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영화

툼스톤 액션 귀재 리암니슨의 느림보 탐정 수사극

테이큰을 넘는 테이큰은 없다. 테이큰2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그의 이름 한 줄에 설레는 까닭은 리암니슨표 액션 영화가 제시했던, 막힘없는 스피드의 전율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안티히어로가 득세하는 영화판에서 사연 없는 절대 악을 향한 망설임 없는 아빠의 처형은 마치 데스노트를 움켜쥔 라이토처럼 통쾌함의 절정을 안겨다 줬습니다.

 

 

 

 

 

얼핏 보기에 툼스톤은 리암니슨이 복제 중인 리암니슨표 액션 영화의 원투쓰리 같습니다. 테이큰, 테이큰2, 논스톱의 뒤를 잇는 속도 전쟁 액션 영화요. 영화 장르 또한 스릴러에 소재는 빠짐없는 부녀자 납치 사건, 천부적인 수사 능력을 가졌다 하는 리암니슨의 능력치는 역시 추격전의 기타지마 마야 아저씨의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는 듯했죠.

 

 

 

하지만 뜻밖에 툼스톤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갑니다. 무채색의 점잖은 연출은 건조하기 짝이 없고 리암니슨 또한 미행의 3단계를 논하며 느릿느릿 걸어가지요. 적 앞에 몸을 사리지 않고 스피드로 파리를 조져 놓던 아저씨의 야성미는 도대체 어디로 숨겨둔 걸까요.

 

논스톱 이후 위태로운 중독 상태를 추가한 리암니슨의 비틀비틀 불안한 걸음이 암전되면 몽환적인 오프닝의 포문을 열며 시작하는 툼스톤의 크레딧 화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장면이기도 합니다. 미국 드라마 덱스터의 그 유명한 오프닝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로맨스를 스릴러로 도출해내는 반전이 압권인 화면이지요. 만약 영화가 이만큼의 완성도와 예술성을 시종 유지했더라면 분명 툼스톤은 테이큰을 넘는 테이큰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액션,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개요로 나누어진 툼스톤은 한 가지 장르로만 규명 지을 수 없는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넘실대는 작품입니다. 무허가 사립 탐정 맷 스커터(리암 니슨 분)의 연쇄살인마 추적기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액션이라지만 정적이고 탐정극이라기엔 추리의 해답이 이미 초장부터 다 펼쳐지는, 장르의 룰을 비껴서는 영화입니다.

 

덧붙여 중독자가 사회에 귀속되는 과정과 영웅을 동경하는 홈리스 아이와의 유사 부자 관계, 마치 퇴마 의식을 하듯 중독자의 12계명을 외는 남주인공의 거룩한 자태는 알코올 홀릭 다큐멘터리와 홈드라마, 그리고 종교 영화를 뒤섞어 놓은 것 같은 어지럼증을 동반합니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리암니슨에 연출마저 거룩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여러 장르가 뒤섞여 있으니 집중력이 떨어져 무려 리암니슨옹의 영화임에도 잠이 쏟아지는 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문제의 핵심은 동떨어진 장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접점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감정과 동기라는 접착제를 등한시한 채 그저 장르를 나열하기만 하니 주인공의 행동에 의문을 갖게 되고 쉽사리 그의 감정에 동화할 수가 없죠. 마약상인과의 딜을 거부했던 맷이 마음을 돌려 청탁을 받아들였던 이유를 그저 범행 수법의 잔인함 때문에 라고 납득하기엔 대강은 이해해도 온전히 감정 이입은 되지 않아 보다 구체적인 부연 설명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마치 컬렉터처럼 마약 딜러만을 골라 납치 후 살해하고 전리품을 과시하듯 시신을 잘라내 흩뿌리는 범인의 특이사항 또한 후반부에 가선 흐지부지 되어 버리고요. 사연있는 악역을 동경하진 않습니다만, 그저 돈 때문에 그랬다기엔 앞에 뿌려놓은 사설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물론 주인공의 심리를 굳이 이해해보려고 애쓰며 집중한다면 개연성이 없는 사연이란 없습니다. <시종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과거의 죄를 알코올 중독에 치환하여 영원한 고통에서 허덕이는 맷. 경찰직을 버린 이후 사사로운 범죄 따윈 눈감고 넘어가지만 약한 자, 특히 여자와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범죄에 증오심을 갖는 무허가 사립 탐정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해석하면 집 없는 아이에게 갖는 연민이나 부녀자 연쇄 살인마를 향한 적개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찾는 액션 영화에서 이토록 공을 들여 작품을 감상할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지요. 대부분의 관객은 보다 직관적이고 친절한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결국, 시리즈물의 주인공으로 더없이 잘 어울리는 탐정 캐릭터 맷 스커터를 공들여 설득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제작진의 패착이겠지요. 역사가 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기에 굳이 캐릭터의 세계관에 공들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맷 스커터의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 또한 아닙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에 부연 설명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일 지도요.

 

 

 

하지만 융화되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 따로따로 뜯어보면 꽤 괜찮은 이야기들인 툼스톤의 소재처럼 각각의 캐릭터 또한 떨어뜨려 놓고 보면 상당히 쓸 만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의 실수가 만든 죗값으로 가족과 커리어를 잃어버린 맷 스커터는 다소 특이한 발상의 탐정 캐릭터인데 결국은 오만 데가 결함투성이입니다.

