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나 덕선이 좋아해. 친구가 아니라 여자로 좋아." 택의 공개 고백. 정환의 동공 지진. 버라이어티 한쪽은 분명 전자였지만,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주시할 것을 부탁한 장면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정환의 침묵이었다. 문득 겹쳐진 것은 응답하라 1994의 그림자 연출. 칠봉의 키스보다 키스 받는 나정을 지켜보는 쓰레기의 침묵이 더 카타르시스였던.



이미 한도를 초과한 치사량으로 대부분이 정신을 잃은 밤. 심지어 나정이조차 키스 당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칠봉이 하나뿐인 것만 같았죠. 취중진담을 넘어선 술김의 키스는 지금 칠봉이에게 가장 뜨거운 사람이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정한 카타르시스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키스보다 뜨거운 절정의 순간이 바로 그 뒤를 이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죠. 두 사람의 키스를 바라보고 있는 이 남자의 눈빛. 그게 바로 이날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순간 잠들지 않은 감정은 칠봉이 하나만이 아니었던 것이죠.


 

키스하는 두 사람에 집중하지 않고 카메라는 굳이 그 방의 감정을 체크합니다. 이미 거나한 술잔치에 정신을 잃은 새내기들은, 벌칙을 제대로 수행했는가를 체크할 경황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잠들어있는 아이들을 거슬러 올라가 카메라가 도달한 최후의 감정은 바로 다름 아닌 쓰레기의 눈빛이었죠. 그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두 사람의 키스신에 취기조차 물러나 버릴 만큼 그는 충격에 빠져있었습니다.

 

칠봉이의 키스신에 깔리던 가사의 대목. "사랑 그것은 엇갈린 너와 나의 시간들. 스산한 바람처럼 지나쳐갔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쓰레기의 눈빛과 교차되는 가사. "사랑 그것은 알 수 없는 너의 그리움. 남아있는 나의 깊은 미련들."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배경음으로 선택된 최용준의 아마도 그건은 바로 쓰레기를 향한 테마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제작진이 이 부분까지 공들인 디테일로 완성했다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군요.


 

 


두 씬의 공통점은, 멜로드라마의 극치인 키스와 고백을 그저 거들 뿐으로 만들어버린 포커스 이탈이다. 고백을 하는데도 키스를 퍼붓는데도 그들은 씬의 주인공이 아니다. 제작진이 준비한 궁극적인 카타르시스는 지켜보는 자의 요동치는 심장 소리였으니까. 쿵-하고.






그리고 이로써, 명실공히 택의 포지션은 여주인공의 '거쳐가는 남자'로서. 그의 가능성은 제로가 되어버렸다. 어차피 절대 반지를 가진 정환이기에. 백만 분의 일의 가능성이었다 해도 고백하기 전까지는 조금이나마 '혹시나?' 하는 지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작진이 택의 고백보다도 정환의 멘탈 붕괴에 더 초점을 맞추는 순간 백만 분의 일의 가능성마저도 제로로 뭉개진 것이다. 한 수 앞을 보는 승부사 택이 어차피 질 것이 뻔한 게임에 돌을 놓았다. 흥미로운 만큼이나 애처롭다.


덧. 오늘자 가장 슬펐던 장면은 택의 고백에 깔린 구슬픈 배경음이었다. 세상에. 첫사랑에게 고백이라는 인생의 가장 로맨틱한 순간에 장송곡을 틀어대고 있으니.. 이건 명백히 이 씬은, 택의 기쁨 따위 아랑곳 없이 정환의 슬픔에만 포커스를 맞춘 정환의 정환에 의한 정환을 위한 연출임을 도장 찍고 싸인까지 해서 공증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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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2

  • 공감합니다.

  • 회색하늘도시 2015.12.07 00:06 신고

    저도 넋놓고 나정이와 칠봉이를 바라보던 쓰레기가 나왔던 장면을 떠올렸어요. 그 장면보고서 아,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철저히 쓰레기의 편에 있구나 싶었죠. 해맑은 표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택이의 모습보단 카메라의 포커스는 정환이의 충격받은 표정이더군요. 요즘 느끼는 거지만... 응답월드가 좀 너무 반복, 변주되는 부분들이 많아 약간 식상해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예측가능해지니까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택이 아빠와 선우 엄마와의 대사(밥 먹고 가라는 장면)는 마치 나정이와 쓰레기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요.

    • 말씀하신대로 자가 복제는 심한 편인데.. 아이러니하게 이번 응팔은 제게 좀 낯선 작품이네요. 특유의 애틋함이 없어요. 물론 그로인해 보다 대중적인 드라마가 되긴 했습니다만.. 다소 마이너했던 본연의 길을 지키면서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라 더 소중했던 응답하라였는데..씁쓸하네요.

  • 너무 재밋게 보고있습니다. ㅋㅋㅋ 근데 볼수록 박보검은 너무 잘생겻네요 ㅜㅜ 부럽.

    • 진하게 잘생겼는데 또 산뜻하죠. 너무 잘생긴 얼굴은 소위 향기 없는 꽃같다 하는데 이 배우는 도리어 이거저거 다 시켜보고 싶을 만큼 창작자의 영감을 자극하고요. 국내에서 이런 느낌의 배우 딱 한명 봤는데 오랜만에..... 2015년의 얼굴이네요.

      흥미로운건 둘다 "저만큼 생겼으면 연기 못해도 되잖아?" 싶을 정도면서도 얼굴에 버금 가는 연기를 한다는 것.

  • 2016.01.10 21:24

    비밀댓글입니다

  • 2016.01.11 00:53

    비밀댓글입니다

    • 제 블로그에 까닭 없이 댓글이 쏟아져 미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늦은 답변 죄송합니다. 본문을 읽어보니 제가 문맥을 헷갈리게 써놓은 것
      같아 수정했습니다. ^^:; 오해하신듯.....

      말씀하신 만큼의 주제가 되지 못합니다. 일개 리뷰어일 뿐인걸요.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 그럴수도 2016.01.16 15:33 신고

    장송곡은 맞네요. 어쩌면 정환이의 첫사랑 애도 ㅜㅠ 이런 음악 아니였을까요?
    사실 정환이는 택이보다 먼저 고백할 기회 덕선이 맘을 움직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매번 기회를 놓쳤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덕선이는 택이에 대한 감정이 생겨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거.

    • ㅇㅇ 2016.01.24 07:03 신고

      그냥 제 생각엔 상황이 두 친구가 한 명을 좋아하는 일이 슬픈 일이라서 (실제로 둘 다 알게된 후로 멈춰버리죠. 택이도 죽을 것 같지만 데이트 취소했었으니) 그런 곡을 쓴 것 같아요. 둘 모두를 고려한 곡인 듯 해요. 또는 진지한 마음이란 소리 같기도 하고요. 실은 저 곡이 다른 부분에도 쓰였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한지는 다시 한 번 봐야겠네요. 선우와 보라의 장면에서도 저 곡을 썼던 때가 있었거든요. 아마 고백씬인거 같은데...

  • ㅇㅇ 2016.01.17 05:09 신고

    저도 이때까지만 해도 1화부터 쭈욱 어남류인줄 알았었는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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