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세상의 모든 예비 모험가에게 바쳐진 작은 위로

 

 

이맘때였나. 재상영한 빨간 머리 앤에서 급기야 나를 울리고 말았던 내레이션 한 구절이 있다. 송곳을 닮은 블루엣 부인 댁으로 향하던 마차에서 마릴라의 청에 따라 부모님을 잃고 난 이후, 고아 소녀의 과거를 회상하던 앤. 그녀의 이야기는 종종 꿈꾸는 얼굴 속 망상 위를 머무느라 샛길로 빠지곤 했지만 마릴라는 드물게도 앤을 채근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사려 깊은 해설자의 목소리로 풀이된다. ‘앤의 이야기는 그녀의 상상 때문에 간혹 도랑으로 빠져버릴 때가 있었지만. 그것은 이 가혹한 과거를 회상하는 앤에게 있어 일종의 휴식 같은 것이었다고.’

 

아. 이 얼마나 서글프게 사랑스러운 이야기인가. 이를테면 우리가 낭만적이라고 말했던 앤의 상상력은 그녀의 고단한 삶을 잊기 위한 도피처였던 셈이다. 소공녀의 세라 크루가 ‘하는 셈치고' 라며 초라한 다락방을 공주님의 침실로 바꾸었듯이. 이야기의 주인공 월터 미티 또한 상상을 한다. 그것은 앤의 도피 행각이나 세라 크루의 마인드 컨트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족들에게 ‘멍 때리기’로 불리는 월터의 버릇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현실의 공간을 판타지의 세계로 바꾸는 것이었다. 회사 휴게실의 공간을 반으로 쪼개 눈 덮인 산등성이를 불러들이고 그 자신은 설원의 등반가가 되어 짝사랑 중인 직장 동료, 셰릴 멜호프에게 고백을 한다. 하지만 이토록 과감한 상상 안의 월터 미티와 달리 현실의 월터는 웹페이지 속 그녀의 사진에 하트 버튼을 누르는 일조차 망설이는 소심가였다.

 

때론 재수 없는 상사에게 펀치를 먹이기도 하고 차가 달리는 도로 위를 스케이트보드처럼 미끄럼 타는 월터의 기상천외한 상상들. 그 화려한 상상력에 마냥 탄성을 자아낼 수 없는 까닭은 그의 상상이 결국 이룰 수 없는 욕망의 대리만족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고 그것은 월터만이 아닌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해당하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모험가의 욕망을 차단하고 타인의 욕망을 현상하는 16년 차 포토 에디터 월터 미티의 삶은 안전한 만큼 공허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늘 그러하듯이 월터의 버릇은 놀림거리가 된다. 상상에 빠져 지각을 하고 화관을 벗어내지 못한 앤이 선생님에게 모욕적인 놀림을 듣고 학교를 그만뒀던 것처럼. 라이프 매거진의 신조조차 기억 못 하는 새 사장은 근본적으로 월터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월터의 행동을 시시콜콜 관찰하며 힐난하던 그에게 월터 미티는 데이빗 보위의 노래처럼 우주의 괴짜 같은 인간일 뿐이다. 물론 월터는 빨간 머리 앤처럼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는 행동력조차 갖추지 못했다. 이런 그에게 한 가지 희망이란 ‘우주 비행사 톰’은 무척이나 진취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라고 응답해주는, 아름다운 그녀 세릴 멜호프의 응원이었다.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를 평가해보라면 초라해지기 이를 데 없다. 호흡조절이 고르지 못해 관객 대부분이 초장에 잠투정을 해댈만한 영화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너무나 원론적이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이 작품을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후반부에 보상처럼 펼쳐지는 숀 오코넬이라는 사람의 인간성이며 하나는 월터를 둘러싼 유사관계의 세밀함이다.

 

모히칸 머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안고 있는 유년 시절의 월터 미티. 세릴은 이런 파격적인 머리를 부모님이 허락했느냐고 놀라지만 그는 도리어 어린 아들의 머리를 손수 밀어주신 분이 아버지였다고 말한다. 상상으로 대리만족할 필요가 없었던 유년의 어린 모험가 월터의 정체성은 모두 아버지의 독려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관계는 16년간의 파트너, 사진작가인 숀 오코넬과 필름 현상가 월터 미티의 관계 속에서 되풀이된다.

