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영화

로보캅, (RoboCop, 2014) 영웅의 빈부격차, 빌려 입은 수트는 서러울 수밖에

 

 

철이 좀 들고나서 모든 영웅은 슬프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웅을 움직이는 조종사의 상처를 알게 된 거였다. 브루스 웨인의 메시아 콤플렉스, 악몽을 꾸는 토니 스타크. 하지만 더 나이를 먹고 보니 진짜 슬픈 건 정직해서 가난한 영웅이었다. 가여운 피터 파커는 그 능력을 갖추고도 전 재산이 730원인 프리랜서 사진가다.

 

 

 

그런데 여기 피터 파커보다 더 불쌍한 남자가 있다. 그 이름 하야 로보캅 그리고 알렉스 머피. 피터 파커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의 미국 경찰이지만 토끼 같은 아내와 여우 같은 아들을 가진 가장의 족쇄가 있다. 책임져야 할 군식구가 없는 피터 파커의 너름엔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그를 비참하게 하는 건 그의 능력은 그가 만든 능력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로보캅 아니 알렉스 머피는 알려진 영웅 중 유일하게 능력을 렌탈한 인물이다.

 

적당히 눈 감고 넘어가는 무용지물이 넘치는 경찰국에서 홀로 쓸모있는 경찰이라 오히려 눈총을 받는 열혈 형사 알렉스 머피. 이상하리만큼 경찰마저 쉬쉬하는 발론 일당을 동료 루이스와 멋지게 엿먹인 이후 그의 불운은 똬리를 틀었다. 그를 두려워한 마피아의 우두머리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자동차 폭탄을 설치한 것이다. 화염에 몸이 타들어 간 알렉스 머피는 시신을 부활한 원작 로보캅과 달리 머리와 가슴 그리고 오른손은 건질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두 서너 번 등장하는데 끔찍해서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세 부위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몸을, 울먹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알렉스의 얼굴이 그중 하나다. 수트 입기를 거부하며 죽음의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던 그는 로봇 신체를 제외하면 고작 세 덩이밖에 남지 않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이를 갈듯 부탁한다. "다시 입혀줘요."

 

그러나 알렉스에게 남은 것은 겨우 건진 신체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체계적으로 알렉스 머피의 인간성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였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그의 뇌였고 그의 가슴속엔 여전히 훌륭하게 뛰는 심장이 살아남았다. 그의 살아남은 손이 굳이 왼손이 아닌 오른손인 이유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져다준다. 오른손은 좌뇌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데 좌뇌가 담당하는 것은 논리와 이성이다. 원작에서는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오른손을 리메이크작에서는 도리어 살려두었다. 이것은 몸 대부분은 기계의 도움을 받을지언정 그의 선택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알렉스 자신이라는 의도가 아닐까.

 

 

 

기계인간 소재의 리메이크 작품이지만 영화의 연출은 은유를 주로 이뤄 상당히 감성적인데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이상으로 이 리메이크 영화에 리메이크된 기존 영화의 OST는 알렉스의 처절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해낸다. 아내와 춤을 추던 지난날의 아름다운 기억을 꿈꾸는 그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Fly Me To The Moon을 들으며 부활하는 장면이라든지 - 참고로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메카 시리즈의 걸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엔딩곡으로도 쓰였다 -  로봇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딱딱한 로봇 사령관 매톡스가 그의 인간성을 조롱하며 틀어댄 노래는 바로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양철 나무꾼의 테마송인 If I Only Had A Heart였다. 나에게 심장이 있다면이라니. 이 얼마나 잔혹한 농담인가.

 

알렉스 머피의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신체가 "심장"임에도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을 그의 테마송으로 쓴 매톡스 만큼이나 로보캅의 조물주는, 그들의 피조물이 심장을 가진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옴니코프 기업의 사장은 그와 손을 잡자마자 눈앞의 알렉스를 두고 몸값 농담을 한다. 내가 자네 몸에 투자한 돈이 얼마인가를. 짐짓 존중하는 체하지만 같은 인간을 마주 대하는 태도 같지가 않다. 그것은 결국 알렉스 머피의 수트가 그의 소유물이 아니며 대기업의 CEO인 토니스타크와 달리 수트를 빌려 입은 일개 소시민 알렉스는 소유주가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셈이다.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안타깝고 서글펐던 장면은 로보캅의 몸으로 가족과 재회한 알렉스가, 이런 아빠를 위해 농구 경기를 녹화해뒀다는 아들과 시간을 보내지도 못한 채 다시 실험실로 복귀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자의의 음식물 섭취가 아닌 타의의 약물을 투여받아야 하는 알렉스의 몸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족쇄가 있다. 얄궂게도 감독은 바로 전 장면에서 누워있는 알렉스에게 각종 호르몬과 약물을 투여하며 "매일 이것을 맞아야 해요."라는 대사를 넣는다. "항우울제도 투여해줘. 좋은 꿈 꾸게." 그를 배려한 노튼 박사의 전언이 오히려 슬펐다.

 

이 영화는 히어로물이면서도 그런 영화 특유의 미국 찬양이 없다. 오히려 미국의 공권력을 향한 촌철살인의 비판 의식이 엿보이는 영화다. 영화는 처음 이라크 현지에서 활약하는 옴니코프사 로봇 경찰의 활약을 보여주는데 쇼의 사회자 팻 노박의 찬사와는 달리 중동 국가 주민을 보호한답시고 감찰하는 과정이 지극히 권위적으로 비추어져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공영화된 경찰 인력을 사기업인 옴니코프와 그들을 지지하는 국회의원을 내세워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국민을 꼬드기는 모습은 미국 내에 팽배한 민영화 추진을 비난하는 어조로 읽혀 통쾌하기 짝이 없다. 특히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미국의 공권력을 찬양하는 팻 노박의 외침은 세계 경찰국가를 자청하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져 섬뜩했던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비춘 냉소적인 현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비록 영웅일지라도 피해갈 수 없는 자본주의의 냉혹함이다. 억만장자 배트맨과 아이언맨의 고민은 주로 과거의 트라우마나 내면 세계의 성찰에서 비롯되지만 가난한 영웅 로보캅의 고난은 낭만이 사라진 현실에서 나온다. 그야말로 먹고사는 고민 말이다. 가장의 무게, 눈 감고 넘어갈 수 없는 비리로 점철된 조직, 수트값을 놓고 내 인격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 토니 스타크의 수트는 내 자본과 내 능력으로 만들었기에 자비스가 탑재된 나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국회의원과 자본가의 철저한 이해타산으로 만들어진 알렉스 머피의 '빌려 입은 수트'는 감정과 인격마저 제한당하게 된다.

 

배트맨의 유산도 스파이더맨의 자가 능력도 아닌 모조리 렌탈된 수트와 능력이지만 고작 2퍼센트 남은 호르몬으로 자유의지를 되찾고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로보캅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이 시대가 바라는 진정한 의미의 영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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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답답이 M/D Reply

    닥터콜님의 글을 좋아하는 1인입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혜안도 혜안이지만 풀어나가는 글솜씨에 매번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또하나의 약속....에 대한 리뷰를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영화를 보고 그냥 콜님의 리뷰가 읽고 싶은 생각에 부탁드려봅니다.

    • 닥터콜 M/D

      또 하나의 약속. 한 번쯤 봐야지 하면서도 지나쳤던 영환데 다시금 일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조만간 짬을 내서 보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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