭐 모를 일이지만 최근 눈매에 무언가 시술을 받은 것은
    확실하구요..그래서 어쩔수 없이 짙은 화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울하거나 음산한 분위기를 내기위해서 짙은 화장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 정이 2014.03.12 01:34 신고

    이보영씨를 싫어하지않아여 팬도 아니지만 하지만 결혼하고 화장진해진건 맞아여 이뻐보이고싶겠져 물론 연기잘하는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풀메이컵 진짜 거슬리더군여 드라마 너무 잼있져 하지만 저 풀메컵으로 완성도에 흠이간건 확실해여 짙은화장으로 슬픔을 표현했다 오버하지마세여

  • oz 2014.03.12 02:06 신고

    닥터콜님 글을 읽으면
    드라마를 좀 더 깊게 보게되는거 같아요
    저는 캐릭터의 심리상태를 알려주는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논란이 있었군요...
    어...아마도 울긋불긋 화장이었어도 그 배우의 연기력이 믿을만하다면 자식잃은 어미의 반응이 다 같을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봤을것 같아요 가면이구나..이렇게요.
    암튼 이렇게 보이든 저렇게 보이든 참 재밌는 드라마라는건 맞아요 그죠^^

    • 어떤 분들은 '스모키 화장'이라 문제가 된다시는데 전 다름 아닌 스모키 화장이라 드라마적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걸요. 뭐 이보영이 카야 스코델라리오도 아니고 틴에이저가 아닌 다음에야 이보영 정도의 나이에 예뻐지려고 스모키 화장 하는 여배우는 찾아보기 어렵잖아요.

      영화 속에서 이보영 정도 나이의 여배우가 진한 눈화장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복수를 목전에 둔 여전사의 캐릭터를 맡았기 때문이죠. 영화 내용도 신비스러운 판타지가 대부분이고요. 밀양의 전도연처럼 리얼리티를 중요시하는 작품도 아니고. 신의 선물이 어디까지나 판타지 미스터리라서 가능한 추측이었습니다.

      레지던트 이블에서 밀라 요보비치는 온 세상이 좀비 소굴이 된 와중에도 진한 아이라인만큼은 포기하지 못하던걸요.ㅋㅋ 전장을 뛰어다니면서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다녔을까요. 설마. 최근 영화 300의 여전사 에바 그린만 봐도.. 뭐 그 시대에 스모키 화장이 유행했을 리 만무하고요. 캐릭터의 전의를 표현하기 위해 스모키나 진한 아이라인 메이크업을 선택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인데. 거슬리는 분들이 많았나 봅니다.

  • 비설 2014.03.12 02:35 신고

    이상한 논리 ㅡㅡ
    거슬림 ㅡ ㅡ

  • 도도 2014.03.12 06:40 신고

    됐구요
    스모키화장 그거 누구나해도 잘어울리는 화진ㅇ법이다 ᆞ
    진짜미인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빨간립스틱해봐야안다
    날라리처럼 스모키화장이 뭐냐

  • ㅗㄷᆞ 2014.03.12 06:43 신고

    모두 억지논리고여
    화보찍는것도아니고 스모키화장이뭐냐고

  • 2014.03.12 06:47 신고

    스모키화장이 얌전한화장은 아니지

  • 꿈보다 해몽 2014.03.12 08:34 신고

    이보영이 이글을 봐도 손발이 오그라들을듯. ㅠ.ㅠ

    고현정이 드라마발표회에서 후배에게 예의 없게 군일도
    고현정이 뒤로 무슨 일이 있었을 거다 하고 옹호하는 글에 참.... 이미지를 잘 닦아놓으면 연예인 참 쉽구나 했었는데.
    이글도 비슷하네요.
    프로의식의 부제가 제일 정답일듯 하고
    조금 편을 들어준다면 캐릭터를 위한 장치의 화장일수도 있으나...
    극도의 스트레스 에서도 화장을 챙길여유가 있다고 억지부리는 캐릭터는 내가 이보영이면 안만들었겠다 싶네요.

  • 글쎄..? 2014.03.12 12:53 신고

    꿈보다 해몽이네요..

  • 오 완전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랑 생각이 완전 비슷하신걸 글에서 보고 느꼈었나봐여
    그래서 이렇게 찾아보면서까지 보고있네요 ㅋㅋ 저는 신의선물이라는 드라마를
    아직 한번도 못봤어요! 전 드라마를 좀 몰아서 보는편이라;;
    다음회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ㅎㅎ
    대신 이보영의 화장으로 이슈가 되는건 봤죠 ㅋㅋ
    그러면서 든 첫생각은 무조건 이건 화장으로 뭔가를 표현한 것일거다! 였어요
    저도 너목들보고 이보영에게 반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ㅋ 이보영이
    아름다움을 위해 화장할 배우는 아니었을 거고 또 스모키라는 화장법 자체가
    예쁘기 위함이라기 보단 뭔가 슬픔을 감추는 강인함? 같은걸 표현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댓글이 많이 달려서 거의 다 읽었는데
    만약 이보영씨가 눈에 어떤 시술을 했고 그 시술을 감추기 위해서 했더라도
    그건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술받은것이 그대로 다 드러났다면
    몰입도가 더 떨어졌겠죠. 또 근데 시술받은걸 감추려고 스모키화장을 하는게
    말이 안되는게 시술을 받아서 그부분만 감추려면 요즘엔 화장법이 발달해서
    거기만 살짝 뭘 덧바르면 될텐데 굳이 스모키를 한 이유는 뭔가
    드라마에 도움이 되는 어떤 장치일거란 생각이 더 치우쳐져요 ㅋㅋ
    엄청 긴댓글을 남기게 되는거 같네욤~~ 암튼 담에 제가 신의선물드라마를 첫회부터
    보고나서 다른생각이 들게된다면 모르겠지만 아닐거 같아요~
    전 심지어 사극 같은 옛날 드라마를 보면서 과연 저 여배우들이
    예전 화장법으로 화장을 하고 나온것인가 하면서 가끔 생각하는 사람인데
    사이버틱한 영화에서 사이버틱한 화장을 하고 미래관련한 영화에선
    미래에 있을법한 화장을 하는 것을 보고 저건 지금 만든건데 어떻게 미래일이야?
    라고 하지 않듯이 신의선물 드라마에서도 그 드라마의 장르에 맞게
    옷차림이나 화장법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그 장르에 맞게 만들어 졌을 듯 합니당~
    리뷰 잘봤어용^-^ 감사합니다~

 

"일어나. 일어나는 거야." "아이. 뭐 그렇게까지 해요. 무슨 왕실도 아니고." 명품 가방을 정성스레 닦고 있던 그녀는 시누이의 타박 앞에서도 거침이 없다. 곧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일어섰지만 그건 시누이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저 궁금했던 정보를 경청하기 위해서였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시끄러운 드라마다. 김수현 드라마 특유의 분노와 욕망으로 점철된 캐릭터들이 활개치며 떠든다. 그러나 이 여자만큼은 드물게 고요하고 단아하다. 마치 태풍의 눈 같은 그녀의 이름은 채린. 비록 등장인물 소개의 끄트머리에 있는 조연이지만 나는 화산 같이 거침없는 시어머니보다 오히려 그녀가 더 무섭다.

 

 

 

김수현의 새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채린(손여은 분)은 작가 김수현에게도 독특한 캐릭터다. 46년 경력의 이야기꾼이니 그녀의 손에서 탄생한 캐릭터만 해도 백 명은 훌쩍 넘길듯하지만, 틀에 박힌 복사본은 아니더라도 고정된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김수현의 시아버지, 김수현의 친정어머니, 김수현의 첫째 며느리. 그러니까 클론은 아닌, 일란성 쌍둥이쯤은 되는 캐릭터를 또 다른 배우의 입에서 풀어내는 것 또한 김수현 드라마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그럼에도 채린은 김수현의 새어머니 같지가 않다. 같은 뜻이지만 말의 어감으로 그녀의 이미지를 표현해보자면 채린은 처음으로 묘사되는 김수현 표 새어머니 아닌 계모다.

 

 

 

이제껏 김수현의 드라마에서 새어머니들은 그 오랜 과거에서부터, 동화의 규율을 배반한 착한 의붓어머니로 묘사됐었다. 사랑과 야망에서 이민영이 연기한 은환은, 태수(이훈 분)에게 비친 첫인상부터가 복사꽃 같은 얼굴을 가진 선녀의 환생이었다. 한차례 배신을 당하고 이미 결혼하고 돌아온 남자를 아무런 원망 없이 받아들여 준 은환은 두 아이의 새엄마가 되는데 수더분한 첫째와 달리 집 나간 엄마를 못 잊어하던 막내딸이 그렇게 말썽이었다.

 

 

 

거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봉사하듯 아이를 모시고 살던 은환은, 둘째가 정신을 차리자 곧 집 나간 며느리가 두고 나간 갓난쟁이를 키우느라, 반백의 나이에 생고생을 한다. 차마 낯을 들 면목이 없는 태수가 아들에게 전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너는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네 머리칼을 다 뽑아다가 짚신을 만들어 신겨드려도 모자란다고. 처음엔 은환을 내 남자 가로챈 여우나 동화 속 계모로 치부하던 아이들의 친엄마도 먼 훗날엔 그녀의 착한 마음에 감복해 세상에 그런 엄마 둘도 없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한편 비교적 최근에 방영된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김해숙이 연기한 새어머니는 친자식과 의붓자식을 차별하기는커녕, 무의식의 편애라도 차단하기 위해 그녀 자신을 지독히도 혹사했다. 의붓아들 태원(송창의 분)을 혹여 차별할까 봐 도리어 그녀의 친자식을 구박해 원망을 쌓을 만큼 의붓자식의 눈치를 보는, 강박에 가까운 어머니상을 추구했다. 의무감과 책임감이 곧 마음의 병이 된 그녀는 말년엔 우울증을 앓으며 힘겨워한다.

 

 

 

"너 같은 것 땜시, 착한 계모가 억울한 거야. 요년아!" 이처럼 김수현 드라마에서 새어머니는 콩쥐팥쥐전의 모진 계모가 아니었다. 도리어 의붓자식의 심술에 쩔쩔매며 몸살을 앓다가 병을 얻는, 미련하리만큼 착한 어머니가 대다수였다.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곳곳에 동화에서 모티브를 빌려온 듯한 설정이 눈에 띈다. 한 남자의 인연이 되지 못하는 오은수(이지아 분)의 운명은 마치 동화 푸른 수염을 떠올리게 하고,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필사적으로 곪아 터진 속을 감추어야 하는 재벌가 며느리의 삶은 그녀 자신이 읽은 것처럼 막힌 탑 안의 라푼젤이 스친다. 그럼에도 채린이라는 캐릭터만큼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동화 속 계모의 형상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물론 채린의 첫인상은 천사 같다. 그림처럼 단아하고 정갈하며 행동거지에 기품이 넘치고 말투는 조근조근하다. 의붓딸 슬기(김지영 분)과 눈을 맞추며 근사한 눈웃음으로 "아줌마랑 같이 화장실 갈까?" 라고 묻는 그녀에게 어떤 악의를 짐작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태원은 전 아내의 미련이 남은 상태로 별로 느낌이 없는 채린을 선택했을 것이다. 적어도 내 딸에겐 따뜻한 새어머니가 돼줄 사람일 거라는 미련한 착각 때문에.

 

 

 

하지만 채린의 애정은 사모하는 태원 하나 뿐이었다. 도리어 그 사랑이 너무나 커서 문제였다. 태원을 사랑하다 못해 집착하는 그녀는 부녀 사이조차 질투할 만큼 너그러움이 없었다. 그를 사랑하는 것만큼 의붓딸 슬기가 미워서 견딜 수 없는 채린이었다. 남편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슬기를 바라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자리에 전 아내 은수가 앉아있다는 공포가 엄습했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매우 조근조근하게 심술을 부리며 부녀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빠와 맞잡은 슬기의 손을 끊어내 가운데로 파고들기도 하고, 잠들기 전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빠의 다정함조차 못 견뎌 남편을 불러내곤 했었다.

 

 

 

초창기 채린의 구박은 오히려 웃는 얼굴이라 섬뜩하고 오싹했다. 마치 감정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으니까. 슬기에게 아빠가 무언갈 사주거나 뭔가를 함께하자고 하면, "그럼 아줌마도 같이하면 되겠다. 그치?" 생글생글 웃으며 사이를 파고드는 그녀였다. 그럴 때마다 슬기는 한숨 쉬며 "네."라고 대답했지만 아둔한 아빠 태원은, 엄마 은수를 보냈을 때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눈치채지 못했다.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후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도 채린이 내숭을 떨었을 때는 슬기도 숨통이 트였지만, 엄습해오는 전 아내의 존재감이 혹여 부녀를 모두 잃을까 염려한 채린은 급기야 싸이코 본색을 드러내 아이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집에 아무도 없어. 알아? 너 아빠한테 나랑 이혼하라 그랬지. 맞지?" 심리 묘사에 탁월한 김수현의 손끝으로 태어난 채린은 영화 블랙스완의 에리카만큼이나 낯설고 오싹한 엄마다.

 

 

 

엄마가 그리워, 동화를 녹음해달라는 아이의 서글픈 바람. 친엄마 은수의 가슴은 찢어지지만 내 남편의 전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새엄마 채린은 괴물로 돌변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테이프를 발로 뭉개버리고 고함을 지른다. "네 엄마 정말 웃긴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분노에 일그러진 그 얼굴이 마치 우는 것과도 같아 보였다. 두려움에 도망치는 아이를 쫓아 폭력을 행사하고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순수를 연기하는 그녀.

 

 

 

"애는 순진하고 순수해야지. 너 같은 애는 못 쓰는 거야!" 이 드라마에서 누구보다 순수하지 못한, 위선과 거짓으로 둘러싸인 채린이 어린이의 정도를 논하는 장면은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펐다. 순수라는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라지 못한 어른 채린이. 그 어떤 위기에도 개연성을 부여하는 김수현 작가는 등장인물 소개 끄트머리에 위치한 채린의 악의마저도 꼼꼼한 세계관을 덧붙여 놓았다.

 

 

 

채린의 엄마에게 딸의 존재란 그저 소유물일 뿐이었다. 엄마의 미미 인형이었던 채린은 고등학교 때까지 혼자 목욕을 하지 못했다. 엄마의 인형 놀이는 그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채린은 그 어린 시절부터 감정은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감추고 사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인형은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웃고 있어야만 하니까. 한채린을 상대하는 캐릭터가 주로 어린아이 슬기인 까닭 또한 그녀의 정신 연령을 증명하는 장치이리라.

 

 

 

 

"누구는 걔만큼 귀하게 안 컸어요?"

"귀하게 큰 거 알아. 그런데 여기, 멘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 같아. 너 미져리야. 알아?"

"뭐라고요? 어떻게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매도할 수 있어요?"

"너 무서워. 채린아."

 

 

 

-아줌마. 시체로 나가기 전에는 저 여기 안 나가요.

 

 

 

채린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문득 이 드라마의 제목을 돌이켜본다. 목욕 놀이하는 인형처럼 욕조에 몸을 담그곤했던 은수. 마론 인형의 머리를 빗기듯 탐스러운 머리칼을 슬픈 눈으로 빗겨내리는 채린. 인형의 집에 갇힌 여자, 오은수. 인형의 집을 만드는 여자, 한채린. 이 드라마가 말하는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진짜 의미는 오은수 하나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15

  • 2014.03.10 10:03

    비밀댓글입니다

  • 잠깐 손여은이 정유미로 잘못 보였네요. ㅎ
    글만 읽어봐도 역시 김수현 드라마, 흥미진진하군요.