 

 

 

그를 모험가로 키워냈던 아버지의 독려는 이제 함께 찍은 사진 외에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숀오코넬은 마치 아버지의 부활처럼 사진 속에서 손짓하며 그를 모험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결국, 월터 미티는 모험의 정수가 담긴 25번째의 사진을 찾아, 사진 속의 그가 전하는 손짓의 이끌림을 따라 그린랜드로 떠난다. 라이프사의 메시지를 관통하며 표지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드디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 유사 부자 관계의 대물림이 흥미로운 것은 월터의 자극제이자 그를 슈퍼맨으로 상상하게 하는 월터의 뮤즈, 세릴의 아들에게도 그대로 되풀이 된다는 점이다. 멘토가 없어 성장하지 못했던 그녀의 아들에게 과격한 스케이트 보드의 기술을 가르치며 모험심을 독려하는 모습은 그가 아버지에게 배운 것. 혹은 숀오코넬에게 자극받은 것이었다.

 

비록 이런 모험가를 삶의 틀 속에 가두고 파파존스 유니폼을 입힌 채 컵을 치우게 했지만 꿈과 모험의 세계에서 헤매다 놓쳐버린 현실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한 월터가 결국 어머니가 챙겨준 1할의 현실로 완벽해지는 과정 또한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무엇을 해도 다치지 않는 상상 속의 모험과 달리 현실의 모험은 싫은 것과 위험한 것을 모두 포함한 것이기에 현실을 온전히 등한시할 수가 없음을 그의 어머니는 일깨워주고 있었다.

 

 

 

비록 모험을 주된 이야기로 담고 있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는 모험하지 않는 삶을 조롱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 영화가 담은 최후의 아름다움은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모험을 상상이라는 대리 체험으로 남겨두고 타인의 모험을 현상중인 수많은 예비 모험가들에게 바쳐진 위로였으니까.

 

그가 모험을 떠난 동안 재수 없는 상사의 공격을 그대로 감당했을 후배와 이 정도의 애프터서비스라면 연간 천 달러를 내도 아깝지 않겠다 싶었던 중매 사이트, E 하모니. 심지어 외모마저 닮은 그들이 모험가 월터의 삶에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를 살펴보는 것 또한 이 영화의 깜찍한 재미다.

 

마치 카운슬러처럼 요즘도 상상을 하나요? 라고 묻는 E하모니의 사장에게 월터는 신기하게도 최근에는 상상하는 일이 줄었다고 답한다. 모험이 그의 삶으로 녹아들었기에 상상으로 대리만족할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앤이 더 이상 부풀린 소매를 상상하지 않아도, 빨간 머리를 싫어하지 않아도 되는 풍요로운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그녀의 상상 또한 줄어든 것처럼.

 

 

 

 

 

유년시절 월터의 아버지가 그의 모험심을 독려한 것처럼 숀오코넬은 파파존스와 Life 안에 갇혀있던 월터의 모험심을 이끌어냈다. 아버지, 월터미티, 숀오코넬. 세 사람에게 흐르는 뜨거운 모험가의 피.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으로 담아두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순간을 직접 눈으로 새기는 것. 그것이 바로 모험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숀 오코넬은 진정한 모험의 순간엔 사진가의 탐욕마저 내려놓는다. 그는 진짜 모험가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니까.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To see things thousands of miles away, things hidden behind walls and within rooms,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draw closer, to see and be amazed”


이 글을 누르시면 닥터콜의 새 글을 구독+해서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공감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추천을 눌러주세요(로그인불필요)
신고
  1. 시현 M/D Reply

    한번 꼭 찾아봐야 할 작품이네요

알림

이 블로그는 구글에서 제공한 크롬에 최적화 되어있고, 네이버에서 제공한 나눔글꼴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카운터

Today : 898
Yesterday : 1,663
Total : 35,562,599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