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츠쇼타임

4년간 27억 기부, 그 어떤 예능도 무도 이상이 될 수 없는 증거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 유재석의 ‘천하제일 외인구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합지졸 버라이어티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을 이 프로그램은 소위 떼거지 쇼에서 강한 유재석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빛을 발한 버라이어티다.

 

 

 

 

 

마이너격의 다수 예능인과 형, 동생하며 난장판의 팀을 통솔하던 유재석은 시종 어깨의 힘을 풀고 깐족대다가도 프로그램의 말미에선 정말이지 송구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를 외쳐대곤 했었다.

 

 

 

그 분야의 초고수라고 할 수 있을 단 한명의 달인과 경험 무의 초보들이 대결하는 콘텐츠라 아무리 일대 다수라 해도 상대가 될 턱이 없었고 전승 무패는커녕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까지 단 한 판의 일승이라도 따내는 것이 관건이었기에 미션에 실패한 유재석은 시종일관 목이 터져라 “죄송합니다!” 하고 외쳐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MC의 개념조차 잡히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이라 “시청자 여러분!”을 외쳐대는 유재석이 내겐 생경한 느낌이었고 매번 “오늘만은!” 다짐하면서도 턱도 없는 경기를 하곤 울상인 얼굴로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를 외치는 유재석이 웃기면서도 한편 믿음직스러웠다. 죄송하고 또 죄송해서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그 얼굴은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한도전의 뿌리는 바로 이 유재석의 천하제일 외인구단에서 비롯되었다. 무한도전 이전에 무모한도전이었던 프로그램 초창기에 역시나 너그러운 대 엠씨와 형, 동생 하는 다수의 멤버들은 전신 타이즈 차림으로 범접할 수 없는 어느 분야의 초고수와 대결하곤 했었다. 그래도 외인구단 시절에는 사람이기라도 했지, 이제는 황소와 줄다리기를 시키고 달리는 기차와 경주를 하란다.

 

뿌리가 그래서였을까. 외부적으로나 자체적으로나 무한도전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평균 이하 남성들의 도전’이었다. 남루한 행색에 더럽고 위험한. 소위 쫄쫄이 복을 입고 연탄 검댕을 묻혀가며 구덩이에서 뒹굴게 하는 이 평균 이하 소굴에서 모델 출신 배우 차승원조차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최근 매체를 통해 밝혀진 무한도전의 4년 내 기부 액수가 무려 27억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에 감탄하며 새삼스레 무한도전의 뿌리를 떠올렸다. 방송 문화 진흥회는 2010년에서 2014년 9월 현재까지, 즉 4년간의 MBC 기부금 현황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한 방송사의 모든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이 기부 총액 자료에서 무한도전이 4년간 기부한 액수가 무려 27억 3577만원. 이는 MBC 전체 기부금인 45억 8830만원의 60%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해당 자료를 제출 받아 공개한 전병헌 의원의 격려 메시지는 명실공이 대한민국 대표 예능의 직함을 가진 ‘국민 예능 무한도전’의 성명을 공고히 했다. "9년을 달려온 국민 예능프로그램의 아주 좋은 모범사례라고 본다. 무도 팬의 한명으로서 400회가 아니라 1000회 이상 국민예능으로 사랑받기를 기대하며, 지속적으로 사회와 호흡하고 소통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

 

 

 

물론 모든 시청자가 국민 예능의 간판을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을 거쳐 가진 지금의 영광을 성장이나 발전이 아닌 을에서 갑이 된 형상이라고. 누군가는 비난했다. 초심을 잃었다고 원망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었다. 금전적으로나 커리어로나 대한민국 평균 이상이 된 멤버들에 배신감을 느끼고 더 이상 쫄쫄이 복을 입지 않는 무한도전에게 너무 큰 대의명분 때문에 예능의 본분을 잊은 것은 아니냐고 질타하기도 했었다.

 

누군가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라는 수식어를 떼버리라고 말한다. 물론 더 이상 배  곯지 않는 멤버들과 대한민국 대표 예능인 무한도전이 스스로 평균 이하라고 자학하기엔 민망한 자격을 갖추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시작이 작고 초라한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나는 도리어 무한도전의 진정성에 안도하게 된다. 그들은 초심을 잃은 것이 아니라 초심에 연연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임을 이미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형돈은 더 이상 제7의 멤버에게 위협당하지 않는다. 거성쇼를 부르짖고 1인자 타령을 하던 박명수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민MC가 된 유재석은 여전히 갑이 아닌 을에게 위로를 전한다. 그것이 바로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무한도전의 전체 이념이다. 무한도전의 뿌리는 전신 타이즈와 가난이 아니다. 그것은 소통과 위로다. 무한도전 가요제와 무한도전 달력. 무한도전이 벌려준 판에 을과 을이 모여 또 다른 을을 위로할 수 있는 큰 세계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한 방송사의 60퍼센트를 책임지고 있는 기부액의 실체다.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를 외치던 유재석의 외인구단이 해피엔딩으로 귀결되었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여실히 전해지는 것은 시청자 여러분을 외치던 유재석의 진심어린 호소가 바로 무한도전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초심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무한도전 이전에 외인구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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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쓰고픈샘 M/D Reply

    무도 대단하징ㅅ. ㅎㅎ1000회까지 아니 장수 프로그램이 됐으면해요

    • 닥터콜 M/D

      ^^ 항상 긍정 에너지 넘치는 샘님의 답변에 힘이 샘 솟습니다.

  2. 탁발 M/D Reply

    저도 참 무한도전을 좋아하고 아낀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무한도전을 읽고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이쯤에서 꼬리를 내려야겠습니다. ㅎㅎ

    • 닥터콜 M/D

      저야말로 탁발님의 멋진 필력과 메시지를 꿰뚫어 보는 세심함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3. M/D Reply

    와 정말 멋진 글이네요 잘보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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