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인간의 조건 박은지 김영희 기싸움 전략인가 돌발사고인가

큰 소란 없이 조용조용하게 가냘픈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던 KBS 2TV ‘인간의 조건’이 보기 드물게 시청자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여느 연예가 이슈가 그렇듯이 좋은 이유로 화제가 된 것은 아니다.

 

 

 

 

그 코드는 인간의 조건을 닮은 성찰이나 철학 혹은 21세기 예능의 대세 조건이 되어버린 ‘감동’이나 ‘힐링’ 등의 아름다운 감정이 아니다. “(박은지는) 직접 보니 실물이 별로다.” “여자들이 진짜 싫어하는 타입이다.” ‘박은지-김영희 기싸움’이라는 키워드가 인간의 조건을 주목하게 한 이유였다.

 

 

 

9일 새 멤버를 소개 받은 인간의 조건 팀은 장난처럼 냉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 개그맨 군단으로 ‘KBS판 무한걸스’처럼 친목을 다지고 있었던 그녀들에게 걸그룹의 멤버 윤보미나 미녀 기상캐스터 박은지의 등장은 분열을 도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문이 열렸는데 왜 벨을 눌러?”(김영희) “약한척하지 말아주실래요?” 격한 환영 인사는커녕 냉랭하기 짝이 없는 김숙, 김영희, 박지민의 반응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민망함에 몸부림치던 박은지. 너른 소파에 불편하게 쭈그려 앉아 사과를 씹는 그녀의 모습이 꽤나 처량 맞아 보였다.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윤보미야 워낙에 어린 나이와 걸그룹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애초에 우리와 분류와 다르다고 미뤄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그 기묘한 기싸움의 포지션은 오로지 박은지 혼자서만 떠맡아야 했다.

 

 

 

어느 심리학책 표지를 장식한다는 ‘여자들만 아는 여자들의 공격적인 표정’처럼 대놓고 물고 뜯고 할퀴지는 않아도 “저 분위기는 여자들만 알지.” 싶은 기묘한 기싸움의 분위기가 폭풍 전야처럼 그녀 주변을 할퀴어댔다. 저러다 터지겠다 싶었을 즈음 옆구리 콕콕 찔러서 튀어나온 잔다르크처럼 막말을 하며 대놓고 싸워보자고 덤벼드는 김영희의 솔직함이 차라리 속 시원했다. 아마 박은지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이날 김영희는 좀 너무한다 싶을 만큼 줄곧 박은지를 괴롭혀댔다. 기사는 두 여자의 기가 팽팽하게 맞붙은 것처럼 소개되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박은지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것이고 김영희가 그 주변을 뱅뱅 맴돌며 집요하게 시비를 걸어대고 있었다. “그럼 스트레스를 안 받아야 되는데?” 이 날의 주제였던 ‘피부&탈모 정복하기’를 전해들은 박은지의 염려가 무색하게 김영희가 건넨 기싸움은 마치 무차별 미션과도 같았다. 피부와 탈모의 적이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녀.

 

“내가 봤을 때 너보다 내가 더 예쁜 것 같거든.” 귀여운 막내 윤보미의 분량을 만들어주기 위함인지 에이핑크 외모 서열 순위를 묻는 김숙. “조금 있다 우리도 할 거야.”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치 김영희는 준비해놓은 무기를 쏘는 것처럼 느닷없이 박은지를 공격했다. “내가 봤을 때 너보다 내가 더 예쁜 것 같거든.” 그 말에 사람 좋게 웃으며 김영희의 어깨를 감싸는 큰 키의 여신이 고마웠던지 자막 또한 ‘이정도 장난쯤이야.’라고 포장되었다.

 

 

 

“내 밑에 영희, 은지, 숙 선배 있어.” 동료의 장난을 받아쳐주면서도 나름 새 멤버를 배려한답시고 박은지의 체면을 세워주는 김신영. “일단 내 밑에 은지 있어!” 비슷한 종류의 장난이었지만 김신영의 말투는 오히려 김태희보다 내가 더 예뻐! 같은 박은지의 기를 살려주는 뉘앙스라 불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난을 가장한 김신영의 배려와 박은지의 너그러움에도 김영희의 공격은 멈출 줄을 몰랐다. “아니, 내 밑에 김신영, 숙 선배, 박은지 있다.” 얄밉게 주변을 두리번대며 진짜처럼 던진 디스에 맞받아칠 경황도 못되는 듯 어안이 벙벙해진 박은지. 이만큼만 해도 장난의 범위를 넘어섰는데 그 뒤에 한마디 더 덧붙이는 김영희의 못된 말버릇. “너는 TV에서 보니까 예쁜데 직접 보니까 별로야.” 돌고래 소리를 내며 ‘두고 보자. 김영희.’하고 이를 가는 박은지.