  • 제이 2014.03.10 11:28 신고

    음~.... 잘보고 갑니다^^ 드라마관련 기사 댓글을 보면 채린이가 불쌍하다는 글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더라구요. 전 공감 못 하는 쪽이였어요. 채린의 주변환경이 평범한건 아녔지만, 고모 말대로 스트레스를 그런식으로 표출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생각 했거든요.
    근데 이 게시글을 보고 채린이란 캐릭터가 어떤 부분, 의미에선 가여운 캐릭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고갑니다~

    • 김수현 작가가 정말 탄탄하게 서사를 부여했더라고요. 채린을 보면서 내내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어른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송창의의 입에서 같은 대사가 나오더군요. 더군다나 사랑 없이 채린을 선택하고, 콩쥐 아빠만큼이나 딸의 고통을 몰라줬던 태원의 무관심 또한 슬기의 고통을 이끈 원인이구요. 채린이 악을 쓰며 태원을 원망하는 것과 부녀의 관계를 질투하는 것 또한 마냥 억지는 아니라고 느껴졌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채린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채린이라는 거대 악당 때문에 최여사 모녀의 악행마저 덮어씌워지는 듯한 찜찜함은 남더군요.

  • ^^ 2014.03.10 13:06 신고

    안녕하세요. 글 잘읽었습니다. 한가지 정정사항이 있어서요~ 슬기 아빠 송창의의 극중이름은 태섭이 아닌 태원입니다~^^ 다름 김수현 드라마 등장인물과 헷갈리셨나봐요 ㅎㅎ

  • 흐렁 2014.03.10 15:02 신고

    요즘들어 이 캐릭터 때문에 드라마 인기가 솟구친 느낌ㅋㅋ 마냥 싸이코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단 생각이 들면 저라도 많이 불안했을 듯 보여요. 더불어 남자식 끌어안고 살기 힘들다는 것도. 어떤 소설에서 결혼할 남자에게 아이가 있어서 여자가 불임 수술을 받았던데 문득 생각나네요. 남자식 키우는 거 쉽지 않을 듯함다

    • 채린이 또한 잘못된 결혼의 피해자죠. 그녀의 분노가 이해도 되는 게 정상적인 이 집안의 가족으로 취급조차 못 받았으니까요. 시어머니에겐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고 남편조차도 채린이가 아닌 그냥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아서 선택했던 것 뿐이었구요. 채린이가 부녀의 사이를 질투한다는데 사실 그녀가 끼어들 때마다 좀 지나치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어요. 엄밀히 따지면 엄마가 못 끼어들 자리는 아닌데 말이죠. 채린이가 슬기를 친딸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 태원에게도 채린은 아내가 아니었고 슬기에게도 채린은 엄마가 아니었죠. 그럼에도 그녀를 마냥 피해자라고 부를 수 없는 건 아이를 학대했다는 점. 이건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지 않는 범죄죠. 물론 태원이 말마따나 채린은 자라지 않은 어른인지라.. 채린이를 어른의 마음으로 보듬어줄 여유가 없었던 건지도 몰라요. 그냥 장난감을 두고 경쟁하는 또래의 여자친구로 보였을지도.

  • 착하고 순진하면서도 섬득한 이중인격 연기가 일품이더군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언듯 정유미가 보여서 식겁..;;

  • 2015.10.02 14:06

    비밀댓글입니다

 

 

 

"엄마가 잠든 사이 죽음의 사자는 아이를 데려가 버렸습니다. 정신없이 어둠 속을 헤매던 엄마에게 밤의 여신이 말했습니다. 아이를 찾고 싶어? 너의 그 아름답고 탐스러운 머리칼을 내게 줘. 그럼 죽음의 사자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지. 이번엔 가시덤불이 엄마 앞을 막아섰습니다. 아이를 찾고 싶어? 너의 그 따스한 몸으로 나를 꼭 안아줘. 그럼 죽음의 사자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지. 드디어 저만치 아이를 안고 가는 죽음의 사자가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 앞을 호수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아이를 찾고 싶어? 너의 그 맑고 깊은 두 눈동자를 내게 줘. 그럼 이 호수를 건너게 해주지.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두 눈동자를 뽑아 호수에 던졌습니다."

 

어느 겨울밤. 폐렴에 걸린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에게 배고픈 나그네가 문을 두드렸다. 따뜻한 수프를 대접해드리겠노라 아이를 두고 부엌으로 향한 어머니의 선의는 곧 악의로 앙갚음 되었다. 나그네는 아이와 함께 사라졌고 자리를 매운 것은 매서운 겨울바람뿐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그날 밤 어머니를, 아니 아이를 방문한 나그네의 이름은 사신이었다.

 

 

 

 

드라마 신의 선물 – 14일은 동화를 읽어주는 이보영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자전적 소설,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사신에게 아이를 빼앗긴 어머니가 혹독한 겨울바람을 뚫고 사신의 집을 찾아 나서는 슬픈 여행을 담아낸 이 이야기.

 

 

 

사신이 간 길을 알 리가 없는 어머니는 가시덤불과 얼어붙은 강에게 길을 묻는데 그 대가로 요구 받은것들이 참 참혹했다. 어머니의 눈과 머리카락. 피투성이가 될 몸뚱이.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잘린 머리카락에 상처로 물든 몸. 맹인이 된 눈을 더듬어 사신의 집을 찾는다.

 

안데르센이 그의 어머니를 모티브 삼아 만들었다는 이 동화는 헌신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어머니의 사랑을 사신에게 아이를 빼앗긴 어머니라는 판타지 소재를 빌어 풀어낸다. 어린 시절 읽은 이 동화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만큼의 절실한 모성애를 마주 대한 적이 없었다. 만약 신의 선물 14일이 이 동화를 토대로 구성되었다면 안방극장 역사상 최고의 애달픈 모성애를 느껴볼 수 있으리라.

 

 

 

시사프로 방송작가 수현은 이성적인 여자다.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무감각한, 공감능력 제로의 그녀와 달리 지나치게 감수성이 풍부하고 남의 슬픔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는 딸, 샛별의 가치관은 시시때때로 부딪히며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그녀는 섬뜩한 징후에 휩싸인다. 유괴당한 소년의 죽음을 시작으로. 딸은 낯선 이의 방문을 받고 낯선 오빠와 쉽사리 친구가 된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남편 때문에 그녀는, 피해자 가족의 저주에 가까운 폭언을 들어야만 했다. 너도 똑같은 고통을 겪어보라고. 심지어 어느 날인가는 운명이라는 간판을 내건 카페에서 조만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운명이라는 직접적인 경고를 받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심했다. 찜찜함을 느끼긴 했지만,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라는 문장은 그녀에게 있어 그저 타인의 뉴스일 뿐이었다. 수현은 몇 번이나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를 마주 대하지만 그저 방관자의 시선으로 외면해왔다. 미래를 미리 경험할 수 있다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러니 부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된 수현에게 그것은 그 무엇보다 간절한 바람이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라고만 생각했다. 부녀자 연쇄 살인범을 공개 수배하면서, 십 년 만에 만난 첫사랑에게 가슴 설레기도 하고 방송 중 걸려온 도우미 아줌마의 전화에 짜증을 내기도 하며. 그러나 살인범의 전화와 동시에 듣게 된 딸의 소식은 그녀가 더는 사건의 방관자가 아님을 경고했다. “엄마.” 울음 섞인 딸의 목소리. 냉정한 수현이라도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을 엄마의 뼈가 녹아내리는 아이의 SOS.

 

그리고 그 순간부터 수현은 뉴스를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닌,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피해자가 된 수현은 한순간에 카메라의 중심에 올라서 있고 이제 사람들은 그녀를 바라보며 수군덕댄다. 예전에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이보영은 침착하고 냉정한 여자가 한순간에 잃어버린 이성을 가슴이 아릴 만큼 절절히 묘사해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를 놓고도 이윤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돈 2억에 눈이 먼 양아치의 거짓 전화를 외면할 수 없었던 엄마 수현은 오물에 손을 집어넣고 우스꽝스럽게 바닥을 뒹굴면서까지 비틀비틀 그를 찾아 나선다. 급기야 지하철 문틈에 끼인 채 사기꾼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바닥을 나뒹구는 이보영의 연기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얼굴에 피멍이 맺히고 입술이 터지면서도 그를 붙잡아 아이가 있는 곳을 물어보는 엄마. 아. 이거야말로 안데르센의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속 한 장면이 아닌가.

 

 

 

 

그녀의 고통을 시청률 상승 거리로만 생각하는 상사의 매정한 말다툼을 지켜보면서도 그녀는 아무런 반기를 들지 못했다. 오로지 이 방송을 통해 범인을 달래고 사정하여 내 아이를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는 도도하고 이성적인 김수현 작가가 아니었다. 냉정한 얼굴로 공개 수배를 진행하던 그녀가 비굴하리만큼 자신의 직업을 힐난하며 범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모습은 차마 바로 바라볼 수가 없을 만큼 가련했다.

 

 

 

부어터진 얼굴로 심문당하듯 카메라의 중심에 앉아 범인에게 사정하고 갈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역시 동화 속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래도 정 화가 안 풀리시면. 그래요. 저, 저 데려가세요. 우리 아이는 놔주시고 제발 저 데려가셔서 마음대로 죽이세요. 화나신 데까지 저, 맘대로 죽이셔도 돼요. 오. 그러니까 제발 우리 아인 저 같은 엄마 만난 죄밖에 없어요."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죽음의 신에게 빌고 또 빌면서 간청할 그 한마디.

 

 

 

결국, 피 묻은 아이의 신발이 발견되었다는 뉴스의 헤드라인을 마주 대하고 그녀는 범인을 씹어 뜯어 먹을 듯 복수에 이를 갈았다. “만약에 내 새끼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나.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당신 잡아 죽일 거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 살가죽을 벗겨 내서 뼈째 씹어 먹을 거야.”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사신의 집을 기어코 찾아낸 어머니는 사정하고 회유해봤다가 그럼에도 모질게 마음을 바꾸지 않는 사신을 감히 협박한다. 내 아이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이 밭의 꽃을 모조리 뜯어버리겠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이가 감금 당한 곳에서 딸의 마지막 흔적을 훑어 내리던 그녀는 그토록 조심하라던 물가에 발을 담근다. 마치 사신을 찾아 강물을 건넜던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처럼. 그 순간 마치 운명 공동체처럼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두 남자의 운명이 그녀와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과연 수현은 사신의 품에 안긴 아이를 되찾아올 수 있을까.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돌려주지 않으면 사신의 꽃을 뜯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한다. 어쩐 일인지 사색이 된 사신은 그 꽃은 또 다른 아이들의 생명이다. 너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어느 어머니에게 고통을 맛보이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나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아이를 죽을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대로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오래오래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마지막이 아닌 새드 엔딩이었던 이 이야기. 그리고 수현이 만난 몇 사람의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 수현의 서글픈 여행이 해피엔딩이 될지 새드 엔딩이 될지. 이 슬픈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아낼 이보영의 연기만큼이나 궁금해진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4

  • 시현 2014.03.06 10:51 신고

    이왕이면 새드로 끝나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드라마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 생기네요

  • 2014.03.06 12:19

    비밀댓글입니다

  • ㄱㄴㄷㄹ 2014.03.07 01:43 신고

    구지 태클을 걸고자 하는건아니지만, 이보영 눈화장은 정말 옥에 티였던거같습니다. 물론 영화가 아닌 드라마이고, 여배우이기때문에 포기 할수 없는 부분이긴하지만, 그토록 슬프고 가슴 찢어지는 엄마의 연기에 눈화장은 정말 아니더군요. 마스카라가 얼마나 선명하던지 그 눈화장때문에 몰입이 방해됬던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여배우들이 조금만 더 섬세한 현실적인 면까지 신경써주면 더 좋을텐데요... 어차피 이쁜건 모든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니까, 드라마 한편에서 조금 덜 이쁘게 나와도 큰 손해는 없을듯하네요.

 

 

이제껏 KBS 주말 드라마의 노선을 쭉 달려온 사람이라면 아마 최근의 ‘참 좋은 시절’이 가장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참 좋은 시절은 그야말로 KBS 주말 드라마 같지 않은 드라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 내 딸 서영이 – 최고다 이순신 – 왕가네 식구들처럼. 심각한 소재를 다루더라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지 않았던 주말 드라마 특유의 성질을 배반하고 있는 드라마니까.

 

 

 

가난한 이는 가난해서 우울하고 엘리트마저 비련으로 휩싸여있다.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캐릭터가 너나 할 것 없이 슬프고 가련하다. 그들의 안개처럼 무거운 우울이 경주 시내에 자욱하게 깔린, 참 좋은 시절은 KBS 주말 드라마의 이단아다.

 

김희선이 연기하는 여주인공 차해원 또한 독특한 이력을 남기고 있다. 억척스러운 여주인공과 엘리트 남주인공의 만남이라는 소재는 딱히 신선할 것이 없지만 그 대상이 배우 김희선이고 작가 이경희의 손에 쓰였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있어 새로운 차원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정점으로 올라서려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미스터 큐나 토마토 같은 김희선 표 트랜디 드라마의 18번이지만, 그 직업이 사채업이라는 현실에서 비전이 아닌 비련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참 좋은 시절의 혜원은 김희선이 이따금 연기했던 가난하고 우울한 여주인공, 드라마 해바라기나 세상 끝까지의 배경에 김희선 스타일을 덧입힌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희선의 트랜디 드라마를 컬트 드라마로 만들어 놓은 이경희 작가처럼 그녀에게 김희선이라는 배우 또한 독특한 이력으로 기록된다.

 

아직 왕가네 식구들이 끝나지 않았던 시절에, 참 좋은 시절의 예고편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왈패 처녀를 연기하는 김희선을 보며 이경희 작가가 그녀에게 참 많은 기대를 걸고 있구나 싶었다.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가 중심이 되는 주말 드라마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김희선에게 이런 연기를 시키는 것도 일종의 도전이다. 시청자에게 평이 박했던 배우가 맛깔나게 사투리를 소화해낸다면 극찬을 받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경희 작가는 부러 핸디캡을 주어 배우 김희선의 정점을 찍어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경희 작가가 어떤 의도로 경주 배경 중심의 거진 사투리 쓰는 캐릭터를 불러들였는가는 몰라도, 그 반응이 최소한 제작진이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현재 4회까지 방영된 참 좋은 시절은 전작 왕가네 식구들의 반사이익으로 보기 드문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반응 또한 적지 않다.

 

씁쓸한 것은 악평을 받는 이유 대부분이 주연 배우의 사투리 논란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결국, 사투리를 기가 막히게 소화했거나 사투리 설정이 애초에 없었다면 비난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드라마의 주 무대가 되는 배경은, 경상북도 경주시다. 굳이 구구절절 지역의 설명을 덧붙이는 까닭은 참 좋은 시절의 사투리 논란이 꽤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경상도 사투리가 형편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경주 사투리가 아니고, 경상북도의 사투리가 아니라는 세밀한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가 안방극장에서 보편적이면서도 까다로운 것은, 남도와 북도의 말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강세도 다르고 억양도 다르다. 같은 경상도 사람이면서도 이 사투리가 틀렸네, 맞네 하는 논란이 생기는 것 또한 모두 듣고 자란 지역 사투리의 친숙함에서 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사투리는 천지 차이라고까진 말할 수 없어도 미국말과 영국말의 뉘앙스 차이 정도는 된다.

