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도 송혜교도 아닌 수지를 여신으로 떠받드는 지인에게 수지가 좋은 이유를 물으니 한동안 답을 설명하지 못하고 맴맴거리곤 한참후에야 뜬금없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예쁘지는 않은데 수지는 수지밖에 없잖아. 그래서 좋아." 이게 도대체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그럼 수지가 수지지 수지가 크리스탈이 될수는 없지 않은가? 라고 황당해하는 내게 그분은 너도 수지를 좋아하면 내 말을 알게 될 거라고 답했다. 그리고 지금, 그 친구의 말을 이제는 이해한다.
생각해보면 수지는 기존의 JYP들과는 다른, 무언가 기형적인 JYP의 아이돌이다. 그가 노래마다 주문처럼 아로새긴 JYP라는 끈적한 영역표시를 그녀 역시 피해갈 수 없었음에도 이상하게 수지에게는 기존의 다른 JYP에게 느껴지는 JYP스러움이 없다. 그녀가 현재 받고있는 인기나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봐도 이전의 JYP들이 대중에게 사랑 받은 무언가가 빠져있다. 어떤 캐릭터에게건 필연적으로 느껴지던 '어두움' 말이다.
JYP에게서 첫사랑의 심볼이 나오다니. 그 사실부터가 경악스럽기 짝이 없다. 사실 그런 방면으로 보면 수지는 JYP의 역사에 하나의 기록을 세워준 셈이다. 첫사랑, 있는 그대로의 꾸밈 없음. 이 조건에 부합하는 수지는 그래서 있는 그대로 꾸밈이 없다. 왜곡해서 말하자면 그래서 열정이나 노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지는 뭘해도 수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상태다.
최근 홍자매의 야심작 드라마 빅에서 사람들은 공유의 등근육과 이민정의 반짝이는 얼굴에 주목했지만 내가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이제 세번째로 도전하는 수지의 연기력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연기에 임하는 자세였다. 드림하이로 소위 발연기라는 비평을 들으며 울기도 했던 수지. 많이 부족한 것을 안다며 노력하겠다며 겸손함을 내비치던 그녀였기에 건축학개론에서 아무런 꾸밈 없이 다가온 첫사랑의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흥을 주었다. 극장 가득 울려퍼지는 기억의 습작과 더불어 수지에게 그시절 첫사랑이 떠오르게 했던 것은 아마 그녀가 정말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지의 평이함도 꾸미지 않은 날것의 상태도 그것이 세번째에 이어 연이어 반복되니 수지를 향해 느꼈던 무언가의 목마른 갈증이 더욱 애틋하게 강렬해졌다. 홍자매의 드라마속에서 수지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서윤재 혹은 강경준을 짝사랑하는 귀여운 스토커 장마리의 캐릭터는 빅에 등장한 그 어떤 인물보다 독특하고 개성 만점의, 홍자매가 그야말로 힘을 빡 들여서 쓴 여주인공의 표식이 두드러지만 그 캐릭터에서마저 수지는 너무나 '수지'스러웠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수지의 마리는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짝사랑하는 남자아이를 향해 촛불을 켜놓고 치성을 드리고 급격스럽게 괴팍해지며 고함을 지르고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마리의 캐릭터는 사실 홍자매 드라마의 여주인공들 중에서 유별나게 평이한 민폐여주스러웠던 김민정의 캐릭터보다 오히려 더 여주인공에 가까운 캐릭터다. 사실 홍자매의 캐릭터에서 수지가 맡은 비중의 두번째 히로인은 그야말로 안드로메다로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처참하게 외면되는데 오히려 여주인공인 김민정보다 더 매력적인 캐릭터를 부여 받았으니 어쩌면 수지의 매력에 빠진 홍자매가 처음으로 자신의 법칙을 깨게 만들어버린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하지만 꽤 어울리는 역할이긴해도 수지 개인을 비추어볼때 꽤 괜찮은 연기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지는 어디에 끼어도 부담이 없고 아이돌로서의 인지도도 상당한 편이고 개인 활동도 남부럽지 않게 필모그라피를 쌓아가고 있으며 드림하이의 이례적인 성공과 건축학개론의 수지신드롬을 만들어준 폭발력까지 현재 활동하는 그 어떤 걸그룹의 아이돌보다 대단한 실적을 쌓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업적을 '노력'이 아닌 '행운'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은 수지에게 느껴지는 항상 수지를 뛰어넘지 못하는 2퍼센트 부족한 열정탓이다.
수지는 이제까지 별다른 노력이나 끼를 부리지 않아도 되었다. 항상 수지는 수지 그대로 있기만 해도 좋았으니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있는 그 자체로 연속적인 성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수지가 타고난 큰 복이겠지만 그래서 실패해본적이 없는 수지의 불완전한 성공이 나는 조금은 아쉽고 불안하다.
호평을 받던 수지의 연기가 처음으로 비평의 도마 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수지에서 조금만 벗어나 디테일하고 심도 깊은 연기로 본격 돌입하자 순간 시청자를 '멘붕'시킨 수지의 부족하고 부실한 연기력을 어김없이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수지의 얼굴에서 벗어난 캐릭터는 표정도 가다듬어지지 않았고 발성은 역부족이었다.
패배의 쓴맛이나 검은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없는 수지는 이제까지는 그냥 수지스러움에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런 노력을 들여도 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거듭될수록 수지 자신의 발목을 죄는 불편한 행운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행운을 온전한 자신의 몫으로 만드는 것은 수지스러움에 머물러있지 않은 그 이상을 뛰어넘는 파격이다. 연기자 수지가 이제 더이상 수지인채로 그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캐릭터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제 조금은 그녀 자신을 위한 도전을 시작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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