 

 

 

급기야 그녀가 매트를 깔고 요가를 시작하자 개그맨들의 시기와 질투는 절정에 달했다. 기존 멤버들이 다소 구차한 방식으로 미용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있을 때 박은지는 늘씬늘씬한 몸매를 한껏 자랑하는 탈모 방지 요가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쟤 또 혼자 얘기하는 거야?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라는 김숙의 의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치 개선장군처럼 쫓아나간 김영희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한껏 야유했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스타일인거 알지?” “언니! 다 들리거든요. 여기까지!” 김숙과 김영희의 야유에 박은지가 항변을 하자 “들리면 고만하지. 계속하네~” 라고 끝까지 토를 다는 김영희.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가는 그녀의 연속 디스에 박은지는 몰라도, 적어도 시청자는 단단히 뿔이 났다. 방송이 끝나고 인간의 조건 게시판은 온통 김영희를 성토하는 글로 들끓었으니까.

 

 

 

박은지가 하는 말마다 태클을 걸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김영희의 태도는 분명 불편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방송을 보면서 내내 리얼리티 쇼가 아닌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두 사람의 쇼를 감상했다. 마치 시트콤처럼 포지션을 맡은 두 사람의 캐릭터에 기시감이 느껴져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크게 활약하는 여자 개그맨의 트랜드는 미녀VS여자개그맨의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1박2일의 비키니 미녀 논란, 미녀 배우에게 펀치를 날리는 캐릭터로 호평을 받고 있는 이국주. 별다른 콘텐츠 없이 그저 본인의 외모를 헐뜯는 개그에만 집착하는 여자 개그맨들의 자학 개그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이 시점에, 외모 공격을 받는 그녀들이 한발 더 나아가서 미녀들의 외모를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것이 일종의 트랜드가 되어버렸다.

 

 

 

아웅다웅하는 김영희와 박은지를 두고 김신영은 마치 불길한 예언자처럼 두 사람의 미래를 장담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인간의 조건할 때 박은지랑 김영희랑 진짜 머리채 잡고 싸운다.” 그리고 마치 짠 것처럼 프로그램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앞서 방영된 인간의 조건 다음 회의 예고에서 정말이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두 사람. 아니 싸운다기보다 역시 박은지 혼자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점점 심해지는 신경전’이라는 자막처럼 박은지는 김영희에게 항변을 하고 김영희는 박은지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순둥이 같은 박은지는 머리채를 잡기는커녕 멱살을 잡힌 채 김영희의 머리칼을 가지런히 정돈해준다.

 

 

 

심지어 제작진은 두 사람을 서로의 스파링 파트너로 붙여 권투 시합을 하게 만들었다. 아마 잔뜩 과장되었지만 치열하게 몸을 부딪치는 두 사람과 깜짝 놀란 막내 보미의 얼굴, 쭈그려 앉아 눈물을 닦는 박은지의 모습에 네티즌은 맹렬히 김영희를 비난했다. 나는 제작진이 대중의 이런 반응에 당황해할지 아니면 환호할지가 궁금해졌다.

 

텃세와 따돌림은 최근 일련의 사건과 더불어 대중을 진저리치게 하는 것들이다. 아직 적응도 채 되지 않은 신입 멤버를 괴롭히고 따돌리려 하는 김영희의 태도는 분명 ‘기싸움’이라고 명명될 만한 것이며 거북하고 볼썽사납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크게 부풀려 묘사하는 자막이나 편집 등이 없었다면 이게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사안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내게 비춰진 박은지를 대하는 김영희의 마음이란, 어색한 포즈로 쇼파에 앉은 그녀에게 가장 먼저 친근한 스킨십을 하며 다정하게 말을 걸다가 까르르 웃어 제치는 김영희의 살가움이었다. 물론 그 장면은 자막으로 강조 되지도 카메라가 제대로 초점을 맞추어주지도 않은, 제작진에게는 잉여 장면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조건은 구설이 거의 없는 프로그램이다. 우아한 제목만큼이나 철학자의 성찰을 닮은 이 프로그램은 주제 의식부터가 명확하다. 마치 전래동화처럼 이 프로그램의 에피소드는 매회 교훈을 안기고 떠난다. 주말 예능 중 드물게 논란이 적은 참 착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대중의 이목을 거의 끌지 못하는 착한 예능의 한계가 제작진을 다소 초조하게 만들었나 보다.

 

매회 ‘없이 살기’라는 미션에 무소유를 철학으로 깔고 가는 이 프로그램에서조차 리얼리티 쇼의 필요악인 마녀 만들기란 덜어낼 수 없는 욕심이었나 싶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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