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영화

레드: 더 레전드 (Red2, 2013) 꽃보다 할배 그리고 인솔자 이병헌

 

할배판 어벤저스, 영화 익스펜더블 2에서는 웃기면서 슬픈 대사 하나가 나온다. 근사한 날것을 준비해주겠다던 약속과 달리 폐품에 가까운 고물 비행기를 가져다 놓은 브루스 윌리스. 박물관에나 갖다 놔야 할 고물이라는 항변에 실베스터 스탤론은 툴툴 웃으며 말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잖아." 레드: 더 레전드는 할배판 어벤져스 같은 영화다.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 그리고 안소니 홉킨스. 어째 요 몇 년 사이 할리우드의 유행 아닌 유행이 되어버린 듯한 컨텐츠랄까. 왕년의 스타들이 알비 백! 하며 나 아직 안 죽었소 엄지를 치켜드는- 레드2는 그 시류에 흥미로운 볼거리를 하나 더 투입했다. 단순히 왕년의 액션 스타만이 아닌 각 분야에 굵직굵직한 획을 그은 장르의 전설들을 한 무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55년생의 브루스 윌리스를 아무리 전설이라 총칭해도 노쇠한 체력마저 동결시킬 순 없었다. 젊은 날마냥 몸빵이 불가능한 할배들을 모셔다 놓고 액션 영화를 만들어야 했기에 영화는 부수적인 볼거리를 총망라하여 그들을 그럴듯한 액션 스타로 보이게끔 연출한다. CG와 막대한 물량 공세 그리고 젊은 피를 수혈시키기도 하며. 이렇게까지 무리해야 한다면 그냥 젊은 배우를 쓰는 것이 낫지 않겠나 의문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가진 두 가지 미덕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그들을 써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노련함 그리고 친숙함이다.

 

 

 

코믹 액션 영화 레드는 후자보다 전자의 쾌감이 더 크게 좌우하는 영화다. 대사나 상황이 웃게 하기도 하지만 그 웃음을 이끌어나가는 포인트는 무엇보다 웃긴 상황을 연출하는 배우의 친숙함 때문이다. 존 말코비치의 소품처럼 앙증맞은 개그 세레모니들. 격전지를 바꿀 때마다 관광객 흉내를 내며 그 심각한 상황에 러시아라는 텍스트가 여기저기 박힌 옷을 꼬박꼬박 입고 나오는 귀여운 디테일이라니.

 

55년생의 브루스 윌리스가 바보처럼 사랑놀음에 심취했어도 그리 느끼하지 않았던 것은 특유의 이맛살 찌푸린 반가운 표정으로 허니~를 불러주었기에. 어디 그뿐인가. 엘리자베스 2세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따낸 헬렌 미렌이 정신병동에서 왕관을 쓰고 "나는 영국 여왕이다!"를 외치는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패러디 개그. 한니발 렉터 박사의 물리적 임펙트는 다소 쇠약해졌어도 혼을 쏙 빼놓는 그의 공격성은 여전했었다. 아, 이런 방향으로 공포를 표출할 수 있구나 싶어 반갑기 그지없었던 안소니 홉킨스의 또 다른 이면.

 

 

 

세계적 킬러에게 쫓기고 정부의 표적이 된 위기의 순간에도 파리와 러시아 그리고 영국을 마치 관광하듯 어슬렁대는 액션 할배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깜찍하기 짝이 없다. 아마 조금 더 젊은 캐스팅이었다면 이런 재미는 시도부터가 가당치도 않았을 것. 어디 그뿐이던가. 꽃보다 할배의 관광을 보다 스릴 있게 인솔하는 젊은 피 이병헌의 활약은 기대 이상의 귀여운 볼거리였다. 이제 막 새신랑이라고는 해도 이병헌도 70년생. 중견 배우의 영역에 슬쩍 발 담글 나이인데 55년생의 현역들과 호흡을 맞추니 그야말로 '베이비'더라.

 

 

 

대포급 위력의, 그의 말대로라면 가장 아픈 총을 들고 나와 쑥대밭을 만들더니 내 비행기 타령, 박살 낸 창문의 유리 조각을 구두 밑창으로 우아하게 털고 들어와 또 내 비행기 어딨어 꿍얼거리는 미스터 한의 깜찍한 반전 매력. 멜로면 멜로 코미디면 코미디 어디 그뿐인가. 달콤한 인생에서 한국 배우에게도 이런 느와르 이미지가 나오는구나 싶었던 근사한 총질과 휘날리는 액션. 몸싸움도 수준급이라 적을 수타로 물리치는 손맛은 익스펜더블2의 몇 분만으로도 제대로 된 타격감을 보여줬던 이연걸 못지않더라.

 

 

 

 

울끈불끈 초콜릿 같은 조각 몸매에 브루스 윌리스와 존 말코비치가 몸서리치는 세계 최고의 킬러라는 재미난 설정도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외국 영화에서도 이병헌 목소리는 단언컨대 이병헌. "어떻게 해줄까? 어떻게 죽여줄까?" 속삭이는 그의 꿀 같은 목소리는 바로 이병헌이 제안한 애드리브라고.

 

 

 

 

돌아온 오빠야가 녹슨데 없이 건재하길 바랐다. 추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돌아온 7080이니 잊지 말자 1997 따위 그리 영롱한 외침으로 느껴지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노병은 흠집이 없는 추억이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다소 녹슬고 낡아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추억은 현재를 쌓아서 전설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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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unjoo M/D Reply

    회사 사람들과 보러 간데다 제 취향에서 벗어난 영화
    그렇지만 왠일인 걸, '할배'들의 전성기를 기억하기에 금세 빠져들었어요 ㅎㅎ 말코비치가 이렇게 웃길 수 있는 배우였구나! 하면서요 ㅋㅋ
    물론 단언컨대 이병헌도 이병헌이었구요^^

    • 닥터콜 M/D

      존 말코비치 정말 귀여웠죠?ㅎㅎ 그 심각한 장면에서 관광객 표시 역력히 나는 옷들만 걸쳐입은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ㅋㅋㅋㅋ 3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정말 유쾌하게 본 영화였어요. 이병헌의 베이비 같은 모습도 너무 귀여웠구요.ㅠㅠ 이마에 얼음 주머니 대고 있을때..어리구나 싶더라구요 ㅋㅋ

  2. cc M/D Reply

    영화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이병헌 대박이었고요.. 비행기 유머는 정말 빵 터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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