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리뷰

오로라공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대사

 

 

굳이 따지고 들자면 역대 임성한의 작품 중 이만큼 조신한 드라마도 없었다. 이 드라마는 인어아가씨의 아리영처럼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그의 내연녀 뺨을 치고 깨진 병으로 협박하는 자극이나 드라마 하늘이시여처럼 '내 시어머니가 친어머니' 수준의 기상천외한 소재, 혹은 신기생뎐처럼 여주인공의 직업을 기생으로 내세우지도 않았다.

 

불륜도 없고 복수도 없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풍비박산 난 세라크루의 역경이나 시집살이의 서러움쯤이야 사실 일일드라마의 중간 보스급도 되지 않을 소재다. 그런데 말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임성한의 드라마라 할지라도 오로라 공주만큼 불편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남녀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이며 나름의 교양까지 갖춘 평범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임성한 작가가 내세우는 상식이나 보편적 애티튜드가 시청자에겐 도무지 생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라공주에서 강요하는 상식과 보통의 감성이 대중에겐 일반적 경험이 아니다. 정상이 아닌 것을 정상으로 그려놓고 있으니 섬뜩함이 더해진다. 미친 사람 한둘이 악역을 담당하여 날뛰는 막장드라마는 그저 분노하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임성한의 오로라공주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건전한 분노가 생성되지 않는다. 시누이들에게 둘러싸여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오로라를 보면 애처로운 심정이 들다가도 별안간 악에 받쳐 "형님 신장 검사받아보세요. 분명히 이상 있을 거예요!" 라고 외치는 그녀를 보면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앞선다. 여주인공의 대사가 아니라 귀신 들린 사람의 방언 같다.

 

시청자가 느끼는 분노 이상의 섬뜩함 그리고 기이함은 드라마 전체를 아우르는 임성한 작가의 종교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침대에 누운 남동생을 누나 셋이 둘러싸고 기도를 외는 이 기이한 관습엔 심지어 반야심경과 주기도문을 섞어 만든 야릇한 규칙마저 곁들여졌다. 오로라가 의문을 표하자 셋째 시누이는 생긋 웃으며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세계를 끌어들인다.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 못 봤어? 신은 결국 똑같은 거야."

 

 

 

연기 천재 기타지마 마야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 유리가면은 소위 끝나지 않을 이야기로 통한다. 팬들 사이에서 죽기 전에 완결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연재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에 태어난 캐릭터가 전혀 나이 먹지 않은 얼굴로 휴대전화를 쓴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더딘 연재 탓에 이런저런 추문 또한 쏟아져나온다. 그중 하나가 작가가 이상한 종교에 빠져 신의 계시를 받을 때만 만화를 그린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만화의 전개를 보면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이 만화의 후반 전개는 줄곧, 홍천녀라는 연극의 상영권을 두고 다투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유리가면이 서술하는 홍천녀의 스토리가 참 괴이하다. 신을 투영한 인간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남주인공은 부처의 혼을 담고 있단다. 심지어 여주인공 마야에게 홍천녀를 이해시킨다는 핑계로 홍천녀 세계관을 학습시키는데 만화의 대사가 아닌 종교인의 설교처럼 강박적이다. 물과 불과 바람과 대지를 거슬러 우주를 관장한다는 홍천녀. 입이 떡 벌어진다. 이쯤 되면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오로라공주를 보는 것처럼.

 

 

 

전혀 다른 장르를 갖고 있고 대중의 기대치 또한 다르지만, 적어도 작가의 종교관이 소재를 넘어 작품을 지배하는 세계관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큼은 유사하다. 심지어 그 종교관이 그리 대중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신과 신을 결합하고 자연을 의인화하여 그 속에 내가 깃들어있다는 정신. 임성한 작가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암세포마저 우리의 생명이라는, 기상천외한 사고관을 설파했다. 여태껏 오로라공주를 보면서 느낀 그 모든 기이함, 괴상함을 통틀어 넘버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엽기적인 대사였다. "암세포들도 어쨌든 생명이에요. 내가 죽이려고 하면 암세포들도 느낄 것 같아요. 이유가 있어서 생겼을 텐데."