 

심지어 일부의 시청자는 지역 사투리의 차이를 넘어, 세세한 도시 사투리의 디테일마저 요구하고 있어 놀라움을 더한다. 옥택연과 김광규는 부산 사투리를, 김지호는 대구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 출신 배우 김상호를 제외한 모든 배우가 경주 사투리를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같은 북도와 남도라고 해도 또 도시에 따라 사투리의 종류가 달라진다니, 아무리 연기 잘하는 배우라도 이런 요구까지 부응하기란 무리다. 더군다나 시청자의 비판 또한 갑론을박이다. 막상 경상남도 사투리를 쓴다며 지적을 받는 김희선은 부모님이 대구 출신이라 남도의 사투리와는 거리가 멀다. 경주 사투리가 아니라고 지적을 하는 시청자가 있는가 하면 김희선 혼자 제대로 경주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지역민도 있다.

 

시청자는 이미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사투리 연기의 정점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로 경상도 사투리의 정점을 알게 된 시청자에게, 이 정도의 사투리 연기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응답하라 1994 또한 경상도가 아닌 세부 도시까지 파고 들어가면 부적격인 사투리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사투리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던 것은 적어도 기본적인 배경의 고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사투리, 혹은 경주 사투리의 차이가 아니다. 어느 네티즌의 불평처럼 그 지역 주민이 아닌 서울 사람이 들어도 어색한 사투리라는 것이 참 좋은 시절의 현주소니까.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가 중구난방으로 통일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사투리를 쓰는데, 배우 자신은 물론 제작진부터가 배경 ‘경주’를 향한 연구에 소홀했다는 증거다.

 

 

경주 시내를 배경으로 쓰면서 가장 중요한 언어 문제가 중구난방이니 그야말로 이 드라마의 배경이란 드라마의 코디 아이템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배경으로 쓰인 지역을 향한 진지한 고찰과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그저 사투리 쓰는 서울 사람일 뿐이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15

  • 2014.03.03 14:45

    비밀댓글입니다

  • ㅂㅂ 2014.03.03 15:39 신고

    사투리 괜찮던데~경주가 고향인 친구 한테도 물어봤더니 사투리 논문쓰냐고 그정도면 잘하는 거라고 사투리도 사람마다 억양이 조금씩 다르다고그러던데~도대체 누가 이렇게 질타하는지 모르겠네여~어쨌든 전 배우들 연기도좋고 잘보고 있는데 막장보다는 훨~낫거든여--;;

    • 그러게요. 내용도 참 좋고 감정도 좋은데 사투리 디테일 때문에 이런저런 논란이 생기는 것이 안타깝네요.

  • 판타 2014.03.03 16:26 신고

    지방,도시마다 다른건 분명히 있죠.. 저도 항상은 아니어도 부분부분 '아 이건 틀리네' 한적 있던듯. 그런데 연기자 전체가 그런 고증을 소화하긴 무리 아닌가? 경상도 사투리 같지 않은 정도가 아니면 이해해주자 생각되는 제가 이상한건가요.. 아니면 사투리 설정의 드라마는(아니 사투리를 안써도 장소가 지방인 이상 설정이 안맞기는 마찬가지니까 지방에서는 드라마를 만들면 안되겠군;) ..물론 현재 드라마는 경상도 지방의 사투리만 자연스럽게 써주면 이해해준다 쳐도 몇몇 사투리는 좀 배운티가 나긴 합니다 (김희선이나 옥택연 정도는 좀..;; 그래도 감탄해 줄수는 없을 정도지 거슬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

  • 2014.03.04 09:08

    비밀댓글입니다

  • 화이팅 2014.03.04 14:25 신고

    참 재밌기만 하구만..까려고 작정하고 덤비면 허물없는 작품이 어디 있소?

  • oz 2014.03.04 20:55 신고

    응사 때도 사투리 논란이 있었죠.
    경남,경북, 지역마다 다 다른데 그정도면 정말 잘하는거라고 댓글 적은 적이 여러번ㅋ있어요.
    이 드라마도 사투리 잘한다했어요. 특히, 이서진 아역은 참 잘하더라구요.
    근데, 정말 고쳤으면 하는건 "안녕하세예"^^;;
    끝에 '예'를 붙이는 지역이 있지만 어디서도 "안녕하세예"는 들어보지 않았거든요.
    아, 경주는 그런걸까요? 그럼 할말 없구요^^;;
    어쨌든 재미있게 잘보고 있답니다.^^

    닥터콜님 리뷰 지금도 잘 보고 있구요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셔요.^^

    • 경주에서도 안녕하세예라는 말투를 쓰는 분은 못 본 것 같아요. ㅎㅎ 사실 경남이든 경북이든 말 끝에 예를 붙이는 젊은 분들은 찾아보기 어렵더군요. 그럼에도 드라마에선 종종 쓰더라고요.^^ 해운대 하지원 사투리도 그래서 좀 거슬렸었죠. 응답하라 1994도 경남과 경북을 구분하지 못한 사투리가 좀 있었는데 그럼에도 싫은 소리 몇 번 들은 거지 전반적인 사투리 연기는 극찬을 받았던 걸로 기억해요. 전체적으로 사투리 어감이 통일되어 있었기에 혼선이 적었거든요. 참 좋은 시절은 배우마다 사투리 어투가 다들 달라서 ㅠㅠ 그게 참 거슬리더라고요.

    • 예가 끝에 붙는 말을 쓰는 사람 종종 있습니다. 아인데예. 맞는데예라고는 해도 하세예는 안합니다.

  • 억양은 그렇다치고 어색한 사투리도 많이 들어봐서 괜찮아요. 근데.. 하세예? 라는 정체불명의 사투리는 어디서 온건지 궁금합니다.
    대구서 산 사람에게 물어도 하이소~라고 하지 하세예는 안쓴다던데.. 어디 시골서 쓰는 단어일까요?

  • 사투리를 잘표현하고 또는 그지역에 맞든 맞지않든을 떠나서 성인중에서도 40줄이후에서나 쓸법한 사투리를 쓰는 아역배우들을 볼때 경상도에 살
    고 있는 사람으로서 씁쓸함을느낀다. 요즘은 아무
    리 경상도 시골이라도 학생들은 거의 사투리를 쓰
    지않음을...현재방영분은 현대를 배경으로 방영되고 있는것으로 알고있는데

  • 전 경남 마산사람인데 사투리가 너무 어색해서 드라마에 집중이 안되고 보기가 싫엇습니다...

  • 기미선 2014.04.06 20:22 신고

    진짜 사투리 왜저렇게쓰는지모르겟네

  • 김희선만 연기를 넘 못하는듯 ᆢ

  • 4 2014.05.19 08:51 신고

    재밌기만하구만 사람들참 이상하네

 

 

주부 대상의 일일 드라마엔 언제나 나쁜 남편이 등장한다. 모질게 아내를 괴롭히던 철면피 남편들이 천벌을 받아 무너지는 꼴은 언제 봐도 깨소금 맛일 거다. 이를테면 이 남자들은 주부님들의 샌드백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마치 가족오락관의 피날레가 언제나 몇 대 몇! 여성 팀의 승리로 마감된 것처럼.

 

마치 고진감래처럼, 절정 파트의 카타르시스를 감상하려면 그 앞의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으나 MBC의 일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의 못된 남편 변태식(윤희석 분)은 해도 너무 할 만큼 악질적인 남편이라 치가 떨릴 지경이다.

 

 

 

세상에 억울한 일은 많고 많지만, 기껏 베푼 선행이 원수로 돌아오는 것만큼 원통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오빛나(이진 분)은 그래서 가엾기 짝이 없다. 그래도 어느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연애 시절만큼은 이 남자를 사랑해서 선택하긴 했었는데, 오빛나에겐 그런 선택권마저 없었다. 심지어 제대로 된 연애 시절마저 없었으니. 그것은 온전히 평소엔 우유부단의 극치를 달리면서 한 번씩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내세워 사람 미치게 하는 변태식의 극 이기주의 때문이었다.

 

오빛나는 변태식을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추호의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이 여자가 좋아서 죽자사자 쫓아다닌 것이다. 마치 승냥이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그 꼴이 얼마나 위태로워 보였으면 둘 사이를 범죄 현장으로 착각한 남주인공 강하준이 그를 성추행범으로 오해했을 지경이었다. - 절반은 사실이지만. - 아, 인간은 선택으로 망하고 선택으로 흥하나니.

 

만일 이때 오빛나가 그를 법의 심판에 맡겨 버렸다면 그녀의 인생은 지금쯤 재벌 총수의 아내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둔하리만큼 착한 바보 오빛나는, 성녀 같은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여 그녀의 인생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남자친구 맞아요.”

 

 

 

빛나의 착한 마음씨는 그대로 변태식의 인질이 되고야 말았다. 그녀가 끝끝내 그에게 마음을 주지 않자 이번에는 자살 기도까지 하여 눈을 뜨지 못하는 태식을 빛나는 차마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변태식의 모친, 오말순(윤미라 분) 마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듯 그녀에게 빌고 또 빌었다. 제발 내 아들 좀 살려달라고. 이때 오빛나는 역시 해서는 안 될, 그녀 인생 최악의 두 번째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다. “결혼해 줄 테니까 눈을 떠.” 이렇게 무자비한 방식으로, 마치 찌라시로 선화를 얻은 서동처럼 그녀를 가진 변태식은 결혼 이후 그야말로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손 모아 빌던 기억은 내동댕이친 시어머니는 매서운 시월드의 본때를 보여주었고 그 사이의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남자, 변태식은 아내를 구원하기는커녕 철없는 짓거리를 반복했다. 빛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래도 특유의 밝은 심성으로 참고 또 참았던 지난 세월이다.

 

지지리도 못난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일쯤이야, 물론 예상된 전개다. 변태식은 외국물 먹은 엠마 정에게 시선이 갔고 이 여자와 살고 싶어졌다. 한순간에 그의 마돈나는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내가 버리고 싶어졌다. 마침 이 못난 아들을 붙들어주기는커녕 부채질하는 나쁜 엄마, 오말순의 꼬임이 그의 간사한 핑곗거리가 되어버렸다. 낯이 두꺼워진 그는 아내와 헤어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녀에게 줘야 할 위자료가 아깝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무일푼으로 쫓아내는 방법이 없을까 모의하던 모자는 의료 사고와 천문학적인 합의금의 거짓 상황을 꾸며내 빛나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인다.

 

 

 

한 번쯤 의심해볼 만도 하건만, 유감스럽게도 빛나에겐 모자가 꾸민 흉계에 넘어갈 만큼 빚이라면 치가 떨리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급격하게 기운 가세에 집안의 모든 물건이 빨간 딱지로 가득했던 지난날을 그녀는 잊을 수가 없다. 결국, 빛나는 위장 이혼이라는 그녀 인생 최악의 세 번째 실수를 선택하고야 만다.

 

모자의 악독함, 아니 전남편 변태식의 악랄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입으로는 빛나에게 미안하다, 빛나를 버릴 수 없다며 풍월 읊듯 중얼거리면서도 정작 필요한 상황에선 어머니보다 모질고 가혹하게 전 아내를 내팽개치는 인간이 바로 변태식이었으니까. 그렇게 이혼시키고 처음에는 눈치를 좀 보더니 이젠 해가 갈수록 뻔뻔해져 위자료는커녕, 위로금조차 내놓지 못하겠다며 발뺌을 한다. 법으로 해결하라며, 네 손으로 찍은 이혼 도장인데 정상 참작이 되겠느냐고 큰소리를 치던 변태식은 이미 안하무인의 경지를 넘어서 있었다.

 

 

 

이제 빛나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그녀 품으로 낳은 사랑스러운 딸 하나뿐이다. 변태식은 어쩐 일로 손자 하나만큼은 애지중지한 엄마의 닥달에 넘어가 애를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불륜도 모자라 위자료는커녕 이제 전 아내의 마지막 삶의 의미마저 남겨주지 못하는 이 남자는, 남편의 도의를 떠나 한때 사랑했던 여자를 향한 최소한의 의리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토록 정떨어지게 아내를 버려두었으면서, 막상 오빛나의 마지막 남자는 그 하나뿐이길 바라는 철면피 이기주의다. 새 아내가 원하는 대로 카드를 긁어대며 백화점 쇼핑을 즐기던 그는, 마침 재벌 총수의 아들과 위장 연애를 하는 오빛나의 뒷모습과 마주치게 된다. 그나마 엠마 정이 그녀를 알아보았지만, 그는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차마 전 아내, 오빛나일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그가 아닌 다른 남자를 선택할 리가 없다는, 안하무인의 자만심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의 뻔뻔한 자아도취에 불륜녀 엠마 정마저 눈을 흘겼을까.

 

 

 

"여보. 이 자식 괜히 수작 부리는 거지. 그치?"

"여보라뇨. 이제 그런 호칭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좀 정확히 하시죠."

 

"다른 여자한테 가겠다고 그쪽이 먼저 가정 생활 깬 걸로 아는데. 오빛나씨한테 그런 상처 주고 이제와서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아닌 다른 남자를 사귈 리가 없다고, 그녀 인생의 남자는 나 하나뿐이라고, 나는 그녀를 버려도 그녀는 나를 버리지 못한다는 뻔뻔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있던 이 남자의 콧대가 깨지는 순간이다. 그는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전 아내의 데이트 현장에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마치 아내의 불륜 현장이라도 목격한 것 마냥 길길이 날뛰는 이 남자를 도대체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차라리 그가 오빛나를 덜 사랑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그의 뻔뻔함이 희석되었으리라. 그렇게 그녀를 사랑했으면서, 아니 지금도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상처만 입히는 이 남자의 이기주의에 치가 떨린다. 엠마 정과 신혼여행을 다녀 온 날. 온몸이 벌레에 물려 긁는 오빠의 모습을 보고 그의 여동생은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고소해했다. 이 지경의 남자라면 이제 천벌 정도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작품의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인지도 높은 배우가 있다. 내겐 조안 역시 그러했다. 중견 배우까진 아니더라도 그 중간의 반열 즈음에는 들어갈 경력의 조안이지만 그녀의 이름과 동시에 팟하고 떠오르는 작품 같은 건 아직 없었다. 한마디로 대표작이 없는 배우랄까.

 

심지어 내게 아직도 조안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드라마의 제목은 그녀의 첫 주연작, 첫사랑이었으니. 그것 역시 작품의 완성도나 조안의 연기력 때문이 아닌, 첫 사랑은 슬프다던데 나 지금 누구라도 사랑하고 올까요? 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서영은의 주제곡 때문이었다.

 

 

 

이런 조안에게 오랜만에 그녀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작품 하나가 찾아왔다. 바로 MBC 주말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의 장채리가 바로 그것이다. 분명 주연은 아니다. 하물며 악역이다. 그것도 안티히어로라는 찬란한 수식어가 통하지도 않을 가장 질 나쁜 악역들이 득시글한 주말 드라마의 악녀. 그럼에도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에 시선이 간다. 그것은 극과 극의 성녀 같은 캐릭터, 오빛나(이진 분)와 팽팽히 맞서며 생긴 이른바 반사 효과 덕분이다.

 

 

 

빛나는 로맨스는 클리세로 점철된 낡은 로맨스 소설 같은 드라마라 여주인공 오빛나 역시 옛날 만화 속의 구슬픈 성녀 같다. 역시 악역 장채리 또한 옛날 만화책의 개연성 무시한 악의 화신처럼 사납고 거칠기 짝이 없다. 가끔 이 천사와 악마가 설전을 벌이는 장면을 볼 때면 고동 머리에 보석 같은 눈을 박은 80년대 순정 만화를 펼치는 기분이다.

