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콜의 미소년 미소녀 탐구생활

 

끝까지 봐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포스터만 봐도 대략의 감성이 짐작되는 영화가 있지요. 영화 감기는 단연코 후자 쪽의 작품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제목, 출연 배우, 포스터, 그 포스터에 박힌 카피를 보고 어떤 영화가 될는지를 미루어 짐작을 했었죠. 그 결과는 기대치를 깎아내리는 악평과 조롱, 조소가 대부분이었고요. 미리미리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 가운데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은 없다시피 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대한민국 3대 재난 영화 긴급 조치 19호의 재림이라는 극악의 평을 남기기도 하셨더군요. 저 또한 배우 여섯 명의 절박한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꽉꽉 채운 포스터를 보면서, 외면하거나 머리를 비운 고블린의 감상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오해했었어요.

 

컨테이너에 가둔 불법체류자를 홍콩에서 한국으로 이동시키는 동안 한 보균자가 퍼뜨린 조류 인플루엔자는 큐브 안을 죽음의 공간으로 물들입니다. 상자 안의 심각성을 알 리 없는 심부름꾼 이희준은 거친 어조로 동생 이상엽에게 농지거리를 하다가 열어젖힌 컨테이너 안의 시쳇더미를 발견하고 기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그도 그 이상의 아비규환이 펼쳐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한 무더기의 시체가 퍼뜨린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도시 하나를 삼켜버립니다.

 

 

 

컨테이너- 하니까 말이죠. 이 영화는 최근 막을 내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월드워Z와 닮아있는 구석이 많습니다. 재난의 재료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점. 전이의 두려움. 인간이 같은 인간을 두려워하며 옮겨져 내 차례가 될까 공포를 느끼며 좀비 영화 특유의 심리가 일맥상통하니까요. 인간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쓰나미나 화산 폭발이 아닌 밀집된 인간의 함락된 이성일지도 모릅니다. 그 밖의 암시처럼 놓여진 몇 가지 도구들이나 시각적인 충격 요소들 또한 월드워Z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충실하게 피피엘을 수행하는 마트 털이씬을 바라보며 잠깐 월드워Z의 예루살렘 쇼크가 스쳐 지나가기도 하더군요.

 

"대자연은 연쇄살인마와 같다. 잡히고 싶은 욕구가 있기에 반드시 힌트를 남긴다." 아쉬운 것은 재난을 맞닥뜨리는 공포의 스케일은 웅장해도 해결 방식은 시시하리만큼 단조롭다는 건데요. 스케일 큰 재난 영화를 명작과 졸작의 갈림길로 나누는 것은 영리하고 행동력 강한 주인공이 키워드를 잡기 위해 몸과 머리를 쓰는 과정을 그려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감기는 키워드를 잡기 위한 행동은 있어도 지능은 거의 이용되지 않아요. 그저 오지랖과 정의감의 경계를 왔다 갔다하는 발랄한 남주인공과 마음과 마음을 재난의 해결책으로 내세우는데 그게 좀 창피합니다. 뭐가 창피하냐면 그 장면에 감독이 원하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창피하단 말이죠.

 

 

원하는 욕구를 모두 채우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졸작이라 부를 수 없었던 것은 의외의 디테일과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색다른 스케일 때문인데요. 이 영화는 기존 한국 재난 영화 특유의 프레임을 상당히 벗어난 느낌을 줍니다.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아요 규모가 아니라 재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전 지역이 아니라 분당이라는 도시 하나만으로도 재난의 스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래요.

 

우리나라의 캐릭터가 컨테이너 속의 불법 체류자를 짓밟는 폭력적 갑의 위치로 묘사된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었고요. 이희준은 억지로 서울말을 안 써도 되니 연기력이 몇십 배는 껑충- 주다해와는 다른 느낌으로 정말 정말 성격이 나쁜 여의사의 연기를 발성까지 달리하며 재미있게 연기해준 수애도 볼만합니다. 특별출연하신 그분은 마치 사극 속 조선의 임금 같아 재미있더군요. 분당으로 향하는 풀밭을 외국인 노동자가 콜록대며 퍼뜨리는 바이러스 위로 "청정 지역 분당"이라는 플랭카드와 전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서울시 슬로건의 온화함은 아이러니를 안겨주며 감정을 극대화합니다. 직접적인 연출 사이로 의외의 생각지 못한 디테일들이 영화 중간중간에 안식처럼 꽂혀있어요.

 

 

 

분명 영화 감기를 인생 최고의 영화였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난폭한 여름을 두 시간의 바캉스로 취하기엔 그리 허물이 없을 영화입니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재난으로 만든 8월의 서스펜스라니. 스릴있지 않습니까? 꼬인 데 없는 구성과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만 밉살스럽지 않은 캐릭터들 꽤 전위적인 느낌을 주는 충격적 비주얼까지.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요. 지적 허영심을 채울순 없다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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