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영화

울버린, 왜색보다 견디기 어려운 지루함

 

어느 포털사이트에서 영화 울버린의 홍보 문구를 이렇게 달아놓았더군요. "휴 잭맨의 한국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울버린을 봐야만 한다" 휴 잭맨의 한국 사랑을 마케팅으로 매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울버린의 홍보팀이 그 마음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것은 사실이죠. 아이러니한 것은 휴 잭맨의 한국 사랑을 홍보 방향으로 내세운 영화가 근래에 보기 드문 왜색의 향연을 펼쳐내고 있다는 점이지요. 영화 울버린은 모든 오감을 일본에 바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후지 티비에서 만든 팬서비스용 전대물이라고 소개받았어도 그러려니 했을 겁니다.

 

누군가는 퍼시픽 림을 왜색 영화라 말하지만 단언컨대 퍼시픽 림은 일본의 정서를 녹여낸 영화가 아닙니다. 로봇을 동경하던 메카 오덕후의 양덕 파워를 증명한 작품일 뿐이죠. 일본인 여주인공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작품을 왜색이라 총칭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영화 울버린은 두 명의 일본인 여주인공을 두고 중심인물의 대부분을 일본인으로 구성한 것도 모자라 일본을 울버린의 소우주로 설정합니다.

 

 

 

샤부샤부와 유카타 파칭코와 사무라이 할복과 러브호텔.. 네. 과연 울버린 풍 일본 관광 패키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장면들이지요. 일본의 도심지와 시골을 오가며 그들의 언어와 습관과 전설을 취득하는 울버린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그가 스토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블록버스터급의 일본 홍보물을 제작하고 있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지경이지요.

 

일본의 길라잡이 같은 울버린에 저항감을 느끼는 한국 관객의 심리는 당연합니다. 더군다나 휴 잭맨의 한국 사랑을 잔뜩 주입 받고 극장을 찾은 순진한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강제로 일본 관광을 시키는 불쾌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울버린을 참을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왜색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겨움이죠. 이 작품의 장르를 액션 영화가 아닌 로드 무비라고 소개받았어도 지루함에 학을 뗐을 겁니다. 만약 영화 울버린의 제작진이 일본 여행을 안내하는 히치 하이커를 자청한다면 그는 해고당했어야 마땅합니다.

 

 

 

애초에 일본과 인연이 많은 울버린입니다. 왜색을 지독히도 혐오한다면 이 캐릭터를 선택해선 안 되겠죠. 만화 원작에서 손꼽는 그의 에피소드는 대부분이 일본을 배경으로 두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일본인 아내를 두고 있는 울버린이기에.. 사실 왜색 논란은 작품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이 영화의 단점으로 들고 나설 순 없을 겁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왜색이 원작을 경배하는 존경심이건 일본정보 관광국에서 지시한 재팬 투어 홍보물이건 간에 지독히도 재미가 없다는 점이죠.

 

영생의 삶이 저주가 되어버린 사나이, 울버린을 내세우면서도 막상 그의 고뇌는 작품 속에서 그리 깊이 깊게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유머를 덧붙였을지언정 슈트를 버린 토니 스타크의 각성이 훨씬 깊이가 느껴졌을 정도니까요. 미소조차 배제할 만큼 묵직한 색채로, 이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게 고뇌합니다만 구미가 당기지 않는 러브라인, 상투적인 캐릭터를 단순한 스토리에 묶어두고 그것조차도 허술한 개연성에 깊이는커녕 피로감만 더해줍니다. 21세기에 공주님을 경호하다 눈이 맞는 보디가드 이야기가 구미가 당기겠습니까? 적어도 저는 아닙니다.

 

 

심지어 이 영화는 일본을 제대로 홍보하는 것조차 실패했습니다. 이 영화 속 일본인은 미개하며 음산하고 부정적이죠. 그나마 선인으로 그려지는 인물은 탈 일본화된 일본인 여주인공뿐입니다. 서양인의 선입견을 조금도 걸러내지 않은 불편한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를 관람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왜색을 불쾌해하면서도 한편 서양인의 오만함을 경멸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취지가 관객의 불편한 철학을 동요하기 위한 문제적 스토리 또한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건 히어로 액션물이잖아요.

 

그나마 보는 즐거움이라도 경이로웠다면 좋았을 텐데요. 로봇과 메시아 슈트가 싸우는 기존의 히어로물에 비해 아무리 파워풀해도 잘 쳐줘야 동물-이라는 느낌을 주는 울버린을 가뜩이나 힘까지 제압해놔서 야쿠자 몇 명에게 빌빌대는 모습으로 실망감을 안겨줍니다. 흥미로운 액션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불쾌함과 지루함을 이겨낼 만큼의 힘은 없네요.

 

 

왜색, 오리엔탈리즘, 부족한 서사, 실망스러운 볼거리. 그럼에도 울버린을 관람할 유일한 이유를 찾는다면 오로지 맨 중의 맨 휴잭맨의 선의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젠 됐겠죠. 더이상은 휴 잭맨의 중년과 재능이 이런 작품에서 소모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좋은 작품을 위해서라면 한국을 조금 덜 사랑해도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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