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츠쇼타임

개그콘서트 렛잇비 병정 직장인 울리는 촌철살인

‘뮤지컬’의 계보를 잇는 ‘렛잇비’는 개그콘서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코너다. 개그가 7할, 음악이 3할인 개그+콘서트에서 노래와 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문율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직장인의 애환을 노래와 유머로 승화’한 렛잇비가 대중에게 선을 보였을 때 오래갈 수 있을지를 염려했었다. 신박한 코너라는 생각은 했지만 매회 방영하기엔 한계가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경험 없는 연예인들이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였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가 되었다. 파일럿 방송 같았던 시범 기간을 거쳐 정규 코너로 우뚝 선 렛잇비는 힙합의 신, 선배, 선배! 등의 뒤를 이어 개그콘서트 내의 최고 인기 코너로 자리매김했다. 소재의 한계가 있지 않을까? 연예인이 직장 내의 애환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역시 괜한 염려가 되었다. 최근 방영된 렛잇비는 그 어느 에피소드 이상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직장인의 설움과 분노를 풍자와 해학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박은영, 이동윤, 노우진, 송필근으로 구성된 렛잇비의 멤버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상을 품은 캐릭터를 갖고 있다. 이부장으로 불리는 이동윤은 팀의 관리직으로서 사원들의 경외심을 받는 만인의 적이다. “사장님은 말씀하셨죠. 즐기면서 일해라!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대요.” 사장님의 조언을 되새기며 “그래! 나도 오늘부턴 재밌게 일할 거야! 이곳은 회사가 아닌 놀이공원.”이라고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순간에 터진 이부장의 얄미운 한마디. “자. 오늘 야근이야!”

 

 

 

사원들은 손 머리 위에 올려 발라드 제스쳐를 하곤 넋이 나간 얼굴로 렛잇비한다. “야간개장. 야간개장.” 그 와중에 이부장 혼자서만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얼굴이 얄밉기 그지없다. 하지만 먹이사슬의 최 정점에 서있는 것 같았던 이부장 또한 슈퍼 갑 아래 웅크린 또 하나의 최약체임이 드러났다.

 

“우리 회사 사장님은 멋진 여자 사장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닮고 싶어요.” 렛잇비의 홍일점 박은영은 최약체 중에서도 최약체다. 말단 사원인 처지에 여자이기까지 하니까. 스펙을 쌓아 고속 승진하고 사내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결국 외모 가꾸기와 애교로 귀결되어 좌절하는.

 

 

 

“사장님처럼 되기 위해 힘껏 스펙 쌓아야지.” 이런 박은영에게 울트라 슈퍼갑인 여자 사장의 존재가 자극이 되었을까. 주먹을 불끈 쥐고 미래를 꿈꿔 보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질 수 없는 스펙 하나가 그녀를 좌절하게 한다. “근데 난 쌓지 못하는 스펙. 재벌 아빠.” 웃으면서 희망을 외치다 현실을 직시하며 혼이 나가버리는 박은영의 멍한 얼굴이 순간 섬뜩했다.

 

 

렛잇비에 웃다가 울다가 문득 깨닫는 것은 꿈과 희망으로 귀결되지 않는 마무리다. 렛잇비는 쿠테타를 권유하지 않는다. 참을 인, 참을 인, 참을 인을 되새기며 힘들고 지쳐도 웃으라고 말한다. 여느 코너였다면 희망을 전하는 격언으로 들렸겠지만 현실 풍자 렛잇비에서 힘들고 지쳐도 ‘참을 인’하고 웃으라~는 회사원을 일깨우는 최선의 처세이자 영원의 을을 위한 경고다.

 

 

“신의 딸~ 신의 딸~”을 노래하는 렛잇비 사원들에 수백 만 직장인의 애환이 스쳐 지난다. 오늘만큼은 somewhere over the rainbow로 대체하고 싶었던 렛잇비.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희망이란 있을까요. “사장님 최고의 스펙은 호적등본.” 말단 사원은 에베레스트를 등반한다 해도 가질 수 없는 무지개 너머 어딘가 그들만의 세상. 갑은커녕 을도 아니고 병, 정이라고 불리어야 할 우리의 또 다른 렛잇비들. 재벌 세습과 을의 절망을 몇 문장의 촌철살인으로 녹여낸 최고의 사회비판이자 소름 돋는 현실 풍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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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탁발 M/D Reply

    저는 이 코너를 볼 때마다 사실 좀 아쉬움도 있습니다.
    풍자의 문장은 가졌지만 카타르시스를 주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인데요.
    그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 닥터콜 M/D

      그러게요. 초반엔 저도 뻥 뚫리지 못한 밍밍함을 느껴 아쉬웠는데 어제 방영분은 참 좋더라고요.^^

  2. 글쓰고픈샘 M/D Reply

    저도 좀 걱정 했는데 이젠 너무 좋아하는 코너사 됐어요. 전 왠지 저 코너를 보면 웃프다라는 느낌이 들고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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