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옥희 엄마의 기도는 한 대목에서 막혀 맴을 돌고 있었다. 이젠 쳐다만 봐도 낯이 뜨거워지는 사랑방 손님의 존재가 그녀에겐 유혹이며 사탄이었으니까. 중학 시절 교과서의 기억을 빌려 펼쳐다 본 주기도문은 거의 마지막 구절에 가장 애틋한 외침을 남겨두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보다 근원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원리는 같다. 사탄의 시험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자신과 같은 성질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증명일 뿐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하는 것일까? 딱히 이득을 볼 것도 아니고 오히려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어느 생물은 어미의 살 속에서 태어나 그 살덩이를 뜯어먹으며 자라나 어미가 죽고 나서야 빛을 보게 된다. 이것에 바로 생명체의 본능이자 기원이다. 종족 번식의 욕구. 혹은 열망. 그것은 바로 증명. 오. 신이여. 여기 나와 똑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섯 명의 아버지를 가진 소년 '화이'의 설정을 들었을 때 문득 어느 프랑스 영화의 제목이 스쳐 지나갈 만큼 달콤한 상상을 했지만, 그 결과는 피비린내가 풍길 만큼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화이는 유괴된 소년이었고 자신을 유괴한 다섯 명의 아버지를 가졌다. 물론 그들 또한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훈육을 한다. 다만 장난감 대신 칼을 쥐여주고 사회성이 아닌 살육을 가르쳤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모두 화이에게 물려주었다. 화이는 나무의 뿌리처럼 아버지들의 양분을 빨아들이며 자라난다.

 

 

 

캐릭터 화이가 아버지의 양분을 빨아들인 것처럼 그를 연기한 배우 여진구 또한 다섯 선배님의 각기 다른 연기관을 꼬약꼬약 받아먹고 성장한 것 같다. 영화 화이의 캐스팅은 감독이 배우의 연기력에 거는 기대치가 얼마인가를 보여준다 싶을 만큼 호화롭기 짝이 없다. 내가 여진구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럼에도 무색하지 않은 만 16세 소년의 존재감이다. 등장인물과의 가장 많은 1:1을 주고받은 여진구는 각 신마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애티튜드를 갖췄다. 그는 결코 극의 치어리더나 마스코트 따위가 아니었다.

 

 

 

특히 김윤석의 연기력이란 축약의 미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포스터에도 암시된 그분과의 대결에서 팽팽하게 맞서는 1997년생 따위가 나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보다'나 '만큼'은 아니더라도 결코 초라하진 않았다. 이토록 완숙한 열일곱이라니. 아마 이 아이는 10년 뒤엔 대중을 놀라게 할 것이고 그리고 또 10년 뒤엔 대중을 압도할 것이다. 소년의 미래가 두려우리만큼 이미 완성된 배우 여진구의 존재감은 현재 충무로를 휘어잡은 하정우의 영향력을 연상하게 했다. 포스트 하정우로서의 가능성.

 

화이의 부친들이 그러했듯이 제작진 또한 영화의 양분을 먹고 자라난 그에게 성취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배우 여진구의 존재는 화이의 또 다른 결과물이다.

 

 

덧. 눈치가 좀 보이더라도 영화의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훑고 나오십시오. 이 영화의 감상은 엔딩 크레딧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엔딩 크레딧을 무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감정은 분명 천양지차일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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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4

  • 화이에서의 여진구씨의 연기변신 기대되네요~ㅎㅎ

  • 알든 2013.10.11 23:20 신고

    마지막 영상으로 영화가 비로소 완성이 되더군요. 끝까지 보고 나오니 러닝타임 내내 떠돌던 생각들, 아마 인간으로서는 단정하기 힘든 물음들에 대한 장준환 감독의 생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닥터콜님이십니다ㅎ 끝까지 보고나온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의 차이가 분명할 거 같아요 ㅎ

    • 맞습니다. 적어도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그저 명함의 역할이 아닌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관객이 많아서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던 도덕적 관념과 분노, 그리고 의문의 불편한 감정들이 영화의 엔딩크레딧 하나로 모조라 사그라들더군요.

  • 설레발 2013.10.23 08:37 신고

    장준환 감독 지구를 지켜라의 엔딩크레딧이 생각나네요..장감독 보면 다작의 허무함도 느껴지고..꼭 보곳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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