 

그만큼 장채리의 악의 동기는 그야말로 타고 난 듯 개연성이 없다. 의도적으로 접근한 남자가 내 것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생의 숙원이 될 만큼의 원한 감정을 품는 짓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일일극의 장채리 같은 여자에게 상식으로 다가가 봤자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그저 장채리는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할 것이다. 캔디를 괴롭히는 이라이자의 악의에 동기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처럼.

 

 

 

더군다나 장채리는 드라마 초반엔 꽤 신선한 악녀였다. 계획적으로 강하준(박윤재 분)에게 접근했던 그 무렵은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심지어 그녀와의 공식 첫 만남에서 대놓고 싫은 티를 풀풀 내며 일어서려는 하준을 붙잡아두고 멋지게 번호를 가져가는 모습은 매력적이기까지 했었다.

 

장채리는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녀의 악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지능적이고 교활한 악녀, 이른바 이 드라마의 끝판 대장인 김 집사가 버티고 섰기 때문이다. 김애숙(이휘향 분)의 교활함에 비교하면 사람들 다 지켜보는 홀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못된 짓을 하다 하준에게 들켜 오만 정떨어지게 한 장채리의 아둔함은 가련하기까지 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최근 아임 유어 파더~ 라고 장채리를 크나큰 충격에 빠뜨린 이 김 집사가 다름 아닌 오빛나의 친모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바꿔치기한 것인지. 아니면 이날 밝혀진 이야기 그대로 오빛나가 그녀의 친딸이라면 별안간 채리는 김 집사의 농간에 놀아나 낳아준 어머니를 의심하며 그토록 함부로 대했던 고용인의 딸이라는 거짓말에 번민해야만 하게 생겼다. 애숙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녀가 진짜 빛나의 친모라면 얄궂게도 딸의 대리 복수를 해주고 있는 셈이랄까.

 

 

악녀 중의 악녀, 팜므파탈 김애숙 역의 대선배 이휘향과 맞붙는 요즘, 조안의 연기는 더 재밌어졌다. 이전까지는 오빛나를 괴롭힐 꿍꿍이만 그득하더니 이젠 내 어미가 누구인지 번민하며 고뇌하는 괴로움마저 떠맡았다. 자기가 뺨을 때린 김 집사가 별안간 내가 네 어머니라고 고백하자 말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설마 설마 하고 의심하며 연연하고 계속해서 부정하며 떨쳐 내려 하는 조안의 연기력은 최근 들어 가장 압권인 연기였다.

 

이제 장채리는 김 집사의 말마따나 적통 라인을 향한 경계심으로 생존 본능에 불을 지피게 생겼다. 이전까지는 오냐오냐 키워진 부잣집 고명딸이 장난감을 빼앗겨 칭얼대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투쟁을 벌일 태세다. 그래서 보다 악랄해지고 교활해질 것이다. 그 방면의 대가 김 집사의 교육까지 받아서.

 

 

마치 80년대 고전 만화의 기계적 악녀 같지만, 그녀의 개연성 없는 악의가 드라마를 보는 흥미를 더한다. 이런 캐릭터를 망설임 없이 악랄하게 연기해주는 조안의 연기력이 마치 조미료를 뿌린 듯 빛나는 로맨스의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김희선의 얼굴은 아득한 1993년의 드라마, 공룡선생에서다. 그때 김희선은 교복을 입었었고 친구 안연홍이 가진 ‘출생의 비밀’을 교내 스피커로 퍼뜨리는 –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 이른바 못돼먹은 계집애였다.

 

당시 나도 어렸었기에 이 드라마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흐릿한 이미지 속에 김희선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물론 유별나게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과 분명 입때까지만 해도 주인공 안연홍의 못된 친구를 연기하던 김희선이 순식간에 섭렵해버린 주연의 자리 때문일 것이다. 많고 많은 스타들 가운데서도 김희선은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안방극장의 진짜 슈퍼스타였다.

 

 

 

특유의 깜찍한 얼굴 때문에 CF는 물론이오. 예능 프로그램의 MC 역할마저 섭렵했지만 역시 김희선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는 드라마의 여주인공이었다. 이민우의 연기력을 오로지 얼굴 하나로 맞선, 그림처럼 아리따운 춘향이에 그 김수현 작가마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던 목욕탕집 남자들의 엑스세대 아가씨.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감독, 윤석호의 뮤즈가 된 김희선은 이제야 비로소 진짜 슈퍼스타 김희선의 신화를 이룩하게 된다.

 

 

 

드라마 ‘프로포즈’에서 여주인공 김희선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하기 이를 데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소꿉친구 류시원의 아이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하는 여자를 망신 주고, 대단한 언변으로 쫓아내는 장면은 우리가 안방극장의 여주인공에게 가진 일종의 가치관을 일제히 무너뜨리는 모습이었다. 오픈카 위에 털썩 올라서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마지막까지 비아냥대는 그 발랄한 목소리의 후련함이라니. 지금의 ‘나이 든 소녀들’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말한다. “스무 살이 되면, 나도 김희선이 되는 줄만 알았다.”

 

프로포즈에서 시작된 김희선 표 마법은 그녀를 닮고 싶어 따라 하게 되는 동경심에서 비롯된다. 당시 여주인공으로선 파격적이었던 태닝한 피부에 가닥가닥 넣은 브릿지 헤어. 두꺼운 직사각형의 포인트가 달린 금빛 장신구를 유행시켰던 김희선은 그녀의 오랜 동료, 이희명 작가를 만나며 특유의 마력 같은 세일즈 기술의 정점을 찍었다.

 

 

 

“거꾸로 해도 이한이.” 그래서 토마토를 좋아한다는 드라마 토마토의 이한이를 연기했을 때 사람들은 김희선의 모든 것을 베끼고 싶어 했다. 의상은 물론 자잘한 코디 아이템까지. 그녀가 하고 나온 머리 방울과 헤어밴드는 김희선의 이름을 달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오죽하면 이 시절 김희선이 노점상을 먹여 살렸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정확하진 않지만, 당시 예상한 노점상의 수익만 해도 몇십억 이상이었다고 하니 위압적이기까지 했던 김희선의 위상이 짐작이 간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이한이가 갖고 놀던 요요와 토마토 나무까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하니까.

 

이희명 작가와 김희선의 콤비가 2000년대 초반까지 휩쓸었던 안방극장의 붐은 전문직과 로맨스의 결합이었다. 90년대 초반. 이혜영이 높은 굽의 하이힐과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뛰어다녔던 드라마 ‘예감’에서 시작된 트랜디 드라마의 공식 같은 장르였지만 김희선 이상으로 이 장르를 제대로 소화해낸 배우가 드물었다. 여주인공은 일을 하는 사람이고, 로맨스가 중심이 아니라 마치 게임처럼 커리어를 키워나가다 보면 사랑은 얻어걸린다는 식이었다. 비록 전문성은 유치한 수준이었지만 김희선 표 트랜디 드라마를 통해 배운 ‘꼬마 스케치’ 같은 용어는 비전문가에겐 그나마도 신선했었다.

 

 

 

하지만 굳건했던 김희선의 신화도 흐르는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었다. 많은 기대 속에 시작된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 요조숙녀의 성적은 아쉬웠고 이후 최후의 일격처럼 선택한 ‘스마일 어게인’은 그야말로 대재앙 수준의 참패를 겪었다. 이렇게 이희명+김희선 콤비의 협공이 차례차례 무너짐과 동시에 그 찬란했던 김희선의 전설도 막을 내리는구나 싶었다.

 

나름 김희선의 팬이면서도 그녀가 KBS 주말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반갑기보다는 조금 낯설었다. 약간의 서글픔을 느끼기도 했다. 선입견일지는 몰라도 KBS 주말드라마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이미지가 김희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김희선은 언제나, 트랜디 드라마 혹은 미니시리즈의 여주인공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마 김희선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것은 복귀작, 신의로 얻은 배우 김희선의 신의 덕분일 것이다. 시청률은 암담했지만, 김희선을 향한 대중의 평가만큼은 드라마의 성적, 그 이상이었다. 영화 와니와 준하 이후로 오랜만에, 시청자는 연기하는 배우 김희선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기대하게 되었다.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김희선은 애지중지 키워진 부잣집 딸이 한순간에 몰락하여 대부업체의 직원이 된 차디찬 현실을 연기한다. 과거지사부터가 암울한데 여주인공의 직업은 낯설다 못해 생뚱맞기까지 하다. 일단 쉽사리 대중과 친밀해질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아니 도대체 어떤 작가가 주말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직업을 대부업체 직원으로 설정하나 싶어 찾아봤더니 역시나! 착한 남자,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상두야 학교 가자,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경희 작가였다. 주인공이 행복한 꼴을 보지 못하는.

 

 

참 좋은 시절은 여러모로 신선하며 또한 낯선 드라마다. 밝디밝은 김희선과 우울하디 우울한 이경희 작가의 조합이라는 사실부터가, 심지어 두 사람이 다른 곳도 아닌 KBS 주말 드라마에서 협공을 펼쳐 보인다는 사실 또한. 게다가 남주인공 또한 주말 드라마에서 낯설기 짝이 없는 이서진의 조합 아닌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김희선과 이경희는 외도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김희선이 톱스타가 되기 전에 찍은, KBS 주말극 목욕탕집 남자들은 지금 김희선 스타일의 초안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경희 작가의 기초는 KBS 주말드라마, 꼭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트랜디 드라마의 여왕에서, 낯선 카드를 들고 시청자의 안방을 두드리는 김희선. 초심으로 돌아온 그녀의 낯설면서도 그리운 방문이 어떤 환영을 받을지가 궁금해진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1

 

 

"어젯밤에 교수님한테 전 여자였어요." 십여 년 전 드라마의 캐릭터를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정확히 설명하자면 캐릭터 자체는 평범했으나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서였다. 2002년 여인천하에서 수염이 나지 않은 여자 얼굴의 중국 상인 장대인이 내겐 그랬다. 남장 여자 역할이 흔치 않은 시절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역할을 중견 배우가 소화했다는 것이 대단히 이색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밋밋한 턱에 하얀 얼굴, 까만 눈 주변과 기괴하게 웃는 그 모습은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론 오싹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영향일까. 이후부터 중견 배우 이휘향의 캐릭터를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그녀가 맡은 캐릭터는 대체로 정상적인 인물이 없었다. 아니 때로는 캐릭터는 지극히 정상이지만 배우 자신의 감출 수 없는 암흑의 아우라가 그 캐릭터를 어둠으로 물들이기도 했었다. 빛나는 로맨스는 이런 이휘향의 진가를 그대로 활용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청춘남녀의 사랑으로 한정된 일일 연속극의 체계를 중견 배우 4인방을 투입, 중년 로맨스로 물들이며 일일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데 그중 악의 역할을 맡은 이휘향의 포스가 그야말로 심상치 않다.

 

 

 

일단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그녀의 인물 소개부터가 심상치가 않았다. 김애숙, 전직 삼류 모델 출신의 일본에서 껌 좀 씹었다던 무서운 과거를 가진 언니.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이런 화려한 과거 지사와 달리 그녀의 현재 모습은 마치 사감 선생과 같아 조신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여인네처럼 단정하게 쪽 찐 머리와 늘 엄숙한 차림의 오피스룩. 20년 가까이 윤복심(전양자 분)의 집에서 보모이자 집사 노릇을 맡아온 그녀는 고용주의 아들 장재익(홍요섭 분)을 유혹해 안방마님 자리를 차지하겠노라는 야심을 품은 캐릭터다.

 

그녀의 과거는 드러난 것 없이 비밀로 감추어져 있어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재익의 딸, 채리(조안 분)을 향한 비정상적인 관심을 비추어볼 때 그를 얻기 위해 고심하는 건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닌 출생의 비밀과 그 속에 감추어진 모성애라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 평소 재익의 성품으로 그녀와 외도를 했을 리는 없을 것이고 아이를 바꿔치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 여자를 강하게 키우는 건 야심도 사랑도 아닌 모성애 이상이 없다. 그래서 애숙의 구애는 절박하고 거침이 없다. 청춘남녀의 로맨스 이상으로 과격하게 돌진하는 애숙의 유혹을 보고 있노라면 섬뜩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드라마 초반 거의 가슴이 드러나게 옷을 입어 재익의 품에 기대 그의 얼굴을 붉게 물들인 후 야심만만하게 웃으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니 목석은 아니었다고 쾌재를 부른다. 이후 책을 꺼내려다 실수한 척 그의 품에 안겨 야릇한 포즈로 부끄러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일일 연속극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라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 여인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재익은 그야말로 옴므파탈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의 주위에 파리떼 - 애숙의 눈에는 - 가 꼬이자 그야말로 과격하게 그녀들을 처단해낸다.

 

대놓고 애교 기술을 선사하는 허말숙(윤미라 분)에게 일부러 커피를 쏟아 골탕을 먹이고는 티슈를 뽑아준 미안한 얼굴이 무색하게 돌아서서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얼굴이나 재익이 드물게 채소를 사 들고 들어오자 첫눈에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하고는 그를 미행하여 범상치 않은 촉을 확신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재익과의 관계를 제외한 주인공의 어머니, 정순옥(이미숙 분)과 얽힌 과거 지사 또한 심상치 않다. 우연히 애숙의 모습을 발견한 순옥이 잔뜩 겁에 질려 악몽을 꾸었는데 섬뜩하게 걸어가 그녀를 위협하는 애숙의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것 이상으로 두려웠던 것은 그녀에겐 달콤하겠지만 당하는 당사자에겐 스릴러 영화나 다름없는 김 집사의 유혹이다. 순수한 남자 재익은 첫사랑인 아내를 잊지 못하는데 오래된 사진 속 아내의 모습과 순옥의 청순미를 겹쳐보지만 비몽사몽 한 와중에 그의 눈앞에 들어온 건 낡은 사진 속 아내와 똑같은 차림을 하고 눈앞에 서 있는 김 집사였다. 사진 속 아내의 오래된 차림을 그대로 복원한 7080 스타일의 애숙이 웃음을 흘리며 서 있는데 이건 일일연속극인지 싸이코 영화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도 이휘향이라는 배우의 기괴함이 없었더라면 그만큼의 충격을 주지는 못 했으리라.

 

 

 

몸으로 직접 유혹을 해도 그가 관심을 두기는커녕 오히려 원수 같은 순옥에게 눈길을 주자 초조해진 애숙이 이번엔 암시 효과까지 동원하여 본격적인 유혹 계획을 세운 것이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김 집사를 좋아하는 마음이 꿈에 투영된 것인지를 혼란스러워하며 꿈과 현실을 헷갈리던 재익의 앞에 이번엔 파란 물방울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김 집사가 서 있었다. "오늘 만난 그녀는 파란색 물방울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횡단보도 너머에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일기장을 들추어 알아낸 고도의 암시 효과 전략에 맥을 추지 못하는 재익은 만들어진 거짓 추억에 어찌할 바를 몰라 그녀를 차마 바로 볼 수도 없었다. 마음이 원하는 건 분명 정순옥인데 김 집사가 그의 첫사랑과 닮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언가! 당황하는 그를 붙잡아 김 집사는 마치 소년처럼 순수한 재익이 빼도 박도 못할 충격적인 사실을 들려준다. 그날 밤 그가 본 여인은 환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이었으며 사랑을 고백한 것은 물론 그녀를 가졌다는 것이다.

