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그래비티는 영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유익한 영향 중에서 가장 생산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그것은 바로 돈 주고도 못살 간접경험이죠. 이토록 서슬 퍼런 우주 유영의 대리체험이라니. 또한 그래비티는 퍼시픽 림과 더불어 매니아가 생산자로 성장할 때 어느 정도의 힘이 발휘되는가를 증명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메카 매니아의 한풀이라 느껴졌던 퍼시픽 림. 그리고 우주 비행사를 꿈꾸었던 남자의 우주적 매니아성이 발현된 영화가 바로 그래비티죠.

 

 

 

그래서 관객은 감독이 기원한 "카메라를 우주로 들고 가 직접 촬영한 듯한 느낌"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시 부유하고 창의적인 매니아의 덕심은 전 세계를 이롭게 한다니까요. 형체 없는 미지의 어둠을 동글동글 유영하는 산드라 블록.. 하지만 이 영화가 수작을 넘어 걸작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진 것은 1억 달러의 제작비나 경이로운 20여 분의 롱테이크씬과 같은 기술력뿐만이 아닙니다. 그래비티가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인 이유는 그 어떤 우주 영화보다 함축적인 메시지를 담은 각본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니아의 궤적이 느껴지는 상징적 메시지를 흩뿌려두었음에도 일말의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스토리에 치중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담백한 영화라고 느껴질 정도죠. 이 영화의 제목인 그래비티는 막상 영화 속에선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만큼 사무치게 중력의 존재감을 되새겨본 경험 또한 처음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중력은 갖가지 상징적 의미로 등장하는데요.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라이언 스톤과 매트 박사의 로맨스 아닌 유대감이었습니다. (그들을 헐리우드 로맨스로 만들지 못해 안달 났었다는, 워너브라더스사의 경악스러운 센스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라이언이 마치 탯줄 같은 연결 끈으로 매트에게 묶여 멘토링을 받는 광경. 붙잡아두는 것. 바로 인간이 탄생하기 전부터 선사 받은 생명의 기원이죠. 덧붙여 영화 속에서 중력은 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기도 합니다. 멘트를 잃은 라디오와 목적이 없는 드라이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의 상태를 무중력 공간의 침묵으로 묘사한 감독의 대범한 표현력에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비티의 여주인공 산드라 블록은 제작진이 원한 첫 번째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제작진은 처음 안젤리나 졸리를 원했고 그다음엔 나탈리 포트만을, 그리고 두 번의 퇴짜로 선택된 주인공이 바로 산드라블록이었던 셈이죠. 그녀여서 다행이다 싶은 것은 무엇보다 아직까지 제겐 스피드의 산드라 블록이 주는 상징성이 존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타의에 의해 무의미한 드라이브를 반복해야 했던 스피드의 그녀가 그래비티의 유영자라니..

 

 

 

오락 영화의 관점으로 볼 때 그래비티는 분명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영화는 저 하늘의 별만큼 많아도 인생관을 돌이키게 하는 영화는 일년에 한 번도 만나기 어렵죠. 그래비티는 분명 그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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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6

  • 2013.10.24 09:46 신고

    로맨스나 회상씬을 뿌려댔다면 그저 평범한 영화가 되버렸을텐데...워너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뚝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 우주를 유영하며 들리는 긴박한 숨소리가 더 영화를 긴장감있게 보게 한 것같아요~ㅎㅎ

  • 영화 시작부터 영화가 종료되기 직전까지 지상을 한 번도 안보여 준것은 좋은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충분히 우주를 느끼고 무중력을 대리체험할 수 있게끔 해주었죠, 혹여나 휴스턴 지상통제 센터가 중간에 나왔다면 대리체험에 관객들이 집중하는데에 방해가 되었을 겁니다. 제 블로그에도 그래비티 관련 글이 있는데 방문 부탁드립니다.

  • ㅇㅇ 2016.01.17 10:30 신고

    인생관을 돌이키게 하는 영화라는데서 공감해요, 인터스텔라, 마션등 비교되는 sf영화들이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제게 최고의 sf영화로 기억되는 영화는 그라비티에요..! 보고 나서의 여운을 잊을수가 없네요..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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