 

딱히 파괴력 없는 신체적 능력은 그리 민첩하지도 않고 탐정이 필수로 가져야 할 직감 또한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습니다. 미행하려다 도리어 미행당하고 아둔한 범인이 칼을 들고 서있는데도 쉽사리 눈치를 채지 못해요.

 

그렇다면 이 가파른 죄악의 시대에 맷 스커터가 지닌 탐정 비기는 과연 무엇인가. 그건 뜻밖에 남자 어른의 노련미입니다. 자상함과 배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력이죠. 천재의 오만이 미덕인 탐정 세계에 그닥 부합하지 않은 캐릭터를 가진 사립 탐정 맷은 정말 그 노련미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성과를 취득합니다.

 

 

 

잔뜩 겁에 질린 어리바리 취조 대상의 맘을 구슬려 죄를 실토하게 하는 장면이나 간섭을 싫어하는 홈리스 아이에게 그가 가장 원하는 타입의 접근으로 맘을 열게 하는 부분은 바로 맷 스커터가 지닌 인간성의 미덕이 꽤나 쓸모 있는 비기임을 증명케 하지요.

 

이런 맷의 캐릭터는 꽤 인상적으로 봤었던,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을 실사화한 작품 이나가키 고로 주연의 긴다이치 코스케 TV 시리즈의 탐정 타입과 유사합니다. (네. 소년 탐정 김전일이 실체 없이 할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인물입니다.) 산만하고 어리바리해서 도통 천재 탐정가의 면모라곤 느껴지지 않는 헐랭한 아저씨 긴다이치 코스케.

 

구깃구깃한 단벌 신사에 눈보라처럼 비듬을 흩날리며 머리를 벅벅 긁는 포즈로 혼 나간 듯 추리하는 그를 보면 도무지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만, 천재의 오만을 역겨워하는 연쇄살인마로서는 도리어 코스케의 다듬어지지 않은 인간미가 탐정VS범죄자라는 경쟁 구도를 무장해제 시키는 마법인가 봅니다. 오랜 기간 쌓인 인품에 반해 진심을 실토하는 살인마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아이러니입니까.

 

 

 

리암니슨의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기대감을 갖게 하는 호기심 가득한 범죄자의 캐릭터 역시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입니다. 특히 사건을 재연하는 순간 수화기로 전해들은 그의 음성은 그야말로 악마의 목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커다란 충격을 안겨줍니다. 

 

갖은 스릴러 영화를 즐겨 봤지만 정체를 숨긴 자의 목소리 때문에 이토록 혐오감을 느껴본 적은 정말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리암니슨과 전화와 범인이라는 세 가지 코드는 정해진 패턴처럼 그를 쫓아다니네요. 테이큰에서는 협박을 하더니 논스톱에서는 협박 문자에 농락 당하고 이제는 실체보다 두려운 그놈 목소리라니. 그래서 핸드폰을 불신하는 툼스톤의 어쿠스틱 보이 맷 스커터는 전작의 문자 씨름을 비롯한 첨단 문물 싸움에 질릴 데로 질린 역효과가 아닌가 싶어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호명하기만 해도 스피드에 가슴 설레는 리암니슨표 영화에서 경보조차 안 되는 느릿느릿한 걸음은 분명 감질나긴 하지만 이제 50세를 넘긴 리암니슨에게 다가온 ‘툼스톤’은 시리즈물의 가능성을 예기하며 새로운 방식의 리암니슨표 액션을 제시합니다. 뛰지 않는 액션의 미학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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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탁발 M/D Reply

    뛰지 않는 액션의 미학이라...
    저도 이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표현입니다.
    전 많이 건조해졌는지...그저 리암 니슨이 많이 늙었구나...하고 말았는데 말입니다.ㅎㅎ;;

  2. 진순정 M/D Reply

    안녕하세요..
    저는 처음에 '톰스톤'이 서부극인줄....
    이젠 '리암리슨'이 '와이어트 어프'로 나오는 구나라고 착각을...
    '톰스톤'이 묘석,묘비라는 뜻도 있지만,
    'OK목장의 결투'의 무대인 서부의 작은 도시(애리조나주 남동부)이며
    서부극의 중심지로
    이젠 사라진 미국 개척 시대의 신화 혹은 전설의 도시죠..
    영화 '톰스톤'은 액션이 있는'스릴러'계열 보다는
    건조한 '하드 보일드'계열 작품으로..보면
    '탐정','의뢰','살인','느슨한 플롯''건조한 연출'등이
    쉽게 이해되는 측면이...
    '추격액션스릴러'의 홍보 문구가 낚시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죠...
    스콧 프랭크 감독과 원작자 '로렌스 블럭'이
    ''대쉴 해미트의 말타의 매''"레이몬드 챈들러의 '빅슬립'''으로
    회귀하고 싶은 욕망이 느껴지네요...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테이큰(액션 스릴러)"이 '락'이면,"톰스톤(하드보일드)"은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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