 

혈액암 4기의 설설희를 약혼녀 박지영은 기다려주지 못했다. 이전에도 말한 바 있듯 이 둘은 애초에 러브라인이 성립될 수 없는 관계라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 또한 분명 아름답진 않았지만 모질다고 욕할 수도 없었다. "열심히 치료받아요. 힘들겠지만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차라리 대사만큼은 박지영의 것이 정상이다. 오히려 비정상은 설설희의 대사였다. 슬픈 눈으로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설설희는 여전히 젠틀했지만 암세포에게마저 매너를 지킬 줄은 몰랐다.

 

 

 

"치료 안 받아요. 인명은 제천이라잖아요. 죽을 운명이면 치료받아도 죽어요." 박지영의 응원과 달리 설설희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회생 불가능한 상태라면 모를까 드라마에서도 50퍼센트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데. 혹여 수술의 결과가 두려워서일까. 하지만 설설희의 치료 거부 이유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암세포들도 어쨌든 생명이에요. 내가 죽이려고 하면 암세포들도 느낄 것 같아요. 이유가 있어서 생겼을 텐데. 원인이 있겠죠. 이 세상 잘난 사람만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니듯이 같이 지내보려구요." 아. 임성한 작가의 기묘한 종교관은 모든 신을 결합시키고 모든 생명체에 사고가 잠식한다고 주장하더니 심지어 암세포마저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의 소중한 생명체라 설득하고 있었다. 설설희라는 캐릭터의 선량함을 관철시키려다 삐끗했던 것일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임성한 작가의 이상한 사고방식과 종교관으로 그토록 멋있던 설설희마저 괴이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어요. 내가 살 운명이면 어떻게든 살게 돼 있는 거예요. 나 살자고 내 잘못으로 생긴 암세포들 죽이는 짓 안 할래요." 이 대사대로라면 설설희가 먼저 치료해야 할 곳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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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여사 M/D Reply

    저도 어제 설설희 대사듣고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화까지 올라오더라구요
    님의 글에 백퍼 공감 합니다

  2. 김경지 M/D Reply

    설설희의 대사는 작가의 황당한머릿속이나 위에서 말하는 종교감 도 틀린말을 아니겠지만 제생각으로는 설설희의 이루어질수없는사랑에대한 자괴감이나 포기상태의 대사아닐까요 암세포도 생명이라는말이 황당하긴하지만 이도저도 안되고 사랑도않는여자와부모때문에결혼도 마땅찮은데 암이라니 자살하고싶어도 못하는심정으로 이럴바엔 잘됐다하는 포기성대사아닐까요?
    이런말도있잖아요 널만나니 세상이아름답고 살만해졌다.그런오로라를잃으니 살아갈 힘도 살이유도 모르겠는거죠 그런복선은 설설희가 노래방에서 노래선곡에서도 나옵니다

    • 암튼 M/D

      암환자들에게 욕처맞을 대사죠,,임성한 같은 작가는 공중파로 세상을 어지럽히며 떼돈을 버는,,,욕나옴,,,

    • 이카루스 M/D

      포기했다고 저런말을 하는경우는없죠 님말도 암세포도생명이예요 처럼 황당하군요

  3. 신울보 M/D Reply

    암세포도 생명이니 어쩌니 그렇게 말하는거면 그럼 암에 걸린 다른 사람들이 암치료 받는게 나쁜 행위라는거네요? 암걸린 사람들은 불쌍한 암세포를 위해서 그냥 죽으라는 대사잖아~ 웃긴다 암홧자들이 보면 살수 있는 희망을 저버리게 하는 대사임 작가나 설희 뭘 알고 대사쳐라

  4. Chae M/D Reply

    설희마저 이미지망쳐주자 작정한것같네요~
    작가는 정말 뭥미?
    그분이 들락...널뛰고있나보딘

  5. 대연동청치마 M/D Reply

    저부분을 못봤었는데 그런대사를 설희에게 시켰다니 ㅠㅠ 우리의 설희가 괴이한캐릭터가 되었네요 그냥 오로라못잊어 죽는다고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게 해주지 저게뭐래요 ㅠ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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