 

 

 

내가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내젓는 재익을 그녀는 그의 양심과 감성에 호소하며 차례차례 함락시킨다. 내가 고용인이라서 무시하는 것이냐. 나는 20년 동안이나 교수님을 지켜봐 왔다. 그렇게 쌓인 신뢰가 있어 교수님의 고백을 믿고 내 모든 것을 그날 밤 내어드렸다고. "어젯밤 일은 제 인생 전부를 내어드린 거예요." 그렇다. 그녀는 20년 동안이나 재익을 지켜봐 왔기에 누구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맥을 추지 못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계산된 유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외면할 수 없는 완전한 무기였다.

 

 

 

이런 애숙의 관능적이고 두려울 만큼의 괴기스러운 섬뜩함은 이휘향의 대담한 표현력과 농익은 연기력 위에서 빛을 발한다. 6회. 재익을 유혹하는 신에서 그녀는 작품을 위한 노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염려하는 제작진에게 대담하게 단추를 하나 더 풀어 보이는 모습으로 망설임 없는 애숙의 성격을 표현해냈다. 중년 로맨스의 악의 축이자 악녀 장채리와 얽힌 출생의 비밀, 그리고 정순옥을 죄인으로 만드는 미스터리한 과거. 겉은 깐깐한 사감 선생 같으면서도 무궁무진한 비밀로 무장하고 있는 그녀의 숨겨진 비밀이 궁금해진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8

  • 와아. 장난 아니군요. 배우 이휘향이 갖고 있는 뭔가 기괴스러움이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흥미진진하네요.

  • 잘보았습니다 2014.02.21 17:54 신고

    저는 이휘향이라는 배우를 봄날이라는 드라마에 나올 때부터 알게되었는데요. 최근에 빛나는 로맨스보면서 저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가더라구요. 정말 섹시하셔서... 그래서 검색하다가 이 글을 보게되었어요. 덕분에 좋은 드라마 하나 더 알고갑니다. 여인천하에서 이휘향씨가 나온지 몰랐는데.. 님 덕분에 찾아보게되었어요. 이휘향씨 남장한 모습이 생각보다 너무 잘어울려서 놀랐네요ㅎ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게될 여배우가 하나 더 생긴것같아 기분이 좋네요ㅋㅋ

    • 이휘향 씨를 좋아하는 분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고 강한 역할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존경스럽더군요.^^

  •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저 역시도 이휘향 연기력의 흡입력이
    상당하다고 느끼고 있답니다~
    드라마 전반의 분위기를 주도해가는 연기력 덕분에 주변 인물들의 연기도 덩달아 시너지를 얻고 있는 듯 한 것으로 보여요.
    얼마 전에 저도 다른 포인트에서 관련글을 작성했었더랍니다. 트랙백으로 달아두니 시간날 때 한 번 들여다봐주세용ㅎ

  • 이휘향 이 아니고 다른 배우가 한다고 하면 상상이잘안가네요

 

 

소년, 소녀의 약속을 그린 파스텔 색조의 삽화가 지나고 나면, 수지만큼 상큼한 얼굴로 긴 머리 휘날리며 웃는 이진의 얼굴. 오프닝의 첫마디를 장식하는 인물은 물론 주인공 오빛나(이진 분)와 강하준(박윤재 분)이다. 하지만 39회까지 방영된 빛나는 로맨스의 러브라인을 살펴보면 이쪽보다 더 뜨거운 중년 로맨스에 눈길이 간다.

 

 

 

오빛나와 강하준이 악녀 장채리(조안 분)까지 끌어들여 3각 관계라면 이쪽은 무려 4각 관계다. 청일점 장재익(홍요섭 분)을 중심으로 김애숙(이휘향 분)과 정순옥(이미숙 분), 허말숙(윤미라 분)까지! 무려 중년 배우 사인방의 불꽃 튀는 로맨스의 열기가 젊은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먼저 갈등의 중심이 되는 죄 많은 남자, 장재익의 인기가 남주인공 강하준에 못지않다. 세 여인의 사랑 - 정확히 말하면 두 여인의 뜨거운 구애와 한 여인의 아련한 관심? - 을 한몸에 받는 장재익은 배우 홍요섭의 이미지를 그대로 닮은 캐릭터다. 인물 소개에 나와 있는 그의 성격은 그야말로 온갖 좋은 성격은 다 갖다 붙였다 싶은데 천성적으로 다정다감한 성격을 타고나 상냥하며 따뜻한 심성을 고루 가진 젠틀맨이란다. "한 번도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큰 소리를 내서 싸운 적이 없다. 늘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엷은 미소를 달고 있다." 이렇듯 그의 성격은 온화하고 고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태풍의 눈 역할을 맡은 장재익의 주변엔 그가 눈치채지 못한 거센 여심의 바람이 휘몰고 있다.

 

 

 

이 드라마의 중년 로맨스가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맡은 캐릭터가 한치 변화도 없이 중년 배우 4인방의 기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온 설정이라서다. 서글서글한 눈매로 꽃중년이라 불리는 홍요섭에게 부드러운 남자 장재익이 딱 들어맞는 캐릭터인 것처럼 여배우 3인방 또한 기존의 이미지를 배신하지 않는 캐릭터를 가졌다. 다소 음울하고 괴기스러운 역할을 주로 연기했던 이휘향은 이번 작품에서도 일본에서 껌 좀 씹었던, 삼류 모델 출신의 미스터리 우먼, 김애숙을 연기한다. 그녀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여인천하의 중년 남장 여자를 연기할 수 있었겠는가.

 

 

 

윤석호 감독의 사랑비에서 윤아에게 밀리지 않는 청순미를 선보이며 지고지순한 첫사랑 이미지를 선보였던 이미숙은 그 캐릭터의 노선을 잇듯 이번 작품에서도 "봄날의 햇살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여자." 정순옥을 연기한다. 정순옥은 한마디로 아름답지만, 그 외모가 화를 부르는 여자다. 마트에서 시금치를 팔면서도 가려지지 않는 그녀의 청순미 때문에 과일 파는 남자의 추파를 받다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초식남 장 교수를 잠 못 이루는 늦바람에 가슴 설레게 하기도 했다. 타 방송사에서 이지아가 연기하는 오은수처럼, 그녀 또한 남편이 세 차례나 바뀐 이른바 세 번 결혼하는 여자였다.

 

 

 

일일 연속극과 주말 드라마를 전전하며 푼수 데기 중년 부인 역할을 주로 연기하던 윤미라는 허례허식이 가득한 아들 병 걸린 엄마, 허말숙을 연기한다. 모진 시집살이로 고생시킨 며느리를 위자료가 아까워 위장 이혼시켜 내쫓은 이 드라마 최고 악녀를 연기하고 있지만, 여느 드라마에선 못된 시어머니 역할로 한정되었을 캐릭터가 이 작품에선 사각 로맨스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대놓고 애교를 부리고 눈에 띄는 수작을 거는 모습은 음흉스런 속내를 감추고 있는 김애숙에 비해 순수해보여 귀엽기까지 하다.

 

 

 

이들의 중년 로맨스는 그저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꽤 본격적이라 놀랍기 그지없다. 한 올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틀어올린 머리에 목까지 잠기는 옷을 고수하던 사감 선생 스타일의 김 집사가 초식남 장 교수를 유혹하기 위해 다리를 드러내놓고 그의 품에 안겨 도발하는 장면은 오히려 주인공 커플보다 진도가 빨랐을 정도. 얼굴이 벌게진 장 교수가 전직 삼류 모델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달아나버리자 저 눈치코치 없는 인간! 하고 투덜거리는 이휘향의 연기가 어찌나 웃기던지.

 

 

 

수가 다 보여 속물적이지만 귀여운 허말숙 - 장재익의 러브라인, 잠재적 옴므파탈과 숨겨둔 팜므파탈의 팽팽한 스릴이 흥미로운 김애숙 - 홍요섭의 러브라인, 그리고 채소 한 단으로 시작된 아련한 늦사랑의 그림자 정순옥 - 장재익의 러브라인. 남자는 하나지만 커플이 바뀔 때마다 극과 극 분위기로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중년의 극과 극 사랑을 소재로 삼은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끝사랑처럼.

 

 

 

연속극의 주 시청차는 분명 중장년층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속에서 중견 배우가 맡은 역할은 언제나 주인공의 보조 역할에 불과했다. 마트내 채소 판매대에서 아련한 감정을 잡아도 그럴듯한 중견 배우 4인방의 로맨스가 눈이 부시다. 이 정도는 되야 빛나는 로맨스지!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1

  • 하하하! 드라마 전혀 보지 않았는데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ㅎㅎㅎ
    요즘은 주인공들보다 빛나는 조연들이 더 좋다니까요 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 왕가네 가훈, 입장 바꿔 생각하자의 의미

 

 

 

드라마 종료 시간 몇 분을 남겨두고 왕봉(장용 분)씨가 회자정리를 하듯 꺼내 든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야.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왕가네 식구들만큼이나 결과 위주의 삶에 만족하는 인물들이 어디 또 있었던가. 끝이 좋으면 다 좋아요. 16일 막을 내린 왕가네 식구들의 결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바로 이거였다.

 

 

 

이거보다 암 걸리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무수했던 갈등과 오해 그리고 분노가 한 회 만에 모조리 정리되고 모두가 행복하다는 홈드라마의 전통적인 마무리를 보여줬다.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의미의 폭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듣던 모녀의 30년 치 앙금마저 단 한 회의 에피소드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야 말았다.

 

동화 속 새어머니가 아니라도 자식을 차별하고 미워할 수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덜 아픈 손가락도 분명히 존재한다. 같은 주제로 시작해 결국 쉽사리 회복할 수 없었던 모녀의 갈등을 시어머니의 모정으로 치유하며 감동적인 마무리를 선사했던 임성한 작가의 보고 또 보고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어설픈 전개가 그저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드라마의 결말은 문영남 작가의 전작, 조강지처 클럽의 노선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거의 한 달 동안 고민중(조성하 분)의 선택을 놓고 이 드라마의 결말에 인터넷이 들썩였을 때도 필자가 비교적 평안했던 것은 이미 전작에서 그려낸 – 과정은 불만족스러워도 결말만큼은 웃을 수 있는 – 작가의 스타일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전 리뷰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고민중의 고민이 결말을 여는 열쇠가 되었고 물욕과 아집에서 벗어난 어머니가 그녀를 조종하지 않자 처음으로 왕수박은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선택을 하고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이것은 결국 조강지처 클럽의 카르마다.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에서 망나니 남편 한원수(안내상 분)의 포지션을 그대로 이어받은 오현경(왕수박 역)은 한원수가 그랬던 것처럼, 불륜 이후에도 뻔뻔하게 남편(과 아내)과 재결합하려 용을 쓰지만 결국 노력이 무색하게 남편을 첫사랑에게 돌려주고야 만다.

 

 

 

필자가 이전 리뷰에서 그들이 재결합할 수 없는 이유는 사업 실패와 불륜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왕수박-고민중은 도무지 부부의 정이 느껴지지 않는 관계라서. 라고 말한 바 있는데 내 전남편이 오순정(김희정 분)과 새로 차린 살림에 서운함을 느낀 왕수박의 한마디는 결국 두 사람이 서류로 묶여있었을 뿐 정이 없는 관계였다는 것을 증명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 집을 갈 때마다 느끼지만, 당신 모습이 낯설어. 한 번도 본적 없는 표정들, 웃음소리. 정말 행복해 보여. 세상에 자기 짝은 따로 있나 봐. 그게 참 슬프다. 오늘따라." 흥미로운 것은 왕가네 식구들에서 한원수의 포지션을 연기하는 오현경이 전작 조강지처 클럽에서는 한원수의 아내가 되어 고민중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사람 찾아 인생을 찾아 첫사랑과 재회한 고민중처럼, 그 드라마의 오현경 또한 한원수를 버려두고 처음부터 정해진 인연 같았던 이상우의 품에 안기게 된다.

 

 

 

고민중의 고민에 상처받은 오순정이 멀고 먼 바닷가 마을로 떠나게 된 것. 이런 그녀를 찾아 배회하던 고민중이 결국 순정을 만나게 된 것 또한 조강지처 클럽의 마지막 회를 떠올리게 한다. 전 부인에 연연하며 그녀를 상처 입혔던 한원수를 떠나 거지꼴로 배회하던 모지란과 이런 그녀가 죽은 줄로만 알고 반 미친 사람이 되어 전국을 떠돌던 한원수가 결국 지란을 만나게 된 것. 재밌는 것은 바로 이 모지란 역을 연기한 배우가 지금의 김희정, 즉 오순정이라는 점이다.

 

 

 

아버지의 불륜과 가부장적인 태도 탓에 잘못된 가정교육의 산물로 남은 한원수처럼 어머니의 편애 때문에 나이를 먹고도 이기적이고 철부지 같은 행동을 버리지 못했던 왕수박이 결국 부모의 사고 이후 철이 든다는 전개 또한 전작과 몹시 닮아있다. 허리를 다쳐 작은딸에게 용변 수발을 받는 상태가 되고서야 사위를 포기하고 작은딸을 안아준 이앙금은 차라리 약과다. 한원수의 아버지는 하반신 마비가 되어버렸으니.

 

 

 

심지어 같은 부위를 다쳤다는 설정조차 마치 카르마 같아서 무섭기만 한데 한원수의 어머니 역을 연기한 사람이 김해숙이라는 사실은 작가가 준비한 메시지 같아 소름이 끼친다. 왕봉의 마무리 발언만큼이나 방영 내내 참 언행 불일치라 생각했던 이 집안의 가훈. ‘입장 바꿔 생각하자’ 이건 결국 조강지처 클럽과 왕가네 식구들의 역할 바꾸기를 암시한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감격시대, 김현중 시청률보다 더 큰 대중의 신뢰를 얻다

 

4회까지의 연출 방향을 보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감격시대 : 투신의 탄생의 시청률은 그리 감격스럽지 않았다. 총 24부작인 이 드라마는 벌써 절반가량을 달려왔지만 이제야 겨우 두 자리, 그것도 가까스로 10%의 시청률을 달성했다. 해가 바뀔수록 시청률 수치가 줄어든다지만 그래도 야인시대 후속작을 표방한 150억의 블록버스터급 액션 드라마가 겨우 한자리 시청률을 전전한다는 사실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수치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대중이나 언론의 반응이 무척이나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 만든 김현중 원톱 드라마. 이런 경우 시청률이 높다면 온전히 그 공을 혼자 독차지하겠지만 반대의 경우 주인공 한 명에게 책임을 물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 수월하게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상대, 그건 결국 작품의 얼굴마담인 배우의 몫일 테니까.

 

 

 

더군다나 김현중은 소위 배우가 불쌍하다는 대중의 조건 없는 가호를 받을 만큼의 호감인 연기자가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대중의 평판이 극도로 나쁜 배우 중 하나였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사이트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그가 데뷔작에서 연기한 낯간지러운 대사 -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를 읊어대곤 했었으니까. 이런 김현중이니 드라마 밖의 모든 트러블은 응당 그가 감당해야 할 원죄라고만 생각됐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어떤 여론도 그를 나무라거나 희롱하지 않았다.

