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생각해보면 숨바꼭질은 참 기괴한 놀이다. 숨어서 떨고 있는 사람을 잡아낸다니. 강도의 시점으로 바라본 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아무렇지 않게 불러댔던 노랫가락도 어딘가 처량맞다. 미묘하게 뒤틀린 단조의 섬뜩한 멜로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놀이의 새로운 발상이 공포가 되는 것처럼 영화 숨바꼭질은 일상의 평온을 뒤틀린 각도로 관객의 내면에 꼭꼭 숨어있는 약점을 발각해낸다. 그것은 바로 불안이다. 내 것을 뺏기는 것에 대한 불안. 온전한 내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의 불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래서 영화 숨바꼭질은 무서울 수밖에 없다. 아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 더 맞겠다.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남이 살고있는 집에 몰래 들어와서는, 몸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 소재는 분명 다르지만 뉘앙스는 어쩐지 기옘 모랄레스 감독의 '줄리아의 눈'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강박증을 앓고 있는 성수(손현주 분)는 어느 날 피폐한 몸차림으로 기이한 소리를 내뱉는 가게 앞 걸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 좋고 다정하게만 보였던 성수의 내면 속 어둠을 송곳처럼 찔러 끄집어낸다. 걸인의 지저분한 행색과 쏟아져나온 구정물. 그의 지저분한 입 주변이 성수를 미치게 하는 것이다.

 

더러움의 추억은 성수에게 그의 잊혀진 유년시절의 형을 떠올리게 했다. 형의 존재는 성수가 청결을 사수하는 이유였다. 걸인의 더러움은 암시처럼 성수에게 형이 실종되었다는 비보를 남기며 다가선다. 철거 직전의 남루한 아파트. 마치 형을 닮은 그 더러운 아파트는 마치 죽음을 예감한 듯 삶을 체념한 주민들에 의해 도무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형의 흔적을 파헤치던 성수는 점차 이상한 직감에 다가서게 된다. 형을 두려워하는 주민. 그의 옆집에서 죽음을 맞은 아가씨. 형의 서랍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생리대와 브래지어. 이 아파트에서 형은 공포였고 혐오였다. 성수가 그토록 진저리를 치던 그 이미지 그대로.

 

 

 

숨바꼭질은 개봉 전 모니터 시사회에서 역대 최고라는 높은 만족도를 기록했다. 그 만족도는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의 배턴을 물려받아 한국 영화의 흥행 노선을 뒤따르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평론가의 평점은 그리 높지 않았다. 거의 바닥을 기는 수준이랄까. 관객은 찬성하고 평론가는 반대한 영화. 이 미스터리는 숨바꼭질을 끝까지 보는 순간 다 풀린다. 감상 직전의 쾌감은 상당하지만, 관람 이후의 여운은 그리 크게 남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 장면은 돌이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데 (가령 112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있는 것 같았던 손현주라든지 전미선이라든지 아이들이라든지) 이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허술하게 보이게 하는 틈이다.

 

 

 

발상 자체는 참신하지만 다 알아챌 만한 곳에 산재한 공포의 나열들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숨바꼭질이 제시한 두 가지 공포의 노선은 보는 순간만큼은 꽤 농밀한 두려움을 안겨준다. 강박이라는 소재를 영화의 초기 이미지로 끌어내 속이 울렁거릴 만큼 불편한 기분이 들게 하는데 이것은 관객에게 상상을 할 수 있는 범위만큼의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관객을 불안에 떨게 하는 씨앗이 된다. 그 외의 말하자면 물리적인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갖가지 불편하고 음습한 소리와 가혹하기 짝이 없는 선혈 낭자한 씬들은 보다 직접적인 공포로 관객의 마음을 섬뜩하게 한다.

 

 

한 가지 더, 숨바꼭질이라는 영화가 두려운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히스테리라고 할 수 있을 내 집 마련의 집착을 공포로 비틀어 바라봤기 때문이다. 초인종 아래 새겨진 암호와 같이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 가진 자는 내주기 싫어 두렵고 못 가진 자는 서러워서 또한 두렵다. 살인으로 변해버린 무주택자의 분노. 그것은 유령도 남의 일도 아니다. 언제든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의 두려움만큼이나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그 세 번째 공포와 직면한 순간 이 영화의 여운은 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다. (뺏기기 싫으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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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4

  • 리뷰 잘 읽고 갑니다~ㅎㅎ 리뷰만 봐도 영화가 정말 무섭네요 ㅜㅜ

  • 순작 2013.08.25 10:16 신고

    손현주가 경찰에 신고하려했는데 핸드폰이 안돼서 빌리려고 했던 걸 봐서는 인물들이 112없는 세상으로 생각한 건 아닌 거 같아요~~~다만,이후엔 신고할 틈도 없이 급박하게 돌아간 듯? ㅎ 보면서 느낀 건 역시 미친 사람은 힘이 세다.ㅜㅜ

  • Eunjoo 2013.08.28 23:55 신고

    이 영화 보고 싶어서 닥터콜님 리뷰도 안보고 ㅎㅎ 드뎌 오늘 봤어요 말씀대로 초반 절반은 스트레스 받을만큼 긴장하며 봤어요 허무맹랑한 공포보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의 공포가 더 무섭잖아요ㅠㅠ 다만 후반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긴장이 풀어지는 게 좀 아쉬웠어요

    • 초반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공포를 성장하게 하는데 후반부의 공포가 상상과 맞닿아있지 않아서 좀 시시한 느낌은 있었어요. 영화 초반에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지향하다가 후반부에 다소 유치할만큼 망가지는게 재밌더라구요. 능력밖이었다기보다는 스스로 망가짐을 선택한 느낌이었달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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