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 수상한 그녀, 노인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원해서 노인이 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내게 은교는 한국판 롤리타가 아니다. 소녀를 향한 비뚤어진 욕망이라 불리기엔, 박해일이 분한 이적요는 제레미 아이언스처럼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노인의 늙은 몸을 내려다보다 꺼져가는 이적요의 한숨으로 시작된 은교는 소녀와 노인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근원적 공포와 혐오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되어간다.

 

작품성과 무관하게 잘 만든 영화가 더러 존재한다. 수상한 그녀는 그런 부류의 영화다. 듬성듬성한 전개와 허술한 마무리. 여러모로 아쉬운 개연성 탓에 명작 반열에 올릴 순 없어도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여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법한 영화다. 한마디로 영화가 참 착하다. 한국 코미디 영화 특유의 불쾌한 성적 농담이나 차별적인 표현이 없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인물조차 없다. 이 영화의 평점이 관객과 전문가들 사이에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 또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전문가에게 환영받을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두 시간의 유희 거리로는 손색이 없다. 이 영화 특유의 범용성을 돌이켜본다면, 최근 개봉된 작품 중 이만한 가족 영화도 없다고 생각한다.

 

 

 

오말순 여사(나문희 분)는 특별하지만, 그래서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보통의 대한민국 할머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만 죽자고 쫓아다니는 종의 아들에게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모르면서 내둥 복숭아만 선물하는 무심함에. 그러면서도 남 주기는 아까워 다른 여자에게 눈길 주는 꼴은 못마땅해 하는 적당한 이기주의. 신경 거슬리게 하는 여편네랑 머리채를 휘어잡고 나뒹굴어 싸우기도 하고 3만 원 조금 못 되는 파란색 꽃신값이 아까워 시장을 세 바퀴나 돌며 망설이는 그런 보통의 할머니다.

 

아무리 영화 속 주인공이라지만 며느리에겐 그저 매정한 시월드일 뿐인 오말순은 마냥 아들 지상주의에 며느리를 잡다가 퉁퉁 부어터진 얼굴도 알아채지 못해 응급실행을 시킨다. 이제 아무 쓸모도 없어진데다가 성가셔지기까지 한 어머니를, 심지어 노인 전문가라는 아들 현철이(성동일 분)조차 감당 못 해 요양원으로 보낼 궁리를 하니 지나간 세월을 서러워하던 할머니는 그녀가 그토록 동경하는 오드리 헵번 사진이 걸린 사진관 안에서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선물 받게 된다. 빌 게이츠의 재산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그것. 바로 청춘을 다시 한 번 경험해보는 것.

 

 

 

칠순을 넘긴 나문희 얼굴의 오말순이 사진관을 빠져나오며 솜털이 보송보송한, 스무 살의 심은경이 된 것이다. 오말순의 자아는 나문희의 것이지만 스토리의 90퍼센트 이상은 만 19세의 심은경이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녀의 얼굴을 하고 노인의 구성진 말투와 폼을 흉내 내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주로 시트콤이나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 프로에서 자주 본 것이라 낯설지 않다. 심은경은 유머에 사랑스러움을 덧붙인다. 오드리 헵번의 머리를 하고 복고풍 드레스를 입은 채 마치 로마를 유람하는 앤 공주님처럼 시장을 나빌레라 활보하는 심은경의 모습은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다웠다.

 

특히 노래 좀 한다는 설정에 손자가 리더를 맡은 반지하 밴드의 리드 보컬이 되어 나성에 가면을 부를 때면 그 뒤뚱뒤뚱 깜찍한 율동과 맑은 목소리가 마치 2004년의 문근영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어린 신부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교복을 입고 '난 아직 사랑을 몰라'를 열창하면서 군인 아저씨들의 마음을 휘어잡던 그녀. 아직 젖살이 남은 통통한 몸매와 앳된 얼굴마저 문근영의 전성기를 쏙 빼다 박았다. 문근영이 귀여움 하나로 2004년의 신드롬을 만들었듯 이 영화를 이끄는 원동력 역시 심은경의 사랑스러움, 그녀의 청춘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여움으로 무장한 영화지만 뜻밖에 이 작품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으나 서글플 정도로 나이 먹는다는 것의 두려움을 신랄하게 펼쳐내 보인다. 그것이 심은경의 청춘에 반사되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서른 살이 되면 죽어버릴 거라는 여대생의 다짐을 칠순 노인인 오말순 또한 같은 나이에 중얼거렸었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에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친구도 스무 살 아니 혹은 서른 살이 되면 그 직전에 죽어버릴 거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는 늙는다는 것, 노인을 향한 근원적인 공포증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영화 초반 노인의 이미지를 탑골 공원과 퀴퀴한 냄새라고 표현하던 대학생들처럼 우리가 노인을 경멸하는 것 또한 미래의 동지를 바라보는 공포감 때문일 것이다.

 

 

 

 

청춘 사진관을 다녀온 오말순은 스무 살 얼굴에 정신만큼은 칠순 노인 그대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그녀를 '신선하다.'며 동경한다. 까탈스런 취향의 피디는 물론 손자마저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어 위험한 사랑을 하는 장면에서는 얼핏 영화 백투더퓨처 1의 오마주가 느껴지기도 했다. 바로 이전까지 짐 덩어리 취급에 요양원으로 쫓겨날 신세였던,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오말순이 스무 살의 얼굴을 갖게 되자 너나 할것 없이 그녀를 원하는 이 서글픈 이중잣대가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며 한 번쯤은 울게 될 것이라 짐작했는데 그 눈물의 포인트가 다름 아닌 오말순의 아들, 반현철에게 나온다는 것 역시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오말순의 손자 반지하(진영 분)를 향한 최후의 헌신도 자식 사랑은 결국 내리사랑이며 어쩜 우리가 가진 청춘 또한 거저 생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젊음을 물려받은 것이라는 상념에 젖게 한다. 

 

 

 

심은경의 청춘 뒤에 가리어진 노화의 서글픔을 아이러니하게 수상한 그녀를 통해 되돌아본다. 거의 노인 패티시에 가까웠던 한승우(이진욱 분) 피디마저 일말의 감상이나 추측조차 없이 - 그 머리에 꽂힌 핀을 봤음에도! - 웃어넘기는 부분은 판타지로 무장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리얼한 현실이었다. 그가 '노인의 영혼을 립싱크하는 아이돌의 얼굴'을 찾아다닌 것처럼. 그래. 역시나, 만약 내가 신이라면 청춘을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두었을 것이다 - by. 아나톨 프랑스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Comment +3

  • 2014.02.25 19:13

    비밀댓글입니다

    • 반갑습니다.^^ 제 감상이 원작자님의 의도와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갔다니 제가 허투루 작품을 리뷰한 것은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재미를 위주로 한 오락영화임에도 의외로 서늘한 풍자적 묘사가 눈에 들어와 인상 깊었는데 제가 제대로 본 것이 맞았군요. 영화 초반에 하나같이 할머니의 영혼, 노인의 마음을 찾는 남주인공들의 대사가 참 인상적이었거든요. 우리 할머니가 너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던 손자 반지하와 노인의 소울을 립싱크할 수 있는 아이돌을 찾아보자던 피디의 말들이 마치 복선처럼 현실화되는 부분에서 뜻밖의 섬세함을 찾았었는데. 그럼에도 막상 오 할머니가 진짜 노인으로 돌아오자 누구도 그녀를 원하지 않는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완성된 영화도 재밌었지만 작가님의 의도가 그대로 담긴 작품 또한 궁금해지네요.

  • 아이 너무 재미당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