 

감격시대가 방영되고 연일 터지는 김현중 관련 기사들은 하나같이 그의 일취월장한 연기력을 칭찬하고 있었다. 배우 김현중의 가장 까다로운 배심원일 네티즌조차도 입을 모아 무죄를 선고했다. 아니 도대체 어찌하여 이런 기적이 일어났단 말인가. 이유는 그저 단순했다. 김현중의 연기력이 꽃보다 남자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아니 성장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했다.

 

방영 직전 낮은 기대치의 김현중 드라마에 느닷없이 호감이 생겼던 건 문득 이 작품이 김현중의 4년 만에 복귀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그랬다. 그는 꽃보다 남자 그리고 장난스런 키스 이후 무려 4년치의 차기작을 비워뒀었다. 순간 머릿속이 선명해졌다. 아. 이 친구는 적어도 브라운관에서 연기 연습하는 무개념 아이돌은 아니다 싶어서. 연기가 부족해서 죄송하다면서도 뻔질나게 드라마에 출연하여 시청자를 화나게 하는 아이돌이 좀 많았던가.

 

 

 

그는 분명 두 차례의 쓴 패배를 맛보고 이게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가졌으리라. 그리고 4년. 연기의 기본을 다지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다소 특이한 연기자 김현중의 필모그라피가 몹시나 궁금해졌다. 기대가 되었다. 4년간 이를 악물고 완성한 연기라면 분명 실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예상한 그대로, 아니 그것보다 더 좋았다. 감격시대는 대사의 공력이 느껴지는 드라마다. 은유와 비유를 사용하여 때론 시 같고 때론 소년 만화 대사처럼 힘이 들어간 이 드라마의 대사는 잘못 소화했다간 감정 이입은커녕 느끼하다는 악평을 받을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신화에 가까운 액션 보이의 일대기를 위압감 있게 묘사해낼 표현력 또한 필요했다. 김현중이 맡은 남주인공 신정태는 그 모든 난이도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내가 감탄한 순간은 그의 화려한 액션이나 멋으로 휘감은 대사를 소화해낼 때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정말 잘한다는 말을 내뱉게 되는 건 오히려 그의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폭풍 같은 순간을 빠져나와 잠시 휴식을 취할 때 그의 자연스러운 동선이나 세밀한 디테일은 그야말로 빛이 난다. 감정을 폭발하는 연기도 만족스럽지만, 이따금 침전된 감정 표현으로 관객에게 아련함을 전해주는 세심함 또한 발군이었다.

 

 

특히 13일. 귀여운 소매치기 소녀 소소와 3원짜리 김치찌개를 나누어 먹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찌개비 3원이 아까워 침만 다시던 정태는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해 돈을 내놓고야 만다. 부루퉁한 얼굴로 찌개를 한술 떴지만, 입안에 퍼지는 감격스러운 맛에 정태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흐뭇해진다. "맛있지? 죽여주지?" 소녀의 기대에 응하기 싫어 한쪽 볼에 담긴 밥을 씹으며 "뭐. 그럭저럭." 하고 무심하게 대꾸했지만, 그가 얼마나 달게 밥을 먹고 있는가는 김현중의 자연스러운 연기 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참. 한술 뜨고 입술을 삼키며 입맛을 다시는 그 일말의 리얼함이라니.

 

 

영웅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늘 그러하듯이 신정태 주위를 둘러싼 개성 강한 여자들을 모두 다른 느낌으로 상대해주는 것 또한 그의 농익은 연기력을 감상하는 재미다. 소년 만화 주인공 같은 휘황찬란한 대사 소화력과 화려한 액션에 볼거리가 많은 로맨스와 첫사랑에게 바친 아련함까지. 거기다 이따금 감탄이 절로 터지게 하는 김현중의 안정적인 생활연기들. 분명 지금의 시청률은 그의 데뷔작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배우 김현중의 필모그라피로서는 최고의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대중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은 배우 김현중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었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19

  • 양양 2014.02.14 08:32 신고

    감격시대 잘 보고 있습니다.
    어제는 상하이로 넘어가고 주인공 신정태가 확실히 활약을 많이 해서인지 시청률도 올랐더라구요. 앞으로도 투신이 되는과정 지켜보겠습니다.

  • 울랄라 2014.02.14 08:59 신고

    김현중 연기 참 좋지요?? 요즘 감격시대 연출이 자리를 잡아가는것 같아 좋네요~~ 꼭 승승장구해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 신정태 2014.02.14 09:06 신고

    닥터콜님 리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회 김현중은 신정태 그 자체더군요.
    꽃보다 남자에서 보지 못한 김현중 변신한 모습에 매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투신의 탄생..액션연기 감정연기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하는 배역인데
    아주 훌륭히 소화하고 있는거 보고 놀랐어요.
    감격시대는 대사가 주는 맛이 새롭고, 두번 세번을 복습해도 질리지 않아요.
    10회처럼만 가준다면 좋은 시대극으로 두고 두고 회자될 드라마가 될듯 합니다.
    닥터콜님 항상 드라마 흐름을 명확하게 잡아주시는 혜안에 놀랍습니다.
    다음 리뷰도 기다릴께요^^

  • 아크네 2014.02.14 09:09 신고

    감격의 김현중 정말 잘만들어진 배운연기하는 배우들하고 틀린 느낌이랄까... 신선하고 뭔가 다른느낌의 배우로 다가오더군요..
    생각해보니 지후때의 그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여. 물론 스킬적인 면이 다른사람인가???? 싶을만큼 달라진건 맞습니다.
    말하고 싶은건 화면장악력이라든지 몰입하게 하는 그 뭔가가 본연의 김현중에게 있는거 같아요. 사실 꽃남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건 지후선배.. 지금의 연기를 호평하는데 전작들이 폄하되는건 아닌지 전 사실 맘에 들지 않습니다. 많은사람들이 지후앓이 했던 그때가 생각나기도 하구요.. 그 수많은사람들이 왜 그랬을까.... 하얀천대사를 어떤 연기자가 그렇게 담백하게 칠수 있을까 ..생각이 드네여 연기의 신이라도 매력으로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좀 억울한일이지만...요
    누구나 다아는 한류스타 김현중.. 그 인기가 계속 유지되는게 이런이유일지도여

    • 음. 그러고 보니 꽃보다 남자의 윤지련 작가나 장난스런 키스의 고은님 작가나 대사가 참 심각한 수준이었죠. 남 탓 안 하고 대중의 평가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4년간의 연습 시간을 가졌다는 거 보기 드문 바람직한 자세네요. 그래도 꽃보다 남자에서 부드럽고 아련한 이미지는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오구리 슌보다 원작의 맛을 살린 루이라고 생각해요. 그쪽은 좀 능글거려서. ㅎㅎ

    • 소치올림픽 2014.02.17 09:28 신고

      정말 그렇군요. 시청률 낮은 드라마는 대본 자체가 문제인게 경우가 많죠. 그럴 때 대부분의 배우들은 알게모르게 본인이 피해자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요샌 SNS를 통해서 푸념하는 경우도 많고, 이전엔 작품 끝난 후 인터뷰나 다른 방법을 통해서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하게 마련이죠. 그런데 김현중은 그런게 없었던 것 같네요. 장키 끝난 직후인지 아님 그 이후인진 모르겠으나 어딘가에서의 인터뷰에 '변명하는 것은 패자가 하는 일이다'라고 표현한 걸 봐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장키 정도면 대본이고 연출이고 카메라고(아... 요즘 세상에도 그렇게 화질 떨어지는 카메라가 다 있더군요. 배우들 얼굴에 노이즈가 덕지덕지)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을텐데도 단 한마디 변명이 없었던 것이 저 역시도 높이 평가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가 될 만한 친구라고 생각해요.

  • 이은주 2014.02.14 09:27 신고

    제가 느낀면을 톡 건드려주시니 통쾌하네요.
    남들은 화려한 액션에 몰입하던데 그 김치찌게 먹는 고 장면에서 김현중 보는데 너무 먹고싶어 하는표정 연기 잘하네~ 였었거든요. 저두 같이 먹고싶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 쿠기 2014.02.14 09:45 신고

    잘읽고 갑니다 공감 백퍼되는 리뷰네요 앞으로도 리뷰 많이 써주세요 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 보라빛 향기 2014.02.14 10:59 신고

    잘 읽고 100% 공감하고 갑니다. 저도 김치찌게 먹는장면을 너무 리얼하게 보면서 참 맛깔나게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매 회 마다 김현중의 땀과 노력을 느낄 수 있는거 같았어요.

  • 재밌나보군요... 저도 김현중 연기 기대안했는데 봐야겠네요

  • 꽃님이 2014.02.15 03:59 신고

    저도 화려한 액션씬도 좋지만 담백한 대사와 표정이 넘 좋더군요. 특히 김치찌개씬 동감해요. 저도 그부분을 보면서 김현중 로코물 제대로 찍어줬음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시대극을 잘소화하니까 로맨스사극 또한 잘할 거 같네요. 지켜보고 싶은 배우 한명 늘었어요. 다작하길.

  • 지평선 2014.02.15 14:24 신고

    어, 저두 위의 '아크네'님과 같은 의견이예요. 연기의 기술이라든가 하는 면에서 김현중이 다듬어지지 않은 면이 있긴 하지만 대중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꽃보다 남자의) 저 인구에 회자되는 느끼한 대사들에도 불구하고 김현중의 '윤지후'는 정말 전무후무하게 사람(주로 '여심'이죠)의 마음을 흔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일단 그 '증거'인데...ㅎㅎ 나이 서른이 다되도록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에 그렇게 마음을 빼앗겨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만화는 가끔 있었죠. 강경옥의 '별빛 속에'에 나오는 '레디온'이라든가.ㅋㅋ) 제 마음이 신기해서 한동안 골똘하게 생각하고 몇번이고 드라마도 돌려보고 했는데.. 딱 꼬집어 '이거다'라는 답을 찾을 수 없다가.. '감격시대'에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데이트'씬을 보고 깨달았네요. 김현중이 여자캐릭터를 보고 웃어주는 씬들. '감격시대'로 연기에 대한 오명은 씻더라도 다음 작품은 (좋은 작가가, 잘 쓴) 로맨스였음 좋겠어요. 거기에서 진짜 김현중의 매력포텐이 터질 듯 하네요.(아, 쓰고보니 팬심이 넘 드러났어요 ㅋ 대충(?) 이해해 주시길)

  • 감격시대 김현중 연기를 보면서 느낀 것은 점점더 연기력이 일취월장 하고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연기 기대해 봅니다.

  • 저도 우연히 티브이를 돌리다가 봤는데, 김현중씨 기대되는 배우인거 같아용

  • 고염소 2014.02.25 19:09 신고

    야인시대 재방이 차라리재미있겠음
    기대가 컸는데..
    무엇보다 줄거리 부재

  • 정현진 2014.02.26 10:05 신고

    완전 포옥 빠졌어요 김현중! 짱!

  • 조현정 2014.03.06 23:08 신고

    완전.김현중연기짱~!!한번봄.노칠수없는연기력

  • 2014.03.14 11:14 신고

    저랑은다르시네요 ... 아직 이런 대작을 맡기엣 민폐가 아닌가 싶은데

  • 2014.04.05 19:05 신고

    어쩜몇년이지났는데도그모양이냐 넌얼굴아니면어쩔뻔했냐 바닥부터다시배워라제발

 

 

2007년 SBS 드라마 왕과나에서 정현왕후를 연기하며 기품이 서린 단아한 연기로 눈길을 끌었던 이진이다. 덕분에 그녀가 뜻밖에 담담하고 얌전한 캐릭터를 무난하게 소화한다는 사실은 알았어도 이토록 격정적이고 서슬 퍼런 분노를 제대로 연기해낼 줄은 몰랐다. 남편이 외간 여자와 바람이 났고 더 수월한 결별을 위해 아내를 속여 위장 이혼하게끔 하였다.

 

 

 

미치게 좋아서 선택한 남자도 아니고 그럴듯한 연애 시절도 없이, 저가 내가 좋아서 내가 아니면 죽겠다고 쇼를 하는 바람에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억지로 결혼해줬던 빛나다. 남편에게 버림 받은 아내, 그 누가 안 그렇겠느냐마는 빛나는 그중에서도 분노할 자격이 남다른 여자였다. 우리 아들 목숨만 살려달라고 그녀 앞에서 손이 발이 되게 빌며 억지 결혼을 시켰던 시어머니가 아들의 바람을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나서서 불륜을 부채질했다.

 

 

 

이게 다였더라도 충분히 미즈넷 베스트가 될만한 얘기였다. 그러나 모자의 천인공노할 죄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불륜을 조장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며느리(아내)에게 줘야 할 위자료가 너무 아깝다며 공짜로 내쫓을 방법이 없을까 모의를 한 것이다. 그 과정이 참으로 악질이다. 의사 아들 변태식이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갚아야한다는 거짓 사건을 만들었다. 의료 사고로 목숨을 잃은 환자의 가족이 1인 시위를 하는 조작 사진을 아내의 휴대폰으로 전송하는 짓까지 자행했다.

 

 

 

심지어 빚쟁이에게 목숨이 위협당하는 연기를 하자 두고 볼 수 없었던 빛나는 우는 얼굴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법원을 나와 그의 품에 안기면서도 그녀는 오로지 남편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를 위장 이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빛나 혼자였다. 그녀는 여전히 유부녀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지만, 남편은 홀가분한 싱글남이 되어 외간 여자와 데이트를 했다. 눈 앞에서 그 꼴을을 본 빛나는 그제야 자신이 이 더러운 사기극의 피해자였음을 깨닫고선 시어머니를 찾아간다.

 

 

 

"어머님. 어머님 어쩜 절 끝까지 기만하세요." 이진의 연기력으로 표현된 빛나의 분노는 초반 거칠 것 없이 당당했다. 그녀는 이를 갈며 시어머니를 몰아붙였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질문을 퍼부으며 그녀는 깨닫게 된다. 내가 진짜 화난 것은 남편의 불륜이나 강제 이혼녀가 된 사실이 아니라 아내라면서, 가족이라면서 그녀의 고통을 남보다 못한 무심함으로 방관한 모자의 태도였다. 그녀는 결혼할 때도 그랬지만 결혼한 후에도 이 집안의 이방인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말이신 거예요. 연두 아빠 의료 사고도 거짓이었나요? 여기 집달리들이 들이닥쳤던 것두 다 거짓이었나요?"

 

 

 

똑똑한 빛나가 남편의 멍청한 사기극에 의심하지 않고 동참했던 것은 그녀가 이미 같은 고통을 겪은 경험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급격하게 기운 가세에 더덕더덕 붙은 빨간 딱지를 빛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급기야 동생의 꿈인 첼로마저 빼앗긴 그 날의 기억 탓에 빚쟁이에게 쫓긴다는 남편의 재촉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모자는 그녀의 심장을 찌르는 송곳 같은 트라우마를 이용해 똑같은 방법으로 사기를 쳤다. 아마 그것이 더 수월하게 그녀를 속일 수 있을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 오랜 기간을 함께한 반려자를 이토록 지독한 방식으로 내쫓으려 한 이 남자, 그리고 이 사람을 그녀는 원망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으세요. 저희 아빠 돌아가시고 제 동생 첼로까지 압류당한 것 다 아시면서. 제가 그때 얼마나 마음 아파했다는 거 다 아시면서. 어떻게 절 그렇게 똑같은 방법으로 이혼시키실 수가 있으세요."

