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빛나는 로맨스 114회 줄거리, 리뷰 조안 막장 드라마를 뛰어넘은 명연기

 

연출과 대본, 상대배우 등 모든 배경과 조건이 완벽한 드라마라도 소위 발연기 논란에 휘말리는 배우가 한둘쯤은 꼭 끼어있는 것처럼 반드시 모든 이에게 통하는 대전제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연기 신이라고 불리는 배우라도 못난 대본을 받아들면 어김없이 못난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걸출한 연기의 대가가 이따금 논란에 휘말리는 것은 경험 부족에서 오는 미숙한 연기력 탓이 아니라 배우조차도 그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실한 개연성이 빚어낸 억지만발의 동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을 가진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요. 연기하는 배우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도대체 그 누가 감싸 안아줄 수 있을까요.

 

 

 MBC 일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 연출 신현창, 정지인극본 서현주출연 이진, 박윤재, 조안, 허정은, 지소연

 

그런 의미에서 MBC 일일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에서 악녀 장채리로 분한 조안은 황무지에서 풍년을 일구어낸 명배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티 히어로는커녕 일말의 동정심조차 느낄 수 없는 이 무자비하고도 졸렬한 인물에 이토록 완벽 빙의하여 절절한 연기를 보여주는 조안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오니까요.

 

특히 오빛나(이진 분)의 과거 남자와 현재의 남자 모두에게 약점이 잡혀 청운각 식구 모두에게 사기 행각이 퍼뜨려질 위기에 놓이게 되자 순간적인 임기응변으로 자작극을 기획해 가해자의 위치에서 피해자로 뒤바꿔놓는 장채리의 ‘발광’은 드라마 속에서도 명연기였지만 배우 조안에게도 명연기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압도적인 에너지를 펼쳐 보였습니다.

 

 

 

마주치면 하나가 죽는다는 도플갱어처럼, 진짜 상속녀 오빛나가 나타나자 자연스레 가짜가 되어버린 장채리. 지난 수십 년의 삶이 ‘공주라 믿고 있던 거지’라는 진실과 마주치지만, 자존심과 미련 때문에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다 사람으로선 해서는 안 될 일까지 서슴지 않는 그녀입니다. 드문드문 내비친 채리의 속내를 증거로 짐작해볼 때 가족이라 믿고 있던 친아버지와 할머니의 서먹한 태도가 그 풍족한 삶을 누리는 와중에도 이게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경계심을 키웠나 봅니다. 순혈주의가 만연한 빛나는 로맨스이기에 양아치 어머니와 천박한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쁜 피’가 장채리를 절대 악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을지도요.

 

 

 

문제는 이 드라마의 전개가 악녀 장채리의 무분별한 악행을 그녀의 심리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게끔 섬세하거나 친절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급한 전개에 한시가 바쁜 일일 드라마에서 장채리는 그저 매일 매일 미친 사람처럼 히스테리를 부리는 정신 나간 여자로 보이기 일쑤고 그 과정에 시청자가 장채리의 심리를 이해할 만큼 섬세한 여유를 부여한 장면은 굳이 애쓰지 않은 다음에야 발견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출생의 비밀이 무색하게 친아버지와 대면한 순간에 ‘어떻게 저런 남자가 내 아버지야?!’를 외치는 여자. 친모 애숙(이휘향 분)을 끝끝내 ‘김 집사’라고 부르며 부모 자식 사이에도 고용인과 오너의 계급을 버릴 수 없는 여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에게 땅콩이 들어간 죽을 먹이는 짓까지 서슴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악녀. 친구의 생명을 담보로 걸고 “친구 좋다는 게 다 뭐겠니.” 라고 말하던 장채리를 생각하면 이 사람에겐 일말의 연민이라는 것도 없는 건가? 싶을 정도죠. 사랑하는 강하준(박윤재 분)을 위해 몸을 내던지기까지 했던 순간적 희생만큼은 100회가 넘는 이 드라마에서 장채리의 유일한 진심이었지만, 그것마저도 남자를 붙잡기 위한 실명 연기로 오만 정이 떨어지게 했던 그녀는 감히 작가에게 버림받은 캐릭터 같기도 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악질적이고 혐오스럽기까지 한 장채리의 악랄한 내면을 연기하는 조안에게서 조금의 머뭇거림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혹여 시청자에게 너무 밉살스러운 이미지로 찍히지는 않을까? 하는 젊은 스타의 염려를 일말의 주저함으로라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 속엔 그저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장채리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표출시키고자 노력하는 배우 조안의 감동적인 에너지만이 남아있을 뿐이죠.