 

 

 

내가 감탄했던 것은 빛나의 이 서슬 퍼런 서러움과 완벽히 동화된 이진의 연기였다. 마음껏 분노를 터뜨리던 그녀는 트라우마를 끄집어내는 부분에선 새삼 서러워서 말을 채 잇지도 못했다. 꺽꺽대며 순간 대사를 참았다가 다시 내뱉는 리얼함은 단순히 대사를 암기하는 수준을 넘어 그 캐릭터와 완벽히 일체화된 사람만이 가능한 연기다. 시어머니의 뻔뻔함에 어처구니가 없어 저절로 벌어진 입. 완전히 뜨지도 못하고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눈. 심지어 이마에 뚜렷이 돋아난 핏줄까지. 저러다가 까무러치겠다 싶을 만큼 처연하게 서러워하던 빛나, 아니 이진의 놀라운 연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치고 싶은 만큼 마음껏 치세요. 그치만 연두 아빠 결혼만큼은 안돼요. 우리 연두한테 어떻게 그래요. 그 어린 것한테 상처 줄 수 없어요. 아빠 없이 자라게 할 수 없다구요. 어머니. 어머니가 절 싫어하시는 거 알아요. 근데 저 미워하시는 만큼 마음껏 때리시구 어머니 분이 풀리실 때까지 마음껏 때리시구. 어머니. 제발 저 좀 받아주세요. 네? 어머니. 어머니 제발 저 좀 받아주세요."

 

그녀의 분노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괘씸하게 여기는 이 철면피 같은 시어머니의 대응에 빛나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생명을 위해 양육권을 포기한 솔로몬의 그녀처럼 빛나는 자신의 분노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녀에게 매달려야만 했다. 처지가 180도 바뀌어 구걸하고 애원하는 빛나의 모습에 가슴이 아플 만큼 저려왔다. 오로지 이윤 추구만이 일생일대의 목적인 시어머니와 달리 가정을 지키고 싶은 빛나는 분노한 와중에도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이진의 절절한 표현력은 이런 빛나의 이중적인 상황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표현해주었다.

 

 

 

이진의 표현력이 무척이나 입체적이고 상당히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비슷한 시기에 남주인공 강하준(박윤재 분)을 원망하며 드러낸 또 한 번의 분노였다. 역시 사기와 배신이라는 코드를 갖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이전만큼의 강도는 오버였기에 빛나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분노를 표현한다. 이전의 분노가 불이라면 이번의 분노는 바람이다. 그 와중에 남녀주인공의 미묘한 긴장감과 애틋함이 섞인 로맨스를 담아낼 줄도 알았다. 톡톡 쏘아대는 그녀의 새침한 분노가 애처로우면서 사뭇 귀엽다는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빛나는 로맨스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남편에게 배신당한 이혼녀가 왕자의 구원을 받는 줌마렐라 이야기다. 하지만 이 뻔한 서사 위에 입혀진 이진의 완벽한 캐릭터와의 동화력은 심지어 존경심마저 갖게 될 만큼의 호소력이 있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일일드라마. 이진에게만큼은 오빛나의 다큐멘터리다. 뻔한 이야기를 남다르게 표현해낼 이진의 연기가 기대된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6

 

 

젊고 아름다운 여자는 부자의 청혼을 받았다. 게다가 미남이다. 그를 사람들은 푸른 수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수염의 전부가 푸른 것은 아니었고 드문드문 푸른 가닥이 섞여있는 것뿐이었다. 여자의 언니는 부러워했다. 저렇게 잘생긴 부자와 결혼하게 되다니 신의 축복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자는 동의했고 곧 푸른 수염의 성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남편이 된 푸른 수염은 어느 날 먼 곳을 떠나며 열쇠 꾸러미를 아내에게 넘겨주며 경고했다. 이 성의 모든 방을 구경해도 좋지만 단 하나, 이 열쇠가 붙은 방문만큼은 열어봐선 안 된다고. 호기심이 많은 처녀는 온갖 방을 구경하는 것도 싫증나 결국 마지막 방을 열어보고야 말았다. 그곳은 시체가 된 아내들이 전시된 살육장이었다. 아내는 기겁을 했고 급기야 열쇠를 떨어뜨렸다. 아무리 닦아 보려고 해도 열쇠에 묻은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김수현 작가의 새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보고 있노라면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이 떠오르곤 한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 부자의 청혼. 게다가 미남이다. 여주인공 오은수(이지아 분)은 두 번의 푸른 수염을 만났다. 완벽한 조건을 가진 두 남자였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기에. 한번은 성이 문제였고 한번은 남자가 문제였다.

 

여기까지 보면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기존의 주말 드라마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신파극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는 드라마의 세계에선 접근하지 못하는 속물적 리얼리티와 수수께끼 같은 전개로 차별화를 두었다. 그녀의 전작 불꽃에서 수도승 같은 여주인공의 부모님마저 아들의 출세를 염려하여 재벌 집 남자와의 결혼을 부추겼던 것처럼.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두 번이나 부잣집 마나님이 된 여주인공의 선택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제목부터 수수께끼를 던지고 간다. 시청자는 그녀가 두 번 결혼한 것을 봤고 아직 세 번째의 결혼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니 드라마를 보는 관점은 당연히 그녀가 어떤 남자와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어떻게 두 번째의 결혼마저 실패하게 되는가를 추리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푸른 수염의 여주인공은 언니의 부러움을 받으며 부잣집 마나님이 되었지만 은수의 언니는 두 번째도 부자를 택한 그녀를 경멸한다. 그것은 두 번째 결혼을 한 은수에게 있어 지울 수 없는 핏자국으로 남았다.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자식마저 버린 여자. 이것이 오은수에게 붙여진 꼬리표였다.

 

 

그녀는 외쳤다. 부자라서 그를 택한 것이 아니라 시부모의 인성이 탐이 났노라고. 김수현은 재벌 묘사에 이골이 난 작가다. 풍채 좋은 시어머니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성북동입니다.” 라고 전화를 받는 그림이나 식사중인 시부모의 테이블 옆에 서서 같이 밥을 먹지도 못하고 시중을 드는 며느리의 충격적인 모습을 담아낸 것 또한 김수현이 최초였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부자들 또한 트랜디 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인 재벌 묘사와 차원이 다르다.

 

 

 

첫 번째 남편집의 부유함은 졸부 가정으로 묘사된다. 엄마는 복부인에 가깝고 험한 말로 관리인을 부린다. 이 드라마의 유일무이한 판타지는 어떻게 이런 엄마 아래서 이렇게 요정 같은 아들이 태어났을까 싶은 것뿐이다. 입이 걸고 다혈질인 시어머니를 딸에게 이해시키려 은수는, 할머니는 지금 ‘화내는 병’에 걸리셨노라고 슬픈 거짓말을 지어냈었다.

 

이런 은수에게 두 번째 남편 김준구(하석진 분)이 제공한 시월드는 그야말로 판타지와도 같았을 것이다. 점잖은 시아버지. 교양 있는 시어머니. 조근 조근 시를 읊듯 대화하는 정상적인 시부모를 처음 대면하고선 은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놓고 올만큼 당신에게 미쳐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놓고선 결국 그렇게 해버렸다. 준구에게 미쳐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완벽한 배경이 전해주는 안락함은 미치지 않고서야 못 배겼다.

 

 

 

하지만 사람 하나만 보고 완벽할 수 없는 것이 결혼이고 사람 하나쯤 무시한다고 완전할 수 없는 것이 또 결혼이다. 이번엔 남자를 꼼꼼히 고르지 못한 탓에 은수는 뻔뻔한 내연녀가 설치는 주말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되고야 말았다. 게다가 그림 같았던 김준구의 집도 쌓인 교양만큼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수련이 필요했다. 그녀는 오렌지 주스의 CF 같은 미소로 부잣집 며느리의 교양을 연기했다.

 

 

 

드라마 초반 우울증 직전인 딸의 모습과 달리 할리퀸 로맨스의 여주인공 같은 은수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꼈었는데 그게 바로 실패하기 싫어 발버둥치는 그녀의 필사적인 연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소름이 돋았었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두 번째의 실패 앞에선 시도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큰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어떻게든 두 번째의 선택은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은수는 과장된 행복을 연기하며 살았다. 네. 네. 네. 앵무새 같은 대답을 반복하면서.

 

 

 

이 드라마에서는 유독 여주인공의 목욕 장면이 잦다. 은수는 몸을 씻어내며 주로 버려두고 온 딸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것은 지난 선택을 돌이키고 싶은 그녀의 내면이자 일종의 속죄 의식인 셈이다.

 

 

 

른 수염이 비밀의 방에 쌓아둔 전 아내의 시체들처럼. 은수의 마음 한 구석엔 실패한 결혼과 실수한 남자들이 시체처럼 쌓여가고 있다. 그녀의 마음은 푸른 수염의 비밀의 방이다. 세 번째 결혼할 그녀는 적당히 포기하고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비로소 비밀의 방을 폐기할 것인가.

 

 

김수현 작가의 또 다른 드라마 사랑과 야망. 리메이크 전 원작에서 그녀는 21세기 요즘의 드라마도 시도하지 못할 참신한 결말로 시청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연애 시절 그야말로 죽고 못 살았던 전쟁 같은 사랑을 하고 결혼한 태준과 미자. 그러나 결혼 이후 그들의 삶은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지 못했다. 심지어 결말까지도.

 

 

 

결혼 이후에도 그들은 연애시절 분쟁의 원인이 된 개성을 버리지 못한다. 미자는 여전히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태준은 역시나 비정하리만큼 이성적이다. 심한 말다툼 끝에 태준이 미자의 뺨을 치고 문을 쾅 닫으며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는데 ‘지금까지 사랑과 야망을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자막이 어찌나 섬뜩하게 느껴지던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결말이 마지막까지 결혼의 치부를 드러낼 것인지 아니면 동화 같은 결말을 맺어줄 것인지. 김수현의 선택이 궁금하기만 하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벌써 50회를 바라보지만, 왕가네 식구들을 보며 처음으로 "대사 참 잘 썼다."고 생각한 말이 오순정의 입에서 나왔다. 고민중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게 미적지근한 태도로 상처를 주는 첫사랑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녀가 던져놓은 한마디. "약속 안 지켜도 되니까 솔직하게 말해줘. 약속 지키기 위해서 나한테 오는 게 아니라 날 정말 원해서 왔으면 좋겠어. 비틀거리지 말고 올 거면 똑바로 걸어서 와. 비틀거리면서 마지못해 오는 거……? 슬퍼." 호전적이고 속물적인 왕가네 표 대사에서 드물게 문학적인 표현이라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이 대사를 소화하는 여배우의 연기력이 은유의 묘미를 살렸다.

 

 

 

이 감동을 배반하듯 다음 컷의 대사는 너무나 왕가네다워 실소가 나온다. 검은 안경 아래 멍든 눈을 보여주며 독도에서 다방을 차릴 거라 말하는 그녀의 친언니. 기둥서방에게 맞고 돌아와 허겁지겁 밥을 씹어 삼키고 손에 붙여둔 씹던 껌을 다시 입에 넣는 오만정을 보면 절로 천박하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놀라운 것은 오순정과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이 여자가 한때 배우 김희정의 분신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같은 작가의 전작 조강지처클럽에서 그녀는 정말이지 정나미 떨어지는 무식한 불륜녀를 실감 나게 연기한 경력이 있다.

 

네티즌이 입버릇처럼 이 드라마를 두고 하는 소리가 있다. 정상인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만큼 왕가네 식구들의 캐릭터는 하나같이 이상하다. 엄마는 엄마 같지 않고 부부는 부부 같지 않다. 시어머니 앞에서 임산부가 망사 스타킹을 쓰다듬으며 명령하는 세계다. 분명 상식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그나마 나은 인물을 말하라면 바로 오순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의 오순정은 참 드물게도 시청자를 화나게 하지 않은 주요 인물이었다.

 

 

 

우악스럽고 세속적이라 말초 신경을 건드리는 캐릭터들과 달리 오순정은 목가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침착하고 고요한 인물이다. 거의 변화를 주지 않는 단정한 머리칼에 차분히 붙은 나비 문양처럼 그녀는 사뿐사뿐 대사를 소화하고 안정적인 미소를 보낸다.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흔들림이 적은 인물이며 감정을 속으로 삭여 요란하지 않다. 그건 분명 오순정이라는 이름에 부여해준 이데아가 첫사랑의 기억처럼 순정적이고 변치 않는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오순정 역시 남부럽지 않은 서러움의 역사를 걸어왔다. 이앙금 만큼이나 가족애가 결여된 그녀의 언니는 가련한 동생을 팔아치우듯 결혼시켜 버렸다. 사랑 없는 결혼이었지만 제시된 조건마저 사실이 아니었다. 성인이 된 이후 재운이 따르는 고민중이야 그래도 미스코리아 나온 여자 만나 그럭저럭 살만했어도 첫 사랑을 잃고 돈 몇 푼에 팔려간 그녀의 고난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남편을 떠나 형부와 이상한 동거를 하며 아이 하나 데리고 살게 된 순정의 신세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온화함이 존경스러울 만큼 가련하다.

 

오순정의 단아함은 김희정의 침착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력 위에서 빛이 난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가 놀라울 때는 오히려 오순정이 드물게 분노를 표현할 때다. 무슨 저런 미친 엄마가 다 있지 싶어 속이 터질 것 같은 이앙금의 뻔뻔함에 가슴을 칠 때 예고 영상 속 김희정의 절규는 내 마음과도 같았다. “엄마니까 찾지! 엄마니까!” 알고 보니 이앙금 만큼이나 이상한 엄마 오만정이 자식을 양아치 취급하며 뿌리치자 급기야 분통을 터뜨리며 나온 대사였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호소력 있게 들리던지.

 

 

김희정은 분노하는 와중에도 우아하다. 한마디로 상스럽지 않다. 캐릭터의 맥을 그대로 이어가며 분통을 터뜨리니 전혀 과해보지이도 않고 오히려 애절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단아한 여성을 연기하는 김희정이 한때는 천박한 말투로 염장을 찔러대던 상스러운 캐릭터 모지란을 소화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문영남을 마냥 좋은 작가라고 하기엔 찜찜함이 남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한 가지 미덕은 재연 배우 꼬리표를 떼지 못했던, 사랑과 전쟁 전문 출연자 김희정을 정극 드라마의 주요 인물로 출연시켜 그녀의 존재감을 널리 소개했다는 사실이다. 분명 사랑과 전쟁 이전에도 꾸준히 정극 드라마의 조연으로 활약했지만, 시청자에게 여전히 그녀의 이미지는 재연 배우일 뿐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조강지처 클럽의 모지란 역을 맡고 인상적인 연기력으로 주인공 이상의 관심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김희정은 꾸준히 문영남 월드에 참여해왔다. 그럼에도 마치 중년 수지 같은 오순정 역을 연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 홀로 다른 세계에서 온 듯 이질적인 존재감으로 왕가네 식구들의 유일한 정상인을 연기하는 김희정. 그건 분명 작가의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오순정이라는 어여쁜 이름에 바친 작가의 애정이 보기 드물게 훈훈하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3

  • 이분오래되셨는데 2014.02.10 09:08 신고

    과거에재연배우 출인인건맞지만 아직까지 그 꼬리표가있네요?
    정극활동 꾀됬는데

  • 시현 2014.02.10 11:25 신고

    재연 배우 셨구나 ; 그런데 우리 나라는 재연 배우에 대해 평이 굉장히 안 좋네요? 이유가 뭘까요?

  • 이어폰 2014.02.14 10:43 신고

    연기자는 모름지기 얼굴이쁜거보다 연기잘하면 이뻐보이더군요. 저도 모지란 역을 할때부터 연기참 잘하네 했었는데 대찬연기를 많이하더니 이렇게 단아한 역도 잘 소화할줄은 몰랐네요.

 

 

왕가네 식구들의 왕수박(오현경 분)은 역대 최악의 악처라 불릴 만하다. 그렇다면 드라마 사상 역대 최악의 악부는 누구일까. 나는 작가의 전작 ‘조강지처 클럽’의 한원수라 말하고 싶다. 오죽하면 이름마저 원수였겠는가. 한원수는 주말 드라마의 웬만한 나쁜 남편들이 명함도 못 내밀 만큼 악질적인 인물이었다.

 

드라마 속의 나쁜 남편은 조강지처에겐 모질게 굴어도 내연녀를 대할 때만큼은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다. 그러나 이 남자는 집에 들여다 놓은 내연녀에게 쉽사리 질려 전 아내에게 그랬던 것처럼 폭행과 폭언을 휘둘러댔다. 불륜과 두 집 살림은 기본에 언어 폭력과 신체적 위해까지. 그야말로 나쁜 남편의 교본이나 다름없었던 한원수는 안내상의 실감 나는 연기에 날개를 달고 수많은 주부님의 공분을 샀다.

 

한원수가 독특한 인물이었던 것은 그의 바람기와 폭력성을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정신병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한원수는 가족을 동반하여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게 되는데 그 결과가 기가 막혔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부친의 잘못된 품성을 그대로 보고 자란 결과물이 바로 한원수라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다혈질에 무책임하기까지 하여 아내와 자식을 내팽개쳐두고 내연녀와 살림을 차렸다.

 

 

 

왕가네 식구들의 왕수박 역시 어머니의 잘못된 교육이 만들어낸 괴물이라 말할 수 있다. 어린 동생은 잡초처럼 밟아도 그녀만큼은 꽃처럼 키우려 했던 어머니의 부적절한 사랑은 결국 왕수박을 자기밖에 모르는 오만방자하고 이기적인 어른으로 키워냈다. 오죽했으면 여동생의 가슴에 평생에 한이 박힐 말을 모녀가 번갈아 읊어주기까지 했을까. "엄마가 왜 널 미워했는지 알기나 하니? 너 때문에 할머니한테 온갖 시집살이 다 당했다더라. 딸딸이 낳았다고. 너 낳고부터 대놓고 미워하셨대." 이건 이를테면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폭언과도 같다. 이런 치명적인 말을 혈육에게 내뱉으면서도 모녀의 모진 심장은 태연했다.

 

 

내연남에게 집문서를 팔아먹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칫밥을 먹게 되자 그녀는 쫓기듯 집을 떠났다. 사장의 모진 잔소리와 친구들의 비아냥. 그리고 전남편과의 창피한 조우마저 견뎌내는 그녀는 얼핏 개과천선한 듯 보였다. 아버지의 무릎을 붙잡고 낮은 자세에서 회개하는 수박의 모습은 드디어 그 오만한 콧대가 무너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결국 그녀 자신마저 속인 ‘쇼’일 뿐이었다. 왕수박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눈치를 좀 보는 듯했다. 염치를 챙길 줄도 아는 듯해 보였다. 그녀의 엄마가 전 사위와의 재결합을 갈구해도 내가 감히 그럴 수 있겠느냐며 눈물을 흘려대던 그녀다. 그러나 시종일관 그녀를 부여잡고 이제 저 남자는 사장 될 텐데. 어디 가서 저런 남자 또 만나겠느냐며 바보 같은 너 트집 잡아서 내연녀와 살림 차릴 구실을 만든 거라는 엄마의 속삭임은 결국 그녀를 이전의 왕수박으로 돌려놓았다.

 

“엄마. 잊었어?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 고민중과 만나 건를 만들어볼 야심에 들떠 그녀가 오랜만에 저 소리를 읊어댔을 때 그게 바로 불운의 전조였다. 고민중의 선택지에 그녀는 애초에 들어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녀의 눈은 뒤집혔다. 그래. 엄마의 말이 다 맞을지도 몰라. 이 남자가 아니면 내 팔자는 피지 않아. 내 왕년은 돌아오지 않아. 옆에서 부채질하는 엄마의 꼬임에 따라 왕수박의 못된 습성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쯤 되면 이기심도 습관이다.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징징 울고 섰던 그녀가 나중에는 오순정의 반찬 그릇을 내다 버리고 아이까지 시켜 민중을 유혹하는 간계까지 부린다.

 

 

 

“내 말은 나도 잘못한 게 있지만 당신도 잘못한 게 있으니 서로 퉁치고 넘어가자고!” 급기야 전 남편에게 적반하장으로 고함치는 그녀는 이미 완벽하게 이전의 왕수박으로 부활해있었다. 개과천선? 그딴 거 개나 물어가라고 그래. 라고 소리치듯이. 오죽하면 그 이앙금(김해숙 분) 여사마저도 막 나가는 딸을 붙잡아 말리기까지 했을까. "수박아. 입 다물어." "수박아." "아. 내가 왜 몰라. 고서방 얼른 가게. 수박이 소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정신 오백년 나갈 소리 그만해!" 하지만 결국 이 '정신 오백 년 나갈 소리' 즉 수박의 어깃장은 그대로 이앙금이 수박을 꼬실 때 써먹던 망상 그대로였지 않는가. "말 나온 김에 해보자. 당신은 자격 있어? 그 여자 불러들여 간병인까지 시키면서 생쇼하고 뒤로 몰래 이혼할 궁리나 해놓고 무슨 자격으로 애들 키우겠대. 그건 죄 아냐? 지는 뻔뻔하게 할 짓 다해놓고 나한테 몽땅 뒤집어씌웠잖아!"

 

여느 드라마였더라면 이쯤 해서 개과천선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왕수박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할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여전히 괴물이었기 때문에. 짠돌이 작은딸이 아등바등해서 모은 돈으로 집을 마련해줘도 “그 돈 벌어서 나 줄 것도 아닌데. 뭐.” 라고 푸념을 내뱉는. 자기 딸이 그리고 자기네 식구가 얼마나 이 남자를 들들 볶았는가를 알면서도 염치도 없이 전 사위의 재결합을 애걸하는 그녀가 존재하는 이상 왕수박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할 수 없다.

 

 

 

왕수박이 이런 어른이 된 배경엔 그녀의 아빠 탓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현자처럼 그려지는 왕봉(장용 분)이지만 의외로 편견이 심하고 고지식한 그는 학업에 꿈이 많은 둘째 딸을 오로지 첫째가 아니라는 이유로 희생시켰다. 어머니의 모진 시집살이와 아내의 비상식적인 차별과 편애를 방관한 탓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너 바람 피웠냐? 그래서 이혼당했어?"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무릎이 꿇린 다음에야 피눈물을 쏟으며 참회하는 왕수박. "무릎 꿇어! 당장 꿇어! 어서!" "용서 빌어. 내 보는 앞에서 네 남편 앞에서 용서 빌어!" 아버지의 서릿발 같은 명령에 비로소 그녀는 사죄의 한마디를 밝혔다. "잘못했어요. 애지 아빠. 한 번만 용서해줘. 내가 잘못했어." 아. 이 얼마나. 드라마가 47회가 되기까지 기다렸던 대사였던가.

 

 

조강지처 클럽에서 한진희는 안내상의 아버지, 그리고 김해숙의 남편으로 출연해 가정을 팽개치고 두 집 살림하다가 말년에 하반신 불구가 되는 재앙을 받는다. 허리가 다쳐 자식에게 대소변을 받게 하는 지금에서야 "넌 이혼 당해도 싸!"를 외치는 이앙금. 왕가네의 가훈 '입장 바꿔 생각하자'는 결국 그녀의 전작 조강지처 클럽의 역발상이었던 셈이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작년 말 시작한 MBC의 일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의 초반 수식어는 바로 ‘착한 드라마’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시간대의 MBC 드라마가 착한 로맨스를 방영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동 시간대의 타 방송사 일일극과 모종의 협의를 맺지 않는 다음에야. 마치 가격 정찰제처럼.

 

MBC의 일일드라마는 언제나 ‘막장 드라마는 없다.’라고 외치며 착한 드라마를 표방하고 나선다. 드라마 초반은 나름 맞는 말 같다. 악역의 일탈마저 이때는 귀여운 애교로 넘겨줄 만 하니까. 하지만 중반부에 이르러선 시청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듯 자극적이고 비상식적인 전개로 시청자의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도리어 어설프게 착한 드라마를 선언한 탓에 기획 의도는 희미해지고 급기야 작가는 기억 상실인가? 라는 비아냥을 듣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유년 시절의 아련한 첫사랑으로 맺어진 남녀 주인공의 인연을 다룬 빛나는 로맨스 또한 그 시작은 마치 동화처럼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아비규환 같았던 오로라공주 월드를 유람한 시청자에게 빛나는 로맨스의 첫인상은 귀엽기까지 했다. 하지만 로맨스 코미디 같은 빛나는 로맨스의 순진한 전개는 이미 초반부터 삐딱한 흐름을 숨겨두고 있었던 거다.

 

 

 

착한 일일 드라마가 없는 것만큼이나 찾기 어려운 것이 바로 착한 전남편이다. 일일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남편이란 전래 동화 속 새엄마의 위치와도 같다. 빛나는 로맨스의 변태식 또한 여전한 못된 남편의 노선을 따른다. 세련되고 이기적인 여자를 만난 순간 아내의 헌신이 지긋지긋해져 이혼 바람에 몸살을 앓는. 그리고 결국 소원 성취를 했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은 꽤 유하게 받아들여진다. 버젓이 내연녀를 집에 들이는 인간쓰레기나 촌스러운 네가 잘못이라고 폭언을 쏟아 붓는 적반하장들과 달리 변태식은 어머니와 내연녀의 기 싸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버린 것처럼 묘사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반미치광이처럼 아내에게 구애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망설이기까지 했다. 이런 모습은 기존의 못된 남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부드러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쁘다. 아니 그래서 더 나쁘다. 불륜의 시발점도 본인 의사에 의해, 이혼이라는 선택 또한 본인 의사, 강제로 내 아내가 된 이 여자를 강제 이혼녀로 만들어버린 것도 본인 의사다. 결국, 원인은 모조리 자신인 주제에 호전적인 어머니를 앞세워 가련한 마마보이인 척 연극을 하는 이 남자의 유약함은 그야말로 악질이다.

 

변태식이 그녀를 쟁취한 과정 또한 석연치 않았다. 엠마 정을 가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금처럼 과거 오빛나에게 바친 그의 마음 또한 그랬었다. 싫다는 사람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집착적인 구애를 하는 그의 모습은 오빛나의 첫사랑, 강하준에게 치한으로 비춰 보일 정도였다.

 

아, 빛나가 조금만 덜 사려 깊었더라면 그에게서 떼어놓으려는 강하준의 친절을 기꺼이 받아들였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텐데. 착한 빛나는 태식이 치한으로 오해받아 곤욕을 치를까 봐 첫사랑의 호의를 뿌리치고는 그녀의 인생을 망칠 한마디를 꺼내놓고야 말았다. 내 남자친구가 맞아요.

 

 

 

그는 그렇게 빛나의 정신을 야금야금 좀먹었다. 가족 모임까지 쫓아와 서동요를 불러댔다. 그녀가 프러포즈를 거절하자 자살 기도로 여린 빛나의 마음을 압박해왔다. 네가 아니면 죽겠다는 그와 네가 아니면 내 아들이 죽는다는 어머니의 호소에 그녀는 결혼해줄 테니 눈을 뜨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강제 결혼을 당한 가련한 선화공주였다.

 

 

 

이런 그녀를 배신하고 불륜한 것도 모자라 무일푼으로 내쫓기 위해 모자가 벌인 수작은 추하고 흉하기 짝이 없었다. 의료사고를 치고 빚에 쫓기고 있는 양 연극을 꾸며 이혼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라며 그녀를 압박해왔다. 또다시 코너에 몰린 빛나는 모자의 잔꾀에 완벽히 속아 아무런 요구 사항 없이 도장을 찍어버렸다. 처녀 시절엔 강제 유부녀가 되었고 이제는 강제 이혼녀가 되었다.

 

 

 

정 없고 탐욕스러운 시어머니를 무시할 순 있어도 그 사단을 벌여 내 여자로 만든 사람을 이토록 비참하게 내팽개치는 변태식의 악랄함은 역대 일일드라마의 못난 남편들 가운데서도 선봉장급이다. 그야말로 남편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이혼을 택한 빛나는 도대체 어디에 분노하고 무엇에 슬퍼해야 할지를 분간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에 휘말려야만 했다. 남편의 불륜을 알아채기도 전에 이혼당했으니 마음껏 분노할 자유마저 쥐어지지 않은 셈이다. 결별의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이별의 절차조차 제대로 밟지 못했다.

 

 

 

그녀를 내쫓기 위한 꾀가 무엇이었든 악질인 것은 마찬가지였겠지만 모자가 택한 방법은 상대가 오빛나라서 더욱 잔혹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어 동생이 아끼던 첼로까지 압류당한 경험이 있는 빛나에게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다는 남편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상기해낸 협박과도 같았다. 빛나는 울부짖었다. 그녀에게 가장 아픈 기억을 이혼의 수단으로 끄집어낸 모자의 무심함이 너무나 서러워서. 그건 바로 불륜보다 큰 상처였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으세요? 저희 아빠 돌아가시고 제 동생 첼로까지 압류당한 것 다 아시면서 제가 그때 얼마나 마음 아파했다는 것 다 아시면서 어떻게 절 그렇게 똑같은 방법으로 이혼시키실 수가 있으세요?"

 

 

누가 그랬던가. 가장 슬픈 여자는 잊힌 여자라고. 결혼과 이혼. 그 모든 과정에 오빛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변태식의 욕구를 위해 결혼 당하고 이제는 이혼당했다. 위자료 때문에 아내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그 순간에도 둘 다 놓지 못해 아쉬워하다가 내연녀의 전화를 받고 아양을 떠는 그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다른 여자와 결혼한 이 남자가 아내와 딸을 대면하던 날 주저주저 눈치를 보다 꺼낸 어처구니없는 첫마디. "아직 화났어?" 구제불능인 이 남자를 애잔하게 흘겨보며 빛나가 던진 한마디가 가슴을 친다. "화를 내고 안 내고의 문제는 이미 떠난 것 같다."

 

 

 

"적어도 당신이 연두 아빠라면 연두한테만큼은 아빠 노릇 제대로 해.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면 연두한테 아빠의 의무라도 다하라구." 내 남자에게 트라우마를 뒤집히고 인간의 바닥까지 대면한 그녀. 배신감에 이를 갈아도 엄마는 엄마다. 그래도 이 남자가 내 딸의 아빠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그녀는 분노를 삭인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추악한 이기심을 삭일 줄을 모른다. '아후. 미치겠네. 연두 데려가겠다고 말하면 난리 난리 뒤집어질 텐데.'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밀어붙여 놓고는 그녀의 유일한 삶의 희망인 아이마저 뺏어가려는 이놈. "내가 미안해." 라는 착한 대사가 가증스럽디 가증스럽다.

 

 

 

어차피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엠마의 이기심에 지친 변태식이 어느 라디오 씨엠의 멜로디를 흥얼대며 구차하게 전 아내를 구걸하는 장면이리라. 너무 상투적이라 신물이 나도 이 드라마에서만큼은 그 뻔한 클리세를 꼭 한번 마주하고 싶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빛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순간이 될 테니. “조강지처가 좋더라~"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