 

 

이쯤 되면 착한 것도 민폐라는 생각이 드는 오빛나는 그토록 오랜 기간을 장채리에게 기만당해 왔으면서도 채리가 청운각의 친딸이 아니라는 치부를 틀어쥐지 않고 그저 장채리가 그 사실을 알았느냐 모르는 척했던 것인가에만 죄의 조건을 묻습니다. 한마디로 장채리의 양심에 모든 용서와 징벌을 맡긴 것이죠.

 

 

자체 교화될 리가 없는 장채리는 오빛나의 딸, 연두와 그녀의 전남편 변태식(윤희석 분), 심지어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을 사람인 강하준에게조차 모든 진실이 알려져 버린 최악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김 집사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야. 알아?" 블랙박스에 녹음된 순간의 절규가 그녀의 평생을 저당 잡힐 증거로 돌아온 것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본인의 목소리가 증명한 명확한 증거와 증인들.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수십 년간 청운각을 속여 온 능구렁이 김 집사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타고난 악의 본성일까요.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미련이 빚어낸 추태. 순간적으로 장채리는 출생의 비밀을 이제야 알아버린 가련한 여주인공 흉내를 내며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합니다. "설마…. 설마 다들 알고 계셨던 거예요? 제가 김 집사 딸이라는 거. 알면서 저한테만 비밀로 하신 거예요? 아빠두.. 아빠두 알고 계셨구나…. 나만…. 나만 몰랐던 거였군요?"

 

 

 

"아빠.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저 아빠 딸이라고 해주세요. 네? 아니 믿을 수 없어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내가 아빠 딸이 아닐 수가 있어요. 어떻게 내가 김 집사 딸일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래서 그러셨던 거였군요? 이제야…. 이제야 아빠가 날 싫어했던 순간들이 이해가 돼요. 하지만 아빠. 아시죠? 아빤, 제가 사랑받고 싶은 유일한 분이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서먹서먹했던 장재익의 부성애에 이의를 제기하며 까무러칠 것처럼 울부짖고 길이길이 날뛰는 애증의 딸을 그는 연민 섞인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어차피 장채리의 양심에 모든 가능성을 맡겨둔 오빛나였기에 이번에도 별다른 조취 없이 경고만 주고 넘어가 버리죠. 블랙박스가 기록한 날짜와 증거. 딸 연두가 전해준 심증조차 무기력해져 버린 장채리의 영민함과 오빛나의 아둔함.

 

"내가 아빠 핏줄이 아니라서 내가 더러운 핏줄이라서!" "싫어요! 이 몸에 있는 피 다 뽑아서 버리고 싶어! 살고 싶지 않아. 김 집사 딸로 살고 싶지 않아요. 아빠. 저 아빠 딸이 맞는 거예요. 아. 왜. 아. 왜 내가 아빠 딸이 아닌 거예요. 살고 싶지 않아…." 만약 조안이 장채리의 감정 노선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더라면 성에 차지도 않을 연기였을 겁니다. 막판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장채리에 보답하듯 조안 또한 혼신의 연기력으로 장채리를 독려하고 또한 위로했습니다. 나중에는 스스로 목을 잡고 뒤로 넘어가는데 순간, 이 드라마의 장르가 스릴러로 뒤바뀐 듯했을 정도였죠. 캐릭터는 추악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오로지 조안의 빛나는 연기만이 이 무대의 주인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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